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햇볕정책의 실패 책임져야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보수진영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매서운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북한 핵실험 직후 첫 집회를 여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 10월 9일 저녁 7시 30분, 전직 군인단체,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 227개로 구성된 ‘북핵반대·한미연합사반대 천만인서명운동본부’는 청계광장에 모여 ‘북핵반대’와 ‘정부책임론’을 요구하며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 날 집회에서 김성은 전 국방장관은 “이번 북한핵실험의 원인은 정부의 퍼주기식 햇볕정책”이라면서 “북한 동포를 살리기 위한 명분으로 보내졌던 어마어마한 돈이 세계를 위협하는 핵실험 비용으로 사용된 것이 자명해졌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의 정책 실패로 한반도 위기가 초래된 만큼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관련 당국자가 국민들 앞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본부 측은 “이번 핵사태로 인해 한반도는 언제든지 핵무기로 뒤덮일 수 있는 일촉즉발의 화약고가 되었다”면서 “이는 지난 10년간 추진된 ‘햇볕정책’이 파탄하였음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가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며 현정부를 질타했다. 이 날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노무현 정권과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집회에 참석자 김중한(32) 씨는 “이번 핵 사태로 지금까지 우리정부가 북한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정부는 이에 책임지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한다. 지금이라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끊고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 밖에도 대표적인 보수시민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 20여명은 10일 오후 2시 종로3가 탑골공원 앞에서 ‘북한 핵무기 실험 도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날 집회에서 회원들은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고 가는 북한과 이를 방치한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3m 높이의 핵미사일 조형물을 불태웠다. 나라사랑 어머니연합, 국민행동본부 등 20개 보수단체 회원들도 10일 청와대 인근에서 ‘북핵무기 실험규탄대회’를 열고 “민족공멸을 몰고 올 핵반역자 3인방,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을 단죄하자”를 외쳤다.

이들 시민단체 회원들은 11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앞에서 햇볕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라이트코리아와 대한민국수호범국민연합 등은 서울 계동 현대사옥 앞에서 “대북송금 창구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의 중단”을 촉구했다.

보수, 한미공조 바탕으로 대북 강력제재 촉구

이들 보수단체는 북핵 사태의 해결책에 대해서 ‘강력제재방안 마련’에 뜻을 같이 했다.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 보수단체 대표와 전직 군·경찰간부 교육자 등 100여명은 지난 10일 ‘국가 비상대책협의회’를 결성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정부는 6.15남북 공동선언을 폐기하고 핵확산금지조역(NPT)에서 탈퇴해 미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제거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견에는 강영훈 전 총리, 김석우 전 통일부차관, 박성현 서울대평의원회 의장, 오자복 전국방부 장관 등 20명이 참석했으며 협의회에는 김효은 전 경찰청장, 박홍 서강대 이사장, 배종학 학국초등교장회 회장 등이 참여했다.  

북핵저지시민연대는 지난 10월 15일, 탑골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UN과 국제사회에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대북제재를 실시”를 촉구했다. 박찬성 북핵저지시민연대 대표는 “북한이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핵을 개발하고 실험했는데도 지원을 멈추지 않는다면, 추가핵실험은 물론 전쟁발발 위험성을 함께 키우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력 제재방안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이트코리아와 대한민국바로세우기여성모임, 실향민중앙협의회 등의 보수시민단체들도 15일 이북도민체육대회가 열리는 양천구 목동 축구경기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핵규탄과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의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실향민 2세인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공동대표는 “지금이라도 북핵 개발의 자금줄이 된 대북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면서 “현대가 대북 퍼주기사업을 지속하는 한 현대를 ‘매국재벌’로 규정하고 현대 계열사인 현대증권 구좌 해약하기, 현대택배 이용안하기 등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북핵 사태의 해법은 정부가 미국과 UN의 강력제재 방안에 힘을 합치는 것”이라면서 “이대로 북한에 끌려 다닌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은커녕 우리사회 빈곤층에게 조차 쓰지 못하는 엄청난 국세가 우리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핵사태는 미국의 강경책 때문

  보수단체들이 북핵 사태의 원인을 ‘정부의 햇볕정책’를 꼽는 반면 진보단체들은 사태의 원인을 ‘미국의 대북 강경책’으로 분석했다. 부시 행정부가 불필요한 강경책으로 북한을 궁지로 몰았고, 이에 격분한 북한이 ‘북핵’이라는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 결국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 북핵 사태는 미국의 실패한 정책기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진보진영인 통일연대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5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10월 10일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핵 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 강경책에 있다”면서 “유독 부시 정권이 들어서고 북미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된 것 역시 북한과 김정일 정권을 ‘악의 축’으로 여겨왔던 미국의 정책기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부시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에 한국 정부의 참여를 강요하며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덧붙여 “PSI가 현실화되면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강제 나포, 강제 검색 등을 통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위험이 크다”며 “북한을 대상으로 보복정책을 시행한다면 한반도의 전쟁위험만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단체 회원 오정민(41) 씨는 “북핵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북한을 진정으로 ‘악의 축 국가’로 만든 것은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라면서 “미국의 이 같은 정책 기조 때문에 오히려 햇볕정책이 빛을 보지 못해 우리정부도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도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8개 단체가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미국은 대북제재 중단하고 북미대화에 복귀하라”를 외쳤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긴급성명을 내고 “핵무기실험은 미국의 전쟁 위협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준비”라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을 설득하는 한편 반전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희망사회당은 ‘북핵 용인론 반대, 군사 제재 반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내세우며 보다 선명한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일부 진보단체의 ‘북핵 용인론’을 비판하고 있는 것. 지난 10월 12일, 희망사회당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분명 북한 정권에 물어야 한다”면서 “미국책임론에도 동조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북한의 책임은 명백한 것이니 북한지도부의 비이성적 행동에 부화뇌동하는 한국의 ‘반평화적 북한추종세력’은 하루빨리 정치적 이성을 회복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햇볕정책의 기조 유지하되 수정보완 필요

진보진영 측은 북한핵사태에 대한 해법에서도 보수진영과 대립되는 주장을 펼쳤다. 무조건적인 강경책보다는 햇볕정책의 수정보완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 희망사회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실험 사태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하자”면서 “강경한 제재방안을 통해 전쟁위험성을 높이고 국민을 불안하게 할 바엔 햇볕정책을 수정 보완해 북한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설득하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날 기자회견에서 당은 또한 한국, 일본, 미국의 극우세력에게 “핵실험을 빌미로 경거망동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특히 북핵사태의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 미국 정부는 “북한 ‘말려죽이기’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조속히 북미 정식수교에 나설 것”도 촉구했다.

통일연대의 한상렬 상임대표는 지난 10일 개최된 제 85차 반미연대집회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정책기조에 휩쓸리기 보다는 미국을 주도적으로 설득해 북한과 미국이 직접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북한 지원책의 수정과 함께 미국을 설득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연 환경운동연합 측도 “미국의 강경책이 북핵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는데, 우리 정부까지 나서 대북 강경책이 동조한다면 더 큰 불행이 닥칠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정부의 무조건적이고 비효율적인 대북지원은 수정하되 햇볕정책의 평화적 기조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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