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인해 생계전선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전반에 불고 있는 이른바 여풍(女風) 때문에 취업문이 여성에게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가장의 현실과 문제점을 살펴본다.

우리사회의 여성가장들

지난해 5월 정부의 재취업 훈련을 거쳐 도배사로 일자리를 구한 박모(38)씨. 지난 9월까지는 그래도 도배를 하는 집이 있어 생활비를 벌었으나 11월 들어서면서 부터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못해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단 하루 일을 했을 뿐이다. 남편이 살아있던 지난해까지는 그래도 생활을 해왔으나 지금은 아이들 학원비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취업을 위해 노력하다, 시체를 닦는 일(염사일)을 배워 영안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성모(45)씨. 성씨는 “처음에는 여자가 염사일을 한다고 할 때 주위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여자시체는 여자 염사에게 부탁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지금은 여자 염사도 많아 일감 찾기도 어려워 생계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고 하소연 했다.

한편으로는 빠듯한 임금에 생계가 어려워 두 가지 일을 하는 여성가장들도 늘어나고 있다.

주부 정모(35)씨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의 술시중을 든다고 생각하면 참기가 힘들지만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하고 있으나 벌이도 시원치 않다"고 말했다.

특히 음식점 주방보조나 가사도우미 등 근로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직종에는 생계전선에 뛰어든 주부들과 여성가장들이 대거 몰리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성가장 빈곤율 남성가장보다 높아

우리사회에서 여성가장들의 일자리는 있을까. 특히 중장년층 여성가장인 경우는 어떠할까.

여성들은 이혼이나 사별을 통해 언제든지 남편 없이 생활을 꾸리는 여성가장이 될 수 있다.

이혼율이 증가함에 따라 여성 가구주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전체가구의 18.7%를 차지하는데, 여성 가장의 대부분이 수입이 낮은 직업이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돈을 버는 상황이라 빈곤율은 28.8%로 남성 가장(14.9%)에 비해 높다.

여성실업본부에서 취업 상담을 하고 있는 실무자들에 따르면, 여성 구직자가 35세가 넘은 경우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거나 각종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상관없이 단순노무직 이외에는 취업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여성 취업자는 취업업종이나 직종에 따라 남성과 차이가 많다. 여성실직자의 취업경험과 숙련수준, 취업희망업종이나 직종도 역시 차이가 있으며, 남성과는 달리 여성실직자의 상당수는 가구주의 실직에 의하여 취업을 원하는 고용형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여성구직희망자 중 대부분인 차지하는 40∼50대 중년 주부들의 경우 심각한 구직난에 취업은 커녕 일용직 일자리도 얻기 힘든 상황이다.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주부 박주연(45·영등포)씨는 얼마 전부터 일자리를 찾고 있다.

남편의 월급이 3개월째 밀려 이대로 가계살림을 꾸려나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딱히 배워놓은 기술도 없어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며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급한대로 일용직 근로라도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인천의 한 청소대행 업체에는 일감을 찾는 주부들의 문의가 하루 평균 10∼20명에 이르고 있다.

이 업체는 “고객의 수는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으나 일자리를 찾는 이들의 문의는 두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취업문이 막히자 일부 주부들은 유흥주점 및 노래방에서 도우미 아르바이트에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주부 정모(37)씨는 “지난 9월 실직한 남편이 집을 나간 후 낮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일주일에 2∼3번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남의 술 시중이나 들어야 하는 처지가 참기 힘들지만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했다.

특히 소위 '아줌마'로 불리는 중년 여성들은 중년 남성들에 비해 어떻게든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자활의지가 강해, 3D 업종 등도 마다하지 않는다.

텔레마케터와 식당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심모(47)씨는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아줌마한테 가장 밑바닥에 해당하는 일들을 시켜요. 아줌마들은 어떻게든 다 해낸다는 생각으로요.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남들 같으면 창피해서 못할 일도 뚝딱 해치우는 아줌마들도 많죠.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그거라도 감사해 하며 일해야 하는 거죠."라고 말을 이었다

여성가장 증가원인은 이혼율 증가와 경제위기

한편 여성가장 증가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주로 제기되는 원인은 이혼율 증가와 경제위기 이후 증가한 남성 실업자들의 증가다.

한번 결혼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202개 경제·무역·사회 지표로 본 대한민국’(2002)에 따르면 한국의 이혼율은 인구 1천명당 2.8쌍으로 미국 10.1쌍, 영국 10.1쌍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최근 결혼하는 10쌍 중 3~4쌍은 5년 이내에 이혼한다. 이혼 이후 아이의 양육권을 여성이 가져가는 수가 증가하면서 많은 모자 가정들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IMF경제위기 이후 지속되는 경제 불황으로 많은 남성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가사공간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이 직접 취업전선으로 뛰어들고 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IMF경제위기 이후 1999년에서 2000년 사이 배우자가 있는 여성가장의 수는 70만 4063명에서 83만 1명으로 급증한 반면,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한 여성가장 수는 131만 3172명에서 131만 4644명으로 소폭 증가했다고 말했다.

2004년 상담사례 내용을 발표한 ‘(사)평등의 전화’에서는 40대 이상 중장년층 기혼여성의 상담비중이 높았고 2003년에 비해 상담건수도 7.4% 증가한 것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퇴직한 중년 남성들이 '연령'때문에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년 여성들이 가장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성가장들의 실직적인 임금은 매우 열악하다.

몇 년전 이혼하고 두 자녀와 함께 영등포에 사는 주부 최모(36)씨는 최근 다니던 조금마한 가내공장이 문을 닫아 생계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학비도 만만치 않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실직 이후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경기 불황 탓과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 수 없이 동네 마트에서 시간당 돈을 받고 일을 하지만 적은 급여에 한숨만 나오고 있다.

최씨는 “시간을 내서 조금이라도 더 받는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일자리가 없어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일 할 수 밖에 없다”며 “동네시장 근처에서 노점상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여민회가 ‘여성의 빈곤화 방지를 위한 여성가장 실태보고회’는 여성가장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을 108만5천원 이라 말했다.

신희정 정책위원(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강사)은 ‘사회적 배제 관점에서 본 여성가장의 생활실태 연구’ 의 논문 중 대전지역 5개 구에 사는 여성 단독가장 27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여성가장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의 평균은 108만5천원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선정 기준인 2008년 최저생계비 102만6603원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차상위계층 선정 기준 소득인 123만1924원보다는 크게 낮았다고 발표했다.

특히 여성가장 본인의 월평균 근로소득의 평균은 89만4천원이며, 생계를 위한 근로활동을 하는 가족 구성원이 없는 여성가장 가구는 조사대상의 82%를 차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조사대상 가구의 부채수준은 평균 2500만원 정도 수준이고, 월평균 생활비는 116만원으로 나타나 부채가 과중하고 저축을 거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현재 여성가장의 고용형태는 53.5%가 임시고용 상태이고, 13.2%가 실직상태로 나타나 노동시장에서 여성가장의 지위가 낮고 불안정 하는 등 매우 열악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비해 여성가장들은 희망 고용형태를 정규직 53.2%, 자영업 24.5%로 꼽았다.

그러나 여성가장의 36.8%만이 ‘직업훈련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고, 63.2%는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응답해 안정적 직장에 접근하기 위한 교육훈련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실직여성가장들은 실직 및 일자리 극감, 정부의 단기적인 실업대책으로 인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여성 실업가구중 여성가구주는 11만8천명으로 여성실업자 중 20%이상이 여성가장이다.

구직등록을 포기한 여성가장과 남편이 근로 능력이 없는 실질적인 여성가장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가장들도 일할권리가 있다

한편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대표 최상림)는 2008년 3월 강남구민회관에서 ‘빈곤추방 여성노동권 확보 희망본부(희망본부)’ 발대식’을 가지며 여성의 일 할 권리를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희망본부는 발족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일자리 노동자로, 가사 간병 사회서비스 노동자로, 자활공동체의 일원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여성가장으로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삶은 어렵기만 하다”며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이야기 하고, 여성들이 경제활동에도 더욱 더 진출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위한 육아지원의 장밋빛 그림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열심히 일해도 가족과 살아갈 수 없는 근로빈곤의 현실을 외면한 채 진행되는 정부 정책은 여성들에게 고단한 노동과 가난의 굴레를 덧씌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근로빈곤의 현실을 진단했다.

이에 따라 희망본부는 “우리사회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로 이 같은 여성의 문제를 주목하고 그 해결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체가 돼 하나의 목소리로,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전국적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로빈곤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빈곤 방지 위한 자립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지원정책을 수립하고, 한부모 가정 빈곤방지 위한 통합적 지원정책 수립, 빈곤세습화 단절 및 경제활동 참여여건 개선을 위한 육아지원정책의 수립,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여성고용차별을 개선, 공공부조 개편을 통한 소득보장지원정책 강화” 등 5대 정책과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 등 지원단체 실직여성가장 지원

실직여성가장의 대부분은 저학력, 무기능으로 재취업률이 매우 낮다. 이러한 실직여성가장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와 여성단체에서는 생계비를 지원해 오고 있고, 의료지원을 위한 여성가장 의료카드를 발급하는 등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노동부에서도 실직여성가장 지원을 위한 특별 대책인 여성가장 실업자 특별훈련, 여성가장 창업대부, 여성가장 채용장려금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유능한 재원으로 평가받았지만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던 주부 최모(39)씨. 3년 전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재취업의 길을 모색했지만 여성에게 벽은 높았다. 이리저리 활로를 찾던 최씨는 여성부가 지원하는 전업주부 재취업사업을 알고 전산회계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석 달 동안 힘들게 공부해 전산회계 관련 자격증 등을 딴 최씨는 이를 활용해 계약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

계약기간이 끝난 2007년, 최씨는 이번엔 노동부의 취업지원프로그램에 지원했다. 1년 동안 수당을 받으며 컴퓨터디자인 CAD를 배웠다. 마침내 그는 한 기계업체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정부정책을 멋지게 활용한 그녀는 주변 여성들에게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한다. ‘정부의 취업지원프로그램 전도사’가 된 셈이다.

최씨는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은 수업 내용도 좋고 취업까지 알선해주기 때문에 학원에서 혼자 준비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며 “주위사람에게도 권유하는데 의외로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직업상담과 교육훈련, 취업지원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여성 새로 일하기센터를 전국 100곳에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곳에선 전문상담사가 적성검사 결과와 학력, 경력을 종합해 진로설계를 하고, 이에 따라 취업연계 혹은 교육훈련 등 방향을 제시해준다.

또한 주부들이 사회에 다시 나서기란 쉽지 않지만 최씨처럼 정부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기회를 살릴 수 있다.

한편 민현주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정치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보여주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권한 지수가 우리나라는 2007년 93개국 중 63위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어렵게 하는 육아부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불평등한 근로여건 등을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해 앞으로의 정책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글/ 이정직 기자

이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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