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도시 저소득층의 밀집거주지를 사람들은 달동네라 불렀다. 비루해 보이는 삶이 모인 곳이지만 이름만큼은 그 어느 마을보다 곱고 예뻐서, 멋모르는 사람들과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조금쯤 낭만어린 시선을 담아 이곳을 바라보곤 했다. 가난이 너무도 분명하게 살아있어 그만큼 억센 희망도 생생한 이야기도 많기 때문이다. 그 속 삶이 진정 어떠한지,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지만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가 달빛처럼 내려쌓인 이곳에 어김없이 또 한 번 겨울이 찾아왔다. 

아무렇게나 발라댄 비좁고 옹색한 골목골목. 칠 벗겨진 외벽과 녹슨 대문이 추위를 보탠다. 가파른 오르막에 땜질하듯 발라놓은 시멘트계단과 그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고 있는 노인의 매무새도 초라하다. 노인은 골목 끝 허름한 쪽문이 달린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노인이 들어간 쪽문에는 깨어져 나간 유리를 갈지도 않고 그 위에 바람막이용 비닐을 덧댄 궁색한 창문이 달려있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별반 다를 바 없을 쪽문 안 살림이 그려진다. 그래도 옆구리를 붙여지은 이웃집들 어느 하나 반듯한 구석이 없어, 노인의 궁핍은 별반 대수로울 게 없다. 이들에게 가난은 허물없이 나눠가진 공동 명패가 된 지 오래다.

벗어나기 힘든 가난이 깊게 판 수렁처럼 이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쉽게 동네를 뜨지 못했지만 이곳의 삶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고달프지만 인정과 인심이 오가던 삶 또한 이곳 만하던 데도 없기 때문이다. 살림이 펴, 혹은 개발열풍에 등 떠밀려 이곳을 뜬 사람들도 연탄 한 장 김치 한 그릇 나눠 가지던 훈훈한 이웃을 또 만나지 못했다. 비탈진 산허리에 다닥다닥 붙어살아 그런가 서로 챙겨주는 마음도 더 끈끈해지는가 보다.

  방음이며 방한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담도 생략하고 지은 집집에서 이야기소리가 새어나온다. 덜그럭 사기그릇이 맞닿는 소리 자글자글 냄비 끓는 소리로 저녁을 짓는 집도 있고, 겨울날씨만큼이나 날이 바짝 선 아낙의 목소리가 한바탕 푸닥거리하는 집도 있다.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를 보면 아, 이집에는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있구나, 알 수도 있다.

딱하고 우울한 눈으로 보면 ‘다닥다닥’ 붙었지만 애정을 담아 보면 ‘옹기종기’도 될 수 있는 게 달동네 풍경. 고단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살았던 시대의 자화상과도 같았던 달동네가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봉천, 돈암, 사당, 신림, 월곡, 금호…. 몇 년 전만해도 서울시내에서 달동네를 만나기가 요즘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많이 살만해 진 건지, 아님 모진 개발의 풍랑에 가차 없이 휩쓸려 간 건지 한 구에 하나씩은 있던 달동네가 이젠 몇 곳 남지 않았다. 달동네가 흔하던 예전에는 흉물스럽게 미관을 해치는 골칫거리 신세더니 이제는 곧 있어 사라질 도시유물 1순위로 향수를 자극하고 있으니 세상 참 놀랍다. 경기도 어딘가엔 달동네 박물관도 있다는데.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도시 거주민 대부분이 가난했던 지난 시대에는 딱히 초라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줄기차게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며 하루를 살면 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왕성하게 달동네를 누볐던 건 아이들이다. 가방을 집에 던져놓기가 무섭게 골목 어귀에 모여 놀이를 이어가던 아이들의 활력은 달동네의 살풍경을 벗겨내는 최고의 청량제였다. 해질녘까지 이어지던 숨바꼭질이며 다방구, 짬뽕…, 돈까스에 오징어…. 왜 그 시절 몸으로 때우던 놀이에는 죄다 먹는 이름이 붙었을까. 엄마의 ‘저녁먹자’ 소리에 뿔뿔이 흩어지던 그 골목에 지금도 몇몇 아이가 모여 소꿉놀이를 벌려놨다.

빈곤과 추위, 연탄, 문풍지. 독거노인과 결핍아동…. 달동네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에선 숨길 수 없는 그곳의 현실이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달동네의 일면일 뿐 전부는 아니다. 시인 이상국은 ‘달동네’라는 시에서 사람이 사는 동네에 달이 와 사는 건 울타리가 없어서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붕 꼭대기에 달의 문패를 달아 주었다고 말이다. 이곳이라고 왜 울타리가 없을까마는 부는 못 가졌어도 머리 위에 금빛나는 달을 소유하고 있으니 마음만은 언제나 두둑한 부자일 수 있다. 서울하늘 아래 뜬 황금달이 오묘한 그 빛을 가장 먼저 쏟아 붓는 곳이, 바로 여기. 꼭대기마을이니 말이다.  글·사진/김혜경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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