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방관의 기도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여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원한 물가에 나를 눕혀 주소서.
내 아픈 몸이 쉬도록 눕혀 주소서.

내 형제에게 이 말을 전해 주오.
화재는 완전히 진압 되었다고...

신이시여, 출동이 걸렸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할 때,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 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사슬의 한 부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 합니다.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
화염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하시고,
그에게 목소리를 주시어, 신이시여!
내가 듣게 하소서.

저희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신이시여! 내 차례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게 하시고,
불평하지 않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 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는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가 그의 내민 손을 잡게 하소서...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이 시는 2001년 홍제동 화제 때, 화제진압 중에 순직한 어느 소방관의 책상 위에 놓인 기도문이다. 오늘날 많은 소방관들의 지갑 속에 가족사진과 더불어 소중히 자리 잡고 있는 이 기도문은, 언제 어떤 최후를 맞을지 모르는 소방관들에게 매 순간 각오를 다지게 하는 귀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소방관의 기도를 따라 읽다 보면 새삼 자신을 던져 다른 이의 삶을 구하는 이들의 존재가 가슴 뜨겁게 다가온다. 명예로운 죽음은 복된 삶보다 값지다는 숭고한 살신성인의 정신. 보람과 피로, 자부심과 아쉬움이 교차할 이 열정의 직업에 진심어린 감사의 박수가 쏟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힘들고 굳은 일의 선봉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을 위해 치솟는 불길 속을 뛰어 들어가는 희생과 이타의 직업 소방관.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중부소방서(소장 박선권)를 찾았다.

순간의 긴장 속에 만반의 준비를
화창한 5월 어느 날 오전 9시. 중부소방서의 아침은 진즉에 시작됐다. 24시간 대기근무가 그렇듯 이들에게 낮밤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밤사이 출동을 나간 대원들은 지친 퇴근을 준비할 테고, 그 업무를 이어갈 누군가는 교대준비에 한창일 뿐. 그래서 이곳에는 언제나 활력과 피로가 공존한다.

올해 소방 경력 18년차의 문명주 소방장(47)은 교대 1시간 전 이미 출근도장을 찍고 개인장비를 체크했다. 곧 있을 소방훈련을 준비하는 그의 자세는 지난 18년의 시간처럼 성실하고 빈틈이 없다. 언제, 어떤 상태에서 비상벨이 울릴지 모르는 게 이 직업의 특성이니 항상 긴장 속에 대기해야 쏜살같이 뛰어나갈 수 있다. 매 순간의 긴장과 만반의 준비. 그것이 소방관이 갖춰야 할 필수사항이다.
“동절기에는 대여섯 건으로 늘지만 요즘 같을 땐 하루 보통 세 건 정도의 출동이 있습니다.  언제 출동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대기 중 수시로 화재진압훈련을 병행하고 있어요.”
지난밤에도 두 건의 출동이 있었다. 다행히 가정집에서 일어난 화재는 조기에 진압했고, 다른 한 건은 냄새제거 차 태운 귤껍질 연기를 이웃집에서 오인신고한 것이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여름엔 쓰레기소각이나 바퀴벌레 연막소동으로 인한 오인신고가 훨씬 잦아 전체 출동의 3,40%를 차지하고 심심찮게 장난전화도 걸려온다니 허탈함도 클 것 같다. 
서울 중구 무학동에 위치한 중부소방서의 관할지역은 을지로, 충무로, 회현, 명동, 남대문 등 도·소매시장이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의 중심지역. 재래시장이 미로처럼 얽혀있고 대형쇼핑몰과 가구상점도 많아 화재발생 확률이 높다. 그만큼 사고예방과 조기진압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유동인구가 많아 교통이 복잡해서 늘 애를 먹어요. 차선 양방향이 모두 막혀있거나 도로 한 가운데 교통사고라도 나는 날엔 출동이 지연돼 속이 타죠. 병목현상에 대비해 관할지역의 지도를 꾀며 가상 출동훈련을 벌이지만 막상 실제는 또 다르니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애를 태우는 건 다른 데 있다. 출동을 가로막는 비양심 갓길차량과 사이렌 소리에도 쉬이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 안타까운 시민의식. 그들과 실랑이 하는 사이 계속해서 불타고 있을 현장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은 두배, 세배가 되고 만다.   

퇴근 후 잠들기 바쁜 2교대, 그러나 ‘가족’이 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냐구요? 멋있잖아요.”
경력 14년차 김유선(44) 소방장의 말이다.
“친구 따라 강남 온 케이스죠. 소방관으로 일하는 친구녀석 직장에 놀러갔다 왠지 땀에 절고 숯검댕이 된 녀석이 멋져 보여 따라 하게 됐어요. 영웅심이 없지 않았죠. 화마에 맞서 싸우는 늘름한 소방관, 멋지잖아요. 하지만 처음엔 후회도 많았어요.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삼풍사고가 터졌거든요. 시체들이 산재한 곳에서 구조활동을 하는데, 어찌나 무섭고 떨리든지. 지금은 천직이라고 믿지만 유혈이 낭자한 현장에서 덤덤할 수 있으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하더라고요.”

왼쪽부터 김유석, 문명주, 변봉희 소방관.

지난밤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퇴근 준비를 하던 그였지만, 일에 대한 보람을 말하는 대목에선 짐짓 생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자꾸만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피곤한 기색이 영력했다. 허리 디스크 탓에 침을 맞고 있는 그로서는 지난밤의 출동이 약간 무리가 됐나 보다. 퇴근 후 일과를 묻는 질문에 그는 짐짓 웃으며 “집에 가 자죠, 뭐” 했다. 꼬박 하루를 대기해야 하는 2교대 근무로는 퇴근 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11시 즈음 집에 도착해 이미 학교 가고 없는 아이들의 방을 열어보고 무거운 몸을 뉘여 늦은 잠에 빠져드는 것. 깨어 보면 어느새 저녁이 와 있다. 그 동안 가족들은 곤한 가장의 잠을 깨울까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한 달에 두 번, 가족들과 함께 쉬는 주말을 맞지만 여느 가정처럼 놀이공원 한번 같이 나가주기가 힘드네요. 가려면야 잠 좀 덜자고 갈 수도 있지만,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있을까봐 가족행사는 늘 뒤로 미루게 되죠. 그래도 못난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고 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 또 힘을 내는 거 아니겠어요?”
그와 아내, 그리고 두 아이 모두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는 아직도 부모에게만은 자신의 직업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불길 앞에 수시로 설 아들 걱정에 한 시도 시름을 놓지 못할 것을 알기에 둘러댄 거짓말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들이 행정 일을 보는, 그러다 가끔 일손이 모자라면 구급요원으로 투입되는 내근직공무원인줄 알고 계신다.

낙석 붕괴 질식 등 곳곳에 위험천만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그도 후회는 없지만, 명절날 반쪽짜리 가장밖에 못돼 주거나 동창회에 나가 친구녀석 월급규모를 알게 될 때면, 아주 가끔씩, 허허 실소가 새 나오기도 한다. 안정을 추구해 선택하는 여느 공무원과 달리 명예와 보람 하나로 들어선 소방공무원의 길. 9급 공무원 수준의 월급에 주 72시간 근무, 턱 없이 얄궂은 수당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알고도 선택한 게 이 일 아니던가.
그래도 지금 형편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2001년 홍제동 화재사건 이후로 조금씩 소방관의 처우개선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3교대 근무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리니, 아직 피부에 와 닿는 건 없지만 기대는 하고 있다.
여섯 명의 젊은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간 2001년 홍제동화재는 소방공무원의 피땀 어린 현장에서의 분투와 열악한 근무여건을 알리는 하나의 도화선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생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순직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이들을 향한 시민의 감사와 응원이 줄을 이었던 한해였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무 중 순직(일반직무를 포함해 과로사, 교통사고, 현장사고 등)한 소방공무원은 한해 6.2명. 홍제동사고는 이 안타까운 한해의 수치를 한순간에 기록한 엄청난 사고였다.
“현장은 낙석, 붕괴, 화상, 추락, 질식 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돌발사고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요. 과중한 업무 때문에 심근경색이나 심장마비로 돌연사 하는 경우도 많고요. 매해 중상을 입는 부상자가 300명을 웃도니 그 위험수위는 어느 직업보다 높아요.”
김유선 소방장은 낙석사고는 소방공무원이라면 몇 번씩은 맞았을 예삿일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통과 디스크 등 잦은 질병을 달고 살지만 경미한 부상은 모두 자비로 치료할 만큼 의료서비스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그런데도 경찰병원처럼 소방대원을 위한 전문병원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같이 들어가서 같이 나오자”
목숨을 담보로 한 직업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동료애가 뜨겁다. 24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의 몸에 묻은 검댕을 씻어주는, 때로는 가족보다도 더 가까이에 와 있는 나의 동료. 그렇기에 동료 하나를 잃었을 때 덮쳐오는 슬픔의 무게는 너무도 가혹하게 서로를 짓누를 터다.
문명주 소방장도 5년 전 절친했던 동료 한명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살아생전 동고동락한 동료도 그렇지만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면 슬픔은 배가 되고 만다.
“위험한 일을 하다 보니 동료들 마음속에는 저마다 가족에 대한 걱정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남은 내 가족들은 또 누가 돌보나, 늘 이런 걱정이 저희 직업에는 따라다니죠.”

 늘 새벽기도를 나가 그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아내도 걱정이 많기는 마찬가지. TV에 화재뉴스라도 나는 날에는 가슴 졸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 것이다.
경력 3년 차의 변봉희(30)씨 역시 입사 초기인 2004년, 중랑천 범람으로 동료 김혁태 반장을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물에 빠져 휩쓸려 간 어린이를 수색하다 그만 급류에 휩쓸려 익사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갓 들어온 그를 위해 물심양면 챙겨주던 동료의 영결식장에서, 변 소방장은 동료를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으로 실감하며 오래도록 오열했다.
“지하든 어디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농연 속을 동료에게 의지해 들어갑니다. 가족의 죽음 못지않게 가슴 아플 수밖에요. 늘 서로 말해요. 함께 들어가서 함께 나오자고요. 함께 들어가 함께 나오는 것, 거기에 화재 현장에 있는 누군가를 구조해 나온다면 그 이상의 성공과 축복이 이 직업에는 없어요.”

내 가족 이상으로 타인을 바라봐야
슬픔만을 생각한다면 이 일은 오래 할 만한 일이 못된다. 업무의 특성 상 현장에서 웃을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생겨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몇 년 전 15층 아파트에서 연기가 나 소방차가 대거 출동한 적이 있었어요. 발화점은 2층 화장실이었는데, 원인을 찾다 보니 중학생이 몰래 핀 담배꽁초를 화장실 천정에 숨기다 그게 발단이 돼 화재가 난 거에요. 불은 크지 않았지만 연기가 배관통을 타고 커지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죠. 말 그대로 작은 화가 큰 화를 불렀다고 할까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는데, 돌아오며 그 녀석 부모님한테 엄청 혼났겠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지 뭐에요.”
“중앙시장 가구공장에 불이 났을 때 일인데요. 다 구출해 나왔구나 했는데 안에 아직 할머니 한분이 남아있다지 뭐에요. 불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모두 아연실색해 있었어요.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할머님 유해라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수습대가 들어갔는데 아무리 뒤져도 흔적 하나 없는 거예요. 밖에 있는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 몇 시간을 뒤지는데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할머니는 댁에서 편히 주무시고 있다고. 그 자리에 없던 분까지 머릿수를 잘못 세 생긴 해프닝이었는데,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허탈하면서도 그런 오인은 오히려 감사해야하니, 그게 때로 우리 일의 모순이라니까요.”
때론 가산을 모두 잃고 잿더미가 된 집 앞에 주저앉아 우는 이의 허망함도 지켜봐야 하고, 때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온 살붙이를 얼싸안는 감동의 순간도 지켜봐야 하는 소방관들. 인정받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리는 박수소리에 어쩔 수 없이 힘이 나는 용감무쌍한 우리의 영웅이다.
그 멋진 면모 때문일까, 험한 직업임에도 소방공무원에 대한 직업선호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올해 72명을 뽑는 서울시 소방공무원 신규채용의 경쟁률은 118 대 1. 그 중에서 40명을 뽑는 소방분야(남)는 190대 1이 넘었다. 문명주 소방관은 “그만큼 직업에 있어 사회봉사와 명예, 보람 등에 가치를 두는 때가 온 것 아닌가”라며 오늘날 소방공무원을 꿈꾸는 지망생에게 한 미디 덧붙였다.
“소방관 같은 특수직은 내 가족 이상으로 타인을 바라봐야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만큼 공무원이라는 안정성 보다는 사회봉사의 측면을 더 높은 메리트로 삼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현장에서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뛰어 들어갑니다. 그게 바로 진짜 소방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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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_중부소방서 홍일점 변봉희 소방관

화장보다 검댕 묻은 얼굴이 더 예쁜 그녀
“나는 현장 체질이라니까요”

 소방공무원은 일의 특성상 97% 정도가 남성이다. 구급구조나 행정분야에서는 여성대원을 더러 볼 수 있지만 소방업무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화재진압에서는 그 수가 극히 적다.
그도 그럴 것이 위험한 상황에서 타인을 구할 수 있으려면 건장한 남성에 뒤지지 않는 강인한 체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부소방서 변봉희 대원의 존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어를 전공해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사무직을 보던 봉희 씨가 소방대원이 된 건 2004년. 운동을 좋아해 암벽등반을 즐기던 그의 자질을 높이 산 ‘형들’의 권유 때문이다. 
“등반모임에는 소방관 일을 하는 형들이 많았어요. 형들이 해 주는 얘기를 듣고는 저와 잘 맞는다는 생각에 지원했어요. 무엇보다 몸과 정신을 단련시켜 사회에 봉사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암벽을 타다 보면 몇 박 씩 텐트 안에서 남자들과 부대낄 일이 많다. 지금 그녀의 생활이 하등 불편하지 않은 건, 그와 같은 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불편하기는커녕 동지애를 쌓을 수 있어 좋을 뿐이다.   
소방공무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재진압 외에도 구급구조, 화재조사, 예방, 행정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대부분 순환근무가 이루어지는데 행정 같은 사무직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일할 수 있어 희망자도 많다. 하지만 봉희 씨처럼 활동적인 사람에겐 그 역시 곤욕일 수 있다. 발령받은 산악구조대에서 ‘불행히도’ 행정직 맡게 된 봉희씨, 앞으로도 현장에 나갈 가능성이 희박함을 알고는 올 초 이곳 중부소방서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그는 지난 4월부터 중부소방서의 새 식구가 됐다.
“사무일이 싫어 사표 던지고 나온 저예요. 당연 현장이 좋죠. 불길 앞에 당당한 소방대원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그는 요즘 체력단련에 한창이다. 오전 5시 일어나 북한산을 오르고 출근 후에도 대기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핼스와 운동을 병행한다.
“남자보다 잘 해내야 한다는 것 보단 남들만큼 훌륭히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에요. 소방일은 여자라서 하기 힘든 일이 아니라 누가 해도 힘든 일이니까요.”
화재진압 시 핼맷과 방수복, 방수화, 공기호흡기 등 중장비를 모두 갖추면 최소 15킬로 이상의 무게가 나간다. 그 무게는 여성이라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하루 4시간 이상의 운동량이 현장을 준비하는 그의 저력이 될 수밖에 없다.
“고희를 맞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혼자 계세요. 늘 건강하냐는 안부 뒤에는 시집가라는 압력이 들어오죠. 일이 바쁘고 즐겁다 보니 지금 만나는 남자는 없지만, 언젠가 제 일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요. 아직은 결혼보단 일이 우선이네요.”
한창 멋 부릴 나이에 숫검댕을 묻히다 보니 정장이나 메이크업은 경조사 때나 월례행사. 그러나 이런 그의 선택을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원채 활동적이고 괄괄한 성격에 건강한 그에게는 천직이기 때문. 그의 오빠 역시 경남 거창소방서에서 같은 일을 한다고 하니, 이 ‘불’ 같은 기질은 집안 내력인가 보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서울중부소방서 제공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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