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불문 모자 뜨기 열풍
회사원 김근식(31·안산)씨는 요즘 직장생활이 180도 달라졌다. 전에는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그런 김씨가 최근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 열심히 골몰하고 있다. 그가 열중하는 것은 놀랍게도 뜨개질이다. 처음에는 뜨개질하는 그를 보고 동료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며칠 만에 중도포기할 거라고 내기를 건 동료들도 있었다. 그런 김씨가 일주일 째 뜨개질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고 무관심했던 동료들이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에 동참한 것은 제 생일 때였어요. 여자 친구가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며 모자 뜨기 키트를 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런 걸 어떻게 뜨냐고 했죠. 내심 다른 선물을 기대한 터라 실망도 했고요. 선물인데 다른 사람 줄 수도 없고, 며칠 집에 묵혔다가 한 번 키트 상자를 열었더니 모자 뜨기 설명서가 있더라고요. 한 번 해보자고 뜬 게 이 정도로 잘할 줄 몰랐어요. 하하.”
그는 벌써 세 번째 모자 뜨기에 돌입했다. 처음 김씨는 줄바늘을 어떻게 잡는 줄도 몰랐다. 몇 번을 뜨고 풀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젠 올이 풀릴까 노심초사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른 동료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정도로 모자 뜨기에 능숙해진 김씨. 그의 영향으로 사무실은  남녀 불문하고 ‘뜨개질 바람’이 불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뜬 털모자가 아프리카 아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김씨는 “금전적인 기부나 후원은 다른 단체에서도 많이 하잖아요. 매달 2만원 후원하면 자동이체로 빠져나는데 모자 뜨기 캠페인은 달라요. 키트 구입한 만 원에는 털모자를 뜰 수 있는 구성물과 택배비, 항공료, 아동 후원금까지 포함하거든요. 후원하는 사람의 마음도 뿌듯할 만큼 만원이 의미 있게 사용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저 역시 모자 뜨기를 계속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캠페인 참여자 오근혜(27·서울)씨. 평소 금전 후원이 내키지 않았던 그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을 통해 모자 뜨기 캠페인이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털모자가 절실하다는 글을 접한 그는 곧바로 모자 뜨기 키트를 구입해 캠페인에 동참했다. 자신이 뜬 모자를 누군가 쓸 것을 상상하며 한 땀 한 땀 사랑과 정성을 엮었다.
“요즘은 NGO 단체들도 부정부패가 심해 금전 기부는 내키지 않았어요. 돈으로 후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보다가 모자 뜨기 캠페인을 찾았어요. 초보라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방법이 상세히 나와서 어렵지 않았어요. 하루에 한 시간씩 텔레비전 보면서 했어요. 완성했을 때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어요.”
 닷새 만에 완성한 모자는 세이브더칠드런에 보내기 전,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짤막한 소감을 남겼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모자를 떠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벅찬 감동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털모자를 보낼 때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쁘게 자라는 너희야말로 온 우주를 대표하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라는 따뜻한 글귀와 함께 실어 보냈다. 그는 모자 뜨기 캠페인을 통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을 맛봤다. 또다시 캠페인에 동참하고 싶다는 오씨. 그의 아름다운 실천은 계속 릴레이 될 것이다.

시간과 정성, 노력이 ‘한 올 한 올’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은 올해 시즌 2를 맞았다. 지난해 11월에 처음 실시된 캠페인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2만 5천 개의 털모자를 모았다. 모자는 올 3월 신생아 사망률이 높은 아프리카 앙골라, 동남아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등 3개 국가에 보내졌다. 시즌 2는 지난 10월 7일부터 2009년 3월 31일까지 진행되며 모아진 모자는 아프리카 말리에 전달될 예정이다. 이곳에는 추가적인 기초의료지원도 함께 펼칠 계획이다.
캠페인은 세이브더칠드런 미국에서 매년 발간하는 ‘어머니보고서(어머니로서 살아가기 좋은 나라 순위 발표)’의 보고에 기초해 시작됐다. 지난 2006년 발표된 어머니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중 4백만 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지 1개월 이내 생명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교적 저렴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바로 폐렴항생제와 저체온증을 막아 줄 털모자 등이 그 대안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 홍보팀 진모연 씨는 “아프리카는 더운 나라지만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엄청 심해요. 밤이면 영하까지 기온이 떨어져요.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보온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모자의 체온은 인큐베이터 역할을 대신해 저체온증을 막아줘요. 털모자를 통해 신생아 사망률을 60%까지 줄였어요. 현지의 모자보건세터와 같은 기관에 탈수방지예방약, 설사예방약 등 기초의료지원과 후원금도 함께 전달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의 가장 큰 의의는 ‘참여형 기부’라는 새로운 기부문화를 국내에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일회성 후원과 달리 모자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 정성이 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시된 시즌 1에는 남녀노소 불문한 수많은 후원자들이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그 중에는 초, 중, 고등학생부터 남녀 직장인 모임, 그리고 70세 이상의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자 하는 장애인, 생활보호대상자, 곧 태어날 자신의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임산부 및 자녀를 가진 어머니 등 전국 각지에서 참여의 손길을 보탰다.
“모자 뜨기는 어떤 캠페인보다 마음을 담기 때문에 중독성이 강해요. 한 번 참여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알리기 때문에 저절로 홍보 효과가 있어요. 한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모자 뜨면 최소 10명에게 홍보되는 효과가 있어요. 정형화된 모자를 보내면 편리하고 저렴할 수 있지만 캠페인의 목적은 단순 기부가 아닌 참여형 기부예요.”
시즌 2는 지난 10월 7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방송인 박경림 씨와 임산부 10명이 함께 모자 뜨는 행사를 진행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특히 박경림 씨는 오는 1월에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로서 “작년에 시작한 시즌 1에도 참여했지만 특별히 예비엄마의 마음으로 함께하는 올해는 이 캠페인이 더욱 뜻 깊게 느껴진다. 말리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간절한 마음이 든다”며 이번 캠페인에 대한 각별한 의미를 전했다. 또한 박씨는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예쁜 모자를 떠서 말리의 신생아들에게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이번 시즌 2 캠페인의 수혜국인 아프리카 말리는 세계 10대 최빈국 중 하나로 UN인간개발지수(각 나라의 선진화 정도를 측정하는 순위)가 177개국 중 173위에 해당하는 국가에 속한다. 말리에서는 매년 5명 중 1명의 아동이 5세 이전에 사망하며 사망원인의 60%는 말라리아, 폐렴, 설사병 등 간단한 조치로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이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은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도 동일한 캠페인이 진행된다. 미국에서는 ‘Knit One, Save One(모자 하나로 한 아기의 생명을 살리세요)’라는 모토로 할리우드 스타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줄리아 로버츠가 모자 뜨기에 참여하고 있다.

작은 정성 모아 힘 발휘할 때
시즌 1에 비해 시즌 2의 반응은 더욱 뜨겁다. 2007년 캠페인 기간 동안 총 2만 5천개 모자가 모인 반면 2008년 12월 현재는 이미 3천 5백 개가 모였다. 시즌 2 종결까지 3개월 남은 기간을 감안하면 참여자는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은 참여자들의 숫자 보다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주목한다. 한국으로 유학 온 리투아니아의 모(29) 남학생은 국적을 초월하고 캠페인에 참여했다. 서툴지만 손수 모자를 떠서 기관에 보내와 훈훈함을 더했다. 그 외에도 감동적인 사연을 지닌 이들도 많다.
진모연 씨는 “작년에 가장 많은 모자를 뜬 이들인 70세 이상의 여성 노인들이에요. ‘한나회’ 회원 20명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1,500개의 모자를 보냈어요.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관절이 쑤실 텐데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셨나 봐요. 모자 뜨는 것을 사명이라고 여기세요. 라면 박스에 400개의 모자를 담아 보낸 분도 있어요. 시즌 1이 끝난 줄 모르고 계속 뜨셨다가 시즌 2에 보내셨어요. 이처럼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아 참여형 기부의 의미를 되새겨 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난 IMF 경제위기보다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인 요즘.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어려운 이웃들을 되돌아보는 훈훈한 마음이 식을 줄 몰랐다. 돈의 액수를 떠나 시간과 정성을 보태는 캠페인은 오는 3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소외계층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곱절의 힘이 된다. 개개인의 작은 사랑과 정성으로 희망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글/이영아 기자 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이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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