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병영에 21세기 병사?

지난 2005년 6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경기 연천 육군 28사단최전방 초소(GP)에서 김동민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장교와 동료 사병들에게 소총을 난사, 8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국회 국방위 `GP총기사고 진상조사소위원회’는 총기난사사건의 발생원인과 관련, “김동민 일병의 복무부적응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여기에 일부 선임병의 욕설과 질책이 상호작용해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즉, 김 일병의 군복무에 대한 부적응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

하지만 ‘문제 사병’을 방치한 군의 병사관리시스템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 사병에게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건발생을 기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를 낳았다.

병영문화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우리의 병영문화가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이어서 병사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사회가 변하고 구성원이 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60,70년대의 병영문화만을 답습하는 것이 우리 군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군사평론가 표명렬 씨는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와 내부 생활 제도에서는 그 어떤 병사도 군생활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면서 “특히 신세대 병사들에게 냉전시대에나 있을 법한 권위주의를 강요할 경우 반발감을 일으키고 사고를 유발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군전문가들은 병사들이 80년대에 출생한 신세대인데 반해 군의 리더십이나 병영 환경은 시대 변화를 뒤따르지 못해 군내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군사회복지학회장 조홍식 서울대 교수는 “지금 우리 군의 모습은 20세기 병영에 21세기 병사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군대가 폐쇄적이고 단절된 조직이라고 해도 구성원들이 변하고 있는 만큼 적절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며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신세대 병사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대 병사, 그들은 왜 좌절하는가

그렇다면 신세대 병사들이 느끼는 군생활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두 달 전 제대한 김진호(24·노원구 상계동) 씨는 군 생활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권위적인 문화였다고 털어놓는다.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어른들에게 많은 얘기를 듣고 갔는데도 어려운 점이 많았죠. 그 중에서도 정신적인 부분이 참 많이 힘들었어요. 권위적인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고 정체성을 잃어야만 했어요. 선임병이라면 무조건 복종해야하고, 터무니없는 상황도 받아들여야했죠. 군 생활에 적응하려면 정체성을 잃는 편이 나았어요. 그게 적응엔 도움이 되거든요.”

현재 일병으로 복무 중인 이선철(23·동대문구 전농동)씨도 군생활의 어려움은 부대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고 말한다.

“육체적으로도 물론 힘들죠. 하지만 가장 힘든 점은 불만이나 고통을 느끼면서도 해소하거나 해결할 만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죠. 물론 선임병이나 지휘관이 고충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한계에요. 그들에게 불만이 있는 것을 어떻게 그들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마음 약한 친구들은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는 환경이죠.”
이 같은 신세대 장병의 어려움들은 지난 해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도 나타난다. 이 조사에 따르면 40%가 넘는 신세대 병사들이 자아존중감과 대인관계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군 병원에 정신질환으로 입원하는 장병이 연간 1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신질환 입원자 중 신병은 무려 83.6%를 차지하고 있다. 

한의원 인권침해조사국장은 “문제 소지가 있는 사병들 뿐 아니라 부대 내 부적응 사병들을 미리 골라내고 관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면서 “만약 사병을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더라면 총기난사 사고, 자살사고와 같은 어이없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병의 고충, 들어주고 해결해 줄 존재 필요

최근 들어 군사회복지사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 역시 정신적 어려움을 느끼는 사병들이 증가하는데 있다. 특히 문제 사병들을 적절히 관리하지 않을 경우 큰 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의뢰를 통해 사병과 면접하고 상담 및 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사회복지사제가 가장 효율적인 대책일 수 있다.

군 기본권 전문상담관 유태수 복지사는 “경직된 군 조직사회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간 넘지 못할 벽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재하고 조정해 주는 군사회복지사의 존재가 필요하다”면서 “실제로 미군 내에는 양성평등 상담소, 고충처리위원회, 감사관실 등 사병들이 불평하고 도움을 요청할 기관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군사회복지사제의 필요성은 정치권에서도 이미 인정한 사실이다. 국방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인 송영선 의원과 고경화 의원도 지난해부터 군사회복지사제를 도입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송영선 의원은 “사병에게 월급을 많이 주자는 의견도 있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그동안의 조사결과에도 나왔듯이 군 생활에 있어 사병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자아존중감의 훼손 등 정신적인 부분이다. 군을 지나치게 사회화하는 군대인권법안이나 인권기구의 설립보다는 군사회복지사제도를 통해 사병들의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군사회복지사가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는 무엇일까. 박미은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논문 ‘선진 병영문화를 선도하는 군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보면 군사회복지사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군인을 면접하고 문제를 파악한 후 전문적인 상담 및 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군인의 정신건강 및 대처능력을 향상시키는 심리사회적 서비스와 대인관계상 갈등과 폭력을 조절하고 이를 예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군인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 및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옹호, 개발하며 군인들의 전투수행 능력을 증진시키고 전투 이후의 회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이처럼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군사회복지제 도입’에 긍정적 입장이지만 제도의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것은 군사회복지사의 자격부분이다. 먼저 사회복지사계는 군 경력과 상관없이 현재 전국의 대학에서 배출되고 있는 1만 5천여 명의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군사회복지사를 선발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여성이나 미필자에게도 군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다. 물론 졸업생 모두에게 군사회복지사 시험자격을 주더라도 별도의 자격시험이나 선발시험을 통해 군사회복지사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사회복지사계는 군사회복지사제가 이 같은 방식으로 시행될 경우 청년실업률을 줄이고 ‘사회복지전공자의 취업률’을 높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의견이다. 

  반면 군 관련 기관에서는 군사회복지사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군 경력을 중요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은 일반 사회에 비해 권위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일반인 사회복지사가 들어오면 군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도의 실효성마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군 관련 전문가들은 군사회복지사가 조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 병과의 신설이 이뤄져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군기본상담관 제도와의 통폐합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군사회복지사가 상담관의 역할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미연 교수는 “군사회복지사를  군기본상담관제의 전문 인력으로 고려해야 하는지, 아니면 제도와는 별도로 군사회복지사제도를 정하여 법적 근거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계각층의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군사회복지를 연구한 학자로서는 군사회복지사제가 더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분야인 만큼 각자의 영역을 정돈하는 대신 군사회복지사제가 별도의 제도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기존의 법률을 개정하거나 활용하는 측면에서, 군사회복지사를 군무원의 신분으로 규정하여 군무원인사법과 시행령에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법적 뒷받침을 통해 군사회복지사의 활동에 따른 소요경비 및 관리와 조직체계, 신분보장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어떤 방법으로든 전문직으로서 군사사회복지사 제도의 법적 근거는 필요하여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적 자문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 군의 벤치마킹 대상인 미군은 1차 대전 후인 1918년부터 군사회복지사를 군에 배치했다. 또, 2차대전 후인 1945년에는 군 사회복지사 채용과 활용에 대한 제도가 법제화돼 군인신분의 사회복지사가 500명 이상이고 민간인 사회복지사도 1000명에 달하고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남아공 등의 나라도 그 형태는 다르지만 군사회복지사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군내 사망사고 건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 군은 구타, 총기사고, 자살, 탈영, 성폭력 등의 각종 사건 사고로 조용한 날이 없다. 혹자의 말처럼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남성들을 모아놓고 그 정도 사고가 안 나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건사고가 군대가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다는 점이다. 물론 병사관리시스템의 효율성 여부에 따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던 사고이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를 경악케 한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 김 일병도 사회에 있을 때는 그저 평범하고 내성적인 청년일 뿐이었다. 그건 김일병 뿐 아니라 탈영병도 자살사병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환경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군사회복지사제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각종 폭력과 폭언으로 힘들어하는 사병들의 숨통을 틔어줘야 한다. 이는 그들 개개인의 인권문제이기도 하고 그 외의 사병들의 안전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폐쇄된 조직 내에서 한 개인의 이상행동이 갖는 엄청난 폭발력과 피해를 수차례 목격해 왔다.

이제 군사회복지사제 도입에 대한 각계각층의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병들의 군 생활 만족도를 높이고, 각종 사고를 예방,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글/안주영 사진/최경훈 기자 사진 및 자료제공/군사회복지연구회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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