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복과 고무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 봉사자들은 갯바위에 걸터앉아 기름 닦는데 여념이 없다.

국내 최대 기름유출사건, 청정해역 태안 기름띠 심각
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한참을 기다려 다시 오른 버스. 버스 안에는 온통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뿐이다.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일까. 눈을 마주치면 안면이 있건, 없건 금세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신다.
“만리포는 많이 괜찮아졌지요? 거기는 유명해서 근가,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서 도와주던데….”
“말하면 뭣해요. 처음보다 나아졌어도 살길이 막혔는데. 내가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절절 나요.”
“그나저나 지금 당장은 이래저래 산다 해도 앞으로가 문제지. 정부가 무슨 대책이라도 빨리 세워줘야 할 텐데, 어디 그게 내 맘 같나. 그저 여기 사는 사람들만 애 타는 겨.”
어르신들의 하소연을 듣다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30여분을 지나 도착한 곳은 모항리 마을 입구. 바다가 근처라면 으레 바다의 정취가 ‘훅’하고 다가올 법한데, 아무 기색도 없다. 흐릿한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보이지 않고 소금의 짠 내음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둔탁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대번에 ‘이것이 기름 냄새구나 !’ 짐작했다. 바다 정취보다 먼저 와닿는 기름 냄새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듯 했다.
마을 어귀에서 모항항까지 걸어서 30여분. 오르막을 한참 걸어 오르니 ‘S’ 자 형태의 방파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가득 메웠다. 1월초 갑자기 내린 폭설과 강추위로 봉사활동이 잠시 중단됐지만 곧 재계되면서 봉사자들의 발길도 다시 이어졌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봉사시간도 제한적이다. 밀물이 밀려들면 봉사를 중단하는 게 이곳 실정이다. 시계가 오전 11시 반을 가리켰다. 바닷물이 저만치 물러나자 방파제 벽면에는 검은 기름띠가 끝없이 펼쳐졌다. 다행히 방파제 아래로 내려다본 바다는 검은 물결은 아니었다. 그러나 바닷물 위로 기름띠가 둥실둥실 여전히 떠다녔다.
항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보통 때라면 이른 새벽, 바다 한가운데서 낚아 올린 수산물들을 흥정하며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항 주변도 잠잠하다. 바다는 주민들에게 생계터전이자 삶의 일부였을 터. 유유히 바다를 헤엄치고 싶은 배만큼이나 옴짝달싹 못하는 배를 보는 주민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국민 모두를 경악시킨 사건은 지난 12월 7일 발생했다. 충남 태안군 만리포에서 북서쪽으로 10km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정박 중이던 홍콩선적 14만6848t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와 3000t급 해상 크레인을 실은 삼성중공업 소속 1만1800t급 부선이 충돌한 것. 이 사고로 기름 탱크가 파손되면서 원유 1만4천400㎘가 해양으로 유출됐다. 1995년 전남 여수 앞바다의 ‘시프린스호’ 사고 당시 흘러나온 기름 유출량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 사고다. 오염된 바다가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과 달리 기름은 손 쓸 새도 없이 서해를 검게 물들였다. 현재 유출된 기름은 조류를 따라 전남까지 밀려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태안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지만 파괴된 생태계가 이전의 상태로 복구되려면 전문가들은 2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기름 범벅된 바위.

기약 없는 복구에 주민들 ‘망연자실’
이렇듯 태안 기름유출사건은 사상 최대이자 해양 생태를 파괴하는 대재앙이다. 모항리는 사고 지점과 인접해 있어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사고 해상에서 뿌린 유화제가 바람에 날리거나 조류에 밀려와 피해가 속출했다. 이를 지켜보던 모항리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등대쉼터’를 운영하는 국응문(56)씨는 태안이 고향이다. 평생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국씨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고 당일에도 몰랐어요. 갑자기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나서 가스가 새는 줄 알고 부엌과 보일러실만 왔다 갔다 했어요. 누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사고가 난 다음날 아침, 바다에 나갔더니 매일 보던 바다가 아닌 거예요. 태안은 깊은 바다가 직접 맞닿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청정해역이잖아요. 이곳에 한 번 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동해보다 훨씬 좋다고 평판이 자자했어요. 평소 파도치는 거 보면 하얀 물거품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런데 그 날은 까만 파도가 질척질척한 거예요. 뭔지 몰라도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죠.”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우왕좌왕 하기만 했다. 평범하던 일상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잃어버린 탓에 모든 기력을 상실했다. 사고지점에는 해양수산부와 충남 태안 해양경찰서가 해경 경비함정 12척, 해양오염방제조합 방제선 15척을 투입했다. 불행히도 사고 당일 날씨는 피해를 더욱 확산시켰다. 사고 해역에 2~4m 높이의 파도가 치는 데다 초속 10~18m의 북서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송기옥(64)씨는 이 날을 전쟁터 같았다고 기억한다.
송씨는 “바다에는 수십 척의 배가, 하늘에는 수십 대의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떠 있었어요. 지상에는 지상대로 대한민국 군부대가 총 동원된 것 같았어요.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어요.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처음에는 주민들이 전부 넋 놓고 발만 동동 굴렀어요. 사고 다음날 군부대가 이곳에 엄청 왔는데 족히 수백 명은 될 거예요. 바닷물에서 방파제까지 군인들이 일렬로 쫙 서더니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서 릴레이처럼 옮기는 거예요. 그거 보고 주민들도 정신 차리고 같이 거들었어요. 저기 보이는 시커먼 양동이가 그 때 기름 퍼 올린 거예요. 며칠 동안 군인들과 주민들이 퍼 올린 기름이 어마어마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급속히 확산된 것은 정부의 초기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일 사고 직후, “물결과 바람을 감안해 모의시험을 해보니 기름띠가 해안에 도착하려면 24~36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소원면 의항리, 모항리, 만리포 등에는 사고 13~14시간 만에 기름띠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정부 예측 속도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밀어닥친 것. 정부의 빗나간 예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멍 뚫린 탱크의 기름을 유조선 내 다른 빈 탱크로 옮기면서 정부는 “추가 기름 유출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름 유출은 9일 오전까지 계속됐다. 이러한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박순임(54)씨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사고는 날 수 있잖아요. 나도 운전할 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사고 낸 적 있으니까요. 조기에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처럼 피해가 크지 않았을 텐데, 며칠 간 저 많은 기름이 바다에 계속 쏟아졌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게 억장이 무너지죠.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자연재해는 1~2년이면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잖아요. 뉴스 보니까 여기가 복구되려면 수십 년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가 봐도 답이 안 나와요. 1~2년만 기다려서 복구된다면 희망이라도 품을 텐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 답답하죠. 소비만 있고 수입이 없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정부가 하루 빨리 어떤 대책이라도 세워주길 기대할 뿐이에요.”
당장 생계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게다가 주민 대부분이 50대 이상 고령층인데다가 평생 어업에 종사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피해 주민에 대한 보상액도 불투명한 상태다. 태안군의 일 년 수산물 어획고만 1,200억여 원. 하지만 사고를 낸 유조선 측 보험사와 국제 유류기금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배상한도는 현행 제도상 3,000억 원에 불과하다. 실제 피해배상과 복구비용은 이를 훨씬 능가할 것으로 추측된다. 충돌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에는 유조선측의 구상권 청구가 예상되지만 배 크기가 만 2천 톤인 삼성의 책임한도는 법적으로 30억 원 밖에 기대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과실 책임을 국가와 국민, 피해 주민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됐다. 주민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그저 속수무책 두 손 놓고 있을 뿐이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안타까운 심정에 점심도 거른 채 봉사활동에 열중했다.

연일 자원봉사자 물결, 주민들 감동 받아
지난 1월 7일 충남도·해경방제대책본부는 현장 방제인력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자원봉사자 수는 그 중 60만 명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 동시에 국민의 단결된 마음을 느끼게 했다. 평일에도 불구하고 모항리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에 한창이었다. 방한복과 고무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 봉사자들은 갯바위에 걸터앉아 바위 하나하나를 닦았다. 조한연(57)씨는 이곳에 온 첫 마디가 “세상에, 세상에”였다.
“실제로 와서 보니까 입이 안 다물어져요. 하물며 우리도 이런데 주민들 심정은 오죽하겠어요. 바위틈에서 기름이 계속 솟구쳐 올라 닦고 닦아도 끝이 없어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이게 다 돈인데…. 애물단지가 돼서 모조리 씻어낼 생각하니까 아깝고, 안타깝네요. 하루 빨리 깨끗이 복구돼서 주민들 근심을 덜어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힘내세요! 태안 주민 여러분~.”
이날 자원봉사자들은 유독 청년층보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많았다. 평일에 모임이 가능한 조합원이나 산악회 회원들이 야유회 대신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이곳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도 장시간 기름 냄새 맡으면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기름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무도 열악한 방제작업에 불평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들은 점심도 거른 채 작업에 열중했다.
정용금(62)씨는 “어차피 봉사활동은 2시까지 밖에 못하는데 점심 먹으면 한 시간 금방 지나가잖아요. 그때까지 최선 다하자고 산악회 회원들과 사전에 합의했어요. 모두들 흔쾌히 승낙했어요. 양동이로 기름 퍼냈을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바닷물에 뜨는 기름과 바위에 달라붙은 기름보니까 아직 멀었어요. 바위 들어 올리면 검은 기름 덩어리가 잔뜩 고여 있어요. 앞으로 한 달에 한두 번 꼭 올 생각이에요. 저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도 오는데 젊은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찾아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바다를 생계 터전으로 하는 봉사자들은 태안 주민들의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에서 찾아온 80여명의 봉사자들. 사고소식을 접하자마자 이들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자신의 터전마냥 방제작업에 열성인 매향리 주민들.
정숙자(53)씨는 “당장 달려오고 싶었지만 생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이제야 왔어요. 저희도 바다 근처 사니까 태안 주민들과 비슷한 처지죠. 직접 와서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요. 부디 용기 잃지 말고 꼭 힘내시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오늘 보니까 해안 구석구석 봉사자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저희가 타고 온 버스도 주차공간이 없어서 인근 지역을 한참 돌았거든요.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니까 잘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곳은 인간이 저지른 대재앙을 인간이 다시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이다. 때문에 관광버스 운전기사들도 봉사자들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굶주린 채 추위에 떠는 봉사자들을 위해 길다방을 자처한 것. 어디서 가져왔는지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주전자를 이용,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배달했다. 커피를 양손에 든 채 바위를 조심조심 내딛는 운전기사들을 보니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이들은 침통한 태안 주민들도 감동시켰다. 등대쉼터를 운영하는 국응문 씨는 사고 후 장사는 중단했지만 식수와 전기 등 봉사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도왔다. 여름철 장사를 위해 마련한 천막도 다시 설치해 봉사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국씨는 “이게 기적 아니겠어요? 어제는 갈매기들도 다시 찾아 왔어요.‘이제 끝이다’ 생각했는데 봉사자들은 사고 당일부터 기름 제거에 총력을 기울이더라고요. 이 분들보고 많이 배웠어요.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그동안 다른 지역에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안타까워만 했지, 직접 찾아가서 도와줄 생각은 전혀 못 했거든요.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배 타고 온 분도 있어요. 그 분은 며칠 씩 찜질방에 묵으면서 자원봉사를 하더라고요. 자기 일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나 이해가 안 되면서도 고맙고 흐뭇해요”라고 말했다.
국씨의 말처럼 태안은 기적을 이루고 있다. 기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지만 검은 바다가 본래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갈매기들도 태안을 다시 찾았다. 아직은 희망을 품을 수 없지만 태안 주민들은 봉사자들이 이뤄낼 기적을 믿는다.

중·고등학생들도 방학을 맞아 기름유츌 현장을 찾았다.

불과 한 달새, 60만 명 자원봉사들이 한마음
울창한 송림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태안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청정해역이다. 최악의 기름유출사건이 발생한 태안은 청정해역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복구 가능성은 있다. 일본의 경우, 해양에 기름유출사건이 발생한 후 10여 만 명의 자원봉사들이 모여 3개월 만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 사례를 갖고 있다. 우리는 불과 한 달 만에 60여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을 찾았다. 
 기름유출사고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만리포 해수욕장. 이곳은 모래사장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흉물스럽게 변했었다. 하지만 제 빛깔을 찾은 만리포 해수욕장은 은빛 모래사장이 반짝인다. ‘턱, 턱’ 둔탁한 파도소리도 ‘철썩, 철썩’ 원음을 되찾았다. 자원봉사들의 염원과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저력이자 바로 우리가 일궈낸 기적이다. 모항리 주민들도 하루 속히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길 간절히 기도한다. 
 글/이영아 사진/최경훈 기자

이영아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