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체험_수제초콜렛만들기

연인들의 날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온다. 애인과의 특별한 하루를 위해 혈안이 된 여심을 공략하는 초콜릿 상품들이 길거리에 차고도 넘치는 바로 그날. 제과업계의 속보이는 대목잡기 열풍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업계상술에 가뿐히 속아주는 연인들이 러시를 이루는 그날!
이날만큼은 껑충 뛰어오른 가격도, 발에 체이는 인파도 너그러이 용서되지만 한 가지, 여심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는 난제가 있으니, 바로 모처럼의 초콜릿 선물이 커플마다 비슷비슷한 ‘기성품’이라는 사실. 둘만의 특별한 날을 기획하는 이들에겐 조금 흥 떨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센스 있는 여성들은 일치감치 수제초콜릿, 그것도 기왕이면 매장에서 사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만든 DIY(do-it-yourself. 비용절감과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소비자들이 반가공 상태의 재료를 이용해 손수 만든다)초콜릿으로 눈을 돌리니, 이달 기자체험은 그녀들의 센스 따라 개성만점 정성듬뿍 ‘나만의 초콜릿’ 만들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포인트는 ‘집에서도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초간편 초콜릿이어야 한다는 것. 그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초콜레이터 김윤숙 씨의 가정집을 찾았다.

맛·멋·향에 효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콜릿이 식생활에 보편적으로 자리하기보다는 선물용에 가깝다. 가끔씩 군것질로, 혹은 술안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일 년 매출의 8,90%는 1월부터 3월, 이 석 달에 집중되니 업계로선 사활을 걸 대목시즌이 바로 요즘이다.
“딱 좋은 시즌에 오셨네요. 발렌타인데이를 떠나 요즘 같은 날씨가 수제초콜릿 만들기에는 제격이거든요. 특히 여름에는 눅진한 실내온도 탓에 집에서 만들기는 무리가 있어요. 만들기가 무섭게 녹거든요."
달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분인데. 딱 제 때에 찾아왔단 말인가. 하하하.
“초콜릿은 예쁜 모양만큼이나 효능도 다양해요. 카페인 성분은 우울한 기분을 띄워주고 당분은 피로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만복감을 주어 과식을 방지하죠. 또 초콜릿의 카카오향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높이는 효능이 있어 아이들 간식에도 좋아요. 그 밖에도 초콜릿에는 이뇨작용을 돕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등 좋은 성분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요.”
선생님의 초콜릿 예찬이 끝이 없다. 하긴 악마의 유혹이라 불릴 정도로 강렬한 초콜릿의 부드러움과 풍부한 미감은 쉬이 빠져나오기 힘든 ‘덫’이 아니던가. 더구나 여성에게 말이다.
오늘 만들 초콜릿은 ‘오렌지초코’와 이탈리아어로 견과류라는 뜻의 ‘쟌두야’ 두 가지.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들은 그야말로 초 간단했다.
“수제초콜릿은 기존의 초콜릿을 녹인 것에 몇몇 재료들을 첨부하여 색다른 맛과 향, 형태와 질감을 만들어내는 거니까 어려울 게 없어요. 모든 과정은 집에서 만들기 쉬운 방향으로, 도구도 방법도 모두 ‘가정적'으로 만들어 볼 거예요.”

재료들. 재료상에서 구매하면 저렴하게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초콜릿만들기에 필요한 저울과 계량컵, 온도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으로 치고 요리의 기본인 계량은 얼추 눈짐작으로 대신했다. ‘쟌두야’는 밥공기를 기준으로 다크초콜릿(코인형태가 녹이기에 수월하다) 2컵, 생크림 1/2컵, 땅콩이나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 각종 견과류(슬라이스 된 구운 것)와 건포도 조금씩이면 된다. ‘오렌지초코’의 경우 다크초콜릿 1과1/2컵, 생크림 1/2컵, 트러플섹(오렌지술. 마트에서 만원 안짝으로 살 수 있다) 한 종지 분량, 오렌지껍질 갈은 것 약간(2숟갈 정도. 표면의 주황색 부분만 간다)이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중요체크! 초콜릿은 온도·물·냄새에 민감해
먼저 쟌두야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딱딱한 초콜릿을 걸쭉하게 녹이는 것. 본 건 있어서 큼직한 냄비에 물을 붓고 중탕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발에 초콜릿을 넣어 전자레인지로 가열한다는 소리에 조금 의아했다.
“체크포인트 원. 초콜릿은 온도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그 온도를 맞추는 것은 몹시 까다로워요. 특히 초보자들이 가장 실수를 많이 하는데, 조금만 가열을 세게 해도 초콜릿이 타버려서 망치기 일쑤죠. 차라리 이렇게 사발에 넣어서 30초씩 조율해가며 주걱으로 저어주는 게 초보자에겐 쉬운 방법이에요. 두세 차례 반복하면 금방 걸쭉해지거든요."

초콜렛에 견과류를 살살 섞어준다

전자레인지 가열시 주의할 점은 육안으로 초콜릿 형체가 남아있다 하더라도 일단 꺼내 주걱으로 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형태가 죽이 될 때까지 가열할 작정으로 오래 돌렸다가는 영락없이 일부분이 타버리기 때문이다. 다는 것. 안 녹은 듯 보여도 주걱으로 저으면 금세  녹아 없어지니 틈틈이 체크해주는 주의가 필요하다.
체크포인트 투. 초콜릿은 물과 섞이면 절대 안 된다. 초콜릿 속에 있는 카카오버터라는 성분이 물과 섞이지 않기 때문. 초보자에게 중탕이 아닌 전자레인지 활용법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탕을 하다 자칫 초콜릿에 물이 튀어 들어가면 일일이 숟가락으로 떠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물 묻은 수저로는 절대 고추장을 푸지 않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초콜릿을 가열하고 저을 때 역시 주의사항이 있다. 초콜릿 가열은 50도(손가락으로 찍어 아주 뜨겁지 않은 정도)를 넘지 않게, 또 저을 때는 많이 저을수록 부드러워지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 저으면 기포가 발생해 세균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감안해 적당히 저어준다.
초콜릿이 일단 다 녹으면 새끼손가락을 넣어 '따땃하다'고 느낄 정도까지 다시 식혀야 한다. 여기에 데운 생크림(이 역시 전자레인지로 1분 정도 따뜻하게 데우는데, 넘치기 쉬우니 잘 지켜봐야 한다)을 넣어 한데 섞는다. 섞을 때에는 ‘미친 듯이' 재빠르게 손을 놀려야 한다. 완충제 역할을 하는 생크림 역시 ‘이물질’이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카카오버터성분과 교합하기 위해서는 후다닥 섞지 않으면 안 된다. 마구 저어대니 생크림과 초코가 섞여 더 진한색의 걸쭉한 액체덩어리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여기에 견과류를 넣어 가볍게 저어주면 95% 완성이다.

잔두야 완성~

다음부터가 가정에서 만들기에는 약간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원통의 아크릴판 케이스에 부어 굳혀야 하는데 마땅한 도구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주방의 도구를 이용해 손쉬운 방법을 고안한 끝에 김밥말이용 발 위에 은박지를 깔고 위의 내용물을 부었다. 옆으로 새지 않게 은박지로 잘 막아가며 겨우겨우 김밥모양으로 초콜릿을 쌌다. 이것을 냉장고에 넣어 1시간 정도 굳혀주면 쟌두야 완성이다(요즘 같은 날씨엔 베란다에 내 놓아도 된다).
여기서 체크포인트 쓰리. 냉장고에 넣을 시 주의할 점이 있는데, 초콜릿은 냄새를 흡수하기 때문에 자칫 밀봉하지 않을 경우 냉장고 속 음식물 냄새가 고대로 배고 만다. 기껏 만든 초콜릿에서 김치냄새가 나면 얼마나 낭패인가. 은박지에 쌌지만 랩으로 한 번 더 싸주는 센스가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이걸 꺼내 김밥 썰듯 송송 썰어주면 단면에 견과류가 쏙쏙 박힌 예쁜 쟌두야가 탄생하는 것이다(지면상 하단을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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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초코 만드는 법

초코 덩어리를 파우더 위에서 살살 굴려준다. 손의 온도 때문에 녹지 않게 주의~~

오렌지초코를 만드는 것도 비슷하다. 쟌두야처럼 초콜릿과 생크림을 섞은 것에 오렌지 껍질과 트러플섹(없으면 오렌지주스도 상관없다. 포인트는 향이다)의 혼합물을 넣어 고대로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는다. 이 경우 짤주머니(고깔 모양의 비닐주머니 끝을 살짝 잘라내 모양을 짜내는 도구)에 넣어 짜내야 하니 쟌두야처럼 딱딱하게 굳히지 말고 제법 걸쭉할 때 꺼내도록 한다. 이것을 짤주머니에 넣고 쟁반 위에 취향대로 모양을 내 상온에서 살짝 굳힌다. 초콜릿 표면의 물기가 가시면 카카오파우더 위에서 살짝 굴려주면 끝. 뽀송뽀송한 카카오파우더를 묻힌 오렌지초코를 입에 넣으면 달콤쌉싸름한 초코와 상큼한 오렌지향이 어우러지면서 깔끔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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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따라 개성따라 맛도 모양도 다양하게!
"굳히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만드는 법은 참 간단하죠? 밖에서 사면 못해도 2,3만원은 줘야 하지만 이렇게 조금만 응용하면 정성이 듬뿍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이 가능해요. 입맛에 따라 내용물로 쿠키나 콘프레이크를 넣어도 좋고, 카카오파우더 대신 녹차가루를 뿌려도 되고요."
장장 몇 시간에 걸쳐 초콜릿을 만들었으니 이제 그 남다른 식감을 즐길 때. 한입 크기로 듬직하게 썰어놓은 쟌두야가 꼭 초콜릿으로 만든 순대 같기도 하고 김밥 같기도 했다. 견과류가 가장 많이 박힌 조각을 골라 입안에 넣었다. 생크림을 넣어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다크초콜릿의 진한 감미로움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거기에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씹히는 재미가 한데 어우러져 색다른 초콜릿별미를 맛본 기분. 두세 개만 먹어도 벌써 배가 부르고 열량도 높아 한 끼 간편한 식사 대신이나 청소년 간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넘치는 흡족감에 예서 만족하려는데, 선생님이 박스 안에서 선물용 포장지를 꺼내왔다. 그렇다. 여기서 끝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선물용’ 초콜릿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포장지가 제법 전문적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서부터 개별포장이 가능한 비닐케이스들이 구색만 잘 갖추면 잘만 포장해 내다 팔아도 될 정도다. 이런 재료들을 다 어디서 구했으려나?
“방산시장에 가면 다 있어요. 오늘은 그냥 주방에 있는 것으로 대충 만들었지만, 보다 제대로 갖춘 모양을 만들고 싶으면 찍어내는 틀이나 판형도 다양하게 나와 있어요. 한번 가서 기본 재료들만 사 놓으면, 나중에는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남는 거죠.”
투명 컵에 초콜릿을 담고 비닐을 씌워 빨간 리본으로 장식하고 나니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초콜릿선물 완성이다. 선생님, 이거 팔아도 되겠어요!
팔기도 하지만 김윤숙 선생님은 이렇게 만든 초콜릿을 이맘때쯤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보내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보통 시설에 보내지는 물품들을 보면 초콜릿은 드물잖아요. 더구나 선물용 초콜릿은 자주 못 받아볼 텐데, 이렇게 손수 만든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게 참 보람 있어요. 만드는 게 재미있어 봉사한다는 생각도 안 들고 즐겁게 일해요."
본업인 의류머천다이저 업무에서 벗어나 이렇게 초콜릿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생활의 활력을 되찾게 된다는 윤숙 씨. 그 역시 초콜릿이 발산하는 열량의 힘이 아닐까 싶다.

애인이 없으면 뭐 어떠랴. 남자친구가 없으면 오빠에게, 오빠가 없으면 아빠나 삼촌에게 선물해도 기분 좋을 초콜릿이 아니던가. 연인에게 혹은 가족에게 전하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초콜릿’은 작지만 주고받는 사람 모두에게 훨씬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눈을 감고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어보자. 그 진득한 씁쓸함이 달콤함으로 바뀌는 순간, 속에서 불끈 기운이 솟아나며 초콜릿의 구호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아자!’ 하고 외치는 에너지의 힘찬 울림이.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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