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 술을 많이 마시고 자주 마신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주사를 부려도 어느 정도 눈감아 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다. 그러다 보니 최근 몇 년간 알코올 중독자들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술에 대한 관대함이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큰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독한 술 소비량 세계 4위 국가로 1년에 국민 1인당 소주 72병, 맥주 108병을 소비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기 안에서 소비된 술이 소주로 환산해 200만병 분량이라니 더 이상의 언급은 사족이 될 터이다. 음주자 3명 중 1명은 일주일에 3회 이상 술을 마시고, 그중 55%는 마실 때마다 2차, 13%는 3차까지 간다고 한다. ‘자아망실’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사는사회 1월호에서는 ‘중독’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 ‘알코올 중독’에 대해 다뤄봤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져 있지만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증. 그 피해양상과 원인, 개선방안 등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보았다.

“살기 힘들다…  한잔해”

#사례1

올해 30대 후반인 김종섭(가명)씨는 업무상 거의 매일 소주 1~2병씩을 마셨다. 언제부터인가 짜증이 나고 불면증에도 시달렸지만,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고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김씨는 짜증과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더 많은 술을 마셨고 숙취로 인해 직장 생활이 어려워졌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생활이 반복됐고 술에 취하면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현재 그는 회사를 그만 두고 알코올 전문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사례2

강원도 춘천시의 한 경찰지구대에 9살의 민우(가명)와 친구 두 명이 함께 찾아왔다. 민우는 “아버지가 매일 술을 드시고 들어와 술을 더 사오라고 욕까지 했다”며 “집에 다시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민우 아버지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안 되자 결국 민우를 아동보호시설에 맡겼다.

같은 날 이 보호시설은 7살인 지수(가명)가 어머니로부터 폭행 당하고 있다는 이웃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지수의 어머니 역시 술에 취해 있었으며 지수를 보호 시설로 옮기고자 했으나 완강히 거부해 평소 지수를 자주 돌봐준 이웃에게 우선 맡겼다. 보호시설에 따르면 아동학대자의 13% 가량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동을 학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3

올해 서른 아홉인 이지현(가명)씨는 누가 봐도 유복한 주부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편과 착한 자녀를 뒀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우울증으로 시달렸다. 지난해부터 남편 몰래 술을 먹기 시작한 것이 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그녀는 일상생활도 못할 지경까지 이르러 알코올 전문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우리나라 음주폐해가 그 수위를 넘어섰다. 알코올 중독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으로 현재 성인의 알코올 중독은 22%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알코올 남용이 12%, 알코올 의존이 9.9%를 차지하고 있다. 남녀비는 약 20대1로 남자가 많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그 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폭음, 불규칙한 음주관행, 음주에 대한 관용적 문화가 알코올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알코올 중독이란 크게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알코올 남용은 술로 인해 가정과 직장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신체적으로 부담이 되는데도 술을 계속 마시는 경우에 해당되고, 알코올 의존은 알코올 남용이 발전돼 금단증상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금단 증상이란 술을 줄이거나 끊었을 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싶어지고, 손이 떨리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알코올 중독은 외국에서는 10명 중 1명이, 우리나라에서는 10명 중 2명이 걸릴 만큼 흔한 질환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알코올 의존자는 약 221만 명으로 18세 이상 성인의 6.8%에 달한다. 또, 중독은 아니더라도 습관적 음주자를 포함할 경우 성인 인구의 20% 정도가 알코올 남용 환자에 해당된다.

‘술 권하는 사회’ 가 가장 문제

자신을 망치고 가정을 깨는 알코올에 이들이 이처럼 의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코올 의존의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유전 및 생물학적 요인, 사회문화적 요인, 그리고 개인의 정신병리 등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인 우리 풍토 역시 큰 문제라고.

새한빛 알콜클리닉 이남희 사회복지사는 “알코올 중독 증세는 경제난, 실업, 불안감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며 “특히 술을 권하는 음주문화가 알코올 중독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는 알코올상담센터와 정신보건센터, 사회복귀시설에 운영비정도만 지원하고 있다. 알코올상담센터는 알코올의존예방교육, 알코올 문제자 조기발견 및 치료연계, 알코올 문제자 및 가족전화, 방문상담, 환자 및 가족 사례관리, 알코올 의존자 및 가족 자조모임 운영(AA, AIanon, AIateen), 음주운전자 및 음주범죄자 보호관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알코올상담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현재 알코올상담센터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개소가 있고 알코올상담센터가 없는 곳은 정신보건센터에서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이처럼 전문기관이 부족하다 보니 알코올 의존자가 발생한 후 병원치료를 하기까지 별다른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새한빛 알콜클리닉 이남희 사회복지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알코올 중독자 지원제도는 초기 알코올 중독자나 잠재적 알코올 중독자를 지원하거나 보호하는데 많은 한계점을 지닌다”면서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이 때문에 치료가 늦어지고 사회경제적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치료 필요성 인식하면 외래 치료 가능

이렇듯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병원에 가기를 두려워한다. 남들에게 알코올 중독자로 낙인찍히는 것도 두렵고, 살벌한 폐쇄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것 역시 무섭다. 하지만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은 외래 치료가 가능하다. 스스로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정신과 외래를 방문하여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술을 끊고 나서 손이 심하게 떨리고, 손발이 땀이 나며, 헛구역질과 구토, 불안, 발작 등의 심한 금단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 환자는 가벼운 금단 증상만을 경험하기 때문에 바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고는 그 어떤 치료요법도 소용이 없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서면 음주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인지행동요법도 받을 수도 있다. 또, 병원 치료 중 치료 후에 알코올 중독 환자들의 자조치료모임인 단주 동맹(AA)에 참석할 수도 있다. 물론 의존 치료에는 가족 특히 배우자가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알코올의존자가 병원에 입원한 후 보통 일주일정도면 알코올로 인한 해독이 가능하다. 하지만 술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한 달 간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폐쇄병동에 입원한 후 사람에 따라 1~2달간 개방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이후에는 알코올상담센터나 정신보건센터를 방문해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것이 좋다.

한국음주문화센터 조현섭 박사는 “알코올 의존자들이 병원에서 3개월 동안 치료받은 후 퇴원하지만 이 때 환자는 치료된 게 아니라 술로 인해 망가진 몸이 회복된 것이라 봐야 한다”며 “알코올 질환은 진행성이기 때문에 사후관리가 중요한데도 정작 병원 퇴원 후 도움을 받을 곳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병원 치료 후 또다시 술을 마시면 알코올 의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사후관리와 지원을 사회적 측면에서도 고려해봐야 한다. 알코올 질환자는 치료 받는 동안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또, 가족이 해체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직업재활과 자립을 하기 위한 중간 거주공간도 있어야 한다.

음주로 인한 국민적 손실액 10조원에 이르러

  실제 음주로 인한 국민적 손실액은 엄청나다. 한 해 평균 무려 10조원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니 술은 마시되 절제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도수 약한 술부터 마시기, 빈속 술 피하기, 여러 번 나눠 마시기, 섞어 마시지 않기’등 ‘건강음주 10계명’까지 나왔겠는가.

보건복지부도 절주캠페인에 나섰다. 알코올 종합대책인 ‘파랑새 플랜 2010’이 그것이다. ‘음주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10년까지 시민, 전문가 단체 등과 공동으로 음주문화 바꾸기 공동체인 ‘파랑새 포럼’을 만들어 국민캠페인을 펼친다는 구상이다.

이밖에 음주운전행위자와 음주운전 사고자, 음주관련 범법자에 대한 알코올 의존에 관한 ‘교육이수명령제’와 ‘치료병령제’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의 음주폐해 예방사업이 단순 교육과 홍보에 치우친 경향이 짙다고 지적한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300여만 명에 이르는데 전문 상담센터는 26곳뿐이고 관련 예산도 50억 원에 지나지 않아 치료인프라 조성과 예산 확보 없이는 정부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냉정한 판단과 사랑’ 알코올 치료의 첫걸음

알코올 중독은 병이다. 대부분은 그저 술을 많이 마시고 나타나는 개인적인 특성(주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정신질환이자 질병인 것이다. 때문에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술에 대해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는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에 앞서 본인과 가족들의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불쌍해서 어떻게, 부끄러워서 어떻게…’ 라고 생각만 하는 동안 병은 점점 깊어지고 치료시기마저 놓쳐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치료가 되는 병이다. 스스로의 ‘냉정한 판단’과 가족들의 ‘냉정한 사랑’은 알코올 치료의 첫걸음이다. 나와 내 가족 중에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서 알코올 중독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면 지체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알코올 중독을 예방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글/박경미 사진/최경훈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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