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모든 여성 하나로 뭉친다

세계 여성의 날에는 여성단체들이 여성들의 희망과 요구를 반영해 그 해 과제를 선포하고 한 목소리를 낸다.

여풍(女風) 속에 숨겨진 비정규직 여성 70% 육박
얼마 전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등 우리 사회에서 여성 권익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게다가 여성의 사회참여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는가 하면, 대선에 여성 후보자가 출마했다. 이러한 현상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여풍(女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사법 연수원 수료생 가운데 판사 임용이 예정된 90명 중 여성이 58명으로 사상 처음 60%대를 웃돌았다. 또한 남성의 성역이었던 군(軍)에서 첫 여성 전투기 편대장이 배출되면서 또 한 번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0%를 넘어섰으며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80% 이상에 달한다. 이처럼 여성 파워는 사회 전반에 걸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눈부신 약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실상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가족부 폐지는 1순위였다.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는 KTX 여승무원이나 이랜드 사태의 경우는 우리 시대 비정규직 여성의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상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일하는 여성들은 육아문제와 가사부담을 잔뜩 껴안은 채 일터로 향한다. 직장 내에는 아직도 성차별과 성희롱이 빈번하고 동등한 일을 하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은 월급을 받는다.
한국여성노동회 배진경 사무처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인구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여성이 사회 취약계층이다. 가사, 육아 등 과중한 노동과 경제활동 사이에서 이중, 삼중 부담을 안고 있는 가운데 인권침해와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선례에 불과하다. 실제 모든 지표에서 한국 여성의 지위는 세계 하위권에 머문다. 여성들의 몫은 언제나 등한시하면서 만들어진지 3년 밖에 안 된 여성가족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존폐 논란에 휩싸인다. 여성가족부가 아니었다면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제, 성평등교육 등은 누가 담보해 나갔겠는가.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된 정부 정책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문제를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경제활동 인구는 2명중 1명 꼴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임시직과 일용직 중심이다. 현재 비정규직 여성은 전체 여성임금노동자 644만 명 중 436만 명(67.7%)으로 비정규직이 2배 이상 많다. 남자는 10명중 5명, 여자는 10명중 7명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비정규직에서 임시근로자는 97.9%(여성의 경우 98.7%). 이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는 주로 장기임시, 기간제 등 임시근로와 시간제근로 및 특수고용 형태에서 비롯된다. 임금의 경우 여성은 남성의 62.6% 수준으로, 5년 전인 2000년과 비교해 보면 63.2%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또한, 임시근로 중에서도 장기임시근로자 여성은 62.52%에 달한다. 이것은 계약을 반복적으로 갱신하면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진경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식과 비공식,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으로 이중화되어 있다. 일자리와 관련해 4대보험이 적용되는 여성은 16%에 불과한 반면 남성은 32.5%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체계는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에 기여한 자만이 수혜대상이 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배제되는 영역은 영세사업장 종사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이 영역에 속하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성을 한 명의 온전한 노동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임신, 출산 등을 문제 삼는 해고가 횡행하고, 직장 내 성희롱이 기승을 부린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에 따라 고임금의 전문직 여성들도 많이 등장했지만 이는 일부일 뿐이다. 대다수는 이중화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으로 몰려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모든 여성은 노동자’라는 대전제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단 여성문제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열악한 노동조건 등은 전 세계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 UN에서 여성과 관련한 현실을 수치로 통계를 낸 보고서가 있다. 지구상 소유주 있는 토지 중 1% 여성 소유, 전 세계 빈곤선 이하 인구 12억 명 가운데 70%가 여성, 전 세계 기업 중 여성 CEO는 21%, 급여가 체불된 가내수공업 노동자들 중 62%가 여성, 유엔 회원국 191개 나라 가운데 여성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12개국, 아이를 낳다 죽는 여성은 매일 1440명에 이른다고 한다.

성차별이 심한 파키스탄 여성들이 평등권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단체 매년 주요과제 한목소리
그렇다면 100년 전은 어땠을까. 당시 여성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비참한 존재였다. 특히 이들은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처해 있었다. 미국의 봉제산업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더러운 작업장은 환기조차 되지 않았고 출입문과 창문은 모두 잠긴 상태에서 일했다. 마땅히 잠잘 곳이 없는 여성과 아동들은 그들이 일하던 기계 밑에서 잠들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방직공장 노동자 중 남자노동자는 23%, 나머지는 여성노동자와 아동이었다. 이들은 동종 업종 남성 임금 절반 수준에 불과한 임금을 받았다.
1908년 3월 8일 여성노동자들은 이러한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 궐기했다. 1만 5천여 명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은 미국 루저스 광장에 모여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임금 인상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10시간 노동 보장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라’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무장한 군대를 동원, 이를 저지했다. 그 결과 ‘트라이앵글’이라는 피복회사 여성노동자 146명이 불에 타죽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강경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날의 투쟁은 의류노동자의 총파업으로 번졌고, 1910년 마침내 의류노동자연합을 결성했다. 1910년 독일 사회민주당 창시자인 클라라 제트킨(Clara Zekin)은 이 날의 시위를 기념하고, 세계 여성들의 단결과 발전을 위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제트킨의 제안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국제사회주의여성대회에 모인 세계 17개국의 노동조합과 사회당, 여성단체 등의 만장일치로 결의됐다.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3.8 대회에서 한 여성노동운동가의 연설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심금을 울렸다.
“만약 우리 여성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 밖에 나갈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남성과 동등한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만일 여러분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우리 중의 누가 의사, 박사, 법관, 전문기능직 그리고 교수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재산을 상속받고 우리의 이름으로 가질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정당과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Sexuality)과 수태를 조정할 권리가 있다면, 이것은 모두 바로 우리들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1920년부터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데 동참해 왔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맥이 끊겼다가 1946년과 47년에 여성해방주간이 선포되면서 대회와 기념식이 부활했다. 당시 3.8 대회 참가자들은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과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3.8 기념행사가 다시 재기된 것은 1985년. 여성단체들이 개최한 제1회 한국여성대회는 ‘민족·민주·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여성단체 주최로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그 해 여성노동자 요구를 알리고 한 해 동안 실천과제를 결의하는 여성노동자대회는 1998년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는 1994년까지 매년 양성평등 노동권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1997년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진 이듬해, 1998년 3월 8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가 공동 주최하여 중앙대회 1000명, 인천대회 300명, 마산대회 250명, 광주대회 150명, 부산대회 300명 등이 참가한 대규모 대회를 진행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사무처장은 “5월 1일이 노동자들의 연대와 결의를 다지는 날이라면 3월 8일은 전 세계 여성들이 단결하고 투쟁하는 날이다. 즉, 여성들의 희망과 요구를 반영해 그해 과제를 선포하고 함께 한 목소리를 내는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할머니의 투쟁과 어머니의 투쟁에 나의 투쟁을 더하는, 그래서 양성이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는 날이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세계 여성의 날은 모든 여성들이 하나 되는 연대의 날이자,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를 희망하는 축제의 날이다. 우리나라에는 보기 드물지만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연대하는 뜻에서 3월 8일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3.8 세계 여성의 날, 브라질 시민들이 평등한 연금제도를 위해 퍼포먼스 하고 있다.

“여성,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열자!”
우리나라 3.8 세계 여성의 날에는 그 해 이슈가 되는 사안을 주요 기조로 내걸고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지난해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공동 주최로 세계화반대여성연대, 모금과 서면운동 등의 행사와 함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보고, 각 대표자들의 대회사, 문화공연 등이 2시간가량 진행됐다. 단 하루에 불과한 행사지만 매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문제의 심각성을 상기시켜주는데 크게 일조한다.
배진경 사무처장은 “3.8 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통해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은 상당히 변화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범죄라는 사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게 부당해고라는 사실, 여성들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등 여성의 노동에 대한 시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는 모두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단결하고 투쟁하여 쟁취한 결과다. 그러나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경쟁과 효율 중심의 가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새 정부는 경쟁과 성장, 효율만이 모든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개최됐던 ‘99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에는 “여성의 힘으로, 열어라! 평등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비정규직 차별철폐·최저임금 현실화하라 ▲보육의 공공성·모성보호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라 ▲식량주권 실현·여성 농민 법적지위 보장하라 ▲진보여성 총단결로 민주노동당과 함께 대선승리 ▲한미 FTA 반대·전쟁반대·평화통일 등을 요구했다.
결의문을 통해 참가자들은 “그동안 여성의 지위향상과 차별철폐, 빈곤타파를 위해 투쟁해 왔지만 99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99년 전 여성의 정치적 권리, 인권,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위해 싸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을 되살려 평등세상을 열어갈 것이며 더욱 끈끈한 자매애와 동지애로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뜻을 모았다.
올해 100주년을 맞는 세계 여성의 날은 어느 해보다 뜻 깊은 한 해를 맞았다. 세계 여성의 날의 정신과 의미를 100년간 지켜왔기 때문이다.
전국 151개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3.8 조직위원회(이하 3.8 조직위)’는 금년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 3.8 여성축제(이하 3.8 여성축제)’ 슬로건을 “여성,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열자!”로 정했다. 이번 행사는 ‘3.8 퍼레이드’를 중심으로 시민난장, 기념식, 시민축제 등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특히 전국에 모인 여성 3천여 명이 약 3.8km를 걸으며 펼치는 ‘4대 테마 퍼레이드 카’는 재현, 상상, 재구성된 여성의 삶과 모습, 꿈을 표현한다. 또한 1996년부터 매년 시행된 ‘올해의 성평등 디딤돌, 걸림돌’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는 여성권익에 디딤돌이나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나 단체를 선정해 우리사회의 차별문화를 평등문화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3.8조직위는 “창조적인 문화활동은 3.8 세계여성의 날 정신을 현재화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퍼레이드는 이번 행사에 가장 큰 야심작이다. 이러한 퍼레이드를 통해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할 계획이다. 또한 기념식을 통해 한국사회가 성평등 사회로 한 단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다. 100주년을 맞은 3.8 여성축제는 어느 때보다 여성단체들이 힘 있게 결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3.8 여성축제를 통해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축하하고, 대중들과 함께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한국여성운동의 미래를 전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 여성의 날에는 이 날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고 빈곤과 차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삶을 재발견한다.
여성단체들은 3.8 여성축제를 계기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없는 성숙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다각층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 세기 준비하는 여성축제 되길
오늘날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은 100년 전과 비교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 속에서 여성들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하는 여성들의 70%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랜드 사태와 KTX 여승무원 사건은 이러한 뼈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이랜드에서 해고된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을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계산대 앞을 성실히 지켰다. 적은 임금과 고된 노동을 감수했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하루아침에 날아온 ‘해고장’이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고 불렸던 KTX 여승무원들은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초·중반 여성들이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KTX에 입사했지만 3년 3개월 만에 그들은 정리해고 당해 거리로 내몰렸다.
세계 여성의 날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들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시간이다.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기억하고, 이들의 정신과 희생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100주년 3.8 여성축제가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이영아 기자 사진제공/한국여성노동자회 외

이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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