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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대한민국노량진 학원가 수강생 쇄도
꿈과 비전보다는 '안정' 압도적
배샛별 기자 | 승인 2009.08.27 09:52

포커스 _공무원 수험생

꿈을 잃은 대한민국

노량진 학원가 수강생 쇄도
꿈과 비전보다는 '안정' 압도적

‘평생 일자리 잃을 걱정 없이 살고 싶다, 공무원만 되면 내 세상이다’ 등 공무원을 하고자하는 젊은이들에게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동기는 대부분이 ‘안정’이다. 꿈 많을 나이 20대, 이들의 생각이 이리도 단호히 고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되고자 하는 공무원 지원자는 이미 수십만 명에 다다른다. 시험지원자의 연령제한이 철회된 이후에는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서울의 노량진은 학생어른 할 것 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본지는 서울 공무원 수험생들의 집합소, 노량진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교육업체인 웅진 패스원의 추정에 따르면 응시생 기준으로 볼 때 공무원 수험생 수는 매년 50만 명, 경찰직 수험생은 10만 명,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보는 수험생도 10만 명이다. 모두 합치면 70만 명으로, 작년에 수능을 본 58만 명보다 12만 명이나 많다. 이렇듯 공무원 취업 시장은 점점 그 경쟁이 치열해져 가고 있다. 수십만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시험에 목을 매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공시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공무원이 살길이다
누구나 알듯이 공무원이라 함은 나라의 녹을 먹으며 본인의 의사가 아니고는 직장에서 퇴출될 일이 거의 희박한 직업이다.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 와서 무분별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공무원의 지위는 한층 향상되었고 이러한 현실에 비춰 많은 이들이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험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획일적인 시험 위주의 채용, 채용인원 감소, 연령제한 폐지, 직업 전환을 꿈꾸는 사회인의 증가, 비정규직의 증가 등 복합적인 이유들은 갈수록 공무원 수험생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복지도 괜찮고 직장 내 경쟁 스트레스도 덜하고, 주 5일제와 공휴일을 꼬박 챙길 수 있는 편한 직장을 좇는 젊은이들이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인턴바람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2위에 올라있다. 중소기업은 물론 건설 일용직, 가사 도우미, 간병 서비스 심지어 노래방과 같은 유흥업 도우미조차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20대의 신규 취업자 중 청년 인턴은 8만 명이나 되고, 희망 근로는 15만 명이나 된다. 전체 고등학교 졸업자의 83.9%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이중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에 취업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의 '청년 인턴' 제도 시행 등으로 20대의 일자리 감소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이는 결국 비정규직인 것이다. 호황을 누리는 대기업들조차 정부의 인턴 정책에 부응하듯, 정규직으로 뽑던 대졸 공채 자리를 인턴이라는 한시적 비정규직으로 뽑게 되면서 정부의 청년 실업 정책은 오히려 청년들의 좋은 일자리를 잠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불안정한 노동시장
현재 경제 위기는 정규직에는 영향이 적은 대신에 임시직, 일용직,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즉 경제가 어려워지면 나쁜 일자리의 노동자가 먼저 해고되고, 경제가 회복되어도 나쁜 일자리부터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이런 경제상황 속에서 청년들은 노동시장으로의 안정된 진입을 위해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취직 시험에 합격하고자 노량진의 학원가를 전전하거나, 전문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고시원을 전전하며 칼잠을 자는 길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사회가 이렇게 현저하게 달라지다보니, 역동성이 넘쳐나는 청년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보다, 정규직으로 취직하거나 전문자격을 가지는 것이 청년들에게는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노량진을 가다
서울 노량진 일대 공무원시험 학원가.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 수백 명이 건물 밖으로 몰려나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대부분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이다. 노량진 한복판의 패스트푸드점과 분식점 등 식당에는 공시족으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다양한 사투리로 인해 과연 이곳이 서울인가 싶다.

노량진 일대,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로 나온 공시족으로 가득 찼다.
8월 현재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몰리면서 노량진 일대 고시원은 포화상태다. 공무원 시험, 교직 임용고시 등 전문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학원가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것이다. 노량진 학원가에 따르면 방학을 맞아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로 학기 중에 비해 수강생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인기 강좌는 방학 초기 대부분 수강 접수가 마감했을 정도라고. 고시학원 관계자는 “상담 시 지방대학에서 온 학생이 많았다”며 “방학기간 중 서울행을 택한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부모님 권유에 못 이겨
이민기(28세)씨는 일반 행정직을 준비하는 공무원 수험생이다. 집안의 맏이인 그는 부모님 권유에 못 이겨 공부를 시작했다. 사업을 해온 부모님은 그에게 안정된 직장과 수입의 중요성을 매일같이 역설했다. 결국 그는 대구에서 공무원 시험을 시작했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서울로 가는 것을 보고 혼자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상경을 결심했다. 하지만 2개월 째 접어들고 있는 노량진에서의 생활은 비참하다. 학원비에 고시원비, 식비 등 지방에 비해 서너 배의 비용이 드는 노량진 생활은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을 축내는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가 들 지경이다. 식비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자 결심했지만 이조차 잘 되지 않아, 끼니를 거르거나 근처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다.

◇취업문은 좁고 경쟁자는 폭증하고
대학을 졸업한지 2년이 다 되 가지만 취업에 쓰디쓴 고배를 마시고 있는 김종길(30세)씨.  2년이라는 시간동안 오로지 공무원 수험생으로 지내왔지만 국가고시 응시 때마다 번번이 불합격이라는 통지를 받는 그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구도가 펼쳐지는 노량진에서의 생활은 그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노량진은 사람이 많아 학원가 가까운 곳은 빈방 하나 구하기조차 힘들다. 학원 강의실에 들어서면 새벽부터 와서 강의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앞줄에 앉기란 거의 불가능. 점심시간만 되면 터져나가는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 식사를 해야 하고,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앉아있자면 먹으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진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잠재적 경쟁자들이 갈수록 늘어나 앞날에 대한 걱정은 날로 깊어진다. 갈수록 경기는 나빠지는데 경쟁자는 많아지고, 공무원 수는 줄어들고. 이런저런 생각하다보면 자신감보다 불안감이 앞선다.

◇비정규직이 서러워
올해 7월부터 9급 일반 행정직을 준비하기 시작한 김나영(24세)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시청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인턴을 하는 동안 정규직원들의 멸시를 받으며 참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온 그는 공무원이 되길 결심했다. 그가 처음부터 공무원을 꿈꾼 것은 아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1급의 자격증을 따고서 만족할만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실상은 냉혹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 일터, 무리하게 밀려드는 업무와 만족할 수 없는 근무수당 등 그가 택할 길이 평생의 길로써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택한 것은 안정된 공무원의 길이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공무원 수험생의 나날은 힘에 부쳤다. 학원가의 무수한 수험생들을 보면서, 홀로 자리 잡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며, 좁은 고시원에 갇힌 자신을 발견할 때면 외로움과 불안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수험생 우울증 경보
한 포털 사이트의 공무원 수험생 모임 카페(cafe.naver.com/gugrade.cafe)는 회원수만 17만 명이 넘는다. 하루 방문자는 거의 만 여명에 이르고 있다. 수험생 종류도 다양하다. 직장인, 대학생, 아줌마 등 연령별로 나뉘어 지기도 하며 7급, 9급 또는 국가직, 지방직 등 직렬별로 나눠지기도 한다. 카페에는 가입자들 대부분이 ‘수험생으로서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꼭 공무원이 될 것이다’라는 각오를 담아 글을 게시해 두었다. 하지만 수험생활고에 대한 서러움이 묻어나는 글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비정규직이 없어질 때까지(ID xxii3989)’, ‘결혼해서 애 낳고 집은 사야지, 밥은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목숨이 걸렸다(ID CoffEeHoLic)’, ‘친구가 그립다. 며칠 전에 엄마아빠 보고 왔는데도 외롭다. 다들 이러는 걸까. 요즘은 정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핑 돈다. 한 번씩 수렁에 빠지면 나오기도 힘들고(ID 반달)’

몇 년째 계속되는 수험생활과 불안한 미래 때문에 초조함을 떨치지 못하는 수험생들. 모든 수험생들의 공통된 근심거리는 합격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험준비를 계속하고 있는 현재이다. 수험생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주위의 기대로 인한 부담감도 수험생들을 짓누른다.
과거에는 극소수의 수험생들이 압박감과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맸는가 하면, 사법시험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신 수험생이 고시원에서 투신자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수험생들은 계속되는 시험실패를 통해 절망감과 좌절감으로 우울증에 빠진다. 단절된 공간에서 단절된 관계를 지속하며 스스로와의 싸움을 하는 수험생들에게 우울이란 가끔 찾아오는 친구처럼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이다.
 

 

 

 

 

 

 

 

꿈을 잃은 한국, 탈출구는 없나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젊은이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은 너무도 각박하다. 갈수록 넘기 힘들어져만 가는 취업의 문턱에서 절반 이상의 수험생들이 “주변의 권유와 압력 때문에” 또는 “남들이 하니까”라는 등의 수동적인 이유에서 이 길을 택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스스로의 의사가 아닌 시대적 상황에 의해 내몰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꿈을 접고 일명 철밥통,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좋은 결론이 아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민간분야를 외면한 채 공공부문에 몰릴 경우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무한 경쟁시대, 시대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 자신의 꿈에 다가서려는 젊은이들의 행보를 가로막는 것은 그들의 의지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 고용 정책의 채택,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실현할 무대가 만들어 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발전도 보장될 것이다.

◇사회 안정망의 확충 =고용보험 및 실업급여 수혜율 확대를 위해 고용보험법 제13조에 따라 모든 국민이 전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시적 사회보험료 면제를 추진하여 고용보험 미가입자의 고용보험 가입 촉진한다. 실업급여 기간을 연장하며, 실업급여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고용차별의 원천적 금지 = 현재의 기간제 및 파견에 한정된 차별 금지 제도를 고용 차별 금지 제도로 전환하는 등 고용차별의 원천적 금지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임금 및 근로 조건 비교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공 부문 중심의 직무 분석 사례 개발 및 확대를 통해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일 가치 노동에 동일 임금의 원칙'을 명문화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 창출 = 일시적이며, 경제적 효용성도 떨어지는 일이 아닌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취업률 진작, 내수 진작 효과를 동시에 노려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라는 것은 꼭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일자리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제라 해도 최소한 상용직 일자리로 기본적인 사회보장이 제공되고, 중위 임금의 3분의 2 이상을 지급 받을 수 있으며, 적절한 근로 시간이 준수되고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자리가 돼야 한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젊은 친구들은 앞으로 우리나라와 세계의 미래 지도자입니다. 현재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말고 모든 경계와 도전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이는 청주대에서 열린 제14회 전국 대학생 모의 UN회의 특별연설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그렇다. 미래를 개척할 주역인 젊은이들에게 도전이 없이는 새로운 시장의 창조도 없다. 젊은이의 꿈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것이다.
정말로 무언가를 바랄 때, 그리고 노력할 때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 꿈을 향해 내딛는 앞길에 좌절이나 실패를 겪더라도 한국 젊은이들의 내일에 꿈이 있어 지치지 않길 바란다.

 

배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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