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렬(76)씨는 1952년부터 1971년까지 만 19년 동안 교도소 교화과에 재직하며 수많은 사형수들을 접한 인물이다. 6·25를 거치며 치열한 이념논쟁의 한 가운데를 지나던 시기였던 지라 고 씨의 재직 당시 서대문구치소에는 사형수들이 넘쳐났는데, 진짜 죄질이 심한 흉악범 외에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정치적 음모에 의해 사형수로 몰린 사상범들이 많았다.
“그 때는 무서웠던 시기”였다며 운을 뗀 고 씨는 1959년 그가 처음으로 목격한 사형집행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사형집행이 10~15건 정도 있던 때였어. 간첩죄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들어온 정치사상범들이 많았는데, 그날 교수대에 선 인물 중에 진보당 당수 조봉암이 있었거든. 조봉암 선생이 ‘나는 공산당도 간첩도 아니고, 단지 이승만과의 선거에서 져서 정치적 누명을 쓰고 죽는 것’이라 유언하던 모습은 지금까지 눈앞에 생생해….” 
비단 정치사상범들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게 아니었다. 돈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은 이렇다 할 항변 한번 못 해보고 차가운 주검이 되어 형무소를 나가곤 했다.
“억울한 사람 숱하게 봤지. 그 때는 소위 말하는 노비가 있었는데 연탄가스에 주인내외가 질식해 죽자 의도적으로 죽였다며 덮어놓고 잡혀 온 사람도 있었고, 인민군에게 잡혀서 강제로 밥을 지어준 어떤 사람은 빨갱이에게 부역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사형을 당하기도 했어. 인권이고 뭐고 그땐 그런 거 없었거든.”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생활을 위해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고 씨에게 매일 같이 사형수들을 접해야 하는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왜 저들은 저토록 괴로워하다 허망하게 죽어가야만 하는가,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물음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무겁게 솟아올랐다. ‘하늘이 내린 생명을 인간이 어찌 함부로 할 수 있는가.’ 그의 마음에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명제가 떠올랐지만 엄혹한 시절 국가공무원의 신분으로 그가 사형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았다.
‘육신의 구원은 어려울지언정 저들의 영혼이라도 이 지옥 같은 삶에서 구원하자.’ 그 때부터 고 씨는 사형수들의 방방마다를 돌며 가능한 많은 사형수들을 만났다. 극심한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어렵사리 성경을 권하며 조금씩 마음문을 열어 갔다. 사형수들과 섞여 밥을 먹고 옷을 빨며 인간적인 유대감을 나눴다. 교도관의 신분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능한 많은 시간을 사형수들의 방에서 함께 지내며 그들의 떨리는 마음을 위로하고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사형수들이 하나 둘 마음을 열 때마다 얼마나 기쁘고 또 한편 서글펐는지 몰라. 이 귀한 생명이, 이 회개한 영혼들이 하나같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니….”
그렇게 교화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며, 고 씨는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매일 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모습들이 그의 눈에는 보였다.
"한번은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어느 살인범이 내게 방해받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어. 신앙인이 된 후 달라진 모습을 많이 보이던 사람이라 나는 흔쾌히 허락을 하고 틈틈이 들여다보며 행동을 살폈지. 그런데 그 사람, 밤새 홀로 앉아 기도를 멈추지 않는 거야. 벽을 향해 조용히 흐느끼며 기도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사형집행으로 진정한 위로 받는이 아무도 없다"
교화위원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포인트(오늘날 버튼에 해당하는 수동식 집행 기구)를 당기지는 않았지만 사형대 위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사형수들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할 때가 그는 어느 때보다 고통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원통하다 절규하던 사람, 피해자 가족들에게 백배 사죄를 구하는 사람, 혹은 먼저 하늘나라에 가니 이 다음에 천국에서 만나자며 덤덤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애원에도 가차 없이 포인트가 당겨졌던 기억들을 상기하며 고 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서 왜 인권이 신장한 오늘날까지 국가가 범죄인이 회개하고 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제도화 하지 않고 살인을 정당화하는가, 통탄했다.
“사형제도는 단순히 보복살인을 국가가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일 뿐 진정한 정의구현이라고 할 수 없어. 그 보복심리를 정당화하며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도 이미 양심적 살인자가 되어 있는 거나 다를 바가 없지. 나는 6.25참전 군인이었지만 붙잡은 인민군 포로들을 보복심 때문에 처형하지는 않았어. 내 형제와 같던 전우들의 목숨을 앗아간 포로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붙잡힌 자들이기 때문이지. 사형수도 마찬가지야, 갇힌 자에게 가하는 사형은 잔인무도한 보복살인에 지나지 않아."
그는 “사형법에도 ‘형을 집행하는 목적은 범죄인을 교정·교화하는 데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헌법 역시 ‘정당방위 외에는 살인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며 “현행 사형제도는 위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가 경험한 바로는, 살인자를 사형시킨다고 해서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죄인의 사형집행 사실을 전해들은 피해자 가족들이 집행 전과 비교해 치유된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해자든 살인자든 또한 양쪽 모두의 가족이든 있어서는 안 될 사건에 조우했다는 의미에서는 모두에게 불행한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죽은 이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

고 씨가 현역시절 복무중인 사형수 명단. 지금은 이들 모두 가고 없다.

 퇴직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고 씨는 요즘에도 자신이 대부가 되어 준 150여명의 사형수를 기리며 가끔씩 그들의 묘소를 찾는다. 호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종이쪽지에는 그가 퇴직 당시 복역 중이던 32명의 사형수들 이름이 세례명과 함께 적혀 있었다. 이미 그 옛날, 예외 없이 사형이 집행됐던,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들…. 그러나 고 씨는 눈을 감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다 떠오른다 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그들을 위해 침묵의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사형수들과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장 궁지에 몰린 이들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나는 믿어, 죽기 전에 사형제가 폐지되는 걸 꼭 볼 수 있을 거라고.”
평생을 간직해 온 일념이 ‘이제는’ 이루어지기를, 그는 오늘도 침묵의 기도로 아침을 연다….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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