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하사의 죽음, 누가 만든 비극인가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을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姑 윤장호 하사(27)가 바로 그 말에 부합하는 청년이었다.
윤 하사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뉴욕으로 홀로 유학을 갔다. 고교 때 클린턴대통령 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재였고 인디애나대 국제경영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스스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남침례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 군면제자에 해당됐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떳떳한 국민이 되기 위해 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했다.
훈련소에 입소해서도 그는 모두가 꺼려하는 특전사령부 최정예병 근무를 자원했다. 그리고 제대를 9개월 앞둔 지난해 9월, 그는 또 한번 큰 결심을 했다. 언제 어디서 테러가 발생할지,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원한 것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윤 하사의 부모 역시 파병을 반대했지만 그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병역의 의무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그는 보기 드문 청년이었다.

지난 3월 5일,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이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렸다. 진눈깨비와 강풍 속에서 영결식장을 찾은 군 고 장성들과 정ㆍ관계 인사들이 비통한 마음으로 고인의 넋을 기렸다.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고 영결식은 애통한 눈물로 치러졌다. 그의 미니홈피에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윤 하사의 미니홈피에는 “갔다오면 제대” “라덴이형 잡으러 간다”라는 글귀만이 조문객을 맞이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라를 사랑했던 27살 젊은 청년의 유해는 화장을 거쳐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 한 목소리

추모집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한목소리로 파병반대를 외치고 있다.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이 있던 날 저녁, 그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30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최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영하 10도의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의 시민단체회원, 대학생,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윤 하사에 대한 추모와 함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우리 군대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호소문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부시 정부와 이에 편승해 군대를 파병한 참여정부에게 윤 하사 죽음의 책임이 있다”며 “미국은 명분 없는 전쟁을 그만두어야 하며 정부도 한국군 파병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것이 윤 하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평화여성회와 한국교회인권센터, 미국반전평화연대, 평화재향군인회 등의 단체 대표들도 추모사를 통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30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파병반대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추모식에는 200여 명의 시민단체 회원,대학생,시민들이 참석해 윤장호 하사의 넋을 기리고 파병반대를 주장했다.

  평화여성회 김정수 대표는 추모사에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침묵 속에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과연 ‘조용한 추모가 진정 그를 위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다”면서 “윤 하사의 죽음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장수 국방부장관이 보여주는 ‘책임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면서 조용히 있을 수만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청년들을 위험천만한 땅에 보내는 것이 대체 어떠한 국익을 위해서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회인권센터의 최재봉 목사는 “성경에 ‘선량한 싸움’이 있는데, 인품과 신앙심을 볼 때 윤 하사는 선량한 싸움을 해 왔던 사람이지만 미국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것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더러운 싸움’”이라면서 “테러와의 전쟁, 아프간 등의 민심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 정부는 파병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의 민심이 아니라 미국의 민심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며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과 시민들도 한 목소리로 ‘죽음을 애도하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제 2의 윤장호’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윤 하사 죽음의 비극은 평화주의를 추구한다는 헌법 정신을 위반하고 침략전쟁에 파병을 한 정부의 책임”이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왜 남의 침략전쟁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냐”고 강조했다.
항공대 박재웅(23·우주과 4학년)씨는 “국익에 실질적인 도움도 없는 전쟁에서 우리의 젊은 청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며 “윤 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한 한국군들을 불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뒤 촛불을 들고 명동성당까지 1㎞ 가량 인도를 따라 거리행진을 벌이며 시민들에게 반전 메시지를 전달했다.

‘제 2의 윤장호’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윤 하사 사망소식이 전해진 지난 2월 28일에 간부 226명,사병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 부대 6진 1차 교대병력이 이라크로 떠났다.

  2월 27일 오후 2시 30분, 윤장호 하사는 귀국일을 한 달여 남겨 두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싸늘하게 식어갔다. 청춘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몇 해 전 정부와 정치권은 국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파병을 결정했었다. 그 명분에 따라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분쟁지역에 2,500여명의 우리 군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파병으로 우리의 ‘국익’이 보장되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더더구나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 ‘미국에게 잘 보이기’였다면 그 조차도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은 위험지역에서의 한국군 참여확대를 당연한 듯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본전도 못 찾을 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윤 하사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 숭고하지만, 사실상 미국의 패권주의 전쟁에 휩쓸려 들러리섰던 한국군 파견에서 기인한 예상된 희생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점령하다시피 한 미국에 대해 영국과 서구 동맹국들마저도 군대를 감축하거나 철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유독 우리군만 주둔을 계속하고 있다. 힘없는 나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더라도 지금의 파병은 과잉 충성으로 보인다.

제2의 윤장호 하사가 나오지 않는 길은 위험천만한 이국땅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안전하고 조속하게 철수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 편드는 낯선 적’으로 취급될 게 뻔한 레바논 땅에까지 젊은이들을 보내려는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국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윤 하사가 사망한 날 이라크 자이툰 부대로 떠나는 아들과 남편,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눈물짓는 노모와 부인, 그리고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파병군인들에게는 똑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글/안주영 기자 사진제공/파병반대국민행동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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