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를 만나다_생태보전시민모임

지난 주말 가족들과 모처럼 등산에 나섰다. 말이 좋아 등산이지 배낭도 없이 물병 하나를 달랑 쥐고 단화를 신으면 거뜬할 인근의 뒷산 나들이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자주 가 보지 못했던 말뿐인 ‘뒷산’이었고, 가족동반으로 간 적은 더 드물었기에 모처럼 개나리 색 모자를 꺼내 쓰고 등산로 입구에서 김밥 몇 줄도 샀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그것도 거짓말 조금 보태 엎어지면 코 닿을 인근의 낮은 산이건만 그곳은 공기부터 틀렸다. 빽빽이 우거진 나무며 돌출한 바위, 산새 소리가 청량음료처럼 기분을 풀어주는 자연휴식공간. 이렇게 좋으니 귀찮아도 종종 찾아오자는 말을 가족들과 나누며 약수터가 있는 중간 턱으로 향했다. 하지만 약수터 근처에선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새 등산로가 났는지, 전에 없던 황톳길이 넓게 벗겨져 있는데, 15년은 족히 살았을 나무가 밑둥만 남기고 사라진 곳에 대충 다진 흙 밭이 몹시도 썰렁했다. 이름모를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대신 철봉과 역기, 구름사다리 등 체육시설물이 박혀있었고, 여기저기 부러진 나무기둥이 뒹굴고 있는 옆으로 주민들이 허허 웃으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채 다져지지 못한 흙가루가 나부끼며 먼지를 일으켰는데, 그 모습이 제법 황량했다.

지역환경 중심의 생태감수성 기르기 운동
지난 4월 은평구 진관내동으로 둥지를 옮긴 생태보전시민모임은 조금씩 사라져가는 우리 자연과 생태균형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난 98년 7월 자연생태 보전운동을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 창립된 시민단체로, 환경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면밀히 검토하고, 앞으로의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전문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 아래, 학계 전문가와 환경운동가 몇몇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의 민성환 사무국장은 “우리의 비전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세상’입니다. 단체를 움직이는 건 우리가 사는 도시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살맛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고요”라고 말한다.
“아침에는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자명종삼아 일어날 수 있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아침밥을 먹고, 가로수가 우거진 자전거길을 따라 학교와 직장을 오가며, 주말이면 가족끼리, 이웃끼리 가까운 공원을 찾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생태보전시민모임은 꿈꿉니다. 
그런 세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화와 평화가 전제되어야겠지만 그와 더불어 자연과 사람의 조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게 단체의 생각이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꿈꾸는 모임답게 단체의 대표는 사람이 아닌 ‘물푸레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물이 파랗게 변한다는 물푸레나무처럼 온 세상을 파랗게 만드는 것이 단체의 사명이라고. 아울러 생태운동은 말 못하는 나무와 동물을 대신해 사람이 움직이는 ‘위임운동’임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민 사무국장은 말했다.
단체는 크게 두 가지 활동영역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도시 생태계보전활동으로, 이를 위해서 생태계가 양호한 지역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마을주변작은산 살리기운동’, ‘도시습지보전운동’, ‘우리동네작은하천살리기운동’ 등을 추진해 오고 있다. 도심 속 주요 생태공간 변화를 모니터하는 ‘자연생태감시단’도 운영중이다.
또 하나의 활동영역은 생태교육이다. 사람들의 자연관이 자연친화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도시 생태계 보전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창립 초기부터 생태교육운동을 꾸준히 추진하여 왔다. 자연과 멀어진 도심 속에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고 자연과 친숙해지며 그와 더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한 단체의 노력이다. 지역의 자연환경을 거점으로 하여 지역 자원활동가를 양성하고, 자원활동가가 주체가 되어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는 시스템으로, 1999년 길동도시자연공원을 시작으로 진행된 이 모델은 오늘날  타 지역까지 확산되어 생태교육활동 저변을 넓히는데 일조하고 있다.
현재 단체가 역량을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지역사업이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이 소재하고 있는 은평구는 자연환경이 타 구에 비해 뛰어난 편이지만 개발의 위험이 높고 무분별한 이용과 관리부재로 상당부분 훼손이 진행된 상태. 민 사무국장은 “가장 큰 문제는 지역의 시민사회역량이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할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작년부터 지역의 시민사회역량을 키우고, 타 단체들과 연대하여 살맛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환경보존 vs 개발논리’, 장기적 시각으로 설득해 가야
하지만 이곳과 같은 환경운동단체를 향하는 세상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역시나 환경과 개발논리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한 쪽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결국 이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가치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가치는 옳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데, 그 선택이 바람직 하느냐를 판단하기 위해선 근시안적인 시각보다는 전일적인 시각,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이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생태적인 시각과 가치는 개발논자들 역시 근본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요. 그 전제 위에 발생하는 차이는 충분히 기술적으로 극복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물신주의, 경제제일주의가 하나의 종교처럼 자리 잡고 있어 상당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결국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하며 지속적으로 토론과 설득을 해 나가야겠지요.”
하지만 그동안의 천성산 판결 행보나 새만금 사건만 봐도 생태보존운동의 앞날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게 사실. 작년 말부터 환경운동 진영에서는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니 생태보전시민모임의 활동도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환경운동의 위기설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민 경제생활이 계속 밑바닥이다 보니까 ‘경제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는 정부담론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 봐요. 자연히 환경보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개발을 위한 포장용으로 전락했다는 느낌마저 들고요. 결국 이런 의식이 일반 시민의 주류 정서이다 보니 환경운동 역시 모든 면에서 어려워요. 하지만 모든 이의 꿈은 행복한 삶이고, 행복한 삶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그런데도 그 사실을 묵과하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보존해야할 생태계가 있고 여전히 찾아갈 자연이 있어 단체는 오늘도 바지런을 떨 수 있다. 활동하며 맞닥뜨렸을 힘든 상황도 있었을 텐데, 민 사무국장은 고개를 저으며 오로지 기뻤던 순간만이 단체의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단체의 꾸준한 활동들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리고 역시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차츰 단체의 생각에 동의해 주고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무엇보다 기쁘다는 민 사무국장. 내년이면 어느새 창립 10년째가 된다며, 올해는 지난 10년의 성과를 차분히 평가, 반성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깊게 그려보는 한해가 되도록 마음을 다잡고 있다 했다.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실시하는 모습.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삶의 전환을 모색해야만 할 때입니다. 인간의 욕심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한 그루 나무와 새 한 마리의 친구가 되어 주세요.” 
단체의 이 말이 힘없는 어린아이의 바람에 그치지 않을 수 있으려면 자연을, 그저 걷다 잠시 멈추고 바라보면 좋은 풍경 정도로 인식해선 안 될 것 같다. 자연은 우리가 맞은편에 서서 바라보는데 그칠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거대한 생명의 총체이자 모태이다. 인간 스스로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일부임을 깨닫는다면 지금의 난개발도 지속가능한 개발로 방향을 틀 수 있으리라, 단체는 믿고 있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바라며
일단 파괴된 자연을 복원시키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파괴되기 전에 지키고 보전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굳이 자연을 갈아엎고 그 위에 휴양림이며 리조트를 짓는 우리 인류에게는 너무 어이없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생활 주변에 숨 쉬고 있는 작고 위대한 생명을 돌볼 수 있는 마음들이 남아 있다. 인간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종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을 알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돌아갈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글/김혜경 기자  사진제공/생태보전시민모임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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