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종합사회복지관 최성숙 관장.

  처서가 지난지도 두 달, 그러나 10월의 한낮은 8월을 연상케 하는 날들이었다. 기상청은 올해 10월이 기상관측 103년 만에 가장 더운 달이었다고 발표까지 했다. 더위, 모기와의 전쟁에 지친 사람들은 11월, 가을만을 기다렸다. 기자 역시 그랬다. ‘제대로 된 가을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설레던 11월 첫째 날, 19번째 복지사를 인터뷰하러 나섰다. 하루 사이에도 계절이 이리도 달라질 수 있는지, 어느새 하늘과 산과 사람들의 얼굴에는 가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림복지관에서 만난 이 달의 주인공 최성숙 관장 역시 가을 햇살을 닮은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차분하지만 힘과 열정이 느껴졌던 그를 회상해 본다.

교사를 꿈꾸던 소녀, 사회적 교사가 되다

최 관장의 어릴 적 꿈은 교사였다. 그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을 갖고 싶었단다. 물론 교사로 평생을 일해오신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웠으니 말이다. ‘사람들에게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교사’에서 ‘사회복지사’로 옮겨갔다.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과 공감하고 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낼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 때만 해도 사회복지사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그저 선생님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대학에 진학했죠. 그 때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 돌아보면 그 보다 좋은 선택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시작한 사회복지 공부를 그는 대학생활 내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고비 고비마다 친구들은 ‘회의감이 든다’며 진로를 바꾸기도 했지만 그는 하면할수록 ‘이게 딱 적성이다’고 느꼈다. 공부도 재밌었고, 자원봉사도 보람 있었다. 그는 필드에서 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열정 넘치는 사회복지학도였다. 

한 우물만 파는 집념 그리고 열정 

최성숙 관장은 신림복지관에서 복지사 생활을 시작했다. 올해로 15년차가 되었다. 놀랄만한 것은 근무연수보다 그의 집념이었다. 대부분의 사회복지사들이 기관을 옮겨가며 경력을 쌓는데 반해 그는 무려 15년 동안 신림복지관에서 일 해왔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 지역 사람들과 더 오래 소통하고 싶었고 이 지역 복지사업을 계속하고 싶어서였다.

“신림동 일대는 예전부터 달동네 판자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재개발되어서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 곳에 살고 계시죠. 이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어려운 고비도 많이 넘겼어요. 언제부턴가 이 지역 주민들과 더 오랫동안 소통하고 싶어졌어요. 물론 그들의 삶을 작은 힘으로나마 지켜주고 싶었고요. 그러다보니 15년 동안 이곳에 머물게 되었죠.”

판자촌 밀집지역에서 오랫동안 복지사생활을 하다 보니, 저소득층의 생노병사에 대해 느끼는 것도 많아졌다. ‘이들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같은 고민들은 복지관 지원 사업에도 그대로 반영돼 지역주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었다. 사업들은 금세 언론과 여론을 통해 이슈가 되었다. 때론 반대로 복지관 측에서 사업을 이슈화해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사업의 진실성’과 ‘효과’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98년 IMF당시 결식아동문제가 이슈화되었을 때 저희 복지관이 큰 역할을 했어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저희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언론을 통해 저희사업이 보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결식아동지원대책이 마련했어요. 또, 올해 초 이슈가 된 긴급복지지원제도도 2000년부터 저희 복지관에서 시행해왔던 ‘SOS 기금회’사업의 업그레이드판이에요.”

잘 몰랐던 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보람과 뿌듯함은 점점 커졌다. 특히 수십 번이 넘는 회의를 거쳐 만든 사업이 진실성을 인정받고 그 성과기 주민들에게 전달된 것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의 존재 이유였다. 

모범적인 복지사의 삶을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남들보다 이른 진급에 ‘관장’이라는 직함을 달았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는 꿈이지만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야할 길도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청소년프로그램을 담당했을 때 만났던 아이들이 어느새 늠름한 성인이 되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올바르게 자라준 아이들을 볼 때마다 기쁨을 느끼죠. 자신의 장점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누군가가 옆에서 가족처럼 지지해주었을 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힘든 사람들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도움조차도 절실한 세상이에요. 그런 그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복지사가 되는 것, 후배 복지사들에게 모범이 되는 복지사가 되는 것, 그것이 제 꿈이자 숙제에요.”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 복지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복지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에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배워가라고. 대상자, 동료 할 것 없이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복지사로서의 삶을 더욱 행복하고 보람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성공은 덤으로 가질 수 있단다.

“사회복지는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라 생각해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회복지의 가장 큰 매력일 거예요. 후배 복지사들도 꼭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글/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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