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또 한 번 심술을 부린 1월의 어느 날, 릴레이복지사 2월의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전형적인 산촌을 연상시키는 여성 부랑인보호시설, 영보자애원이 그의 일터였다. 아니 그의 말대로 하자면 ‘삶터’였다.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였다는 자활사업장 까페 쿰(KOUM)에서 진행된 이 날의 인터뷰는 요즘 유행하는 ‘완소’(인터넷 용어로 ‘완전 소중한’의 줄임말)한 경험이었다. 열혈복지사가 풀어놓는 열정적 삶의 이야기에 꽁꽁 얼어버렸던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카푸치노 커피와 달콤한 케익이 더해져 즐거웠던 그 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직업≠사회복지사, 나=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가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지연 실장은 어려서부터 사회복지사가 되길 꿈꿨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사회복지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었는데도 초등학교 때 꿈이 사회복지사였으니 확실히 꿈을 이룬 셈이었다.

“저도 몰랐는데 초등학교 은사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장래희망을 ‘사회사업가’로 적었었다고요. 그때만 해도 ‘사회복지’대신 ‘사회사업’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었죠.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사회사업’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마 어릴 적부터 막연히 누군가를 돕고 싶었나 봐요.”

남 돕기를 좋아하는 것도 천성(天性)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처럼 그 역시도 타고난 천성을 버리지 못했다. 길 가다가도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모른 척 하지 못해 경찰서를 들락거린 게 수십 번이었다. 그 땐 경찰서에 데려다 주는 게 그들을 돕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허나 배우고 나서야 그들을 경찰서에 데려다줬던 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알았다고. 특히 생각난다는 한 소녀 얘기를 하면서 그는 연신 눈가를 붉혔다.

“한 겨울이었어요. 청량리 어디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얇은 스웨터 차림의 여자아이가 울며 서 있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고향친구들과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잘못 해 청량리역으로 왔다는 거였어요. 알고 보니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상태더라고요. 가까이 사는 친구를 시켜 외투하나를 가져오게 해 입히고 청량리 경찰서에 데려다줬어요. 그 땐 그게 최선인 줄 알았죠. 그때 만약 제가 지금의 지식이 있었다면 그 아일 언제 나와야할지도 모르는 경찰서에 맡겨 두진 않았겠죠. 아동보호소 같은 곳도 있었을 텐데...아직도 그 아이의 울던 눈망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와요. 항상 짐처럼 남아있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아동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동이나 청소년시기의 아이들이 어떤 결핍된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계기를 마련해주는 사람이 사회복지사라는 확신도 생겼다. 그래서 그런 사회복지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힘든 상황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성공하거나 승진하지 않아도 내 삶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업으로서의 사회복지사가 아니고 나란 사람이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면 그 이상으로 좋을 게 없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게 제 신념이 되었어요.”

수 없이 만나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자

20년 가까운 사회복자사로서의 삶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았다. 아이 셋을 가진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다.

“어려웠던 때도 많았죠. 조직 내에서의 갈등도 경험해 봤고,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주저앉고 싶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이를 악물었어요. 기필코 이겨내겠다는 의지로 덤볐죠. 그게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일이자 제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오죽하면 그는 둘째 아이 출산 바로 전 날까지도 기관에서 일을 했다.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론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만날수록 함께 성장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을 준다고 해서 신은 아니잖아요.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성장하는 사회복지사에요. 저만 해도 인생을 살면서 맞는 다양한 변화와 어려움들, 그것들이 많아질수록 클라이언트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어요. 대학졸업하고는 청소년들과 공감이 됐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들의 삶에 눈이 갔죠. 또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에 공감하게 되었죠.”

이 때문에 그는 사회복지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자신의 삶에 다양한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경험하라고 조언한다. 더 많이 실패해보고 더 많이 좌절해봐야 대상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절의 순간이 오더라도 인간과 인간의 소통, 사랑의 힘을 믿는다면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제 승진과 명성 등의 개인적인 성공보다는 필드에서 뛰는 사회복지사로, 여러 대상자와 필드에서 호흡하는 사회복지사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책상에 앉아서 기획업무를 하는 사회복지사보다는 사랑의 자원을 옮겨 담을 수 있는 생활복지사로서의 생활을 꿈꿔요. 물론 더 힘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더 행복한 사회복지사가 될 것 같아요. 더불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함께 성장할 수 있겠죠.”

구도자의 삶. 그가 추구하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라 했다. ‘사회복지’를 직업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찰의 기회를 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숭고한 종교인을 연상케 했다.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소통을 믿는 김지연 복지사. 그가 이 사회의 행복한 사회복지사로 여러 대상자들 곁에, 그리고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길 기도해 본다.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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