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60대의 할아버지 대학생과 30대 젊은 교수가 등장하는 기업 광고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 기업광고에 나온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세인의 입에 회자될 만큼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 각종 박람회, 행사장의 꽃으로 불리는 내레이터모델 분야에서도 이 같은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인물이 있다. 바로 부부가 함께 모델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종갑(70)·최정복(65)씨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이들의 직업으로만 여겼던 내레이터모델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 화려한 은빛 인생을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모델을 나이로 하나요?

“직업의 세계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지요.”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레이터모델’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종갑·최정복 씨. 이 부부에게는 요즘이 젊은 시절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소원이었던 모델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남편 김씨의 내조를 해가며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던 아내 최정복 씨. 그가 남편과 함께 모델계로 발을 들인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모델의 꿈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제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재점화 한 것은 올해 초였어요. 복지관에서 실버모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설레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죠. 광고를 보는 순간 잠시 잊고 살았던 꿈도 기억해냈죠. 모델을 하고 싶어 병이 날 지경이었다니까요. 소녀처럼 설레어 하는 저를 보고 남편이 같이 한번 해보자는 제안을 해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과 함께 지원서를 넣게 되었던 거죠.”

유년시절부터 타고난 끼로 남들 앞에 서는 일을 좋아했다는 최씨는 유독 모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단다. 하지만 보수적인 남편의 반대로 매번 기회가 올 때마다 꿈을 접어야만 했다.

“남편이 워낙 보수적인 사람이라 젊었을 때는 모델이나 연예계 쪽으로 일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남편도 나이가 드니 성향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지금 모델 일을 같이 하는 것만 봐도 남편의 성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 있죠.(웃음)”

하지만 뭐든 노력 없이는 꿈을 이뤄낼 수 없는 법. 모델 쪽의 경력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초짜 부부에게 교육을 받고 수료증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부부를 포함한 지원자가 너무 많아 5:1의 경쟁을 뚫어야만 전문모델로 입문할 수 있었다. 한번은 교육 받는 내내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 망설인 적도 있었단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픈 소망이 훨씬 컸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이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드디어 두 달의 교육이 끝나고 부부는 수료증을 거머쥘 수 있었다. 드디어 공식 모델이 된 것이었다.

“꿈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의 기분은 아마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벅차올라요. 게다가 저는 남편과 함께 선발 돼 기쁨이 두 배였어요.”

고진감래 끝에 이뤄낸 늦깎이 모델의 꿈, 드디어 노부부는 내레이터모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돈과 건강, 봉사까지 일석삼조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이라 육체적으로 힘에 부친다. 또,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야 할 때도 많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믿는 구석이 있다. 부부가 함께 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힘든 점을 잘 알고, 그래서 서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일을 시작하고 부부의 금실은 더욱 애틋해지고 좋다졌단다.

“같은 일에 종사하다보니 사소한 스트레스까지 서로 잘 공유하는 편이에요. 일을 하고 나선 누구보다 소중한 동료가 되었어요.”
부부가 하루 일을 하고 받는 수입은 행사에 따라 일정치 않지만 평균 4만원에서 10만원. 또, 상황에 따라서는 자원봉사자로도 참여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보람까지 얻는단다.

“수입 때문에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일정의 수입도 있고 봉사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지요. 그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죠. 장시간 서 있어야 하고 짜증이 나도 웃음을 달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 힘든 것도 많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런지 힘든 것도 즐기게 된다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짜증을 내고 싶은 날도 수 십 번이란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여기 저기 자신들을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면 뿌듯해 저절로 웃음이 새어나온다고.

“박람회에서 백발의 신사숙녀들이 행사장 입구부터 서 있으니 기자들뿐만 아니라 같은 또래의 노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부러워해요. 또, ‘행사장의 꽃’이라며 웃으며 칭찬할 때는 왜 진작 일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마저 든다니까요.”

바쁜 일정 중에도 아내 최씨는 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었다. 복지관 일이라면 자신의 스케줄을 취소하고 달려갈 만큼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그가 이토록 복지관 일에 목을 매는 것은 자신보다 어려운 노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란다. 

“마흔여덟이라는 나이에 악성 류마티스라는 병을 얻게 되었어요. 정말 그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아마 지금의 남편이 없었더라면 망연자실하고 폐인이 되었을 지도 몰라요. 그 때부터 남편은 하던 사업도 다 팽개치고 오로지 제 옆에서 손과 발이 되어 주었어요.”

남편의 극진한 사랑에 하늘도 감동했던 것일까. 당시 손발을 쓰지 못했던 최씨는 남편의 도움으로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생사를 오가며 힘든 투병생활을 했던 탓인지 건강을 회복 한 후 그녀는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모른다고 했다.
또 자신이 겪었던 아픔 때문인지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봉사마니아’가 되었다.  

부부금실이 무병장수 특효약!

이미 몇 년 전부터 죽음을 준비해왔다고 말하는 김종갑·최정복 부부. 현재 두 부부 모두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장기기증을 서약한 상태란다.

“서약하고 나서 우리 부부는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오히려 모든 일에 긍정적이 되었죠. 이제 더 바랄게 있다면 이렇게 노후를 즐기다가 한날한시에 죽는거에요. 그렇게만 된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싶어요.”

사랑은 함께 지내온 시간과 함께 더 깊어지는 것일까.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이들 부부의 금실을 보고 있자니 젊은 사람들의 연애 이상으로 애틋해 보인다.

늘그막 스스로 선택한 길로 남부럽지 않은 황혼을 보내고 있는 김종갑·최정복 부부.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그들을 두고 한 말일까.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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