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월간더불어사는사회 특집/기획
분단의 철조망 아래 시름하는 사람들남북관계 경색, 불투명해진 이산가족들의 희망
김미선 기자 | 승인 2009.04.29 17:31

이슈&이슈_남북 이산가족

 

분단의 철조망 아래 시름하는 사람들

남북관계 경색, 불투명해진 이산가족들의 희망

 

지난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또 다시 긴장의 국면으로 돌아섰다. 북한이 지난 3월 한미 합동군사 훈련 때 군 통신선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개성공단의 남측 인력을 세 차례나 억류한 데 이어 최근 우리나라가 PSI 협약을 체결했다는 보도 등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두된 지금, 이러한 남북 긴장관계 속에 마음까지 싸늘하게 얼어붙는 이들이 있다. 더욱이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이산가족 상봉도 지난해 전면 중단된 채 이뤄지지 않았다. 이념이 대립하는 분단 체제 속에서 가족권이라는 기본권까지 박탈당한 이산가족들의 현황과 이야기들을 다뤄본다. -편집자주-

 

그리움의 세월 60년

인천에 거주하는 조명호(가명, 82세) 할아버지는 황해 송화군이 고향이다. 마을 과수원에는 사과나무가 많았고 냇가에 들어가 고기를 잡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교직 생활을 하다가 장사를 해보려고 혼자 월남하면서 자리가 잡히면 이내 가족들을 부를 것이다 했던 바람은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됐다. 부산과 서울 등지를 떠돌며 장사를 하다가 인천으로 가서 하역 일을 10년 정도 하고 퇴직했다. 북한에 있는 가족이라곤 남매뿐인 할아버지는 명절 때면 특히 누이동생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매일 같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 동생을 그러나 “내 생애에 너를 만나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 희망 없는 기다림만 계속될 뿐이다.

경기도 연천의 최정례(가명, 72세) 할머니는 20여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지금 아들 내외와 함께 단출하게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황해 재령군의 고향 땅에서 1남 4녀의 맏딸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다복했던 가정에서 지냈던 할머니. 전쟁 당시 부락 내에서 처자들을 먼저 피난 보내기로 결정이 나고, 시루떡 몇 개를 쪄 친구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을 때만해도 이렇게 가족들과의 이별이 오래 걸리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부모님은 생존해있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사진 한 장도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할머니는 가족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다 이제는 종이에 옮겨보기도 한다. 절절한 그리움은 더해 가는데 시간은 촉박해지고. 마음만 조급해진다. 푸념도 해보고 허공에 대고 소리도 쳐보지만 혈육에 대한 희망을 끝내 놓치는 못한다.

위 사연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한 민족이 남북으로 단절되어 특수한 분단 상황 속에 이들의 가족권은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위 두 분의 사연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서울 오순희(가명, 77세) 할머니는 스무살 결혼하여 시댁을 따라 오게 되면서 황해 연백군의 고향땅을 떠나왔다. 고생 끝에 지금은 그럭저럭 살림이 궁하지는 않게 살고 있지만 함께 월남한 언니가 16년째 병중에 누워있다. 자신의 건강도 자신할 수 없다. 오랜 그리움의 세월이 벌써 60여년에 이르니 고향에 계실 어머니의 연세가 102세가 되었다. 어머니가 생존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남동생만이라도 꼭 만나고 싶다는 할머니. “어머니는 어떻게 모시고 살았는지, 결혼은 했는지 항상 누나는 네 생각뿐이다. 더 늦기 전에, 더 기운 빠지기 전에……. 만났으면.”하고 시름의 흔적처럼 주름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처럼 혈육상봉의 꿈을 놓지 못하는 실향민 및 납북자, 그 가족친척을 포함한 남북이산가족은 모두 1천만 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분단 상태가 반세기가 넘게 경과되면서 유명을 달리하는 이산1세대들이 증가하고 있어 남북이산가족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할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우리나라의 이산가족의 역사는 근세에서 비롯되었다. 6.25동란 이외에 강대국에 의한 국토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사정이 있었고, 정전상태 하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족이산 등을 포함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남북이산가족이란 1945년 9월 이후 동기여하를 불문하고 남북한 지역에 분리된 상태로 거주하고 있는 자와 그들의 자녀를 말하며, 여기에는 전쟁으로 발생한 실향민과 납․월북자 및 정전협정 이후의 납․월북자나 북한이탈주민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시행령」(제19조 제4항)에서는 “8촌 이내의 친․인척 및 배우자 또는 배우자이었던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의해 이산가족의 수는 남북한 합해 약 1,000만 명에 이르며, 북한의 경우 월남자 가족과 남한 출신가족이 전체인구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밖에 중국에 약 200만 명의 교포, 러시아에 약 40만 명의 교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의 자료를 보면 올해 3월말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7375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3만9821명이 고인이 됐다. 다시 사망자 현황을 지난 1월말과 비교해보면 불과 두 달 사이에 무려 895명이 증가한 셈이다. 또한 사망자를 제외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의 연령을 살펴보면 80-89세가 33.2%, 70-79세가 38.3%를 차지해 앞으로도 이와 같은 빠른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이산가족 문제가 속히 이루어져야할 우리의 당면 과제임을 알 수 있다.

남북이산가족문제는 이념이나 정치적인 문제에 앞서 먼저, 인간의 기본권인 가족권을 보장하려는 인도주의 문제임을 지각해야 한다. 가족은 인간본성의 집단체인 동시에 인류사회의 기본단위로서 어느 사회나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제네바 협약의 이산가족 재회를 목적으로 하는 조회에 대하여 충돌당사국의 편의제공 의무규정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국제인권B규약). 국제연합헌장과 세계인권선언(제16조) 등을 통해 보장되어 있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북은 민족적 차원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라는 규정에 동의한 바 있다. 따라서 남북당국은 이들의 가족이산이 국제정치적 분단과 민족적 수난 속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되었다는 점에 책임을 지고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이산가족 문제는 ‘혈육의 정’을 풀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유명을 달리하는 이산1세대가 급격히 감소되고 있는데 따라 그 시급성이라는 당위성을 가졌다. 몇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가족재회에 성공한 이산가족들마저 그 동안 살아온 배경 등이 달라 감격과 기쁨이 지나간 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보여 주듯이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는 많은 사회적․법률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얼마 남지 않은 이산1세대들의 생존기간 중에 조속히 이루어져야만 되는 인도적 과제이다.

 

혈육의 정은 분단선 보다 높다

이산가족의 재회운동은 그동안 정부차원과 민간차원에서 꾸준한 노력으로 전개해왔다. 먼저, 1971년 8월20일 남북적십자간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사상 첫 회담을 개최한 이래 20여 차례의 예비회담과 8차례의 본 회담을 통해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이 진행되었다.

그 후에도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1989년 11월21일 제 8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에서 북한이 '혁명가극' 공연주장으로 2차 고향방문단 교환이 무산, 1992년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 방문을 위한 합의를 이루었으나 이 또한 북측의 갑작스런 거부로 무산되었다. 1998년에도 남북 차관급 회담을 통해 우리 측이 이산가족문제와 비료지원문제를 병행 협의, 해결하려 했으나 북측의 '先비료지원 요구'로 무산되는 등 우리 측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 북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하다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상봉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남북정상은「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민족적 과제로 인식, 2000년 6월15일 합의 서명한 「6.15 남북공동선언」제 3항에서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2000년 6월27일부터 30일까지 북한의 금강산 호텔에서 적십자회담을 세 차례에 걸쳐 개최, 2000년 6월 30일 이산가족의 남북 동시 교환방문(2000.8.15-18)과 비전향장기수 송환(9월초) 관련 문제 등에 관해 합의했다. 그 결과 2000.8.15-18, 11.30-12.2, 2001.2.26-2.28간 세 차례에 걸쳐 서울과 평양에서 쌍방 100명씩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개최되었다. 그 후 약 14개월만인 2002.4.28-5.3간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2002.9.13-18간 제5차, 2003.2.20-25간 제6차, 2003.6.27-7.2간 제7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금강산에서 개최하였다.

당시 수백만의 실향민들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신문과 방송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이산가족 상봉 중계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반세기 만에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이산가족의 저마다의 사연들은 그 어떤 픽션보다도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한 정부의 대북 지원을 두고 ‘퍼주기’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의 실현을 위하여 '거의 매번' 남한 측은 북한에 대하여 식량(쌀)과 비료를 제공하였으며 지난 7년 동안 대체로 매년 쌀 40만 톤과 비료 30만 톤씩이 북으로 갔다. 이에 따라 최근 중단된 남북 적십자 회담에 대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의 이상철 대표단장은 “남북 적십자 회담은 지난 37년간 모두 16차례에 걸쳐 고작 1600명이 상봉한 비효율적인 행사에 불과했다면서 지금의 방식대로 이산가족들이 모두 상봉하려면 최소 500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극히 한정된 소수인원의 이벤트식 방문교환을 그나마도 쌀 제공과 맞바꾸어 띄엄띄엄 진행한다는 것은 단연코 지양되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굳게 닫힌 금강산 면회소

최근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되어 가면서 위기의 국면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정권이 바뀐 이래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되고 이산가족 상봉은커녕 금강산과 개성 관광도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특히 북측이 개성공단 인력을 억류시키고 지난 4월 5일에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며 긴장으로의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주말,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저지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WMD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참여키로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번 PSI 전면참여 결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으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한 뒤 곧바로 이뤄진 것으로 국제사회의 WMD 확산 노력에 동참하는 동시에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야기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정부가 PSI에 가입할 경우 이를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협박'해왔다는 점과, 또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전면가입을 유보해온 PSI에 대해 입장을 바꿔 전면 가입키로 함에 따라 긴장이 촉발되는 상황이다. 위기일발의 정치적인 상황이 다시 이들의 희망까지 얼어붙게 하고 있다.

남북은 2007년 10·4정상선언에 이은 11월 9차 적십자회담에서 이듬해 500가족 대면 상봉과 160가족 화상 상봉, 120가족 영상편지 교환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2008년 2월5일 40가족의 영상편지 교환을 끝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은 전면 중단되며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외적인 남북관계의 분위기도 변화했다. 정부는 대북의 인도적 지원 규모를 대폭 감소했다. 2008년 1160억원이었던 대북 지원은 2000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민간(724억원)을 뺀 당국 차원의 지원은 436억원에 불과했으며 더욱이 당국 차원의 쌀·비료지원은 전혀 지원되지 않아 대북 식량지원이 시작된 1995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남북교역에 있어서도 올 1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9.6% 감소한 1억1300만달러에 그쳤다. 이러한 남북관계 악화가 민간 교류협력이라는 이산가족 문제에 직결해 위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지난 1월 22일 정부는 제3국을 통한 민간차원 이산가족 상봉 지원비를 현재 18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인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정부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어렵게 되자, 남북교류기금에서 한국적십자사를 통해 지출되는 이산가족교류 지원비를 인상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 이산가족은 300만원, 납북자, 국군포로 등의 이산가족은 규정에 따라 그 배인 6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생사확인 지원비는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1년에 한번 지급되는 교류지속비는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이를 두고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0년 3월 이래 교류지원비가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고, 중국의 위안화 가치도 상승했으며, 남북 당국 간 경색국면에서 제3국에서의 만남을 좀 더 촉진할 필요성도 있어 경비지원액을 인상했다”며 이와 같은 인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논란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 정부 출범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근본문제를 도외시하는 임시방편의 대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15선언’이 있었던 2000년 이래 2007년까지 남북 이산가족상봉 사업은 대면상봉 16회, 화상상봉 7회 등 1만9960명의 상봉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는 아직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의 극히 일부의 회한을 풀었을 뿐.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만 12만 명이 넘고, 80세 이상 고령자가 3만 명을 넘어선 시점에서 이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대책으로는 미흡한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상봉을 기다리다 사망한 분이 현재까지 3만9000명이 넘어 곧 4만 명에 이르게 될 것으로 추정한다면 이러한 제3국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지원비의 확대는 근본문제를 도외시하는 술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의 근거되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자체가 ‘비핵개방3000’에 의해 무시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행사조차도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남북조절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북한 전문가인 이동복 명지대 교수는 14일 북한이 최근 남북 적십자 간 연락망을 단절한 것에 대해 “적십자 회담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적십자 회담은 정치회담이지, 이산가족을 돕는 회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십자 회담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산가족을 자꾸 ‘인도주의'와 결부시키는데, ‘인도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인권’의 문제입니다.”라고 밝히며 문제를 달리 했다.

한 이산가족 단체는 지난해 11월 유엔을 방문해 이산 문제는 곧 인권 문제임을 제기, 유엔이 대북 결의안을 채택할 때 이 문제도 다뤄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또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5일 북한의 로켓 발사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그 점에 대해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산가족이나 납북자 문제는 우리 정부로서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특히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하루빨리 만날 수 있도록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나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정부는 그동안 대북 정책을 펼 때 이산가족 문제를 우선시하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하지만 금강산 면회소는 지난해 7월 완공되어 상봉 행사 채비를 마친 지 오래지만 굳게 닫혀있다. 서해교전이나 핵실험이 있었던 해에도 거르지 않았던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경색 속에 중단된 것이다.

정부는 이제 수차례 언급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방침을 합리적으로 실천에 옮겨 이산가족들의 60년 깊은 한을 덜어줄 수 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매년 3천 명씩 돌아가시니까 그분들이 금강산 면회소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의 말처럼 이산가족상봉이 속히 재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욱이 전반적인 생사확인과 현주소 통보, 편지와 소포 등의 우편물 교환, 면회소의 상시 운영, 고향을 직접 방문 식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수순을 통해 우선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 올해도 상봉이 이뤄질지 알지 못한 채로 깊은 한숨만 내쉬는 이산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김미선 기자 사진 및 자료제공/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 대한적십자사,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등

김미선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미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영등포구 대림로 83 광진빌딩(대림동 990-44)  |  대표전화 : 02-847-8423  |  팩스 : 02-847-8424
등록번호 : 서울 다 05179  |  등록일 : 1996. 12. 10  |  발행·편집인 : 김종래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조시훈
Copyright © 2020 복지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