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결혼한 박은미(27·가명)씨는 손이 귀한 시댁의 권유로 일찍 결혼한 케이스다. 결혼 2년째부터 임신을 계획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직 소식이 없다. 3년 전 병원을 찾았지만 부부 모두 건강하고 나이도 젊어 전혀 이상이 없단다. 부모님 성화에 세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작년부터는 시험관아기시술을 시작했다. 박씨는 아직 젊으니 괜찮다 스스로 위로하다가도 돌아누우면 어느새 한숨이 나온다.

결혼 6년차 회사원인 정숙희(35·가명)씨는 회사를 관둘까 말까 고민이다. 3년 전부터 불임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원 출입이 잦은 배란유도 기간(보통 열흘 정도 주사를 맞는다)에는 자꾸 회사 눈치가 보여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헛배가 불러오거나 자주 구토와 고열에 시달릴 때가 많지만 매번 병가를 낼 수도 없어 꾸역꾸역 참고 만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를 관두고 치료에 전념하고 싶지만, 앞으로 수 백 만원 씩 깨질 시술비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참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마다 정 씨는 불임휴가제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진정연(40·가명)씨는 사정이 더 딱하다. 8년째 불임치료를 받으며 12번이나 시험관아기시술을 했지만 모두 실패, 줄곧 전업주부였던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외출도 꺼려진다고 했다. 해가 갈수록 수태능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연말마다 불면증도 도진다. 주위에서 쉽게 입양을 권할 때에는 전과 다르게 신경이 곤두서 화를 낼 때가 많아졌다. 보다 못한 남편의 권유로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는 진 씨는 요즘 심경을 묻는 의사의 질문에 ‘바짝바짝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김명자(37·가명)씨는 시험관시술을 거쳐 지난해 10월 쌍둥이를 출산했다. 결과만 보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성공이었지만 수십 번 씩 거친 과배란주사, 난자채취, 배아이식 등 지난 9년 간 불임치료에 들인 돈만 1억이 넘었다. 여기에 시술 전 체력보충을 위해 들인 약값만 해도 상당하다. 이 중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절반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천군만마를 얻었지만 앞으로 들어갈 양육비를 생각하면 당장 일거리부터 찾아야 했다.

시험관아기시술 평균 삼백만원, 有錢有子 無錢無子!

부부가 아기를 가지기 위해 피임을 하지 않고 1년 이상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져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불임이라고 한다. 불임의 원인은 여성 측이 약 35%, 남성 측이 약 35%, 부부 모두 불임원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약 15%이며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15% 정도로 관찰되고 있다.

사실 불임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100만 쌍이 넘는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불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높은 수치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불임의 문제는 민감한 가정사의 그늘에 가려져 사회문제로 공론화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이들 불임부부의 아픔에 사회가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저출산문제가 시급히 풀어야 할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요 근래의 일이다.

정부는 사상 최악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임신과 출산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하고, 정관·난관 복원수술에 보험을 적용하는 등 갖가지 출산장려정책을 펼쳐 왔다. 보육비와 교육비 지원에 세금 감면 혜택 등 고육책들이 늘고는 있지만 하락일로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인게 사실이다.

날로 떨어지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가 주시해야 할 부분이 바로 불임의 증가 추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불임진단 환자는 02년 9만6000 명에서 03년 11만7000 명, 04년 13만 명 등 해마다 급상승 중이다. 전문가들은 가치관의 변화와 결혼연령의 고령화, 환경오염의 증가, 스트레스 등의 영향으로 불임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간 출생아 수는 1995년 71만6993명에서 지난해 43만8062명으로 10년 사이에 38.9%나 감소했다. 십년 전만 해도 10쌍 중 1쌍 꼴이었던 불임가정이 현재는 7쌍 중 1쌍으로, 매년 4만 명 씩 늘어나는 추세라니 출산속도보다 불임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얘기다.

앞서 살펴봤듯이 불임부부의 현실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을 동반한다. 그중에서도 불임치료를 위해 쏟는 막중한 비용은 이들의 인내와 희망을 짓누르는 가장 험난한 장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과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차례의 시험관아기시술에 드는 비용은 과배란주사 10만 원, 난자채취 70만 원, 배아냉동·이식 80만 원 등 약 300만 원 선(본격적인 시술에 앞서 불임진단을 받기까지의 비용만도 200만원이 소요된다). 최소 3회 이상 시술을 받는 의료현실에 비춰 볼 때 불임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지출하는 의료비는 최하 천 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잦은 진료비와 약값, 한방치료 등을 거치면 액수는 금세 배로 불어난다. 웬만한 재력이 없다면 몇 번 시도해 볼 수 없는 큰 액수다.

이렇다보니 불임부부들 사이에서 들이는 ‘유전유자(有錢有子)무전무자(無錢無子)’라는 말이 그냥 하는 농담은 아닌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3년 불임부부에 대한 조사를 보면, 불임 부부 4쌍 중 1쌍이 비용부담을 이유로 불임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부부 10쌍 중 8쌍은 ‘불임치료 비용이 가정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조아산부인과 김세영 원장은 “불임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 등 심적 압박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데, 불임치료에 드는 막중한 경제적 부담은 이러한 심적 부담을 가중시켜 임신의 여건을 가로막는 간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병원문턱 낮추어야”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는 2006년부터 불임부부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치료비 지원을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부터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130% 이하의 저소득층 불임부부를 중심으로 시험관아기 등 10여 종의 보조생식술에(인공수정은 제외) 1회 150만원 씩(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55만원) 최대 2회까지 지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비 213억 원 등 총 465억 원을 들여 전국의 44세 이하 불임여성 1만6426명이 이 혜택을 받았다. 값진 첫걸음이지만 현재 정부지원은 불임치료의 마지막 단계인 시험관아기시술에 한정돼 있어,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불임극복 인터넷 커뮤니티 ‘아가야’의 박춘선 대표는 “이번 지원사업은 저출산 시대 불임의 문제를 사회가 함께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소득수준이 너무 낮게 책정되거나 유자녀부부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등 불임부부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완할 것이 많다”며 “이러한 지원사업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절실한 것이 병원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 건강보험 적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불임여부 진단과 배란유도주사제, 약물요법 등 한정된 치료비에만 보험이 적용될 뿐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 등 보조생식과 관련한 비용은 일체 의료비혜택을 받을 수 없다. 불임이 다른 질환과 달리 환자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시험관아기시술 성공률이 15~35%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출산지원팀은 “04년부터 보장성 강화를 위해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질환들에 대해서도 보장범위를 확대 중이지만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은 치료라기보다는 임신을 위한 보조적 성격이 강하고 시술비용도 크므로 건강보험의 적용여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임환자들은 부담 없이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을 희망하고 있다.
박 대표는 “다른 저출산 국가들의 경우 불임을 보이지 않는 질병으로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은 연간 10만 엔을 들여 28만 명의 불임부부들이 혜택을 받게 했고 프랑스는 불임부부가 시험관시술을 받을 경우 횟수와 비용에 상관없이 병원비 전액을 지원한다. 캐나다 퀘벡 주는 2001년부터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는 부부들에게 치료비의 30%까지 세약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도 아기를 갖고자 애쓰는 불임부부에게 의료비 지원을 확대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불임증가의 시대 거꾸로 가는 정부지원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올 2007년도 시험관아기시술 지원사업의 수혜자는 전년보다 5000여 명 감소한 1만1694명이 될 것으로 보여 또 한 번 정부의 저출산 극복 의지를 의심케 한다. 복지부는 당초 2007년도 사업예산을 작년보다 69.3% 늘린 307억 원(국비)으로 책정했으나 기획예산처의 예산 삭감으로 작년보다 줄어든 142억 원으로 책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1차 지원사업 결과, 임신성공률이 복지부의 예상치인 25%를 훌쩍 뛰어 넘은 31.6%의 쾌거를 보였음에도 불구, 예산은 줄어든 셈이다. 

출산율 높이기에 혈안이 된 정부도 일단 수태의 가능성이 낮은 불임부부보다는 실제 가임 가능성이 높은, 다시 말해 못 낳는 것이 아닌 안 낳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계산의 결과로 보인다.

줄어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재경부가 작년 8월 발표한 ‘소수 공제자 추가공제제도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 공제자 추가공제는 부양가족수가 본인을 포함해 1인 또는 2인 가구에 대해 기본공제 외에 추가로 소득공제를 해 주는 제도. 3인 이상 가구와의 과세형평성을 위해 지난 96년 도입된 제도로, 1인 가구일 경우 추가 100만원, 2인가구일 경우 추가 50만원을 소득에서 공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독신자나 맞벌이 부부에게 혜택이 돌아갔던 이 제도가 내년부터는 출산장려 차원에서 자녀가 2명 이상일 때 추가공제를 해주는 ‘다자녀 추가 공제’로 바뀐다는 것이다. 기존 제도가 다자녀가정에게 불리하다는 재경부의 판단이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불임부부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디해 박춘선 대표는 “불임부부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이라며 “인구감소의 문제를 자녀의 수로 환산하지 말고 그 원인을 충분히 검토해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자녀 가구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것은 찬성하지만 이를 형평성 차원에서 혜택을 주던 소수공제자들의 부담을 다시 늘려 해결하려는 것은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이미 고가의 치료비로 다중고를 겪고 있는 불임부부들에 대해선 예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저출산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지만 아직도 불임부부에 대한 지원만큼은 갈 길 먼 걸음마 수준이다. 세금감면과 분양우선권, 육아비지원 등 쏟아지는 출산장려책을 바라보며 불임부부들이 느낄 소외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불임의 문제가 비단 한 개인의 건강문제는 아닐진대 아직 이 사회는 불임을 제 일처럼 품지 못하고 있다. 불임부부들은 불임에 대한 사회적 접근이 단순 인구부양책의 일환이 되길 원치 않는다. 64만 쌍이라는 수치의 심각성에 사회전체가 공감하고 이에 대한 사회국가적 책임을 강화해 주길 원하고 있다. 불임에 대한 이해와 지지, 배려가 선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서민의 삶은 더 없이 불안하다. 이럴수록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애를 낳고 싶지만 불임이라는 난관에 가로막혀 각종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는 불임부부들의 이야기는 출산 기피시대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일지언정,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불임부부에게서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불임증가시대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최상의 코스일 수도 있는 일이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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