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당한 노년, 벼랑 끝에 서다

지난 12월 14일 경기도 수정문화정보센터 시청각실.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300석 규모의 좌석을 가득 매웠다. 경기도노인학대예방센터와 수정노인복지회관 주관으로 열린 제1회 노인인권연극제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고령사회 병폐로 자리 잡은 노인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수정노인복지회관의 6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된 ‘지킴이연극단’의 초연을 기다리는 인파였다.
조명이 꺼지고, 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노인들의 삶과 고통을 신랄하게 응축시킨 연극 한 편이 드디어 무대 위에 올랐다.

#1
연극은 치매노인의 게걸스런 식사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며느리는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병수발에 지친 아들내외는 급기야 가족회의를 소집하지만 사는 형편이 빠듯한 네 딸들은 모두 출가외인을 이유로 공동부담을 거부한다. 어머니 병수발에 아내와 점점 부부사이만 멀어지고, 나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며 아들의 넋두리가 이어진다.
“돈이 있으면 시설에라도 모시는 건데….”
아들의 이 한마디에 딸들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화를 낸다. 장남에다 집까지 물려받았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하지 않느냐는 항변이 깔렸다. 아들은 결국 “직접 모셔봐야 내 맘을 알지! 장남이 죄요?!”하며 폭발하고 만다. 그 대화를 옆방에서 듣고 있는 노부부의 표정이 어둡다.

#2
오랜만에 노부모 집을 찾은 큰딸. 방에 들어서니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이구, 엄마 또 쌌네?! 근데 이걸 왜 아버지가 치우고 있어요?!”
“놔둬라, 누가 하면 어떠냐. 내가 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큰딸은 앙칼진 목소리로 시누이를 불러 세우고 나무란다. 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짓던 며느리, 급기야 “허구언날 당하는 사람 고통 형님이 아세요? 어쩌다 한번 와서는 잠깐 들여다보고 가는 형님이 이 생활을 아냐구요!”하고 분통을 터뜨린다.
효를 다하지 않는 며느리가 얄밉다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들도 있다.

#3
아들내외의 갈등도 극에 치달아 아내는 이혼을 하던지 시설에 맡기던지 양자택일을 하라 소리친다. 아들은 그런 아내가 야속해 더 언성을 높인다.
그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노부부의 방. 그 와중에도 치매노인은 남편도 못 알아본 채 계속 밥을 내 놓으라 떼를 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거야, 왜에…”
늙은 아비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조용히 흐느낀다.

#4
노인부부만 남은 집안. 남편은 급한 일이 생겨 병든 아내만 남겨둔 채 외출을 해야 되는 상황이다. 남편은 가만히 있으라 신신당부를 했건만 치매노인은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제발 미치려면 곱게 미쳐!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단 말이에요!”
밖에서 돌아온 아들은 그 모습에 그동안 참았던 분을 쏟아내고 만다. 그러든지 말든지 노파는 그저 사방에 널브러진 음식들을 주어먹는데 여념이 없다. 잠시 후, 어머니의 손목을 묶으며 아들은 흐느낀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미안해요, 나도 지쳤어요….”
얼마 후 외출했던 아비가 돌아와 묶여 있는 아내를 본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노발대발하지만 그도 잠시. 아비의 분노는 점차 한탄과 체념의 어조로 바뀐다.
“그래…. 우리가 너무 오래 살았나봐…. 미안해 여보, 내가 잘 돌봐줬어야 했는데….”
어두운 골방의 두 노인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면서 무대는 쓸쓸이 막을 내린다.

가정사 속에 가려진 노인학대의 심각성
연극은 치매노인의 존재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지친 마음과 거기서 이어지는 분란, 가족파탄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었다. 30분 남짓했던 연극 속 현실을 본 객석의 반응은 하나 같이 “저것이 오늘 우리 노인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공감의 목소리였다.
“젊어서는 자식 낳고 키우느라 전전긍긍하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빼 주는 게 우리세대야. 그러고 나면 뒷방으로 물러앉는 처지가 되는데 그렇다고 그게 또 그렇게 마음 편하나. 전에 없이 애들 눈치를 보게 되고…. 늙으면 그저 죽는 게 속 편하다는 푸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지들 어리고 기반 없을 때 간 쓸개 다 빼주며 뒷바라지 한 부모가 늙어 신세 못질 게 어디 있나 생각하면 괘씸해. 하지만 병든 노인 수발하며 사는 사람도 제 속이 타는 건 나름 이해 허지. 사람 맘이 어디 모질고 싶어서 그러겠어? 몸은 지치지 살림은 궁색하지…. 어디 지원이라도 조금 되면 기댈 텐데. 아픈 노인 고이 모시고 싶다가도 돈이 사람 미치게 하는 건지도 몰라.”
사회가 산업화·핵가족화 되어 가는 과정 속에 가정 내 전통적 윤리개념이 사라지고 노인부양의 책임감이 희석되면서 노인을 짐처럼 여기는 가정들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여러 사회적 원인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고령사회 노인부양의 문제가 오늘날 가정의 안정과 결속을 위협하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것을 넘어 ‘노인학대’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진 것에는 우리 모두가 반성할 부분들이 많다.
그 동안 가정 안에서 행해지는 노인학대는 가정이라는 특수성 속에 간과되고 은폐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관객 중에는 연극 속 노인부양으로 인한 갈등 상황이 심각한 가정문제이자 사회문제라는 것에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노인학대의 한 유형이라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노인학대 유형에는 방임이나 유기, 신체적 학대 외에도 비난이나 모욕 위협 등의 정서적 학대, 노인의 자산이나 노동을 동의 없이 사용하거나 부당착취 하는 재정적 학대, 또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력 등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성적 학대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극중에서처럼 일상적인 비난과 손을 묶어 놓는 행위, 치매노인을 홀로 방치하는 것 역시 노인학대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만 지친 병수발로 인한 순간의 언어폭력쯤이야 경미한 수준에서는 이해해줄 수 있는 넋두리 아니겠느냐는 반응이 더러 있어 인식개선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6대도시 노인복지회관 이용자 8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부모학대 실태에 관한 사례연구’의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노인 중 8.2%에 해당하는 노인들이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중 가장 빈번한 유형이 언어·심리적 학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부양 가정 12집 중 한집 꼴로 크고 작은 노인학대가 이루어진 셈인데도 노인학대는 여타 가정학대와 같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려져 그 심각성이 평가절하되어 온 측면이 많았다. 여기에는 남의 가정사에 소극적으로 관여해 온 우리 사회의 관습적 방기도 한 몫 하지만 노년기가 생활주기의 마지막 단계라는 인식 하에 노인학대의 영향을 경시해 온 노인차별주의의 영향도 크다.

학대사실, 피해노인과 가해가족 모두에게 ‘상처’
여기에 학대받은 노인 스스로 학대 사실을 밝히기 꺼려하는 것도 학대노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외부개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는 효와 체면을 중시하고 자녀에게 부양기대감이 큰 우리나라의 학대피해노인들에게 흔히 보이는 현상으로, 전통적 관습 속에서 살아온 오늘날의 노인들은 오히려 자신의 무능을 원망하며 자식이 혹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까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김미혜 교수는 노인인권보호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학대자녀가 성인일 경우 노인들은 외려 자신을 자책하거나 스스로 학대사실에 대해 수치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또 성인자녀의 학대행위를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하며 어떻게든 자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까지 참고 인내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학대가 노인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서 행해지고 학대의 강도가 심해질수록 그 영향은 외상적이 되므로 노인학대는 피해자 및 가해자가 학대사실을 은폐한 상황에서 점진적이면서 깊게 상처를 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기도 노인학대예방센터가 노인학대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모습.

"노년기에 경험하게 되는 학대는 노인의 삶을 혼란스럽게 하여 절망으로 유도하기 쉽다. 특히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노년기에 사실상노인들은 학대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려우며, 피해노인이 심한 충격을 받기 때문에 정신적 외상이 증폭되어 회복 또한 어려워진다.”
이 같은 상처는 피해 노인 한명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극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가해가족은 도덕적 양심에 의해 가책을 받으면서도 학대를 일삼는 경우가 많아,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노인학대는 결국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그 기능을 상실한 가족이 보호·부양에 실패하고 학대상황이 되었을 때 사회적 비난과 낙인을 감수하기 어려우며 가정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되어 해체되고 분열되는 가정파탄의 상황까지 몰고 갈 수 있다. 따라서 노인학대 문제는 개인이나 가정문제로 간주되기 보다는 사회문제로서 인식되어져야 하고 사회적 차원의 대책이나 접근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2004년 노인학대예방을 위한 조항이 노인복지법에 삽입되면서 보건복지부 감독·관리체제로 변경된 노인보호전문기관(노인학대에 대해 국민들이 인식하기 쉽도록 노인학대예방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이 2006년 4월 현재 18개에 이른다. 노인학대에 따른 법적조치도 훨씬 강화되어 사회적 개입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노인학대에 대한 대응으로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현재의 상담과 정보제공의 수준을 넘어 학대노인의 삶을 안정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실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국가나 사회가 후견인적 태도로 노인들의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후견인제도와 노인과 부양가족 모두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는 노인수발제도의 도입이 가장 절실하다. 노인인구를 위한 적극적인 안전망 구축. 그것이 이십년 후, 삼십년 후 우리가 필히 맞닥뜨릴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맞을 수 있는 방법이 되어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노년, 젊은세대의 이해와 공경 따라야…
늙고 싶어 나이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세월이 가면 나이를 먹고 늙으면 힘이 빠지는 게 만물의 이치다. 그 자연의 순리 그대로를 서글프지 않게 받아들이려면 젊은 세대의 이해와 공경을 동반한 사회 안전망이 필수다. 어릴 적 기저귀를 빨며 내 온 몸을 닦아 키워주신 부모의 은공은 세월이 지난다고 잊어질 것이 아니다. 고된 세상에서 우리를 낳고 길러내느라 닳아진 그들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안을 이가 누구인지, 늙어 노인이 될 우리 모두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글/김혜경 사진제공/경기도노인학대예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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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1. 노인학대 예방 수칙
1. 어떤 경우든 노인을 학대할 권리는 아무도 없다.
2. 건강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3. 경제적인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유지한다.
4. 노인부양을 이유로 자녀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하지 않는다.
5. 자녀와의 관계보다는 다른 사회적 관계에 더 관심을 가진다.
6. 노인이 되었다고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주는 일을 많이 한다.
7. 지금하고 있는 활동을 중단하지 말고 지속한다.
8.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9. 자녀와의 갈등을 갖지 않도록 가정의 화목에 최선을 다한다.
10. 학대받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기보다 도움을 청한다.

Tip2. 노인학대 관련 법적 조치사항
-노인의 신체에 폭행을 가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노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폭행, 성희롱 등의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노인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노인에게 구걸을 하게 하거나 노인을 이용하여 구걸하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노인을 위하여 증여 또는 급여된 금품을 그 목적 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행위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노인학대,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노인학대 신고는 1577-1389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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