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김치가 되리니~ 매콤하고 달콤한 사랑을 하거라~.’
주부들의 마음을 울리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건물을 쩌렁쩌렁 울린다. 수백 명의 인파가 모였는데도 모두 노래강사를 따라 하나가 된다. 이곳은 흥겨움과 신명으로 가득찬 별천지다.

지난 11월 2일 오후 경기도 일산종합사회복지관 4층 강당에서는 일산 시민들이 흥겨운 반주에 맞춰 ‘사랑은 김치맛이야’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강사 장은희 씨가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리드한다. 시민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신나게 목청을 높였다. 흥겨운 노래와 연신 터지는 웃음. 일산 시민들은 그렇게 박장대소하며, 어깨를 들썩들썩 거리며 노래 삼매경에 빠지고 있었다.

아줌마 부대 몰고 다니는 노래강사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다보면 엔돌핀이 돌고, 삶에 활력을 찾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도 있다.  

올해로 경력 6년차의 베테랑 노래강사 장은희 씨. 복지관이나 문화센터에 장씨의 강좌가 개설되면 수강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린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 인기의 비결은 다름 아닌 ‘신바람’나는 노래 실력.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요. 학생은 물론 회사원, 주부 모두에게 노래는 필수과목이죠. 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은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은희 노래교실’의 노래강좌는 항상 열기에 가득 차 있다. 이는 그가 강좌시간동안 온 정열을 토해내기 때문. 그는 강좌시간 내내 단 1분도 자리에 앉지 않는다. 온몸을 통해 쏟아내는 목소리는 카리스마를 느끼게 할 정도다.

서울을 비롯 경기도 등지의 복지관, 너싱홈, 노래교실 등 11군데를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흥’을 전파하는 그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만 그녀는 유독 주부들에게 유명하고 인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에 맞게 이야기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하던 주부가 그의 노래교실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스스로 극복한 사례도 있다.

“평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없는 주부들의 지친 삶을 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죠. 또 노래를 배우면서 어둡고 우울한 표정의 수강생이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까지 흐뭇하다니까요.”

이렇듯 노래를 통해 주부들의 ‘마음치료사’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년시절부터 타고난 끼 덕분에 응원단장과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다는 장씨가 노래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당시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강변가요제에 참가한 것이 그의 노래인생을 열어주었다. 그 이후 꾸준히 각종 노래자랑이나 경연대회에 참가해 여러번 상을 탔다. 그러던 중 2002년 ‘도전주부가요’에서 연말 대상을 거머쥔 것이 노래강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고.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편이라 우연히 ‘도전주부가요’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운이 좋아 연말 결선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죠. 그 이후 노래강사를 하라는 섭외가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소외된 곳 찾아가 ‘흥’ 전파하는 ‘빤짝이’ 주부

직업으로 택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는 이미 준비된 노래강사였다. 어릴 적부터 트로트 노래를 맛깔스럽게 불러 동네 어르신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무엇보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에는 세상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풀릴 정도로 좋았다고.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실력파이자 노력파이다. 하찮은 강습을 나갈 때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있을 노래 강습을 위해 매일 밤 집에서 가족들과 ‘쇼’를 한다고 했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어떤 컨셉트로 얘기를 할지 가족들과 리허설을 한다는 것이다.

의상에도 꽤 신경을 쓴다. 다양한 형태의 의상으로 주부들 앞에서 맵씨를 뽐내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빤짝이’옷을 차려 입는 것. 빤짝이 옷을 입으면 저절로 강습생들이 흥을 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강습을 하다보면 중년 주부들의 눈빛에서 답답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장씨는 그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자 노력한다.
“저도 평범한 주부였어요. 그래서 그들의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알죠. 주부들 앞에 서면 더 열심히 노력해요. 중년 주부들의 가슴 속에 행복을 심어주고 싶어서요. 저와 함께 노래 부르는 순간만이라도 그들을 ‘주부’가 아닌 아름답고 열정 있는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죠.”

소외된 어르신을 위해 자주 무료공연을 다니는 그는 봉사활동도 꽤 열심히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찾아가 그들을 보듬어 주고 싶은 생각 때문. 잘 나가는 노래강사가 굳이 그런 곳으로 찾아가 무료공연을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장씨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금은 이렇게 노래강사를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제 인생도 그리 평탄치는 않았어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한번은 시련이 오기 마련이잖아요. 10년 전 ‘유방암 선고’를 받은 적이 있어요. 치명적인 아픔을 겪고 결국 절개 수술을 받았죠. 생사를 오가며 절망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노래를 부르며 마음치료를 스스로 한 것 같아요. 그런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어요.”

남들보다 힘든 아픔을 겪어서일까. 그녀는 그 이후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모른단다. 그런 경험 때문에 그녀의 노래는 더 ‘걸쭉’하고 담백하게 느껴진다.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저로 인해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느껴요. 앞으로도 소외되고 외로운 곳에 찾아가 제가 갖고 있는 ‘흥’을 전파해주고 싶어요.”

자신이 겪었던 아픔 때문인지 그는 암 환자 수강생에게 더욱 애정을 쏟는다. 그래서 일까. 그의 노래교실에는 입소문을 들은 암환자들이 유독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반신반의했던 환우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자신감을 얻어 건강을 회복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들을 때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치매 어르신 위해 사회복지시설 만들고파

 

여러 수강생에게 노래의 흥을 전파하는 그는 유독 주부들에게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노래를 부르면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치매에 걸린 어르신을 위해 사회복지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다.

“봉사를 다니다 보면 치매에 걸린 어르신을 볼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파요. 소외된 이들을 위해 복지시설을 만들어 노래도 가르치고 노후를 편안하게 쉬게 해드리고 싶어요.”

‘천직’이라는 말을 그를 두고 하는 말일까. 노래에 대한 똘똘 뭉친 끼와 열정을 보아하니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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