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다. 그러나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문화유산을 사실상 국민의 대다수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 사람에 의해 남대문이 소실될 만큼 문화재 관리가 허술한 것은 물론이고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문화는 맥이 끊기고 있다. 이는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와 남의 나라 것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다. 하지만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성남민속연보존회 이덕영(52)씨. 그는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와 목상감 공예가이자 민속연을 보존하고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홀로 선 이씨. 하지만 전통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문화적 자긍심은 대단하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 전파하는 그를 만나보자.

낮에는 생업, 밤에는 작품 활동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이씨는 현재 성남민속연보존회 회장이다. 생업을 위해 아파트 경비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일상은 온통 ‘민속연’에 관심이 쏠려 있다. 휴일에 찾아간 그의 집은 작은 전시회를 방불케 할 만큼 작품들로 수북했다. 화수분처럼 이 방 저 방, 베란다에서도 끊임없이 나오는 연과 공예품들은 그의 왕성한 활동을 그대로 보여줬다. 민속연을 전파하는데 앞장서는 그는 공예가로도 정평이 자자하다.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넣거나 붙인 나전칠기와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목상감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목상감은 나무에 하는 봉박이 세공 기법의 하나로, 나무에 검은색의 흑단나무를 박아 문양을 낸다. 특허를 낸 목상감은 그가 개척한 신 공예 기술이다.
“목상감은 제가 전수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기술이에요. 상감기법을 응용한 건데, 하나 만들면 판화처럼 한 번에 여러 개를 만들 수 있어요. 대기업에서 이 기법을 팔라고 요구했지만 사양했어요. 상업성을 추구하고 싶지 않거든요. 전통문화가 너무 상업적으로 흘러서 새로운 전통기법을 고민하다 개척한 거예요.”
목상감 기법을 개발하기 전까지 그는 수많은 고배를 맛봤다. 완성된 작품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도 수차례 반복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려면 2~3개월이 소요됐고, 그 시간을 고스란히 허비하기도 했다. 그렇게 몰입하다보면 진력나서 몇 개월은 공예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일의 진척은 더디고, 마음은 초조했지만 ‘포기’와 ‘불가능’이 비집고 들어오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3년 만에 목상감 기법을 개발했다. 그러나 완성된 가구는 막상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구 표면이 고르고 판판해야 하는데 울퉁불퉁 죄다 뜨는 거예요. 그러면 가치가 없어요. 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걸 본 사람들은 괜찮다며 사가겠다는 거예요. 새로운 기법인데다, 가격이 나전칠기보다 싸니까요. 동양에서는 나전칠기만 선호하지만 유럽에서는 목상감을 더 좋아해요. 나전칠기는 나무의 고유한 성질이 사라지는 반면, 목상감은 그대로 살아있거든요. 목상감만큼은 후손에게 꼭 전수하고 싶어요.”
그는 공예가로서 어려서부터 타고난 손재주를 보였다. 이는 선친의 영향이 컸다. 선친은 나전칠기 장인이었다. 반닫이, 사방탁자, 화장대 등을 만들며 어렵게 7남매를 키웠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며 자라서인지 잔심부름을 시키면 곧잘 해내 칭찬을 받았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나전칠기 기술을 전수받겠다고 나선 적도 없었다. 그저 어깨너머 배운 게 전부였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던 그는 가업을 이어받은 형을 도와 본격적으로 공예가에 입문했다.
“어려서는 관심이랄 것도 없었어요. 그저 늘 봐오던 거였고, 시키면 도왔을 뿐이에요. 그 때는 전통기술이 소중한지 미처 몰랐어요. 학업을 중단하고 을지로에 있는 신성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간 후부터 본격적으로 자개 기술을 연마했죠. 몸에 아버님 피가 흘렀는지 제가 만들면 모두 칭찬하니까 더 신나서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나전칠기하면 ‘이덕영’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정착 그의 선친은 공예가로 살아가는 것을 반대했다. 얼마나 고되고 경제적으로 힘든지 누구보다 그가 평생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식들만큼은 고달픈 장인이 아닌 학자로 성공하길 바랐다. 사실 그가 생업과 공예를 병행하는 것도 선친의 우려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예가 성황을 이뤘던 시기도 있었다. 80년대는 아시아 게임이 국내에서 열리면서 외국인들이 공예품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주문이 쇄도했고, 선 결제를 취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일반 시민들도 선물용으로 지인에게 나전칠기를 선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보름씩 밤을 새도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그러나 90년대 접어들면서 장인에 대한 대우도 평가절하 되고, 공예품도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전통 공예가 사양산업 되면서 덩달아 장인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어요. 선진국은 장인을 직접 찾아와 예를 갖추고 공손히 주문하고 받아요. 물건도 소중히 사용하고요. 우리나라는 돈만 있으면 다 산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 장인을 인정하지 않아요. 가끔 쓰레기통 보면 버린 공예품들을 보는데 그럴 때마다 안타까워요.”
현재 성남시청 공예가로 활동 중인 그는 매년 작품 출품과 전시회도 갖는다. 낮에는 일하고 밤마다 틈틈이 만드는 이씨는 거의 일 년에 하나씩 작품을 출품한다. 혼과 열정을 담은 그의 작품에는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꿈틀대고 있었다.

15년 간 4천 개 이상 민속연 제작해 보급
누구보다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이씨는 이중생활을 넘어 삼중생활을 한다. 공예가와 경비원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성남민속연보존회의 회장까지 역임하고 있다. 1997년부터 민속연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유치원을 비롯해 주민자치센터, 성남문화원, 학교까지 어디든 찾아가는 이씨. 지역주민에게 민속연 만들기를 알려주고,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연싸움에도 직접 출전한다. 때문에 지역에서 ‘연 아저씨’로 통한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연만도 4천 개가 족히 넘는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시에서 열린 ‘민속연 단체전 연싸움’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미 연싸움 대회에서 그가 수상한 경력도 화려하다.
“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전통놀이에요. 임진왜란 때는 연을 통신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농민들이 농번기에 일하지 않을 정도로 연 날리기에 심취해 금지한 적도 있어요. 아이들이 연에 대해 흥미를 못 느끼고 전수되지 않는 것은 전부 어른들 책임이에요. 제가 사는 지역부터 연을 보급해 대한민국 전역에 연 날리고 싶어요.”
그가 처음 연에 관심 갖게 된 것은 15년 전이다. 이씨는 유람선을 타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잠실 선착장에 갔다가 우연히 어르신들이 연싸움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아버님이 만든 연을 형들과 함께 날렸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 자리에서 이씨는 연을 세 개 샀다. 아이들과 연을 날린 순간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처음 연을 날려 본 아이들도 즐거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르신들이 연싸움 하는 것 보니까 어릴 때 제가 했던 연싸움과 다르더라고요. 사실 어릴 때는 구경만 했지 직접 연 날려본 적이 거의 없어요. 형들이 자기들만 연 날리고 저한테는 멀리 떨어진 연을 주워오라고 시켰어요. 어르신들 연 날리는 모습 보니까 옛 기억이 영화 필름처럼 스치더니 연을 띄워보고 싶은 욕구가 일더라고요.”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의 선친은 직접 연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연보다 실이 더 귀했던 시절이라 끊어진 연을 주워오는 게 그의 전담이었다. 형들이 서울 중구 만리동에서 연을 띄우면 마포구 아현동까지 멀리 날아 떨어졌다. 남의 집 마당에 떨어지는 것은 차라리 나았다. 지붕에 떨어지면 지붕까지 기어 올라가 주워야 했다. 온갖 욕설을 듣고, 매 맞으며 주웠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이씨. 너무 띄워보고 싶었던 연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며 그의 관심은 연에 집중됐다. 집에 오자마자 그는 연과 ‘얼레’라는 연줄을 만들었다.
“직접 만든 연을 가지고 주말마다 탄천에서 연을 띄웠는데 관심 갖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우리만 즐겁게 놀 게 아니라 확산시켜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한국일보에서 주최하는 연날리기 대회에 참여했어요. 연싸움해서 조 1등을 하더니 준결승에 진출하고 4등 했어요. 트로피와 부상으로 카메라도 받았어요.”
대회에 출전해 수상까지 하자 그는 동호회 회원을 모집했다. 당시 8명의 회원들과 성남민속연보존회를 결성했다.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본격적으로 연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전통 연에 전무했던 그에게 연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전통 연을 구현하는데 적합한 한지와 대나무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발품을 팔아 인사동을 누볐지만 그가 찾는 한지는 없었다. 대부분 붓글씨 쓰는 한지뿐이었다. 결국 사방팔방 수소문한 끝에 전라도에서 가까스로 그가 원하는 한지를 발견했다.
“연 만드는 한지는 두꺼우면 안돼요. 한지는 가볍고 질겨야지 바람도 잘 타고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독학으로 배웠어요. 연 잘 날리는 사람 찾아 귀동냥도 했어요. 한 번 무언가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때문에 전국을 누비다 전라도의 한지 공장을 찾았어요. 대나무도 마찬가지고요. 공장에 대량 주문해서 연 배운다는 사람이 찾아오면 무료로 나눠줘요.”
지금까지 그가 만든 연이 몇 개인지 그 역시 잘 모른다. 대략 어림짐작해서 4천개 이상이 족히 넘을 뿐이다.
하지만 연에 들어가는 그림은 모두 제각각이다. 때문에 늘 문양을 고심하는 이씨. 길을 가다 하늘을 보고, 집에서 TV 광고를 보다가도 디자인을 구상하고 응용한다. 연 하나를 만들 때도 혼과 열정을 들이기 때문에 전부 작품이 된다. 그러나 절대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는다. 상업적인 이윤을 추구하면 장사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물건을 만들 때, 오래 쓸수록 튼튼하고 빛이 나도록 만들라고 하셨어요. 사회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 생각하지 말고 모든 노력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연히 알아준다고 가르치셨어요. 그럴 때 진정한 값어치가 있다는 교훈이 제가 공예나 연 만드는데 아직까지 작용해요.”
 
장인정신 이어가는 아름다운 아집
결코 똑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씨. ‘장인’과 ‘장사꾼’을 엄격히 구별해 장인 정신을 이어가는 그에게서 아름다운 아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공예는 사양산업으로 전락해 다소 어렵지만 그는 목상감 기법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민속연이 다시금 대한민국의 하늘을 누빌 수 있도록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고 싶단다. 하늘 높이 멀리 멀리 날아가는 오색찬란한 그의 연.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파하는 그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글·사진/이영아 기자

이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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