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힘겨운 승부, 사교육에 무너지는 꿈

강석이는 죽자 살자 공부에 매달렸다. 고등학교 삼년 동안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할 정도로 혼자 공부만 했다. 성적은 늘 전교 1등. 그러나 언제부턴가 불안하다. 수시로 본 면접에서 학교 공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하는 듯한 면접에 학원 근처에도 못 간 강석이는 절망했다. 결국 불합격. 정시모집에서 서울대에 원서를 낼 예정이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요한 논술 준비를 위해 학원에 갈 엄두도 못내는 집안형편. 마지막 관문에서 주저앉을 것 같은 불안감에 강석이는 요즘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아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이야기 둘. 출발부터 다른 한 도시 두 아이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보경이는 평균 다섯군데 정도의 학원을 다닌다. 공부에 재미가 나 욕심을 내면 일곱여덟군데를 다니게 되기도 한다. 비용은 한 달에 120여 만 원 정도. 외교관이 꿈인 보경이는 영어에 재능도 있고 열심이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따로 수업을 받기도 한다.
한편 같은 학년인 현주는 학원은 꿈도 못꾼다. 노동일을 하는 아빠는 일거리가 떨어져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 8평 쪽방에 부모님과 같이 사는 현주는 1학기 때는 100점도 맞고 학교에 적응을 잘했지만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살림이 빠듯한 현주의 부모는 타는 속도 한겨울이다.

이야기 셋. 학원비를 위해 이혼을 한 어머니

수험생 아들을 둔 이혜영 씨는 요즘 힘이 난다. 아들이 명문대에 가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깊은 응어리가 있다. 아들이 고등학교 진학할 당시 경제력이 없었던 남편을 설득해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기초수급자가 되어 수업료를 면제받고 지급 받는 돈으로 아들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도의적인 부담감도 있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혜영 씨는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너무 좋다고 진작 갔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할 때 부모로써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교육 양극화’현상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의 ‘개천에서 용났다’는 속담은 이미 옛말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 사이에 계층과 지역에 따른 교육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못난다’

1년에 몇 차례씩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오르내리는 해외명문대 입학생이나 국내 유수의 명문대 입학생들에 관한 기사들을 분석해 이들의 가족력을 살펴보면 예외 없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의 부모 대부분이 고학력이며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조기 해외유학 경험이나 해외연수 등은 오히려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증명해 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얼마 전 한겨레 신문은 계층 지역별 교육 불평등 실태를 심층적으로 조사했다. 우선 부모의 학력과 소득 등 사회· 경제적 배경이 어떻게 자녀 세대의 교육격차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기 위해 지난 해 서울과 지방의 고교 다섯 곳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벌였다.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인 ㄱ고와 강남구의 인문계 ㄴ고, 서울에서 가장 교육 여건이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금천구의 인문계 ㄷ고, 충남 홍성 면지역에 있는 인문계 ㄱ고, 서울지역 실업계 ㅁ고에서 각각 한반씩을 골랐다. 그 결과를 보면, 부모의 학력과 소득, 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기대 수준 등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외고와 강남구 학생들이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외고와 강남구 인문계고 학생 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 및 교육 지원 정도 등은 금천구와 홍성군의 인문계고, 서울지역 실업계고 등 다른 세 학교에 견주어 월등하게 높았다.

아버지 학력을 보면, 강남구 ㄴ고는 응답자 32명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1명이 석박사였다. 4년제 대학 졸업자 14명을 포함하면 고학력자 비율이 78%나 됐다. 금천구 ㄷ고는 39명 가운데 석·박사는 한 명도 없었고, 4년제 대학 졸업자가 15명(38%)이었다. 실업계 ㅁ고는 26명 가운데 1명에 그쳤다.

부모의 월 평균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인 고소득 가정은 ㄱ고가 9명으로 응답자 16명의 56%를 차지했다. ㄴ고는 24명 가운데 10명(42%)였으며, ㄷ고는 26명 가운데 6명(23%)이었다. 반면, 가구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학생은 ㅁ고가 12명(46%)으로 가장 높았고, ㄹ고가 9명(33%), ㄷ고가 4명(15%)이었다. ㄴ고와 ㄱ고는 각각 2명(8%), 1명(6%)뿐이었다.

이런 차이는 명문대 진학률의 격차로도 이어진다. 국회교육위 김영숙 한나라당 위원이 서울대에서 받은 ‘출신고교별 입학생 현황’자료를 보면, ㄱ고와 ㄴ고의 경우 2005~2006년도 2년 동안 각각 76명과 51명의 합격생을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ㄷ고는 3명에 그쳤으며, ㄹ고와 ㅁ고는 서울대 입학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부모세대의 학력이 자녀 세대로 대물림 되고 있음을 수치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사실은 (2005~2006년)서울대 합격자 명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대 합격자 10명 중 3명이 강남 지역 고등학교나 특목고· 자사고 출신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지난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서울대가 특기자 전형, 논술시험을 도입하면서 강남지역 출신과 특목고 출신을 우대하는 입시전형을 시행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분석결과를 제출했다.

최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강남지역 고등학교와 특목고, 자사고 출신 학생들이 서울대 합격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23.4%에서 계속 증가하여 2006년에는 29.7%에 이르렀다. 법대와 경영대는 더욱 심해 각각 38.5%, 37.5%가 이들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또한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차이 역시 고스란히 지역별 교육여건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혜화 초등학교 김한민 교사는 “강남 지역 학교에서 근무하다 성북구나 강북구 등으로 옮겨  온 교사들은 대부분 학교 교육여건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고 했다. 구청의 교육경비 보조금과 학부모들의 학교발전기금이 많은 ‘부자동네’학교의 경우, 일상적인 학습준비물로부터 냉난방 시설, 정수기 등 학생들의 ‘학교 안 삶의 질’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면, 구청의 인건비 지원으로 학교에 도서관 사서보조원을 채용해 배치할 여력이 있는 학교의 경우, 도서관 활용 수업 등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특기적성교육 시간에 영어 원어민 교사의 인건비를 일부 보조하는 방식으로, 싼 값에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부모·자녀 학력 ‘대물림’현상 원인

전문가들은 부모·자녀 원인을 고소득 가정일수록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강하고 사교육 열풍이 급속도로 번지는데서 학력 대물림을 찾고 있다. 결국 학력도 인적투자에 비례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이철호 부소장은 “양극화 현상의 심화는 일하는 빈곤층의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며 “일하는 빈곤층의 부모가 모두 일함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며, 더욱이 그들의 자녀들을 방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반면 고소득층 아동들은 고액의 사교육을 받고, 명문학교에 입학하고,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다. 결국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교 정규교육 외에 받는 사교육이 거의 없고,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아동들에 비해 학업 성취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또 비싼 입학금과 수업료로 명문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우며, 종사하는 직업도 전문직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이러한 현실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력이 학벌, 나아가 사회적 지위와 상응하게 되면 그 사회는 양극화로 인한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한 갈등 요인은 더욱 증폭돼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겨레는 교육격차가 어떻게 생기는 지를 살펴보기 위해 ‘교육 특구’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고교생 4명과 지방 읍면 지역 고교생 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남 학생들의 공통점은 어머니가 ‘입시 매니저’라는 점이다. 강남 ㅈ고 2학년 ㄱ군의 성적은 반에서 5등 안팎이다. 동작구 사당동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말에 대치동으로 ‘교육 이사’를 왔다고. ㄱ군의 어머니는 여느 ‘대치동 엄마’처럼 입시 전문가와 상담도 하고, 학원 설명회에도 자주 참석해 입시 정보를 수집해 온다. ㄱ군은 “논술 등 입시 정보에 관한 한 엄마가 나보다 훨씬 많이 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전교 최상위권 ㅂ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ㅂ군의 어머니는 입시 설명회는 물론 상위권 학생 학부모 모임에도 자주 나가 정보를 나눈다.

지방에서도 읍 지역은 면 지역과 상황이 다르다. 읍 명문고에서 성적이 전교 최상위권인 2학년 o양의 아버지는 대학 교직원, 어머니는 교사다. o양의 어머니는 ‘대치동 엄마’처럼 적극적인 매니저 구실은 못해주지만 딸 공부에 도움을 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딸에게 문화체험을 시켜주려고 일부러 인근 대도시의 연극·뮤지컬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 지금은 딸의 성적표를 모아놓고 성적 추이를 분석해 주곤 한다. 반면, 면 지역에 있는 학생 2명은 “부모님 모두 내가 대학에 가길 원하지만, 내 공부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신다”고 말했다.

강남 ㅈ고 ㄱ군이 현재 받는 사교육은 모두 5가지다. 사교육을 받는 시간은 일주일에 24시간, 한 달 사교육비는 250만 원 가량 된다. ㄱ군은 “주변 친구들도 다 이 정도는 한다”며 3학년 막바지에 과외를 받으려면 강사가 부르는게 값이기 때문에 지금 해두는 것이 더 싸다“고 말했다.

강남과 지방의 차이 못지않게, 같은 지방에서도 읍 지역과 면 지역의 사교육 여건차이는 크다. 읍 소재지에 사는 2학년 o양은 서울지역 대학생 2명한테서 영어와 수학 과외지도를 받는다. 과목당 매달 30만원씩이다. o양은 “우리 반의 경우 30명 가운데 10명 정도가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니는 친구도 5명 정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면 지역에 사는 o군과 ㄴ군은 학교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이 유일한 ‘과외수업’이다. ㅇ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고, ㄴ군은 중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학원 종합반에 다닌 것이 전부다. ㄴ군은 “우리 반에서 학원에 다니는 친구는 2~3명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고형일 한국교육개발원장은 “공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이제 교육은 사회통합과 계층 이동의 통로라는 순기능이 사라지고 오히려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기능만 남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과거 교육은 가난한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드는 고통”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당국은 대학입시제도를 바꿀 때 마다 ‘공교육 강화 및 사교육비 축소’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면 바뀔수록 사교육 혜택을 누리는 부유층 자녀들이 더욱 유리해진다. 학생부 성적 반영 비율을 높인 2008년도 입시개혁안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 기대와는 달리 대학들이 변별력 확보를 이유로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논술 시험을 도입하면서 사교육 업체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

‘가진 사람들’도 교육은 고통

‘없는 사람들’보다는 덜하지만 ‘가진 사람들’에게도 교육은 고통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중산층의 입지도 불안하다. 조금만 한 눈 팔면 하층으로 전락할 위기 상황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견 기업 임원인 서모 씨는 아내와 아이를 미국에 보내고 혼자 생활한다. ‘기러기 아빠’생활이 벌써 2년이 넘었다. 서씨의 연봉은 세금을 제하고 7천 만 원 수준. 그는 매달 약 5백 만 원을 미국에 보낸다.

“어느 날 주위 친구들을 보니 모두 아이들을 외국에 보냈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저도 아이와 아내를 미국에 보냈어요. 큰 아이가 내년이면 고3입니다. 최소한 서울 지역 사립대학에 들어 가줘야 하는데 실력이 안 돼 걱정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버텼지만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더 난감하죠.”

이렇듯 막대한 교육비도 부담스럽지만 기러기 아빠들의 삶도 삶이 아니다. 외국에 있는 가족들의 유학비와 생활비를 송금하고, 정작 자신은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부실한 식사로 건강을 망치기 일쑤다. 외로움과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 건강까지 해친다. 작년 돌연사로 사망한 개그맨 김형곤 씨도 기러기 아빠였다. 최근에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생이별을 하는 ‘펭귄 아빠’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정작 비행기는 타지 못하고 손만 흔드는 모습을 ‘뒤뚱뒤뚱 날개 짓 해봐야 날 수 없는 펭귄’에 빗댄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 뒷바라지에 적극 나서면서 학생들의 입시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교육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유해야 할 사회적 재화로 인식되기 보다는 개인 또는 가족의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교육복지 투자 확대로 교육격차 해소해야

그렇다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계층 지역 간 교육 격차를 줄이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줘야 할 보통교육 단계에서부터 경제력에 따른 불평등이 고착화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교육복지 투자확대 등의 정책을 통해 교육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부가 현재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교육복지 사업을 더욱 확대해 교육의 질적 격차를 해소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는’사회를 만드는 방안에 대해 국회 교육위 소속인 유 의원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격차 보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은 “교육 격차는 투입과 과정, 결과 측면에서 나타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투입 단계에서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한 예로 교육경비 보조금만 봐도 강남구는 2002~2005년에 206억 원을 지원했지만, 금천구는 8억8천 만 원밖에 안 된다. 교육격차의 첫 출발선을 맞춰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회교육위 소속인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의 처방은 사뭇 다르다. 바로 ‘대학입시의 자율화와 학교의 다양화를 통한 기회 제공’이 해법. 이 의원은 “학생들은 공교육이 취약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평등이 생긴다”면서 “교육정보공개 및 격차해소법, 자율형학교 육성법, 대학입시 자율화법 등 ‘교육선진화 3대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의원은 “저소득층 자녀 지원을 위한 ‘드림 스타트’프로그램을 만들고 국가가 취학 전, 방과 후, 방학 중 보육·학습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명지고등학교는 이 의원이 주장한 ‘자율형 학교’의 대표적인 예다. 자율형 학교 육성법은 사립·공립·실업계에 상관없이 잘할 수 있는 학교에 자율을 보장하는 법이다. 명지고는 일반계 고등학교지만 ‘이중 언어’ 수업을 편성해 업그레이드 된 공교육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1월부터 명지고는 1학년 35명씩 2반을 영어과제반으로 편성해 영어와 수학, 사회, 과학 등 4과목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영어과제반에서는 이들 4과목을 영어와 우리말로 1시간 씩 번갈아가며 진행해 평균적으로 영어·수학은 일주일에 2~3회, 기타 과목은 1~2회 영어로 수업한다.

이중 언어 수업시간에는 해당과목의 용어와 개념 설명은 물론 질문과 응답도 모두 영어로 한다. 교재는 학교에서 자체 개발한 심화 교과서와 과목별로 담당교사가 매 시간 준비해 나눠 주는 영문 요약본을 활용하고 있다.

명지 고등학교 배병배 교사는 “이중 언어 수업은 교사의 일반적인 수업이 아닌, 학생과 질문하고 답변하는 쌍방향 수업으로 진행 된다”며 “영어를 생활화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영어에 대한 거부반응을 없애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현재 명지고의 ‘이중 언어’수업은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저 영어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로 바뀌었다.

저소득층 자녀 교육 기회 적극 보장해야

교육 전문가들은 “우선 저소득층 자녀에게 교육 기회를 적극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특별전형제도를 확대·보안하는 것만으로도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평생교육기관으로써 대학 기증을 강화시키는 것도 사회적 소외계층을 보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정봉근 교육부 인적자원총괄국장은 “우리의 평생학습 예산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밑바닥 수준이라면서 ”소외계층의 평생학습에 대한 공적인 보조를 크게 늘리는 것도 교육의 불평등 구조를 완화시키는 방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교육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방과 후 학교 ‘바우처 제도’가 그것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교육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무료쿠폰으로 방과 후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청은 이와 함께 코시안, 새터민, 외국인근로자 자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도 바우처제 혜택을 부여하고 방과 후 학교지원센터 통합소식지를 발간해 주민자치센터, 반상회 등을 통해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개설되는 방과 후 학교 참여를 권유하고 홍보해 나갈 계획이다.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나라 만들자

2006년도 수능 시험은 끝났다. 수험생들은 수능 성적표를 받고 열심히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비교 분석해 고민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한날한시에 동일한 시험을 치르고 그 점수에 따라 서열화 된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나마 현재의 고3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정작 가장 힘들어하는 건 내신등급제가 도입된 현재의 예비고3 학생들이다. 내신 때문에 같은 반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게 되었고,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고, 논술 본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에는 고액 과외를 받아야 한다.

이렇듯 대학입시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가가 지정한 교육 과정도, 교과서도, 교사 개개인의 교육 철학도 EBS 문제집 앞에서 무기력하다. 논술교육도 독서교육도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순간 다만 줄 세우기 경쟁의 도구로 왜곡될 따름이다. 이 모든 입시 정책의 뿌리에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체제가 있다.

그동안 10차례가 넘는 입시제도의 변화가 있었지만 가혹한 입시경쟁 체제는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그 근본 이유는 서울대를 쟁점으로 한 대학서열화체제가 완강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저소득층 지역 학교에 집중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부유층 지역보다 나은 교육여건을 만들어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학업 성적이 부진하거나 가정의 지원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보상교육’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은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교육의 공공성을 되찾는 일이 우선”이라며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사회, 초·중·고등 교육과정을 왜곡하는 대학입시, 객관적 공정성을 이유로 한 국가단위 시험, 최대한 학생들의 서열을 구분하려는 학교 내 평가 등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교육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이다. 지금의 삶이 차별적이거나 불평등하다면, 사회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다음 세대에는 차별과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해 나가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교육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사회를 민주적이거나 또는 공동체적으로 통합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심한 위기에 처해있다. 교육으로 불평등을 극복하기는 커녕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교육에는 진통제와 같은 처방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치료는 대학서열체제에 관한 진단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교육은 다음 세상을 향한 준비이다. 현재의 삶이 불평등하다면 사회는 모두에게 차별 없는 교육기회를 제공하여 다음세대의 통합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하며, 국민 모두의 관심이 절실할 때이다.

 글/ 박경미 사진/ 최경훈 기자

박경미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