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_웰다잉(well-dying)

행복한 삶, 아름다운 죽음
웰빙의 완성, 웰다잉
죽음에 대한 발상전환 필요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삶의 질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문화를 넘어 내면을 풍요롭게 가꿔 삶의 가치를 높이는 ‘웰다잉(well-dying)’이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웰다잉’은 무엇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서는 평소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는 죽음을 생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평균 수명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년기는 유독 길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이는 마찬가지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잘 죽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커지게 되었고, 인생의 아름답고 품위 있는 마무리를 위한 ‘웰다잉’이 주목받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관 및 단체에서는 웰다잉 연극단, 하늘소풍 교실, 마흔 이후 인생학교 등 웰다잉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대학병원 중환자실. 희끗한 머리,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의 할아버지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팔십 평생 자식만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암이라는 지독한 병이 생겼음을 알아차린 것은 불과 한 달 전. “나 좀 살려주시오. 의사양반.” 그는 죽음을 인식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한 채 불안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죽음의 문턱에서 노인은 괴성을 질렀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몸을 벌떡벌떡 일으켜 세웠다. 곧 노인에게서 들리는 거친 소리들은 잦아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허무한 죽음 앞에 가족들은 후회, 자책, 실망이 교차했다.」
죽음이 어느 순간 닥치더라도 죽음을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당장 잘 사는 법을 고민할 뿐, 잘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뿐인 죽음을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의 폐해는 훨씬 크다. 당사자에게도 불행이지만 살아 있는 주위 가족 및 친지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고, 사회적으로는 경제적·기능적인 손실이다. 죽음을 교육받지도 않았고 준비할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한 이들은 원초적 본능이나 관습적 대응에 따라 처리한다. 인간의 존엄은 지켜지기 어려우며 가족이 붕괴되거나 해체되는 등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자살의 경우 그 강도는 더욱 심하다. 지난 2008년 9월 8일 개그우먼 정선희와 결혼하여 화제를 낳았던 탤런트 故안재환이 차안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눈덩이처럼 부는 사업 부채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추측이 있다. 같은 해 10월 2일에는 故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민배우이자 톱스타 최진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며 갑자기 자살해 충격을 준 것이다. 유명인들의 자살을 계기로 일반인의 자살도 늘어났다.
최진실이 자살한 지난해 10월 2일 이후 자살자가 예년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에 의한 사망자는 1만 2858명으로 전체 사망 원인 중 5.2%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모방 자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10월 자살자는 1793명으로 9월 1083명에 비해 한 달 사이에 무려 710명이나 증가했다. 또 11월과 12월 자살자도 1288명, 1118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각각 53.3%, 46.7% 증가했다. 이처럼 유명인의 자살 사건 때마다 우리 사회는 몸살을 앓는다. 유명인의 자살은 친구와 친족의 범위를 훨씬 넘어 주변에 파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생애마감
죽음교육으로 준비해
한 사람의 평생은 길어졌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이 웰다잉을 만든다. 그래서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세계 보건 기구에 건강을 육체적·사회적·정신적·영적건강으로 제시해두었듯이 죽음에도 네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간과하고 오로지 육체적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을 교육받지 않은 채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고 지나간 삶을 후회하게 된다.
웰다잉 전문 강사 김흥수씨는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웰다잉”이라고 말한다. 또 “죽음은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죽음을 잉태하고 태어나지만 죽음이 없는 듯 사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모든 이들에게 웰다잉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울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죽음 준비학교인 ‘하늘소풍 준비하기’ 프로그램이 1년에 두 차례씩 열린다. ‘하늘소풍 준비하기’는 노인들이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유언장 작성, 자서전 쓰기, 웰다잉 연극 공연 등이 포함된다.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노인들은 놀이를 통해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복지관이 ‘하늘소풍 준비하기’를 진행한 뒤 참가자 15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 태도를 비교한 결과, 교육 전(53.7점)보다 후(47.5점)에 5점 이상 낮아졌고 우울증 정도도 평균 5점 감소했다. 기관측은 “노인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 인식이 교육을 받으며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죽음교육을 실시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선 이미 2002년부터 학교교육에 죽음준비교육이 포함됐으며, 죽음준비 교육연구를 위해 2006년에는 4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 미국의 경우 1963년 로버트 풀턴 교수가 미네소타 대학에 ‘죽음의 준비과정’ 과목을 개설한 이래, 많은 주(州)의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교과목 안에 포함시켜 교육하고 있다. 보건교육의 일부로 가르치기도 하고, 죽음을 문학의 교재로 취급하기도 하고, 사회과목 수업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죽음준비교육을 다양한 종교와 복지시설에서 평생교육 형태로 실시하고 있다.

웰다잉 체험과 행복한 죽음

연극 춤추는 할머니

지난 4일 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 웰다잉 연극 공연이 열렸다. 총 2편의 연극은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회장 홍양희)의 초청공연으로 기관 및 지역 노인들을 상대로 진행됐다. 100여명에 가까운 노인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연극은 간간히 재밌는 요소를 섞어 노인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연극은 먼저 ‘춤추는 할머니’ 다음으로 ‘립스틱 아빠’공연을 진행했다. 관객들은 연극 립스틱 아빠 공연 중에 배우가 부르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윤데레사(78)씨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주변부터 정리해 나가며 죽음을 준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김정수(79)씨는 “연극 립스틱 아빠에서 펼쳐지는 황혼의 환상이 애처롭더라”며 “먼저 간 부인이 생각나서 마음이 동요됐다”고 전했다.
연극 ‘춤추는 할머니’는 90세의 생일을 맞이한 할머니가 생일잔치에 모인 가족들에게 춤을 덩실덩실 추며, 가족들에게 만원씩 돈을 거둬 그 돈으로 가족들이 가진 병마를 사서 저승으로 향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병을 대신 짊어진 할머니는 ‘사의 찬미’를 부르며 조용히 웰다잉을 맞이한다.
연극의 주인공 김영숙(55)씨는 “4년 전 암이 발병해 의사로부터 죽음 선고를 받고 죽음 준비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기적처럼 암을 극복한 후, 덤으로 사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웰다잉 교육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덧붙여 “웰다잉 연극을 통해 많은 분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죽음을 앞두고 화해와 사랑과 용서를 구하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라며 호소했다.
두 번째 연극 ‘립스틱 아빠’는 일찍이 부인과 사별한 남편이 죽음의 문턱에서 이미 고인이 된 부인을 위해, 부인이 평소 좋아하던 연분홍 립스틱을 사는 등 스스로 웰다잉을 음미한다는 내용이다. 연극 경험이 전무했던 주인공 최명환(61)씨는 “2003년과 2005년 좌우 두 번의 신장암 수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며 “나처럼 죽음에 임박해서 어려움과 두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연극을 시작했다”고 뜻을 밝혔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는 2009년 3월 서울시 사회복지기금 지원 사업으로 웰다잉 연극단을 창단했다. 홍양희 회장은 “연극을 통해 웰다잉 문화를 널리 펼치고 노인을 관객으로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노인문화활동을 창달하려는 목적으로 창단했다”며 “공연 때 어르신들의 공감과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단은 오디션을 통과하여 선발된 20명의 배우들은 매주 1회 유능한 연출자의 연기지도를 받으며 맹연습에 돌입한다. 웰다잉 극본 2편을 창작한 장두이씨는 연출자이자 우리나라 중견 연극배우이기도 하다. 8월 창단공연 이후에는 서울특별시 소재 노인 단체, 복지관 및 공연관람을 희망하는 기관의 초청으로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이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이 말은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죽음의 직전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마지막 인사에서조차 타인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여운을 주고 있다. 남은 이의 광명을 찾아준 각막 기증, 아름다운 유언 등 거목으로서의 삶 못잖게 죽음 또한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준 그의 아름다운 죽음을 통해 많은 이들이 성찰과 사색의 장을 열었다.
“황혼을 향한 여행을 떠나.” 1994년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세상에 알렸다.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고 “나는 이제 내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긴 여행을 시작하겠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언제나 찬란한 여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투병사실을 알림으로써 미국 전역에 이 병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환자들과 그 가정에 대한 이해를 촉구시켰다.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은 10년 후 그가 타계할 때까지 함께 죽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가져오는 피드백(feed back)은 크다. 故 김수환 추기경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죽음은 그들로부터 삶과 죽음의 간극에서 고통 없는 안식으로 인도했으며 남겨진 이들에게는 ‘좋은 죽음’의 본보기로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동등하나 모든 죽음이 같지만은 않다. 한국죽음준비교육원 이병찬 원장은 “죽음을 준비하면 성찰하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게 하며, 죽음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이 바로 잘 사는 웰빙(Well-Being)을 만든다.

웰다잉 지침서                         출처 - 웰다잉문화연구소
1.영정사진을 준비한다.
미소를 짓는 모습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영정사진에 검은 리본을 달지 말자. 왜냐면 리본 을 매달아야 한다는 근거는 없다.
2.유언장을 작성한다.
간단하게 유언서를 준비하되 비문해자가 많으므로 타인이 당사자의 뜻을 받아 적어도 무방하다. 녹음이나 비디오 촬영도 좋겠다.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제사와 장례방법에 대한 기록을 반드시 한다.
3. 존엄서와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의사를 작성하여 타인이 쉽게 찾을 수 있게 평상시 휴대품에 보관한다.
4.장례식장을 이용하지 말고 주거했던 집이나 활동이 잦은 복지관이나 종교시설을 이용한다.
이 세상의 마지막 장소를 낯선 장례식장으로 하지말자. 집에서 간소하게 빈소를 차려도 무방하다.
5.임종을 위한 기도를 준비하자.
이 세상에 태어남과 부모와 형제, 나를 지켜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임종을 맞이할 때는 아기가 잠을 자듯 숨을 거두게 해 달라고 기도를 준비하자.
6.평소에 죽음에 대하여 사색하여 웰다잉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죽음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으나 평상시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과 올바른 가치관과 적절한 노력이 따른다면 누구나 웰다잉 할 수 있다.

배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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