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밖으로_프리허그

주말 나들이 인파가 북적이는 인사동길 한복판. 관광객과 쇼핑객들로 바글거리는 틈새 속에 앳된 여학생 하나가 피켓을 들고 섰다. 피켓에는 ‘free hugs’라는 글귀가 앙증맞은 글씨로 적혀있다. 직역하자면 ‘공짜 포옹’ 정도지만 뒷면에 적힌 ‘당신의 지친 마음을 안아드립니다’라는 글귀가 그 의미를 말해 준다.
“아~ 이거 나 알아, TV에서 봤어” 지나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며 웃음기어린 시선을 보낸다. 여기저기서 찰칵찰칵 카메라폰도 터진다. 뜻있는 일 한다며 다가와 따뜻한 음료를 건네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다가와 안기는 숫자는 적다.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안기기가 쉽지는 않나보다. 구경꾼들이야 어떻든 앳된 얼굴에는 다부진 미소가 역력하다. 이만한 일쯤이야 예상하고 있었던지 높이 쳐든 두 팔이 꼿꼿하다. 언제든지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 작년 하반기부터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프리허그, 일명 포옹하기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36.5도의 체온이 전하는 포옹의 힘
미국인 헌터에 의해 2001년 최초로 시작된 프리허그운동은 이미 젊은층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지구촌캠페인이다. 어머니의 죽음, 더 정확하게는 어머니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망의 정신에서 ‘사람 모두가 다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은 헌터가 이를 알리기 위해 거리포옹을 나누면서 시작된 운동으로, 2004년 호주청년 후안 만에 의해 동영상으로 유포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동영상 속에서 후안 만은 프리허그 피켓 하나만을 들고 시드니거리에 섰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기만 할 뿐 그를 거들떠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거리 운동을 나선지 수 시간 만에 드디어 한 여성이 아무 질문 없이 두 팔을 한껏 벌려 청년을 안았고, 이 최초의 포옹을 시작으로 하나 둘 가슴 뭉클한 포옹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최고의 터치요 무언의 감동으로서 보는 이들을 매료시켰고, 동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자발적인 프리허거가 되었다. 지구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사랑의 터치가 기적처럼 전세계에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지난해 10월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난 한국의 프리허그운동 역시 이 후안 만의 유투브 동영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국내에 소개된 지 일주일 만에 공식 사이트가 생겨나고 수천 회원을 거느린 카페들이 줄지어 만들어질 정도로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일부에선 얼마 안가 식어버릴 젊은층의 치기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대중매체의 마케팅 소재로도 활용됐을 만큼 프리허그 열풍은 신선했다.
한국 프리허그 공식 사이트인 프리허그코리아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300여명의 프리허거들이 집결해 캠페인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운동본부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곳의 안희철 대표는 “프리허그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포옹을 통해 서로가 변화하고 힘을 얻어가는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타인과 나누는 포옹을 통해 프리허거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부유해 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리허그코리아의 실천후기게시판에는 거리포옹을 나누고 온 경험자들의 감동체험기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몇 시간 만에 첫 포옹을 나누던 순간의 벅찬 감동, 세대차를 극복하고 너그럽게 안아주신 할머니할아버지의 따스하던 품, 추운 날씨에 거리에 서 있을 자식을 걱정하며 몰래 지켜보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쳐 울던 일…. 그중에서도 희귀병으로 전신이 성치 못한 자신의 아이를 안아줄 있느냐 물었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사랑과 위로에 주리고 목마른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이 모두가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간 프리허거들에게는 값진 체험인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닌 더 큰 하나
이렇듯 진정한 포옹은 무료이면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영혼의 선물이다. 36.5도의 체온을 나누는 이 아름다운 의식 속에는 정겨움 이상의 놀라운 힘이 숨어 있다. 1995년 조산아로 태어난 쌍둥이자매의 이야기는 포옹의 힘을 얘기할 때 종종 언급되는 이야기로, 태어날 당시 상태가 악화됐던 동생을 건강한 언니와 한 인큐베이터 안에 넣자 언니의 체온을 나눠받은 동생의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유명한 실화이다. 실제 미국 마이애미의대 접촉연구소는 저체중으로 태어난 미숙아들에게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지를 해주자 체중이 40% 이상 증가했고 마사지를 받지 않은 아이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퇴원했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체접촉이 인간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의 사랑으로 둘이 아닌 더 큰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프리허그운동이 추구하는 진짜 목표다.

프리허그캠페인 역시 포옹을 나누는 주체 모두가 서로 좋은 영향을 나눠 받는다. 그것은  먼저 다가가 안을 수 있는 포용의 자세일 수도 있고 타인으로부터 받아가는 무언의 위로일 수도,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일 수도 있다. 결국 안는 사람과 안기는 사람 모두 포옹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 하나 더하기 하나의 사랑으로 둘이 아닌 진짜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프리허그운동이 추구하는 진짜 목표이다.  
물론 한국에서의 프리허그 운동이 안고 있는 숙제도 없지 않다. 그중 하나가 10대와 20대에 편향된 참여도와 그로 인한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다. 안 대표 역시 캠페인 진행의 애로사항으로 ‘두터운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과 함께 ‘운동의 지속성’을 들었다.
“한국의 프리허그가 UCC를 통해 시작되었고 인터넷이란 기반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10대와 20대의 참여가 가장 두드러지지만, 점차 30대와 중장년층까지 그 기반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놀이쯤으로 치부한 초창기 인식에서 벗어나 점차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는 반증이지만 앞으로 3·40대와 그 이상의 세대까지 공감을 이끌어 내야할 필요를 많이 느낍니다. 그들이 잡아주는 무게중심이 캠페인에 한층 힘이 될 테니까요.”
운동의 지속성 역시 그렇다. 처음 사이트를 운영할 당시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을 지적하던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어느덧 1년을 내다볼 수 있는 운동으로 성장했지만, 꾸준히 밀고나갈 지속력만큼은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리허그코리아는 가정 안에서부터 시작하는 ‘예스터치캠페인(Yes Touch)'을 벌이고 있다. 프리허그를 모태로 한 가족 간 포옹캠페인으로, 부모와 아이의 스킨십을 통해 용서와 화해, 사랑을 배우는 운동이다. 
“오늘날 터치의 부재가 가정 내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 가족이면서도 서로 반목하고 낯설어 하는 우리시대 가족의 서먹함은 서로가 살갑게 안아주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집안에서의 터치를 통해 가정과 사회의 회복을 기원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가정에서, 교우관계에서, 기타 몸담은 사회조직에서 가까운 그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습니다. 프리허그의 참된 정신은 누가 끝까지, 그리고 꾸준히 포옹을 실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실천하세요, 삶을 바꾸는 터치 터치 터치!

 프리허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항간에서는 프리허그가 대중매체를 타고 급속도로 번지자 상업적 변질이나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스타와 포옹하는 것을 ‘프리허그’라 명명하며 일회성 이벤트를 벌이는 몇몇 이익집단들의 가벼운 술수로 인해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의가 속되게 치부되기도 했다. 포옹이 아직은 한국정서에 낯선 문화라는 회의적인 시선과 맞닥뜨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프리허그는 길어야 2,3개월 이라는 억측을 뒤엎고 전국 각지에서 여전히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은 채 풀뿌리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운동을 펼치는 프리허거들은 포옹이 유행이 아님을, 사랑과 감동이 유행이 될 수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프리허그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포옹문화 정착이 아닙니다. 인사이든 악수이든 방법에 관계없이 관용과 이해, 사랑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터치면 됩니다. 그저 이웃을 안아주기 전에 가족을 안아주고 가족을 안아주기 전에 자기 자신을 안아주세요. 마음이 담긴 터치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거꾸로 자신을 안고 가족을 안고 나아가 이웃을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프리허그 운동은 잘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한번만 타인 앞에 서보시기 바랍니다. 안아주러 나가신 여러분을 도리어 누군가 안아주며 힘을 줄 겁니다.”

 

글/김혜경 기자  사진제공/프리허그코리아(www.freehugskorea.org)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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