지워지지 않는 상처 ‘아동성폭행’

<사례1>
열두 살인 지윤(가명)이는 얼마 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그의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지윤이의 아빠는 수년 전 실직 뒤 매일 술을 마시고, 생계를 꾸려가는 지윤이의 엄마를 매일 폭행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에는 지윤이와 남동생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러다가 지윤이의 아빠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 한 것이다. 남동생이 집에 없을 때에만 가해지던 성폭행은 점점 정도가 심해져 마침내 남동생을 옆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뒤 자행되기도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지윤이는 아빠를 신고했다.

<사례2>
다섯 살인 혜원(가명)이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얼마 전 경찰서를 찾았다.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평소 기억력이 좋았던 혜원이는 용의자의 옷차림과 머리 모습, 키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혜원이의 진술로 용의자는 일주일 만에 구속됐다. 하지만 당시 사건으로 심한 충격을 받은 혜원이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활발했던 성격마저 내성적으로 변해 엄마 외엔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다. 

<사례3>
네 살인 미혜(가명)는 얼마 전 어린이 집에서 유치원 이사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미혜의 엄마는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아랫도리 부분을 아파하면서 ‘아저씨가 만졌다’는 말을 하는 둥 이상 증세를 보이자 이사장을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검찰조사를 거쳐 헌법소원에 이르기까지 2년여에 걸쳐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할 파출소에서조차 “바빠서 일손도 모자라는데 이상한 일로 찾아왔다”는 타박만 들었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미혜의 엄마는 이 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유치원 이사장은 어린이 집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위의 3가지 이야기는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일어난 아동 성폭력 중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모아놓은 것이다.

이렇듯 아동 성폭력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아동 성폭력이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혹시 내 아이도 피해를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 수 있다. ‘설마 설마 했는데 만약 당황스러운 아이의 대답을 듣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린이 성희롱이 어떤 건지도 몰랐는데 신문을 보다가 내 자녀가 당한 경우와 비슷하다며 전화를 걸어온 부모.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TV를 보다가 자녀가 심하게 위축되길래 혹시나 싶어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내 자녀가 피해자임을 알게 됐다는 부모. 앞의 사연은 대부분 어린이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뒤늦게 알았다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 부모의 안타까운 호소들이다.

성폭행 당한 아이들, 심한 후유증에 시달려

   이 같은 아동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 아동성폭행의 발생빈도는 지난 1년간 아동성폭력 피해구제센터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 접수된 사례만 418건(성폭력 피해사례)에 이른다. 1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이니 아동 성폭력 사건의 심각도를 알 수 있다. 이들 418명 아동 중 7세 이하의 아동이 전체 절반이 넘는 232명(56%)에 달했으며 8세~13세 이하 아동이 168명(40%), 14세 이상의 아동이 9명(2%)인 것으로 나타나 주로 13세 이하 아동, 그중에서도 7세 이하의 아동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아동 중 90%에 이르는 377명의 아동이 여자 아이였으며 10%가 남자 아이여서 여자 아이 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들도 성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유형별로 분석해 봤을 때 추행이 68%(28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협박이나 위협 또는 폭행이 결부된 강제추행이 14%(60건)이였다. 이외 준강간, 강간도 각각 3%(14건), 7%(28건)이였다.
또한 아동의 피해 장소는 피해아동의 집이 가장 많았고(45.3%), 가해자의 집이 그 다음을 차지하였으며(18.2%), 피해아동이 머무는 시간이 많고 자주 출입하거나 하는 집근처, 학교, 유치원, 학원, 놀이방 등 익숙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18.2%나 되었다. 또한, 가해자가 면식인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가해자의 집 역시 친척집 등 피해 아동에게는 낯선 곳이 아닌 경우가 많아 아동들이 경계하지 않는 장소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보여졌다.

아동 성폭행의 상당수는 피해자가 어린 아이라는 점을 노린다. ‘아이가 뭘 알겠느냐’, ‘아이가 피해사실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해 범행을 저지르지만 이는 오산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진술녹화 제도는 아동이 제대로 진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동 성폭행을 하는 경우 붙잡힐 가능성이 성인 성폭행에 비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아이들은 공포 및 불안감을 나타낸다. 학교를 가서도 제대로 학교활동을 할 수 없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과도한 자위행위를 하기도 한다. 또 나이에 맞지 않는 성행위 지식을 알고 있다든지 나이보다 어리게 행동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듯 아동 성폭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동의 인격 뿐 아니라 신체적 이상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피해를 입은 당시에는 아무런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다가도 사춘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부인해오던 피해사실이 되살아나면서 이성혐오, 가출, 혹은 매춘으로 이어지기도 해 매우 심각하다.

연세의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아동 성폭력은 다른 폭력에 비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면서 “특히 성적인 본능 조절, 긍정적인 성정체감 형성, 바람직한 성역할, 성인이 되어 건전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등에 크나큰 손상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바라기 아동센터 최경숙 소장은 “아동 성폭행은 은밀히 반복적으로 오랜 기간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가족이나 주변에서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성폭행 당한 어린이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검찰·법원의 남성 중심적 성의식

 

  다른 범죄에 비해 성범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재범률. 2004년 성폭행 범죄자 가운데 11.9%가, 2005년에는 16.1%가 성폭행을 저지른다. 지난 해 성 범죄자 중 약 53%는 과거 성범죄 전과가 있었다. 특히 수치심 탓에 성범죄 신고율이 전체 발생건수의 10%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 범죄율은 더 높다.

아동 성폭력 전문가인 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원은 최근 성범죄를 심리하는 판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유인해 자위행위 시킨 교사를 처벌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요지는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를 찾기 위한 게 아니었다. 판사는 “교사가 여제자를 직접 어떻게 한 것은 아니니까 처벌할 수 없는게 아니냐?”, “미국과 일본에서도 이런 행위를 처벌한 전례가 있느냐?”고 물었다.

강 연구원은 “선진국에서 이미 수십 건의 판례가 나와 있는 분명한 성범죄이데도 처벌여부를 물어와 어이가 없었다”면서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검찰과 법원의 남성 편향적 태도를 속히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 중심의 성문화도 성범죄를 키우는 중요한 요인이다. ‘성범죄자 등록제’같은 하드웨어가 갖춰져도,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하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2004년 ‘아동 성폭력 고소과정에서 어머니의 고통스런 말하기’라는 논문으로 이화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 정명희 보좌관은 “수사관들이 성범죄 피해 아동에게 ‘성기가 어떻게 생겼니?,’‘몇 번했니?’ 등 폭력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사회의 남성 중심적인 성의식을 질타했다.

아동성폭력 문제가 최근 공론화하고 있지만 아동성폭력 예방과 피학대 아동 보호와 관련한 시설 및 전문인력, 법적·제도적 장치는 미비하다. 아동성폭력과 관련한 전문 병원은 전국에 6곳, 피학대 아동을 위한 격리시설도 6곳에 불과하다.

아동성폭력 피해자가족모임 송영옥 대표는 “아동성폭행 사건을 전담할 수 있는 전담수사팀, 성폭행 피해자·가족 전문치료 교육센터, 성폭행 치료 전문병원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적극적인 대처와 강력한 처벌 이루어져야

아동성폭행은 은밀히 반복적으로 오랜 기간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가족이나 주변에서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동의 삶의 전반에 걸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아동기 성폭력은 주로 아는 사람에 의해 오랜 기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까. 피해자의 후유증 정도가 매우 심각해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난 범죄보다 훨씬 많은 수의 범죄가 덮어져 있는 아동 대상의 성폭행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분명 지금보다 더욱 강도 높은 당국의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조사과정에서 아이와 부모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이러한 절차를 외부로 홍보하는 것이 실제 사건 신고율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인만큼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또, 이에 대한 홍보도 강화해 파급효과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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