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한참이던 2002년의 일이다. 당시 지역적으로 낙후했던 우리 구(區)에는 개발 열풍이 불어 닥쳤다.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민심을 공략했고, 지역발전에 관심이 높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약속한 한 후보에게 일찌감치 표를 몰고 있었다. 결국 선거는 구내 잔존하는 달동네를 없애고 우리 구를 강북의 대표적인 문화도시로 만들겠다 약속한 그 후보를 당선시켰고, 몇 년 사이 우리 구는 달동네가 사라지고 곳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렇게 새로 기획된 동네는 이전의 복잡함이 사라지고 잘 정리된 외양을 갖춰갔지만 갈등도 생겨났다. 개발의 여파가 미치지 못한 몇몇 구역은 자기 집 마당을 훤히 내려다보는 고층아파트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고 고층아파트는 그들 나름으로 미관을 해치는 미개발 지역의 경관에 불만이 많았다. 당연히 생활수준 역시 차이가 났다.

단지 내에 몇몇 문화시설들이 들어섰지만 그 사이 본디 있던 주민 다수가 사라져 사용자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입주한 타 지역 출신이 많았다. 천정부지로 솟는 입주비를 감당 못한 토박이 서민들은 그들이 바라던 지역발전의 양상과는 별개의 모습으로 싫든 좋든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낡은 것이 새것이 되고 편리가 늘어나긴 했지만 딱히 살기 좋아졌다거나 여유가 생긴 건 아니었다. 우리 구는 단정한 도시로 변모는 했지만, 4년 전 당선자가 공약하고 주민들이 바라던 그 문화도시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시민의 풍요로운 일상이 녹아있는 ‘문화도시’

최근 도시를 문화적으로 가꾸자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일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로 사라진 여유를 되살리고 지역 고유의 특색이 가미된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시를 목표로 지역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러한 노력들이 일차원적 개념의 ‘문화’에만 의존한 공간연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낡은 건축물을 허물고 그 위에 현대적인 건물들이 세워진 것만으로, 말끔하게 꾸며진 공간에 대규모 문화시설이 들어선 것만으로 ‘문화도시’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고층 아파트 역시 문화도시의 탄생과는 거리가 있다.

새로 지어진 고급 아파트에 일부만 누릴 수 있는 고급 문화센터가 들어섰다고 해서 단순히 문화적 풍토가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화도시는 그저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 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일상이 밀접하게 녹아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이 누리고 사랑하는 도시의 면모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2003년 문을 연 (사)문화우리는 바로 이러한 도시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문화와 예술, 환경, 공간 등을 연구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이다.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역임했던 임옥상 화백을 대표로 건축가, 예술가, 사회학자, 환경운동가, 정치가 등 살기 좋은 도시를 가꾸는 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뭉쳐 도시공간문화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뤄왔다.

이곳에서 대안공간을 연구하는 김아영 팀장은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올바로 지키고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는 공간정책에서 문화도시는 시작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주택, 교통, 도시기반시설 등 도시생활의 현안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전국 어디나 비슷비슷한 특색 없는 도시모습이 정착됐어요. 그 속에 도시가 함축해야 하는 예술,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죠. 대중의 의식 속에도 의례 ‘문화’라면 장르예술로서의 문화를 떠올리는 한계를 지니게 됐고요. 그러나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는 시민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그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권층이나 일부 소수자만이 점유하는 문화, 거창한 문화회관을 짓고 유명 예술가의 공연을 개최하는 것이 전부인 문화가 아니라,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동반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특성을 가꿔 가야만 비로소 진정한 문화도시가 탄생한다고.

문화우리는 문화를 어떻게 우리 일상으로 접목 시킬 수 있을지 연구하며 이를 위해 공공문화 현실을 조사하고 실질적인 개선방향을 찾아왔다. 특히 수도권의 난개발을 중심으로, 자연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도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앞으로의 도시는 인간과 인간의 결합,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인간의 문화예술 욕구충족을 실현하는 도시가 되어야 하며 도시건설에 있어서 토지이용계획과 건축계획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게 단체의 생각이다.

시민, 공간을 이해하고 도시를 사랑하고

문화우리가 도시의 공간문화 개선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활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가장 오래된 사업으로 03년부터 추진해 온 도시탐사 프로그램을 들 수 있는데, 일상에서 접하는 도시 구석구석의 소중함과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기획된 체험학습의 일환이다. 도시의 일상을 걸으며 이야기하는 감성적 도시탐구 ‘도시산책’과, 지역도시와 건축문화, 역사유적에 대한 다각도의 현장탐구라 할 수 있는 ‘문화도시답사’로 짜여있다.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도시탐사는 03년에는 전주, 부여 등 지역의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05년에는 경주 양동마을 등 지속가능한 전통문화마을 위주로 진행되다가 작년부터는 종로와 홍대 이태원 용산 인사동 등 서울도심을 산책하며 익숙한 도심을 ‘낯설게’ 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건축가나 역사전문가 등 단체 소속의 전문가들이 탐사를 이끌어주는데, 프로그램에 지원한 시민들은 전문가와 함께 도시를 돌며 익숙한 만큼 소홀했던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곳에 대한 이해와 공유가 부족해요. 그곳에 대한 역사의식도 부족하거니와 익숙한 만큼 소홀이 대하는 경향도 있죠. 도시답사는 상가나 거리 등 출퇴근길에 바쁘게 지나치는 도시의 일상적인 부분을 낯선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도예요. 언뜻 작은 기행에 불과한 듯 해도 ‘도시를 이해하고,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자’라는 단체의 기치와 맞아떨어지는 시민교육의 일환이죠. 익숙한 공간의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됩니다.”

도시탐사가 시민참여의 일환이라면, 문화해비턴트는 단체가 직접 지역을 찾아가 지역에 필요한 문화공간을 조성해 주는 문화예술보전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문화 서식지’라는 의미의 이 사업은 문화가 지역에서 스스로 자생하여 지역민들이 삶터의 문화를 스스로 가꾸고 보존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올해 처음 시작됐다.

지난 3년간 도시문화공간을 주로 연구하고 활동해 온 단체가 멀리까지 시선을 던진 농어촌중심사업이다. 정자를 개보수하거나 담장미화작업, 버스정류장 세우기, 마을회관 등을 증축하며 단순히 리모델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과 주변의 특색에 맞춰 공간을 재탄생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7월부터 시작해 창녕, 거창, 화성, 경주 등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왔는데, 개선과정 속에 문화예술교육, 공연예술제 등 마을 주민의 참여를 유도해 공동체의식도 다져나간다. 내년에는 시골분교로 영역을 넓혀 분교새옷입히기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단체는 사라지는 도시유산에 대한 기록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도시경관기록보존사업-시티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옛 도시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전시하며 사라져가는 도시유산을 보존코자 기획된 사업이다.

“도시란 새로운 것이 들어서면 옛 것은 하나 둘 사라지기 마련이에요. 서울만 봐도 달동네나 빈민촌이 거의 사라지고 있죠. 사라져가는 도시의 유물들을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해요. 올해는 뉴타운으로 지정된 아현동의 달동네를 대상으로 지난 5월부터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촬영을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뉴타운이 지정되면 사라질 도시는 많겠죠. 그 도시들을 모두 기록물로 남길 계획입니다.”

이렇게 남겨진 기록물들은 생활사박물관 건립운동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그 외에도 국내외 공공문화와 도시환경을 조사하고, 우수 공공문화·도시·마을에 대한 사례 발표 및 세미나 개최, 공공문화와 문화환경 실행을 위한 용역과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간문화에 대한 인식부족, 의식개선이 우선돼야

단체활동가들이 거창의 한 공터를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3년을 이어오며, 단체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그 속에서 선택과 집중의 방향을 추려낼 수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도시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막상 일을 진행하다 보면 지자체의 정책적인 결단과 주민들의 이해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 얼마나 큰 산인지를 알게 되요. 또 공동체의 크기 등에 따라 너무도 많은 변수와 한계를 만나게 되죠. 이 모든 난제를 뚫고 합의를 이끌어낸다 해도 하나의 도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려면 장기간의 기다림이 필수고요. 파주의 출판도시만 해도 논의가 시작되고 첫 삽을 푸기까지 족히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어요. 하지만 10년, 경우에 따라선 수십 년이 걸릴 장기프로젝트에 선뜻 동참할 인내력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부족하죠. 정책적인 합의나 큰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이전에, 의식개선과 홍보가 더 우선해야 한다는 걸 실감하게 돼요.”

시민의 의식개선과 홍보에 주력하다 보면 종종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공간문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문화, 공공공간에 대해서는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무책임한 경향이 강하고, 반면 소유한 공간에 대해선 배타적인 모습으로 일관해 공간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다. 그렇다보니 여느 복지사업이나 문화예술사업과는 또 다르게 그 토양이 척박할 수밖에 없다. 공간문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이렇다 보니 정부지원 역시 순수 공연예술이나 순수복지에만 치우쳐, 생활과 직결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선결과제 밖으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일상과 공간, 문화는 같이 가져가야 하는 부분인데도 아직 일반의 인식은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토양 탓만 해서는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다. 실현가능한 목표를 잡아 하나하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문화도시의 기반을 형성하는 정도이자 지름길이라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지금까지 벌여온 시범사업들을 정상궤도에 올리고, 생활에 직결된 우리네 ‘삶터’라는 공간을 좀 더 개선하는 것이 만 3년을 맞는 단체의 내년 목표가 됐다.

“삶터를 연구하며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공간활용이라는 측면이에요. 우리는 좁은 공간을 쪼개 쓰는 생활습관에 길들여져 삶터라는 공간들이 굉장히 비좁고 취약하잖아요. 공간적 여유를 느낄 여지가 부족하죠. 이 삶터라는 부분의 문화를 좀 더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공간문화운동이 될 거 같아요. 서양에서는 폐허가 된 공장을 갤러리로 개조한다던가, 쓸모없는 공간으로 남아있던 다리의 교각부분을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로 개조시키는 등 공간재생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 번 쓰고 나면 허물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문화도시라는 거창한 표현에 발목 잡히지 않고, 도시문화란 어떠해야하는가 자문하며 풀뿌리 시민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다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즐겁고 아름다운 삶터를 가꾸기 위해 그들이 그려가는 작은 벽화가, 그들이 주목하는 거리 하나하나가 공간 가득 삶의 향기를 담아내기를 바래본다.

  글/김혜경 기자 사진제공/문화우리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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