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종합사회복지관 공상길 관장

  여기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있다. 남들보다 이른 진급에 벌써(?) 관장이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자신의 능력을 자화자찬하기보다는 ‘운이 좋았다’라는 말로 웃어넘기는 털털한 사람이다. 설득력 있는 목소리만큼이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자신감이 그를 더 빛나게 한다. 더군다나 그 행복이 자신의 일 덕분이라고 말하는 프로페셔널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와의 만남이 필연을 넘어서 운명이라고 말하는 그, 사회복지를 하는 것이 젊었을 적 연애이상으로 애틋하다고 말하는 그, 릴레이복지사 18번째 주인공 공상길 관장을 만나보았다.

‘사회복지는 내 운명’

공상길 관장에게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촌동생이 있었다. 아동기를 함께 성장하다보니 그 아이를 키운다고 고생하던 큰어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었다. 사회적인 인식 뿐 아니라 집안 내에서도 큰어머니에게 책임을 몰아가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한 겨울 큰어머니와 시설로 면회 갔을 때 동상으로 발갛게 된 동생의 발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이건 아닌 거 같다’라는 생각을 했단다. 왜 큰어머니와 동생이 떨어져 살아야하는지도 궁금했다.

“사회복지 일을 하게 된 잠재적 동기는 아마 어렸을 적 경험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동생을 키우며 고생하는 큰어머니를 보면서, 막연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세상을 어렵게 살아야하나 고민했었죠. 그런 고민들이 훗날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도 동기부여가 됐어요.”

그는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했다. 흔히 사내아이들이 그렇듯 어렸을 적부터 ‘배 만드는 일’이 멋있어보였단다.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선박회사에 취업을 했다. 용접을 하고 망치로 두드리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하루, 이틀, 사흘... 날짜는 잘 갔지만 일 한지 한달이 채 안돼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평생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에게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는 결국 회사를 때려 치고 나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집으로 배달된 신문에서 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 편입생 모집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

“신문 광고를 보는 순간 ‘아! 이것이 내 길이구나!’하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날로 원서를 집어넣고 학교에 입학했죠. 아직도 첫 강의는 잊을 수 없어요. 김만대 교수님의 사회복지개론이었는데, 수업을 듣는 내내 망치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삶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만 같았어요. 인간이 무엇이고 사회복지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기초적이고 원론적인 메시지는 무지했던 저에겐 감동 그 자체였어요.”
 
달콤 쌉싸름한 15년 복지사생활

대부분의 복지사 생활이 그러하듯 공관장의 복지사 생활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달콤한 열매가 있는 반면 쓰디쓴 좌절의 경험도 있는 법. 그래도 15년 복지사생활 중에서 첫 직장에서 느낀 보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그가 의욕적으로 매달린 미션은 달동네 비행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그 때의 성과는 지금도 그를 행복하게 한다.

“학교에서는 문제아,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히고, 경찰서에서는 리스트에 올라가 있고 집에서도 매일 혼나는 그런 아이들이었어요. 과연 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죠. 우선 동네에 문제아로 꼽히는 아이들 12명을 모아 디딤돌이라는 그룹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거의 강제적이었지만 차츰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꼈어요. 주로 자아개발 프로그램에 중점을 뒀었죠.”

변할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이 차츰 변해갔다. 행동수정요법을 통해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생활에 적응해갔다. 동아리 활동 덕분에 반에서 꼴등을 하던 아이가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는 기적(?)과 같은 일도 벌어졌다. 지금도 그 때 그 복지관에서는 그가 만든 동아리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맡았던 아이들은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그들에게 공관장은 공선생님으로 불린다.

의욕이 넘치는 그도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 부랑인 시설에서 일했던 3년이 그러했다. 단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시설수용자를 돕기는 했지만 함께 사는 것은 거부했다. 그들을 특정한 장소에 가둬두기만을 바랬다.

공관장은 그러한 사회인식을 애써 무시한 채 의욕적으로 사회적응프로그램인 SST프로그램(Social Skill Training)을 시행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부랑인에게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찾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낀 시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었고, 그로 인해 프로그램이 존폐의 위협을 느꼈다. 그 시절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사회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때의 아픈 경험 역시 지금의 그에겐 약이 됐다. ‘우리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을 도우며 돈 받는 최고의 직업

후배들로부터 “선배 사회복지사 비전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공관장은 두 가지 비전에 대해 얘길 해준다. 하나는 물질적인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에 대한 거다.

“솔직히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물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직업을 구하라고 추천합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그 어느 직업보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직업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서 파는 과정이지만 사회복지사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느끼는 행복까지 덤으로 받는 직업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사회복지사의 비전은 ‘가슴떨림’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를 통해 행복과 가슴떨림을 느끼고 싶다면 ‘사회복지사가 되라’는 얘기다. 간혹 후배들 중에는 ‘no where’라는 말을 자주하는 친구들이 있단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게 얘기한다.
“자리가 없는 게 아니고 출퇴근시간, 봉급 등을 따지다보니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새로운 인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진정으로 가슴 떨림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세요. no where가 now here가 되는 순간이 올테니까요.”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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