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린이가 위험한 나라?

 하교 길에 납치당한 소년은 유괴 일주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고,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소녀는 ‘과자를 주겠다’는 꾐에 빠져 성폭행을 당한 뒤 땅 속에 묻혀 졌다. 연일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아동 관련 범죄들은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을 분노케 했다. 여기저기서 ‘세상 무서워서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못 하겠다’는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아동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흉악범죄뿐 만이 아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 친구와 함께 뛰노는 놀이터,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길거리에도 여전히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한 해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아동의 숫자가 1000여명을 넘어선 것만 보더라도 우리의 환경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얼마 전 경남 거제에서는 등교 중인 초등학생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 내 제한속도인 30㎞ 이하로만 차를 몰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또 지난달에는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던 초등학생이 총알에 눈을 맞아 실명한 사건이 있었고,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고장 난 시소에 손가락을 넣다가 절단된 사고도 발생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사고는 제대로 된 안전진단이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였다는 점이다.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김성천 교수는 “어린이 안전사고는 예방만 철저히 한다면 절반 이상은 줄일 수 있다. 가정에서부터 위험요소를 하나씩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동이 많아진 만큼 정부차원의 획기적인 어린이 안전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어린이위험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동안전사고로 인한 사회적 손실 크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작년 한 해 동안 안전사고로 사망한 18세 미만 아동의 사회적 손실비용이 2조 136억원이며, 이는 아동 1인당 약 16억 8000만원의 노동력 손실이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동 안전사고로 인해 쓰이는 직접의료비용은 연간 950억원으로, 이 중 남아가 615억원, 여아의 경우 330억원이 지출됐다. 남아가 여아에 비해 의료비용이 높은 것은 응급실 방문, 입원, 사망이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15~17세에서는 남자가 3배 정도 많이 다치며, 여자에 비해 약 4배가량 많이 사망했다. 또, 6세 이하에서는 추락사고가 가장 많았고, 7세 이상에서는 교통사고 비율이 높았다. 사고 장소 역시 3세 이전에는 가정에서, 이후에는 도로 등 집 밖에서 많이 발생했다.

 이밖에도 도시지역 아동이 안전사고 사망의 80.9%를 차지해, 농촌지역에 비해 위험에 더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안전사고가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 경남, 경북, 전남, 충남 순이었다.

조사를 진행한 이화여대 의대 박혜숙 교수는 “안전사고로 인한 아동 손상은 사회·경제적 비용은 물론 저출산 사회의 소중한 인적자원 손실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면서 “ 정책만큼이나 아동안전사고에 대한 국민적인 경각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 미래의 주역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조사를 통해 성별, 지역별, 연령별에 따라 안전사고가 각기 다른 유형으로 발생했다”면서 “이것은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안전대책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과 상황에 맞는 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학교 내 안전사고도 갈수록 증가

  학교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증명하는 조사결과도 발표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 해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만도 모두 3만3834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2005년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교 내 안전사고 2만9955건에 비해 12.9%나 증가한 수치이다.

지난해 서울시내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교 내 안전사고도 4617건으로, 전년도의 4335건에 비해 6.5% 늘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안전사고 발생건수는 2004년 1171건, 2005년 1566건이었다. 이를 학년별로 보면 6학년이 533건(31.7%)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5학년 316건(18.8%), 4학년 270건(16.1%), 3학년 254건(15.1%) 등의 순이었다. 사고 원인별로 보면 교실 안팎의 시설물로 인한 사고가 26.3%인 442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운동기구·용품으로 인한 사고 25.7%(431건), 사람충돌 23.1%(388건), 놀이기구·용품으로 인한 사고 7.0%(118건) 등이었다.

사고 원인을 세부적으로 보면 운동기구 용품 중에는 축구와 야구 등 구기종목이 19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뜀틀(87건), 철봉(47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놀이기구 용품 중에서는 구름사다리와 미끄럼틀이 각각 37건과 24건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안전사고로 인한 상해내용을 보면 골절이 40.3%로 가장 많았고, 열상(찢어짐) 24.2%, 치아손상 21.0% 등의 순이었으며, 사망도 0.2%인 3명이나 됐다.

소비자보호원 손성락 팀장은 “사고가 빈발하는 서울시내 초등학교 내 안전사고 1681건을 분석한 결과 휴식시간(39.0%)이나 체육시간(28.1%) 때 사고발생률이 전체의 67.1%에 달했다”면서 “이 같은 결과는 학교 내 시설물이나 학습도구에도 예상치 못한 위험요인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도 더 이상 아이들에게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조사결과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설물과 안전보호 장치에 대한 철저한 기준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철저하고 안전한 기준을 마련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전달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학교 모두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고터’가 되고 있는 놀이터

어린이들이 놀 수 있도록 실외에 마련한 장소를 뜻하는 놀이터.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들만의 공간인 놀이터에서조차 각종 안전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는 놀이터에 대한 관리규정 및 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어린이 놀이터에서의 안전사고 역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주택건설 기준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5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돼 있다. 하지만 위생 및 시설등에 대한 관리규정이나 담당부서 등 관리 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어린이 놀이터의 83%가 바닥 안전 기준(두께 30 cm)을 지키지 않았고, 놀이 기구 63%가 부서져 있었다.

지난 해 한국생활안전연합이 발표한 ‘우리 나라 어린이 놀이터 안전 실태 및 당면 과제’에 따르면, 서울시 25 개구 아파트 안 어린이 놀이터 151곳 가운데 61%가 바닥이 비위생적이고, 놀이 기구의 72.7%가 표면이 녹슬거나 깨져 있어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놀이터를 이용하는 어린이 1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놀이터 안전사고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사고 시설물과 종류로는 각각 그네(28%)와 낙상(45%)이 가장 많았다.

윤선화 한국생활안전연합 공동 대표는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장소로 여겨져 왔던 놀이터가 이번 조사를 통해 심각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몇몇 놀이터의 경우 놀이기구 곳곳이 노후, 파손돼 있는가 하면 잘못된 설치로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서울의 한 놀이터는 피라미드 모양의 로프 놀이기구 곳곳에 피복이 벗겨져 철심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일부는 철심마저 끊어진 채 굵은 철사 10가닥이 날카롭게 돌출돼 있는 곳도 있었다. 아이들의 사고방지를 위해서라도 놀이터의 안전점검을 강화하고 체계화된 점검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부처 13곳에 아동안전 업무분산, 실효성 의심

우리나라의 아동안전사고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점은 아동안전 관련업무가 무려 13개 부처에 분산돼 있는데다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통계도 제각각이어서 혼란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 안전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장치가 부족하고 업무도 분산돼 대책이 체계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로 ‘교통·사회안전’은 행정자치·건설교통·여성·교육·경찰·소방방재청 등으로 업무가 나뉘어져 있다. ‘통학차량 문제’는 건교·교육·경찰청이, ‘익사사고’ 관련 업무는 복지·산자·소방방재청에서 맡고 있다. ‘화재·사고대책’역시 소방방재청과 국무조정실, 산자·교육·소보원·식약청·청소년위 등으로 분산돼 있고, ‘안전교육’도 교육·행자·복지·여성·소방방재청 등이 맡고 있다.

정부는 문제점 개선을 위해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아동안전권리팀이 설치돼 총괄업무를 관장하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아동정책조정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아동정책실무위원회’를 가동했다. 하지만 여건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설에 대한 안전기준이 미흡하고 점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규정에는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학교가 드물고, 실시되는 학교 역시 지도교사의 전문성 부족 등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더 큰 문제점은 어린이 사고관련 통계조차 없다는 점이다. 매년 전국에서 어린이 사고가 얼마나 발생하고, 이로 인해 몇 명이 숨지고 부상을 입는지 정확한 통계를 가진 기관이 없다. 어린이 사망통계는 매년 9월말 발표하는 통계청 통계를 활용하지만 이 자료만으로는 사망원인 통계 집계가 미흡하다. 또 경찰청에서는 어린이 교통사고를 종합하지만, 경찰에 접수되지 않거나 당사자간 합의로 처리한 교통사고는 포함되지 않는다. 사고가 난 뒤 3일이 지난 것은 교통사고로 집계하지 않는 맹점도 있다. 소방방재청에선 화재로 인한 사고와 119구조대 운영 등으로 사상자를 종합하지만 119를 이용하지 않으면 통계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관계자들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전대책 효율성 높이고 문제의식 심어줘야

정부는 2003년 어린이 안전종합대책을 통해 어린이 10만명당 안전사고 사망자 수를 매년 10%씩 낮춰,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에서 중위권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OECD 국가의 어린이 10만명 당 안전사고 사망자 수(1998~2000년)를 비교하면, 한국은 14.8명으로 스웨덴·영국 3.8명, 이탈리아 4.1명, 독일 5.0명, 일본 5.8명, 프랑스 6.5명, 호주 7.3명, 미국 10.2명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던 것이 어린이 안전종합대책 시행 4년째인 지난해에는 어린이 10만명 당 안전사고 사망자수가 7.95명으로 떨어졌다. 2002년 12.4명보다 40.6% 감소한 것이다. 정부는 올해까지 7.3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아동사고사망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게다가 사망률만 낮아졌을 뿐 사고율은 더 높아졌다.

그동안 정부는 갖가지 대책을 내놨다. 대표적인 것이 6세 이하 아동 사망사고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추락사 방지 대책이다. 정부는 2003년 주택법을 개정해 주택 난간의 설치 기준을 강화해 난간 높이를 기존(110㎝)보다 10㎝ 높였고, 난간 간살 간격은 5㎝(15㎝→10㎝) 좁게 만들었다. 교통사고 예방대책으로는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사업에 3년간 1600개소에 1356억원을 지원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6세 미만 어린이가 앞좌석에 탈 때는 보호장구 착용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어린이 보호포장 제도를 시행했고, 사고가 빈번한 비비탄총·레이져 장난감 등 18개 어린이 용품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처간 업무 협조 문제나 대책의 효율성 문제로 인해 ‘아동안전대책’의 효과는 미비했다.

이화여대 이명선 교수는 “여러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아동 안전사고는 남자와 여자, 청소년과 어린이,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만큼 통합대책보다는 구체적인 사안별로 세부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안전대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의 단일화를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동안전사고’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통해 국민적 인식개선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아동안전사고바로알기시민모임의 김선형 활동가는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안전사고가 심각한 것을 모두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를 혼자 두는 것도 범죄로 여긴다.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국민적 인식이 바로 서야 정부의 정책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부도 가만히 앉아서 인식개선을 바라기 보다는 적극적인 캠페인 활동을 통해 국민의 인식개선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안전사고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최고다. 주택가, 학교 앞, 놀이터 등 도무지 안전한 곳이 없다. 전국 5,000여 곳에 설치된 스쿨존 역시 유명무실하다. 이들 중 1,500곳은 아예 경계나 과속방지턱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똑같은 속도위반을 하더라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과실에 훨씬 더 엄격한 처벌을 가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세계경제 10위’라는 높아진 국가위상에 걸맞게 어린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가 없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어린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만이 어린이 한명이 귀한 우리나라에서 한 해 사망하는 1000여명의 어린이를 지키는 일이자 국가 기반이 되는 가정의 행복을 도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글/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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