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장애일 수도, 그렇지 않은 장애일 수도 있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고, 눈이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고, 말을  못하는 것만이 장애는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의지와 따로 노는 게으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욕심, 마음 깊은 곳의 교활함...우리의 마음을, 의지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장애’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선한 의지는 힘을 잃고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도 퇴화한다.

세인들은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위인들을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한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장애를 뛰어 넘었고 장애로부터 구속당하기보다 오히려 장애를 통해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번 호 릴레이복지사의 주인공인 박찬오 소장도 그러하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날들은 그에게 수많은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이제 ‘장애 덕분에 더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다

박찬오 소장은 척수신경기형 장애로 태어난 선천성장애인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장애로 인해 그는 유년시절부터 수없이 절망해야 했다. 초등학교로부터 입학거부를 당했고 특수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던 어린시절,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체념했다. 하지만 16살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무섭고 불안했어요. 이러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 난 어딘가에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TV를 통해 비춰지는 시설장애인처럼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건 싫었어요. 그게 결국 동기부여가 됐죠. 그 때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때마침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복지관 광고를 본 그는 서둘러 해당 복지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산을 배우고 싶으니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 사회복지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학력이 없기 때문에 전산을 배워봤자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는 결국 배우고 싶었던 전산을 포기하고 사회복지사가 추천한 목공예를 선택했다. 비록 원했던 공부는 아니었지만 ‘취직’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열심히 임했다. 드디어 자격을 이수한 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여전히 세상은 그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공예 기술로 취직하려니까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았어요. 목공예 공장이나 사무실은 대부분 지하실이나 외지에 있어 접근이 어려웠죠. 절망스러우면서도 갑자기 화가 나더라고요. ‘학력이 없어 전산을 배워도 취직이 안 되지만 목공예는 기술만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던 사회복지사가 미워졌어요. 그 때 알았죠. 복지관 프로그램은 절대 장애인의 인권과 욕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절망의 날들이 이어졌지만 그것도 결국엔 끝이 났다. 다행히 그가 또 다른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복지관에서 한신대 오길순 교수님과 친분을 쌓게 되었죠. 그 분도 장애가 있었는데 저와는 다른 삶을 살고 계셨어요. 결혼, 학벌, 직장… 모든 것이 저와는 달랐어요. 그때 ‘저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를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내린 답은 하나였어요. 바로 공부였죠.”

그는 그 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 그리고 5년 만에 검정고시는 물론 대학입시에도 합격했다. 그때 그가 가장 좋았던 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었다고.

“학력 란에 ‘무학’이라고 적는 게 항상 자존심 상하고 서글펐어요. 대학합격통지서를 받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그 때 알았어요.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요.”

장애인 중심의 복지사회 만들고파

그는 대학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야학을 진행했다. 다른 장애인들도 조금만 도와주면 자신처럼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학을 진행하면 할수록 장애인이 변하기 전에 먼저 사회가 변해야한다는 생각이 자리잡혔다.

“처음엔 장애인들도 공부해서 대학가고, 취직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때 생각했죠. 장애인이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요. 제가 정규교육을 못 받은 것도 결국은 사회의 문제잖아요.”

그의 이런 생각은 대학졸업 후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도 확고히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복지관은 장애인을 대상자로 여길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목공예를 배웠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을 할 수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이직을 결심한다.

“이직 후 본격적으로 자립생활운동을 하게 되었어요. 때론 시위를 하다가 연행되기도 하고, 지역장애인들을 일일이 만나 ‘권리요구’에 설명을 늘어놓기도 했죠. 분명한 것은 저의 노력이 많은 뜻있는 분들의 힘과 합쳐져 성과를 이뤄냈다는 거예요. 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것이 제겐 큰 영광이고 보람이죠. 장애인복지법이 명문화가 됐고 대부분의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깨우치게 됐으니 말이에요.”     

그는 이제 반듯한 센터를 짓고 싶다고 했다. 분명 하드웨어만 갖춘다는 비판도 있겠지만 그 하드웨어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과 공무원들이 센터를 ‘자조모임’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다.

“번듯한 건물과 참신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복지관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의 욕구를 잘 반영하다 보면 금세 장애인들의 호응을 얻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복지관도 변하겠죠. 행정편의적이고 안전우선적인 업무진행이나 장애인을 단순히 ‘대상자’로만 여기는 문화가 바뀌어서 모든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명의 장애인이자 사회복지사며 자립생활운동가인 박찬오 소장. 그는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장애를 가진 이들의 든든한 대변인이자 수호천사가 되어주고 있었다. 뜨거운 열정과 강한 신념을 가진 그가 있기에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는 장애인들도 마음만은 외로울 것 같지 않다. ‘자립생활운동가’로서 당당한 그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보며, 그로 인해 많은 장애인들이 가슴 한 켠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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