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외국인 주민센터에서 한달에 2~3번 무료 의료봉사하는 권오성 씨

이주노동자들의 슈바이처
“선생님, 저를 기억하세요?”
“그럼요, 내 환자를 기억하는 건 당연하죠.”
 지난 11월 9일 오후 3시. 외국인 주민센터에서 열린 무료 진료센터에서는 진료가 한창이었다. 외국인이 문 열고 들어오면 맨 처음 얼굴부터 확인하는 권씨. 그는 지난 번 진료했던 중국동포를 한 눈에 알아봤다. 중국동포는 타국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의사가 신기한 듯 재차 확인을 거듭했다. 일반인과 의료진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일부터 그의 진료가 시작된다. 외로움이 사무친 이들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감동한다는 것을 권씨는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중국동포지만 아픈 곳을 표현할 때는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아~ 한국말로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배가 그러니까….”
“더부룩하다는 의미에요? 가스 차고 소화 안 되는 느낌?”
권씨는 머뭇되는 중국동포의 답답한 마음을 콕 찍었다. “맞아요, 맞아요”라며 그제야 당혹감이 사라진 그.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권씨 앞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통해 이런 일은 익숙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는 외국인들을 비롯해 노숙인, 성매매 여성 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해왔다. 어느 순간에는 손짓 하나에, 단어 한마디에도 척척 알아맞혔다.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의료봉사 했어요. 평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곳은 외국인들의 쉼터 같은 공간이에요. 안산은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해요. 이들에게 의료지원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요. 마침 외국인 주민센터가 건립돼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었어요.”
지난 3월 안산시 원곡동에 문을 연 외국인 주민센터는 안산시의 ‘26번째 동사무소’로 알려져 있다. 안산시 공무원 17명이 근무하는 이곳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외국인지원센터로 전국에서 유일하다. 365일 연중무휴 창업과 구직, 무료 진료센터, 은행, 통역지원센터 등을 운영하며 타향살이하는 외국인들에게 다양한 편의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외국인과 내국인의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여기에 오는 외국인들은 고학력인 분들도 꽤 있어요. 한 분은 모로코에서 왔는데 프랑스 영향을 받아 불어, 한국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구사해요. 자국에서는 변호사였고요. 이런 분들은 한국 사회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럴 때 그들이 간과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이해를 구해요.”
실제로 권씨가 이곳에 와서 깜짝 놀란 사실은 이주노동자들의 높은 의식수준이었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들을 겪어 본 권씨는 그동안의 편견이 와르르 무너졌다. 방글라데시, 네팔 등지에서 온 이들은 자국에서 변호사, 교사 등 전문직에서 종사했던 이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이 무시되고 차별받을 하등의 조건은 전혀 없었다. 단지 국적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여전히 이들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고, 노동력 착취 등 차별 또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권씨는 이런 현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안산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공식적으로 4만 명을 능가해요. 이들 역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면 기업의 노조처럼 파워를 형성할 수 있어요. 자신들은 죽도록 일하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월급이 형편없다면 불만은 쌓이죠. 이제 우리 사회에 이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어요. 이들과 충돌이 발생하면 국내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아요. 좋은 사회가 되려면 계층 간의 차별이 없어야 해요.”
현재 그는 초조한 심정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을 바라보고 있다. 일부 내국인들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 세금으로 불법체류자들의 복지까지 떠안으면 내국인들에게 돌아올 복지 혜택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우려 때문이다. 각각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입장만 강조하다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권씨는 작게나마 이런 갈등을 완충하는데 기여하고자 의료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아픈 곳을 진료하고 고달픈 타향살이에 귀 기울여주는 권오성 씨

소외계층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이웃 위해
권씨의 본격적인 의료봉사는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다. 의대생이었던 시절에는 농촌이나 산골 등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무의촌 주민들을 무료 진료했다. 지금은 무의촌 진료가 큰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두메산골에도 전부 보건소가 들어섰다. 산골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무의촌을 찾아 의료봉사 했던 때는 힘든 만큼 보람도 두 배로 컸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도심에 있는 특정계층을 위한 봉사가 절실하다.
“예전에 비해 농촌지역의 삶이 상당히 윤택해졌어요. 보건소의 질적 수준도 높아졌고요. 병원이 없어서 의료혜택을 못 받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요즘은 농촌에 계신 분들보다 노숙인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의 의료지원이 필요해요. 저 역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요. 관심을 가지면 기회는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구세군 교회에 다니는 그는 구세군 자체의 봉사활동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인들에게 의료봉사도 하고 무료급식도 제공했다.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눈길을 돌렸다. 그렇게 시작된 봉사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무엇보다 그가 가진 재능과 능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것에 삶의 활력과 보람을 느끼는 권씨. 한 번 발을 담근 봉사는 중독성이 강해 이젠 그의 삶의 일부가 됐다.
“봉사가 단순히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자에게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사와 환자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저는 제가 가진 능력을 주는 대신 즐거움과 보람을 느껴요. 예전에는 의료지식을 의사 혼자 독점했는데 이젠 환자들이 더 잘 알아요. 이미 자신의 병에 대해 사전조사를 다 하니까요. 어느 한 쪽이 우월한 입장이 아닌 동등한 입장일 때 봉사의 의미가 바로 선다고 생각해요.”
권씨의 봉사 대상이 소외계층 중에서도 가장 외면당하는 이들이라 가슴 아픈 사연도 많다. 외국인 주민센터에서 제공할 수 있는 의료지원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면 다른 병원에 연계해주는 것까지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시기를 놓치면 장애인이 되거나 목숨까지 위태로워 그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한 번은 20대 중국 교포가 손을 다쳐서 왔어요. 인대가 끊어진 상태였는데 일하다가 다쳤나 봐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 응급처지하고 큰 병원으로 보냈어요, 당시 보호자가 중국인이었는데 돈 때문에 수술을 포기한 것 같았어요. 게다가 큰 수술은 의료보험혜택이 안 돼 거액의 비용이 필요해요.”
노숙인이나 성매매 여성들의 경우에는 좌절감과 절망감도 맛봤다. 단기간에 이들의 뿌리 깊은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치유하는데 무리가 따랐다.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라 의사로서 무력감도 느꼈다.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이기에 완쾌에 대한 의지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이들의 건강상태를 살펴 약을 처방해주는 일이 전부였다.
“어떤 면에서는 이주노동자들보다 노숙인들의 상황이 더욱 열악해요. 이 분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치료에도 한계가 있어요.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해요. 환자들에게는 준비된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없어요.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워요.”
하지만 완쾌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뿌듯함을 느낀다. 병명을 모르고 왔다가 급성맹장염과 탈장 등의 진단이 나온 환자들이 종종 있었다. 이런 경우 신속하게 큰 병원과 연결해준 덕분에 환자들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완쾌했다. 이들이 그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의사로서 보람과 자부심도 더할 나위 없이 크단다.
장기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료봉사에 전념한 권씨. 봉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그는 이제 봉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돼버렸다. 진료비 보다 값진 보람의 기쁨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소외계층들을 향한 그의 의료봉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건강한 다문화 사회에 앞장서
권씨는 ‘더불어 고난’이라는 기독교의 핵심사상에 동조한다. 그는 기득권 있는 자가 힘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난을 느끼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때문에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의료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선 자리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갈등구조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는 권씨. 내국인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고, 외국인의 고달픈 타향살이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초창기 외국인 주민센터의 무료진료센터에는 하루 환자가 10~15명에 불과했다. 이제는 입소문을 타고 하루에 40~5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단순히 ‘무료’라는 이유보다 권씨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삼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맞아주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발적인 선행과 전문 의료기술이 합쳐져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이곳은 건강한 다문화 사회를 이룩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글·사진/이영아 기자

이영아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