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06년이 지나고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일출을 보며, 새 다이어리를 사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여러 가지 다짐들을 가슴 속에 담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들도 그러하다. 새해에는 부지런해져서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리라, 기관에서 인정받는 복지사가 되리라,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하리라 등 나름대로 여러 가지 다짐을 했을 것이다.

이번 호의 릴레이 복지사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는 오히려 더하다. 올해가 한 기관의 총책임자인 ‘관장’ 직함을 달고 일하는 첫 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면 연애시절처럼 설레다가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신념이 향긋한 커피믹스 이상으로 조화로운 그를 만나보았다.   

청소년기에 받은 도움 돌려주고 싶어 입문

‘사회복지사가 된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유영덕 관장은 예상외의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어려서부터 남을 돕기를 좋아했다던가, 전공이 적성에 맞아서라는 기자의 예상답안이 한참은 빚나간 순간이었다.

“청소년기에 방황을 했었죠. 흔히 말하는 문제청소년이었어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제가 설 자리는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 때 제 손을 잡아주신 분이 있었죠. 제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님이셨어요. 처음에는 삐딱하게 나갔지만 그 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에 결국 마음을 열 수 있었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방황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유 관장에게 어릴 적 전도사님은 새로운 삶을 열어준 스승이자 은인이었다.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전도사님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그는 무작정 마음을 먹었단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삶을 위태롭게 사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동기부여가 있었기에 대학에서 공부하면서도 힘든 줄은 몰랐다. 다만 그 때만 하더라도 사회복지에 대한 학문적 토대가 약하고 인식이 낮았던 만큼 철저한 소명의식을 가져야했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사회복지를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벅차오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어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문적 토대도 약했고, 업무환경, 임금 등 모든 근무조건이 열악했어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회복지사 역시 소수였죠.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어요.”
 
정체성 혼란 이겨낸 17년 단단한 신념

대학 졸업 후 필드에 나와 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쉽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정체성 혼란에서 오는 직업적 회의였다.

“모든 사회복지사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사회복지사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어요. 클라이언트의 삶의 질이 나로 인해 변화하는 걸 경험하면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거 말이에요. 그런데 사회복지 현장은 그렇질 못했죠. 전문가로서의 입지는 굉장히 좁았고, 기관 내에서도 전문가로서 인정받기 힘들었죠. 새내기 시절 몇 년 동안은 클라이언트 한명 제대로 못 만나고, 페인트칠하고 돈 계산하고, 전단지 뿌리는 작업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오죽하면 함께 사회복지를 전공했던 동기들도 3년 차가 되니까 직업적 회의를 견디지 못하고 옷을 벗었을까. 그 때쯤 그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문득 문득 자신의 선택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사회복지에 대한 변하지 않는 신념과 열정이었다.

“성취감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사회복지는 분명 클라이언트 중심이어야 하고 사회복지사 역시 클라이언트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데 제가 저의 성취감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설사 제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제가 하는 일이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갖다보니 생각이 오히려 발전적으로 바뀌었어요. 잃었던 의욕도 다시 찾을 수 있었죠.”

경력이 쌓이면서 그는 점차 청소년 시절 꿈꿨던 ‘남을 도울 수 있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가지고 온 비행청소년에게 ‘스승의 날 처음 선물이란 걸 해 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 깊은 곳이 뭉클하기도 했다. 어느새 클라이언트과 소통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자신의 ‘천직’을 지킬 수 있었던 17년 과정이, 스스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사회복지계의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기

윤리와 철학.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에 있어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가치이다. 그는 윤리와 철학이 없는 사회복지사는 ‘직업의 시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윤리와 철학은 사회복지사가 목숨같이 지켜야 할 가치에요. 때론 융통성이란 이름으로 두 가치를 저버리는 사회복지사들은 본 적이 있어요. 물론 적당한 융통성은 필요하지만 그 것  역시 대상자에 대한 것이어야지 사회복지사들의 편의와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란 것을 명심해야 해요.”

유 관장은 관장 취임과 함께 스스로 몇 가지 철칙을 세웠다. 그래야 기관과 자신 모두 사회복지계의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먼저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기관운영을 하고 싶어요. 수직구도보다는 수평구도의 조직구성을 통해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기관을 만들어 갈 생각이에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깨끗한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윤리와 철학과 같은 원칙도 철저히 지켜나갈 것입니다. 전임이셨던 김인숙 관장님이 보여주신 철학과 실천지식으로 기관을 운영해나간다면 좋은 기관, 좋은 관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분보다 부족한 점이 많으니 더 많이 노력해야겠죠.”   

사회복지와 결혼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회복지밖에 몰랐던 남자가 한 기관의 관장이 되었다. 그는 매주 한 번씩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기분 좋은 웃음만큼이나 그의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이 화창하길 바래본다.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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