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폭력시위를 위해 쓰는 것인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신분 확인이 어렵도록 위장하는 행위 또는 신분 확인을 방해하는 기물을 소지하여 참가하거나 참가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집회 및 시위 시 얼굴에 복면 또는 마스크를 착용하여 신분확인이 어려운 경우 참가자가 과격한 폭력행위를 했을 때 검거나 증거 수집이 어렵고, 또한 이를 악용하여 시위가 더욱 과격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의원들이 법안을 제안한 이유다. 실제로 지난 해 10월 민주당 이상열 의원 외 13명의 국회의원들은 “건전한 시위문화를 정착시키고 과격한 폭력시위를 예방하기 위해 집회, 시위 참가자들의 신분 위장을 금지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이 개정안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로 회부돼 안건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의원들의 주장하는 개정안 명분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익명성이 개인적 책임과 도덕적 의식이라는 제어장치를 풀어 더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만드니, 맨 얼굴을 드러내게 해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지난 해 일부 폭력시위자들의 모습은 상당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이 개정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안이 수많은 인권단체와 상당수의 전문가들로부터 ‘위험한 법안’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인권전문가들은 이 개정안에 대해 아무리 봐도 법의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한다. 실례를 들어 마스크에 ‘X’자를 쓴 침묵시위 참가자는 어쩔 것인가. 취지에 동조해 시위엔 참여했지만 혹 가족, 친지에게 걱정 끼칠까 봐 얼굴을 가린 경우는 어떤가. 또, 황사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목도리를 두르는 것은? 또, 성매매 여성이나 동성애자들처럼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맨얼굴로 집회에 참석하라고 말할 것인가?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마스크와 목도리 등의 복면은 폭력시위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인권단체, 복면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 철회 촉구

집시법 개정안에 대한 인권단체의 불복종 운동도 본격화됐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회원들은 지난 1월 8일 오전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참여정부 들어 집회·시위의 자유가 오히려 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복면금지 개악안을 철회하고 집시법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국회와 경찰에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마스크와 목도리, 동물 가면 등의 소품으로 얼굴을 가리고 집회에 참가, 집시법 개정안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과 국회의 발상은 집회와 시위를 범죄로 예단하는 기본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라면서 “허가제와 다름 아니게 변질된 집시법 자체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복면처벌 운운하는 주장은 우리나라 경찰과 국회가 코미디 수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경찰과 국회의 복면금지 요구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두발, 미니스커트 단속과 복면금지 조항이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이들은 경찰과 국회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복면금지조항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 또 다른 인권침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권활동가들은 굳이 복면금지 조항이 아니어도 집시법에는 이미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소들이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로 경찰의 ‘집회금지통고’를 들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현재 집회, 시위는 신고제라고 하지만 실제론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집회불허통고를 할 수 있고 경찰의 불허에도 집회를 하면 불법이 된다”면서 “현행 집시법에 포함된 위헌적 요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런 법안이 나온 것은 아이러니컬하다”며 집시법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우리들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의 양보할 수 없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반인권 악법이 되어버린 집시법 불복종 운동을 진행할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법안이 상정된 이 시기에 오히려 집회 시위 자유에 관한 전사회적 공론화, 집시법 재검토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균형을 잃으면 명분까지 잃기 십상이다. 얼핏 봐도 수많은 문제점이 존재하는 집시법 개정안. 물론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법을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아니 설사 나온다 하더라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고민해야하는 것이 국민의 손으로 뽑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때문에 융통성을 잃지 않는 주관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국가의 기본 이념에 반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폭력시위를 근절할  수 있는 그런 ‘집시법 개정안’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글/안주영 기자 자료제공/인권단체연석회의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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