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를 만나다_(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2005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국제결혼은 국민결혼의 13.6%에 해당하는 43,121건. 바야흐로 결혼하는 국민 8쌍 중 1쌍은 국제결혼을 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그 중에서도 1990년부터 2005년 사이,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은 260배나 증가했다. 작년 한해 한국남성과 외국여성과의 결혼 건수 31,180 중에 중국/조선족이 20,685건 (66.2%)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베트남 5,822건(18,7%), 일본 1,255건(4%), 필리핀 997건( 3,2%) 순이었다. 그 외 몽골과 구 소련계, 태국이 1% 씩을 차지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편입된 외국인여성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많은 수의 여성들이 중국, 베트남 등에서 한국남성들과 백년가약을 맺고 한국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미 알려졌다시피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여성들의 삶은 그들의 처음 꿈과 상당 부분 차이가 난다. 많은 수의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과 언어문제, 가정 내에서 느끼는 고립감, 자아의 상실 등으로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달에 소개할 단체는 이렇듯 도움청할 데 하나 없는 이주여성들의 ‘나홀로 한국생활’에 등불 같은 빛이 되어주는 곳이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상담과 문의로 인터뷰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았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그 곳이다.

국제결혼은 늘어도 국제화가정은 드물다?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한국여성과 이주여성들의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형성과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2001년 창립되었다. 외국인이주여성의 인권보호와 권익신장,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을 통한 생명존중의 실천이 단체가 해온 주요 활동들이다.
강성혜 사무처장은 “국내 외국인이주자 문제 중에서도 여성이주자문제는 예속관계·성·자녀양육 등에 있어 보다 근본적이고 민감한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남성이주자문제와는 구별된,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개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분리되어 나왔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센터를 찾는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갈등, 남편의 무시와 폭력, 언어장벽, 자신이 성적 파트너 혹은 자녀생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됐다는 모멸감, 체류신분의 불안함 등의 고민거리를 안고 온다. 한 달 평균 100건 정도의 상담이 들어오는데, 재산이나 직업을 허위·과장한 남편에 대한 상담,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여성의 상담이 주를 이룬다. 센터는 피해자를 위한 심리치료와 의료 제공, 기관 연결, 법률지식 등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결혼이 급증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한국남성들은 외국인 아내를 동등한 반려자로서 존중하지 않아요. 다른 나라, 다른 문화의 여성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순종적이면서 육아를 전담할만한 성적 파트너, 즉 가부장적 성역할을 기대할 때가 많죠. 또한 외국인아내를 독립된 자아를 소유한 개인으로 존중하기 보다는 한 집안에 종속된 가족의 단위로 묶어버리기 때문에 많은 이주여성들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성혜 처장은 또한 “서로 다른 욕구와 기대,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국제결혼 가정에 위기를 가져온다”며 무엇보다도 남편이 아내를 도와 한국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담신청자 중에는 남편이 자신을 친지며 주위사람에게 정식으로 소개하지 않는 것이 속상하다는 이주여성을 자주 볼 수 있어요. 남편이 자신을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아 모욕감을 느끼게 되죠. 또 많은 한국인남편들은 자신이 공들여 데려왔으니 한국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전적으로 아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주여성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혼자라는 고립감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센터는 이러한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남편들을 위한 갈등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센터에 한국인남편들을 초대해서 아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시키며 한국생활에서 유일한 의지처인 남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시킨다. 베트남어 등 아내의 나라 언어를 가르치며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함을 교육시킨다. 프로그램을 통해 서서히 변화되는 남편들의 모습과 이주가정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센터식구들의 보람이다.

“의사소통으로 인한 오해, 한국어교실에서 풀어가요”
상담 외에도 센터가 초창기 때부터 주력해 온 활동이 바로 노동자 중심의 모성보호 프로그램이다. 일하는 이주여성의 집을 직접 방문해 임신출산교육과 육아지도, 산전산후 돌봄, 신생아용품 지원 등 일하는 이주여성이 안심하고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육아 전반을 돕는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이주하는 여성들 경우에 첫 임신인 경우가 많아요. 당연히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돌 볼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고, 언어와 정보의 협소에 따라 기본적인 상식을 갖기도 힘들죠. 출산 이후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만성질환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요. 육아지식에는 더 취약해서 아이 젖먹이는 방법이나 육아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병을 키우기도 합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산모 나이가 어리고, 연고자가 없는 것은 물론, 의료접근권도 열악하다는 점에서 모성보호 프로그램은 큰 실효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주여성들이 ‘엄마’라 부르며 도움을 청해 올 때마다 모성보호팀원들은 외로운 타국생활에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바로 엄마처럼 기댈 수 있는 ‘보호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
여성결혼이민자들은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이 한국어를 모르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에 한국어 교육은 한국생활 적응에 일차적인 과제다. 센터는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에서 오는 오해가 심각한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해마다 한국어교실을 열고 있다.
강 처장은 “이주여성한국어교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베트남을 비롯해 중국, 태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몽골, 캄보디아, 콩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요. 수강인원이 70명 정도 됩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한국어 표현이 느는 여성들은 표정까지 밝아져서 의사소통이 그만큼 이주여성의 삶에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2학기제로 구성된 1년 과정으로 초급, 중급 총 다섯 개 반을 운영하는데, 한학기가 끝나면 센터가 교재를 기반으로 작성한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해 새롭게 반을 편성하게 된다. 한국어구사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주제별 토론 수업을 거치며 리더십교육을 병행한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이주여성들이 늘어 한국 땅에서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의 일환이기도 하다. 한글교육 외에도 다채로운 문화행사, 성폭력과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 등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주여성의 삶 불안케 하는 ‘외국인 신분’
센터는 외국인이주여성이 겪고 있는 피해와 부당한 처우 개선을 위한 대안제시에도 함께 한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인 남편과 살고 있으나 방문동거비자로 체류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복지대상에서 배제되어 있고, 어떤 이유라도 결혼사유가 해소되면 법적으로 불법체류자의 신세로 전락하는 등 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 또 일 년마다 비자를 갱신하도록 되어있는데, 그 신청권이 남편에게 있기 때문에 비자 문제를 가지고 아내를 억압하는 남편도 종종 있다. 결혼생활 2년 후 취득할 수 있는 국적도 남편이 보증을 서야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국적법 역시 이주여성에게는 불리할 때가 많다. 사정이 이러니만큼, 외국인여성이 한국남자와 이혼할 시 양육권과 면접권을 얻어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 센터는 국적 취득을 통한 체류만이 아니라 억울하게 내몰리는 외국인 아내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에서 살 수 있도록 체류권과 노동권에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결혼생활 2년이 지나기 전에 가정폭력 등으로 이혼하는 이주여성은 이혼의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어 외국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 증명하기 어려운 가정폭력의 증거를 말과 문화가 다른 이주여성에게 요구해 온 것이지요. 이 때문에 결혼이주여성 지원단체들은 이들에 대한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 왔어요.”
다행히 2006년 5월 국적업무관리지침 일부개정안에 의하면 이주여성들이 귀책사유를 증명하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 센터와 같은 여성단체가 작성한 확인서를 입증자료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2005년 9월 개정된 결혼이민자에 대한 체류관리 관련법에 의하면 국민인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국민인 배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이혼이나 별거시 거주 자격으로 체류허가와 취업이 가능하고, 뿐만 아니라 별거의 귀책사유가 양측에 있거나 외국인 배우자에게 있는 경우라도 자녀양육 등 가족부양 시에는 방문동거자격으로 변경, 취업이 허용된다. 당초 국내체류 5년 이상이어야 가능하던 영주자격도 2년 거주자로 변경됐다.
여성결혼이민자들의 신분문제는 비단 이들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2세인 자녀들의 인권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분 불안은 조속히 처리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센터는 올해 여성가족부로부터 새로 위탁받은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를 가정폭력에 취약한 여성결혼이민자들을 위해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언어가 다양한 특성을 고려해서, 이곳에서의 학습을 거친 한국어통역이 가능한 이주여성을 직접 투입할 계획이라고. 빠듯한 NGO살림이다 보니 실무자 수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이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오늘도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기를 마다 않는 이곳 센터가 있어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만날 수 있다.

편견을 버리면 다양성이 보인다
국제결혼율 13%를 넘는 시대. 하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결혼이민여성들을 ‘가난한 나라에서 돈 때문에 건너 온 사람들’, 심하게는 ‘위장결혼자들’로 오해하기 일쑤다. 국제결혼이 행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시스템이나 전 지구적 문제인 빈부의 차, 그로 인한 빈곤국의 여성 이주현상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피부색과 국력의 비교로 이주여성들을 판단하고 몰아세운다. 이러한 편견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의 통합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이제는 이들 외국인결혼이민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국제결혼가정을 서로 다른 생김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보다 다양성 있는 가정을 꾸려가는 가정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열린 눈, 열린 마음이 필요한 다문화시대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다.

글/김혜경 기자  사진제공/(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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