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훌륭한 점은,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 B. B. 킹 -

공자는 정말로 배운다는 것, 안다는 것에 대해 수차례 강조하고 또 강조한 인물이다. 배움이란 그것 자체로 아집을 벗어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굳이 공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는 만큼 더 보이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배움의 단계 단계를 밟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소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 배움의 단계를 차근히 밟아오지 못한 한 무리 학생들이 있다. 타고 난 장애를 이유로 교육에서 소외된 채 스물 혹은 불혹의 나이가 돼서야 어렵게 배우는 기쁨을 만난 사람들, 장애인야학의 늦깎이 학생들이다. 이들의 배움은 늦고 더디지만 언제나 처음처럼 뜨겁고 새롭다.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힌 교실 풍경을 들여다봤다.

옹색한 교실 속 어른들의 한글수업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 정립회관의 교육관 3층을 무상임대 해 열리는 이곳의 하루는 저녁 무렵 시작된다. 한글기초반부터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까지 네 개 학급으로 나뉘어 있는 이곳의 학생 수는 약 서른 명. 입학자가 매해 열 명에서 스무 명 가량 되지만, 중간에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아 출석자 수는 달마다 다르다. 수업은 평일 저녁 여섯시 반부터 열시까지 3교시로 진행되는데, 이곳도 여느 야학처럼 문해교육과 검정교시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
교실 수가 세 개 밖에 없어 한글 기초를 배우는 청솔반 수업은 늘 교무실에서 열린다. 20대부터 40대에 걸친 다양한 연배의 학생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한글기초며 수셈을 배우고 있었다.
청솔반의 교사는 성균관대 4학년인 홍송대(27)씨. 2000년부터 지금까지 군대를 다녀온 시간을 빼고도 만 3년을 노들에서 봉사해온 그이지만 재밌게도 이 반에선 가장 앳된(?) 나이를 자랑한다. 학생 대부분은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서른 혹은 마흔의 나이로 야학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학생을 부르는 호칭도 여느 학교와는 조금 달랐다.
“준수형은 이거 풀어 보시구요, 선미누나는 지난 번 배운 거 받아쓰기 준비하세요. 선심누나는 10분 후에 읽어보라고 할 테니까 혼자 읽기연습하고 계시고요.”
한글 기초반이지만 입학 시기가 제각기 틀려 읽고 쓰는 수준이 다르고 장애정도도 달라, 선생님의 수업은 늘 멀티플레이로 진행된다. 한 학생에게 문제풀이를 내 준 동안 다른 학생에게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중간중간 한글을 다 뗀 학생에겐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식이다. 장소와 인력이 달리니 이곳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초등반 역시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하니 야학에선 각자의 학습능력을 조율해 수업하는 게 늘 어려운 과제다.

한 학생의 받아쓰기 공책.

“1번 라일락, 2번 두루두루, 3번 머플러, 4번 모쪼록...”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를 선미(27·정신지체2급)씨가 열심히 받아 적는다. 이곳에 온지 막 한 달이 됐지만 성격이 밝아 어느새 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선미 씨는 6년 동안 초등학교를 다니고 온 터라 학습속도가 빠른 편이다. 왜 학교를 그만 두었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잘 안나요”라고 아이처럼 말했지만, “쭈욱 공부했다면 지금쯤 더 많이 배웠을 텐데…”하고 말할 때는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예습 복습 모두 철저해서 받아쓰기도 거의 틀리는 게 없다하니, 뒤늦게 다시 하는 공부가 부쩍 재밌는 모양이다.
한편 필기가 어려운 장대형(30·뇌병변장애 1급)씨는 컴퓨터 모니터에 받아쓰기를 한다. 한손으로 간신히 키보드를 누를 수 있어 단어입력 시간이 길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여러 번 단어를 불어주어야 한다.

“시인이 되고 싶은데 글을 쓸 수 있어야죠…”
교실 한쪽, 휠체어에 의지한 채 벽에 붙은 프리트를 읽는 김선심(43·뇌병변장애 1급)씨는 다른 학생들보다 한글수준이 높아 수업 틈틈이 따로 지도를 받는다. 그래도 선생님이 늘 옆에 있을 수는 없어 외로웠던 모양인지 기자에게 뜻밖의 한 마디를 던졌다.
“선생님, 제 공부 좀 도와주세요.”
뜻밖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를 돕는 일은 간단했다. 문장을 적절히 끊어 먼저 읽어주면 그가 힘든 발음으로 따라 읽으면 됐다. 길지 않은 문장을 힘들게 읽어내는 그의 모습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배우고자 하는 열심이 느껴져 가슴 한켠이 묵직해왔다. 한글을 다 뗀 다음에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대학에 가고 싶다는 그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학교 문턱 한번 넘어보지 못한 까막눈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중증 장애의 몸으로 어디 학교를 가냐던 주위 시선에 참고 지내온 40여년. 집안에 갇혀 지내던 그때에 비해 글을 읽을 수 있는 지금은 천국이라 말하는 그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자라나는 생각을 시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글을 모르니 기록할 수가 없잖아요. 애써 머릿속에 지어놓은 시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날아가 버리고…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어 글부터 배워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글을 배우면 어떻게든 시를 쓸 수 있다는 희망에 작년 9월 노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나마 요즘엔 하루 5시간 씩 생활보조인이 붙어 가능한 일이었다. 선심 씨는 “이제는 간판도 읽고 지로영수증 내용도 이해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그 동안 듣기만 했던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선심 씨처럼 김 명학(45)씨 역시 이곳을 오기 전까지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전북 부안의 한 시골에서 나고 자라 장애를 가진 몸으로 학교라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던 어린 시절, 그 때는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학교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명학 씨는 회상했다.
“제가 살던 곳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황무지나 다름없이 낙후한 시골마을이라 제가 갈만한 학교도 없었어요. 집안 식구 누가 업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구요. 그저 책가방 매고 나가는 동생들 보면 그냥 ‘동생들이 학교 가는구나’ 생각했죠.”
동생들의 도움으로 한글은 깨쳤지만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 때까지 교육이 뭔지, 수업이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 13년 전 노들을 소개받고 비로소 배우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이 났다. 공장에서 조립 일이 끝나면 아무리 피곤해도 휠체어를 몰아 야학을 찾았고, 그렇게 작년 4월에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졸업까지 따냈다.
“배울수록 내가 참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장애인이니까 그냥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기본권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지, 그런 걸 생각하게 돼요. 참 많은 변화죠.”
요즘 역사가 한창 재밌지만 영어와 수학은 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라는 그도 바람은 대학에 가 좀 더 깊이 있는 학문을 배우는 것. 배움의 참 맛을 아는 사람들의 바람은 보다 높은 곳을 향하기 나름인가 보다. 그 배움의 꿈이 더디지만 천천히 무르익어 가고 있다.

성인장애인교육의 거의 유일한 대안, 지원 절실
명학 씨나 선심 씨처럼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의외로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재가장애인 중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장애인은 15.8%, 중학교를 다니지 않은 장애인은 45.2%,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장애인은 62.0%에 해당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이 전체 장애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전체 국민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국민이 12.6%라고 볼 때, 45.2%라는 장애인 수치는 오늘날 장애인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기초한글반 풍경

 초등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2,30년 동안 집에만 있다 뒤늦게 야학을 통해 문해교육을 시작하는 장애인들이 많다. 장애인야학은 학령기에 장애를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이들이 성인이 되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지만, 그 동안  정부지원이 닿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김기룡 사무국장은 “최근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역별로 설치되면서 그 사업 중 하나로 문해교육과 검정고시를 실시하는 장애인야학이 종교시설 등을 포함, 약 2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장애인야학들은 민간 교육시설에 대한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이 마련돼지 않고 있어 어떠한 예산지원도 안정적으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부터 정부지원이 몇몇 야학에게 조금씩 행해지기는 했지만 그 것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게 야학들의 입장이다. 등록비나 입학금, 교재비 등이 전액 무료인 장애인야학들을 대부분 자원 활동가와 시민들의 후원 등 순수 민간자본으로 운영되고 있어 재정난이 심각하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심정구 교사대표는 “야학 중에는 교실이 좁아 더 이상 학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량이 없어 학생들의 통학지원을 못하는 곳도 많아 직접 찾아가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얼마 안 돼는 지원금 역시 공공요금이나 물품교재비로 활용 범위가 제한돼 있어 효율적인 사용이 어렵다”고 했다. 교사들은 보수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자원활동가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지원자 수도 점차 줄고 있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선 상근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 
장애인들은 지금껏 장애로 인해 공교육의 당연한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취업 등 사회에서 설 자리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빈곤계층으로 내몰리고 또 그것이 자녀 세대로 되물림 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다행히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보장하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에는 성인 장애인에 대한 교육지원책과 장애인야학에 대한 지원근거가 담겨 있어 앞으로의 야학환경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껏 사회가 외면해 온 장애인교육에 늦으나마 시원한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해 본다.

 

-------------------------------------------------------------
Interview_노들장애인야학 심정구 교사

“언제쯤 장애인야학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요?”

 

 야학교사 2년째인 심정구(35)씨는 노들의 몇 안 돼는 상근교사다. 뜻있는 일을 위해 야학을 찾다가 후배의 소개로 노들과 연이 닿았다는 정구 씨는 오후 동안은 혜화동 노들야학 사무실에서 간사로 일하며 틈틈이 수학과 특활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라 오히려 가르치는 일에 부담이 없었어요. 조금씩 장애인교육의 무게를 알아가며 부담이 늘어나죠. 아, 이들에겐 이런 욕구가 절실하구나, 새삼 느낄 때마다 거기에 다 맞춰주지 못하는 교육현실에 화가 나기도 하고...”
학생들은 음악이나 미술, 체육, 컴퓨터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높아지는데 이를 다 다루기에는 재원도 부족하지만 교사의 경험 역시 부족하다. 노들에도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비롯해 20여명의 교사가 물심양면 뛰고 있지만, 지원자 수는 매해 줄고 있는 추세. 인맥으로 알음알음 모집하지만 자원봉사로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 4,5년 동안 꾸준히 해온 교사들도 많지만, 채 1년을 못 넘기고 관두는 이들도 있어 그럴 때마다 마음도 무거워진다.
“야학 교사활동은 마음자세도 매우 중요해요. 처음에는 봉사심에 왔다가도 막상 실전에서 부담을 느껴 관두기도 사람도 더러 있으니까요. 그만큼 장애인야학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필요하죠. 그래서 교사로 자원하는 사람들은 강단에 서기 전 먼저 수업에 참여해 분위기를 익히고 장애인교육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관련 모임에 함께 나가도록 지도해요. 그 과정을 통해 교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준비하죠.”
힘들 때는 없느냐는 질문에 “배우는 학생들보다 힘들겠느냐”며 인터뷰 말미, 바람 한마디를 보탠다.
 “장애인야학의 발전이요? 글쎄요…. 지원이 절실한 것과 별도로 진짜 바람은 장애인교육이 기본교육에서 충분히 다뤄져 ‘야학’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요?”

 

글·사진/김혜경 기자

김혜경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