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공연은 훈련을 공연처럼, 공연을 훈련처럼 하는 이들의 노고로 매회 완벽을 기한다.

바다사자의 엄청난 몸집에 첫 만남 경악

공연 열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박창희 조련사가 다이빙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연이어 돌고래 등지느러미를 부여잡고 시원하게 물길을 가르는 황홀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와 돌고래는 마치 한 몸인 듯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360도 빙글빙글 돌며 우아한 수중발레도 선보였다. 숨을 먹게 하는 이들의 공연을 보노라면, ‘돌고래 쇼’인지, ‘조련사 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관중들의 시선은 오로지 돌고래만 쫓았다. 반대로 돌고래는 박창희 조련사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온 신경을 쫑긋했다. 공연 내내 일말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의 환상 호흡은 관중들에게는 감탄을, 조련사에게는 흐뭇함을 선사했다.

“다른 동물과 달리 돌고래는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이에요. 교과서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걸 느껴요. 자칫 잘못하면 오랫동안 쌓아온 교감이 한순간 깨질 수 있어요. 돌고래가 원하는 것을 조련사가 못 알아챈 거니까 그만큼 소홀했다는 의미죠. 조련사와 돌고래 사이에는 훈련보다 신뢰가 가장 중요해요.”

현재 서울대공원에서 근무하는 그는 바다사자, 돌고래와 횟수로 8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정년퇴직하는 조련사를 제외하고 전 공연을 모두 소화하는 가장 숙달된 조련사이다. 돌고래 조련사로서 정평 나기까지 그는 우연한 계기의 연속으로 지금의 자리에 섰다. 삼육대학교 응용동물학과를 졸업했지만 미래의 청사진을 염두하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90년대만 해도 조련사는 비전 없는 비인기 직업이었다. 조련사로서 성공한 선배의 선례도 드물었고, 조련사가 되는 길은 불확실하고 험난했다.

“응용동물학과는 원래 동물과 식물을 접목해 인테리어에 활용하는 새로운 분야였어요.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니까 식물학과는 사라지고 동물학과만 남은 거예요. 진로를 식물 쪽으로 생각한 터라 하는 수 없이 편입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담당 교수님이 물개 조련사를 한 번 해보라고 추천해주셨어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아르바이트로 잠깐 해보자는 심사로 시작했죠.”

바다사자 조련사로 그가 간 곳은 드림랜드. 처음 오타리아 바다사자를 목격한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타리아 바다사자는 ‘사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갈퀴가 사방천지로 뻗어 있었고, 흔히 보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에 비해 몸집도 4배 정도 컸다. 바다사자의 어마어마한 외형에 잔뜩 겁에 질린 박 조련사는 “도대체, 이게 모야~”하고 달아났다고. 그러나 선배 조련사의 지시대로 따라하자 오타리아 바다사자와 금방 친숙해졌다.

“모든 게 처음이니까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조련사들은 일반 사육사들과 달리 무대에 서는 일이 추가돼 쑥스러워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근데 저는 마냥 재밌었어요. 바다사자가 엄청난 몸집과 달리 순한 것도 신기하고, 무엇보다 즐거워하는 관중들을 보니까 뿌듯하더라고요. 바다사자와 조련사, 관객이 하나 되는 순간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바다사자와 함께 무대에 서면 박 조련사는 아드레날린이 마구 샘솟았다. 즐거운 흥분이 연일 이어질수록 편입 생각은 쏙 들어갔다. 뒤돌아서면 바다사자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른거려 갈등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형편없는 근로조건이 기로에 선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조련사는 불확실한 미래는 기본이요, 열악한 보수는 덤이었다. 결국 그는 정든 오타리아 바다사자와 결별하고 2002년 서울대공원으로 이직했다.

“지금은 방송에서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돼서 지명도가 높지만 초기에는 비전도 없고, 보수도 적어서 갈등이 많았어요. 사기업보다 서울대공원이 안정적이라고 판단해서 이직했지만 일 자체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외국은 도구제작, 공연 내용, 공연물 제작, 음악, 편집 등을 개별 전문가가 하는데 우리나라는 조련사 한 사람이 전부하거든요.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바빠요.”

조련사의 삶은 많은 에너지를 요했다. 그러나 박 조련사는 환경 탓보다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밤낮 고뇌했다. 덕분에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하나인 ‘미소 짓는 물개 방울이와 사진 찍기’는 인기가도를 달렸다.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이 그를 부추긴 결과였다.

돌고래 관심이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되길 바라는 박 조련사.

먹이를 기다리는 돌고래들.

보이지 않는 언어로 소통하며 환상 공연 펼쳐

그의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바다사자 공연은 늘 성황을 이뤘다. 공연 질도 회를 거듭할수록 향상했다. 문제는 ‘돌고래 공연’이라는 공연명을 버젓이 달고도 바다사자 공연 비중이 돌고래를 능가하는데 있었다. 진부한 돌고래 공연에서 탈피하려면 특단의 결단이 필요했다. 서울대공원 측은 ‘담당자 교체’라는 지시를 내렸고, 바다사자를 인기의 주역으로 이끈 그의 이름이 거론됐다.

“우리나라 돌고래 공연이 시작된 이래로 20년간 정체상태였어요. 돌고래는 우리나라 전역에 9마리가 전부에요. 서울대공원에 3마리, 제주도에 9마리니까 딱 그 수준인거죠. 관중들은 돌고래에 열광하는데 보여줄 게 없으니까 돌고래 쇼지만 정작 돌고래 비중은 낮고 물개 공연이 주를 이뤘죠.”

상부의 일방적인 지시로 얼떨결에 돌고래를 떠맡은 박 조련사. ‘생 초자’였지만 누구보다 돌고래 공연의 부진을 잘 알았기에 그도 외면할 수 없었다. 3년간 바다사자에 쏟은 애정과 열의를 고스란히 돌고래에게 쏟았다. 각종 외국 서적과 공연 실황 등을 뒤지며 다양한 방도를 모색했다. 수일을 고민한 끝에 그가 내세운 비장의 무기는 ‘수중공연’. 이미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선보인 공연임에도 우리나라는 감히 엄두도 못 낸 일이었다.

“기존 돌고래 공연은 무대에서 점프나 묘기를 보여주는 수준이었어요. 미국이나 호주, 일본은 우리와 스케일부터 다르고 내용도 훨씬 풍성해요. 돌고래 공연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면 수중공연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막하더라고요. 수중공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고 수영이 가능한 조련사도 저 밖에 없었거든요.”

상부에서도 그의 계획을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돌고래 수중공연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로써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박 조련사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밀어붙였다. 그럴수록 반대의견도 거세져 결론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다행히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일본으로 출장 갔던 해양팀장이 수중공연을 목격한 것. 큰 충격을 받은 해양팀장은 돌아오는 즉시 그를 원조했고, 박 조련사는 기세등등하게 계획을 실행시켰다.

“상부에서는 수중공연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반대했는데 일본에서 가능한 걸 본거죠. 해양팀장이 보기에도 수중공연은 박진감 넘치고 재밌거든요. 위에서 도와주니까 동료들도 적극 동참했어요. 수영 못하는 동료들은 일끝나면 곧바로 수영강습 받고 저도 틈나는 대로 물속에서 돌고래와 거부감 없도록 맹연습했어요. 개체마다 성격과 특성이 다르지만 동물과 훈련하는 원리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니까 생각대로 맞아떨어졌어요.”

6개월간 진행된 수중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체력적인 소모가 부담됐지만 ‘최초’라는 기대와 흥분으로 굳게 버텼다. 드디어 2006년 7월 1일,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첫 공연은 완벽했다. 그와 돌고래의 호흡은 나무랄 데 없이 척척 맞았고, 관중들은 처음 본 수중공연에 놀라움과 감탄으로 기립박수를 보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감격이 더 컸어요. 다들 엄청 고생 많았거든요. 특히 돌고래는 물속이 안방이지만 사람은 아무리 수영을 좋아해도 사는 환경이 다르니까 힘들었어요. 공연장도 원형풀이나 사각풀이 아닌 길쭉한 구조고, 돌고래도 야생동물이어서 정답이 없는데 꾸준히 교정훈련해서 지금까지 큰 사고 한 번 없었어요.”

그는 수중공연을 시도한 이래로 관중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후배들을 양성하기 전까지 그는 각종 질병과 싸우며 투혼을 불살랐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고충에서도, 사계절 내내 감기를 달고 살고, 시시때때 중이염이 재발해도 공연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박 조련사. 그러나 간혹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면 속수무책 발만 동동 구른다.

“조련사 실수는 기껏해야 미끄러지는 거예요. 늘 훈련을 공연처럼, 공연을 훈련처럼 하기 때문에 완벽을 기하죠. 가끔 돌고래 때문에 공연이 중단된 적은 있어요. 공연 중에 열정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이는데 그 땐 먹이 유인도, 조련사 말도 아예 소용없어요. 그러면 사회자가 나와서 ‘여러분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야생의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고 계십니다’라며 상황을 넘기죠. 다행히 관중들은 웃으면서 이해해줘요.”

그와 돌고래 사이의 비밀스런 교감은 이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수중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과 교감한다는 돌고래. 그래서인지 이들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른다. 서로의 감정을 읽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언어로 위로와 격려를 나눈다. 이들의 우정은 함께 한 시간만큼 견고하기만 하다.

서로의 감정을 교감하는 박 조련사와 돌고래는 보이지 않는 언어로 의사소통한다.

종의 관계 뛰어넘어 우정 교감해

이제 그의 유일한 바람은 돌고래 관심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사랑의 전제를 강조하는 그는 대대적인 관심과 지원이 전무한 우리나라 실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장 가까이서 유보상태를 지켜본 그로써는 이러한 현실에 비애를 느낄 뿐이다.

“일본 수족관은 총 70여개가 있는데 그중 40여개 수족관에 돌고래가 있어요. 게다가 이들 수족관에는 흰돌고래, 흑범고래, 낫돌고래, 범고래 등이 10마리 이상 있어요. 개체수가 다양하면 그만큼 공연내용도 풍성해져요. 돌고래에 대한 개개인의 관심은 높지만 국가나 기관은 외면하고 있어요. 국가적 차원에서 돌고래에 대한 관심을 가지길 하는 바람이에요.”

돌고래를 향한 그의 애정은 실로 각별했다. 사람과 동물이라는 종의 관계를 뛰어넘어 우정을 교감하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글/이영아 기자 사진/정현주 기자

이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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