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 류상준 씨는 40여 년간 대장간을 운영해왔다.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쇠망치 잡아

비좁은 대장간에는 호미, 곡괭이, 낫, 도끼, 장도리 등 갖가지 농기구와 연장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육중한 철과 시뻘건 불이 사방에 널린 탓일까. 대장간의 열기는 바깥의 온도를 능가했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장간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다. 동생 류상남 씨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 시우쇠를 담갔다 꺼내면 형은 잽싸게 메질을 한다. 형이 벌건 시우쇠를 모루에 올리면, 어느새 쇠망치를 든 동생이 시우쇠를 “탕 탕” 내려친다. 수차례 메질과 담금질을 통해 하나의 연장을 완성한다. 공(功)을 들인 것과 달리 완성된 연장은 한 켠에 툭 던져지지만 날카로운 날이 번득였다.

류상준 씨는 “예전에는 주로 쟁기, 보습, 가래 등의 농기구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거의 안 만들어요. 근래에는 대장간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지만 드물어서 오히려 주문이 쇄도해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과 차원이 다르거든요. 요즘은 호미나 괭이 등 농기구를 비롯해 대장간에서 쓰는 연장, 방송에 필요한 세트 등이 주를 이뤄요. 일이 너무 많아 이제는 선별해서 할 정도에요”라고 말했다.

현재 쉰을 조금 넘은 류상준 씨는 대장간 일을 40년 간 지속해왔다. 40년 전이면 그는 초등학생인 셈이다. 그가 일찌감치 대장장이의 삶은 선택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서울 토박이인 그의 부모님은 농사보다 기술로 자수성가한 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시대부터 소 발에 신는 편자를 제조했다. 주요 교통수단이 우마차였던 시절이라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기술자였다.

“당시 아버지는 하루에 쌀 세가마니 벌었어요. 어려운 시기인데도 잡곡밥 한 번 안 먹고 하얀 쌀밥만 먹었어요. 구하기 어려운 고기반찬도 자주 먹고요. 당시 아이들은 주로 고무신을 신었는데 저는 운동화만 신고 다녔을 정도였어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라 기술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공부보다 기술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어요.”

그의 부모는 기술을 중시했지만 그렇다고 기술을 배우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편자 만드는 아버지를 지켜보고 이웃 대장간을 기웃되면서 그는 대장간 일에 점점 재미를 붙였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의 놀이를 마다하고 가장 먼전 달려간 곳이 대장간이었다. 단단한 철은 흡사 찰흙 빚 듯 각양각색의 물건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철이 변해가는 전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다 어른들 틈바구니에 섞여 저 혼자 손가락 길이만한 칼과 도끼 등을 만들기도 했다.

“원래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 때는 쇠가 불 속에 들어가면 물렁해지고 물에 들어가면 다시 단단해지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난 거예요. 공부에 흥미가 있던 것도 아니라 차라리 남들보다 일찍 진로를 선택한 거죠. 부모님에게 대장간 일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승낙하셨어요.”

막상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나섰지만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은 풀무질이나 메질 정도는 기계가 대신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장간 일은 모든 수작업으로 통했다. 그 역시 아버지와 이웃집을 오가며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질부터 날 가는 일, 메질 등을 눈짐작으로 슬쩍슬쩍 배웠다. 배우는 데는 철저히 혼자였다. 하나의 과정을 익히는데 2~3년씩 소요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채근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더욱 혹독하게 다스렸다. 서툴렀던 기술들이 어렴풋이나마 능숙해졌던 것은 10년의 세월을 훨씬 지나서였다.

“처음에는 풍구질만 했어요. 당시 그 일이 가장 기본적이었거든요. 하루 종일 풍구질하고 저녁에는 혼자 이것저것 만들었어요. 누가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허송세월만 보내거든요. 특히 옛날에는 기계가 없으니까 쇠망치로 일일이 두드려서 만들었는데 손에서 망치가 떨어질 시간이 없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밥 먹고 나면 금방 배고팠어요. 10년 정도 지나니까 저절로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오랜 시간 꼼꼼히 터득한 덕분에 그는 현재 최고의 대장장이가 됐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선 뒤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다는 류상준 씨. 메질 후 쟁기를 요리조리 살피는 예리한 그의 눈빛이 대화할 때와 사뭇 달랐다. 일할 때만큼은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이 철저히 발휘됐다.

형 류상준 씨가 벌건 시우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쇠망치로 두들기고 있다.

동생 류상남 씨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 시우쇠를 담그고 있다.

IMF  이후 동생 합류해 승승장구

연장을 만들 때는 무엇보다 담금질이 가장 중요하다. 쇠는 담금질을 통해 비로소 ‘강철’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류상준 씨는 오랜 숙련으로 담금질만큼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칫 기고만장해질 법도 하건만, 그는 10년 전까지 남 밑에서 일했다. 자신만의 대장간을 차린 것은 1998년 봄에 가서야 이뤄졌다. 처음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그는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듯 환희에 찼다. 하지만 그 해 가을, 갑자기 불어 닥친 IMF가 그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빚 얻어서 봄에 간신히 차렸는데 가을에 IMF가 터진 거예요. 겨우 내내 아무 일도 못했어요. 주문이 들어와도 재료 살 돈이 없었거든요. 당장 철 사려면 돈이 필요한데 어디서 구할 때도 없잖아요. 망연자실 문만 열어 놓고 있었어요. 그 때 이후로 돈만 있으면 무조건 재료를 사놔요. 창고 안에 재료가 두둑이 쌓여야 마음이 놓여요. 너무 호된 경험을 해서 재료 욕심이 많아요.”

어려운 시기였지만 시련의 바람이 전부는 아니었다. 동생 류상남 씨가 IMF 이후 대장간 일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로 한순간에 생계를 잃었던 그는 일손이 부족한 대장간을 잠시 도와줄 요량으로 형의 일을 거들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영 눌러 앉게 됐다. 형제가 함께 하면서 대장간은 날개 달린 듯 승승장구하고 있다. 서로는 주거니 받거니 말동무인 동시에 눈빛만 봐도 상대의 의중을 간파하는 동료이다. 형이 아니면, 혹은 동생이 아니면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는 탓에 서로의 존재가 듬직하기만 하다.

류상남 씨는 “예전에 형이 배웠던 것처럼 형도 가르쳐 주는 법이 없어요. 대장간 일이 원래 그래요. 손에 익어야 하는 거지 말로 배울 수 없거든요. 제가 오기 전에 형은 정말 일밖에 몰랐어요. 일 년 365일 쉬는 법이 없거든요. 화가 나면 오히려 일에 더욱 매진해요. 그럴 때 제가 기분 전환하라고 밖으로 내몰아요. 눈빛만 봐도 아니까 일일이 말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라며 우애를 과시했다.

지난 10년 간 이들 형제는 웬만해서 휴일이 없다. 여름철에도 온 몸의 근육을 쓰고, 땀을 한소끔 흘려야 더위가 가신다는 이들 형제. 그런 까닭에 이유 없이 대장간의 문을 닫는 일은 좀처럼 없다. 지금까지 대형사고가 없었던 것도 한 몫 한다. 철을 다루는 대장간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지만 다행히 형제에게 큰 사고는 피해갔다. 찢기고 멍드는 소소한 상처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형 류상준 씨는 3개월 동안 대장간을 비운 적이 있다. 메질을 치는 기계의 오작동으로 류상준 씨의 손을 그대로 후려쳤기 때문이다. 4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사고였다. 엄지와 검지의 뼈는 완전히 으스러졌다. 아직 완치되진 않았지만 일하는데 걸림돌 될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손가락을 사용하는데 부자연스러워요.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했는데 몸이 근질근질 하더라고요. 그 때 유일하게 한 게 있다면 공익광고 CF를 찍었어요. SBS 생활의 달인에서 철의 달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 당시 미션으로 철로 장미를 만들었는데, 처음 도전했는데 3시간 만에 성공했어요. 막상 미션 받을 때는 반신반의 했는데 엄청 고생한 생각이 나네요. 빨갛게 불에 달궈진 장미가 오묘한 빛깔을 발산하면서 생화보다 더 예뻤어요.”

당시 형의 빈자리는 동생이 채웠다. 10년 간 잔일을 도왔지만 그 때까지 연장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 다른 분야에서 10년간 종사하면 제법 전문가에 속하지만 대장간에서의 10년은 큰 의미가 없다.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면 더럭 겁부터 났다. 그렇다고 손님을 돌려보내면 손해라는 생각에 결국 자신이 직접 연장을 만들었다. 형에게 보고 배운 것을 더듬어갔다. 형보다 서툰 솜씨였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그였기에 연장은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형이 꼼꼼하게 하는 걸 10년 넘게 봐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만들었는데도 손님이 다른 곳하고 완전히 다르다며 한참 칭찬을 쏟아냈어요. 유명한 대장간은 확실히 뭔가 틀리다는데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몰라요. 괜히 잘못 만들었다가 형이 쌓아올린 좋은 이미지가 해가 될까봐 불안했거든요. 여전히 주된 일은 형 몫이지만 저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형제가 운영하는 형제대장간은 성실하고 꼼꼼한 솜씨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품 담당자들은 칼이나 연장이 필요하면 형제를 찾는다. 사진 한 장이면, 조선시대 칼이나 고구려 시대 연장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기 때문이다. 화면에서 자신들이 만든 것이 나올 때마다 서로가 자랑스럽다는 형제. 서로를 바라보며 함박웃음 짓는 형제에게 돈독한 형제애와 동료애가 느껴졌다.

한여름에도 한소끔 땀을 흘려야 더위가 가신다는 이들 형제.

평생 천직 살려 노년의 꿈 이뤄지길

평생 천직으로 대장간 소임을 다하는 형제는 앞으로도 대장간의 명맥을 지켜나갈 계획이다. 일흔 살까지 거뜬하다는 류상준·류상남 형제. 나이가 들면 형 류상준 씨는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텃밭을 일구고 싶다고 한다. 텃밭 한 귀퉁이에 대장간을 차려 동네 사람들의 고장난 연장을 고쳐주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단다. 동생 류상남 씨는 사라져가는 옛 물건들을 재현해 박물관을 건립하고 싶은 원대한 포부가 있다. 훗날 대장장이 형제의 각기 다른 꿈이 이뤄지는 노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이영아 사진/정현주 기자

이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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