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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냐, 난(亂)개발이냐재개발 여전히 ‘겨울잠’
버리고 간 쓰레기 마을 전체 폐허
배샛별 기자 | 승인 2010.03.24 10:52


 

최근 여중생 살해자가 재개발예정지역에 은신했다는 보도를 통해 재개발지에 대한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88곳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조합장 비리나 분양가 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사업은 차질을 빚고 있다. 재개발 지역에선 비판 없이, 대안 없이 무조건 개발이란 명목으로 뭉개버리는 난개발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아현뉴타운 재개발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원래 이웃끼리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들인데, 지금은 주민 40%는 이주하고 없어. 투기꾼들 집이 돼놔서 빈집 투성이지.” 대중목욕탕 앞에서 만난 김모(70대)씨는 염리동 일대에서 50년 넘게 살아온 마포토박이다. 그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향수어린 마을의 모습이 사라진다는 데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 재개발 정책에 대해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답했다. “솔직히 ‘죽일 놈, 살릴 놈’ 한다니까.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이런 3층짜리 내 건물이 있으면 1~2층은 세를 놓고, 월세 받아가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멀쩡한 집은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거야. 노동력도 없는 우리 나이대 주민들은 불만이 많아.”
서울시는 뉴타운 사업의 목적으로 크게 지역 간 격차 해소, 난개발 방지, 주택 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등을 들고 있다. 이렇게 목적이 분명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자 재개발을 한다지만, 그 피해는 늘 서민의 몫이다.

재개발 진행속도 딜레마
아현뉴타운은 마포구 아현동, 염리동 일원에 115만 6000㎡ 규모의 복합문화타운으로 개발된다. 특히 아현 3구역은 아현·공덕·염리동 일대 노후주거지역에 총 1만 8500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아현뉴타운의 일부로 아현 3동 일대 7만여㎡에 아파트 3천여 가구가 건립될 예정이다.
이곳 일대는 우수한 입지여건과 현재 추진 중인 서울 재개발구역 최대 규모로 최고의 재개발 구역으로 꼽혀왔다. 도심과 인접해 있고 지하철 2호선 아현역, 5호선 애오개역 등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등 교통여건이 좋고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어 조망권도 뛰어나다. 남쪽으로 여의도, 북쪽으로는 광화문 을지로 시청 등 도심 업무단지 사이에 위치해 직장 출퇴근이 수월한 곳으로 직장인 수요층이 두텁다.

가림막 사이로 흉물스러운 빈집 군락이 형성됐다
 2003년 서울시 2차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이곳은 2005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08년에는 사업시행 인가를 받는 등 순조롭게 사업을 추진해 왔다. 아현역 애오개역 더블역세권인 아현3구역은 아현뉴타운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면서도 공덕5구역 다음으로 사업추진 속도가 빨랐던 구역이다. 그러나 작년 4월 조합장이 뇌물공여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된 이후 조합과 비대위가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삼성물산이 현재 착공 중에 있지만, 지난해 12월 일반분양하려던 계획을 올 하반기로 잠정 연기한 상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현지 공인중개업소들은 전한다. 아현3구역 한 공인 관계자는 “조합장 비리파문으로 현재 사업이 중단됐다”며 “올해 안에는 분양된다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범죄 온상, 폐·공간 대책 세워야
지난달 19일 오후 마포구 염리동 주택가. 높은 구릉지대와 비좁은 언덕길을 따라 낡은 다가구, 다세대 주택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건물 창틀마다 희고 검은 곰팡이로 얼룩졌고 한 집 건너마다 대문은 굳게 잠겼다. 온전히 봉쇄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빈집을 알리듯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수북하게 쌓였다. 재개발에 따라 다들 이주를 한 것이다. 염리동과 가파른 계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아현동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주변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가림막 사이로 흉물스러운 빈집 군락이 형성돼 있었고 주변에는 이주민들이 남기고간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이주민들이 남기고 간 빈집
  한참 헉헉거리며 계단을 오를 때 마침 장을 보고 귀가한다는 두 할머니를 만났다. 시원찮은 다리지만 익숙한 듯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들은 아현동 일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재개발 때문에 가까운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고 이곳의 자취마저 사라진다니 할머니들은 못내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아가씨만할 때 시집와서 여태 살았으니 한 오십년은 됐지. 난 아파트에 살기 싫은데, 멀쩡한 건물 헐어놓고 난리 났어. 다 돈지랄이여.”
다른 할머니도 말을 보탰다. “아현동은 다 헐어야해. 찔끔 헐어놓고 있으니 범죄 일어날라 무서워 죽겠어. 그 뭐냐, 김길태 그 사람도 재개발(예정지역)에서 일냈다며. 우리 동네서 그런 일 안 벌어지려면 아예 허허벌판 만들어서 싹 다 보이게 해야 돼.” 이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외부와 단절된 동네는 도박꾼들까지 모여들고 있다. 동네 후미진 곳 한켠에서 주부도박단이 모여 화투를 친다는 것이다. “노름쟁이 주부가 많아. 점당 백 원이 뭐야. 점점 판돈이 늘어 요즘엔 배추 이파리(만원권)까지 나온다고 하더라고.”
아현동 일대에는 조합원 갈등이나 보상비 문제로 재개발 작업이 중단된 곳이 많다. 수개월째 철거 작업이 중단되면서 빈집이 많은 반면, 방치되고 있어 치안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군데군데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만 방범용 CCTV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재개발사업이 시작되면 설치했던 CCTV를 다시 이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설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도 정기순찰 외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생존권 보장하라” 주민 언성 높아
재개발에 따른 피해는 주변으로 번지고 있다. 아현뉴타운 진입지역에 위치한 이유로 약 40여 년간 형성되어온 골목형 재래시장은 썰렁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파트야 보기 좋게 잘 지어주면 좋지. 근데 아파트 짓는 값을 많이 달라 그러니까 없는 사람은 힘든 거지. 장사하는 사람들도 문제고. 아현동 재래시장은 팍 죽었어.”
실제 찾아간 아현동 재래시장은 인적이 드물었다. 가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똑똑히 들릴 만큼 시장안팎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돌았다. 한편에선 근심이 잔뜩 담긴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상인들이 보였다. 신발가게 상인은 하루 번 돈(지폐)을 세어보고, 또다시 세어보지만 얼마 되지 않은 듯 울상을 지었다. 과일을 파는 이모(80)씨는 “요즘은 하루 만원 벌기도 힘들다. 어제는 5천원 어치 벌고, 지금은 끼니 때우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주해야 할 재래시장이 썰렁하다
상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한나라당 ‘빈곤없는나라만드는특별위원회’가 지난해 8월 방문한 아현 재래시장 현황조사에 따르면 주요 고객들이었던 인근의 아현 3구역 거주민들이 뉴타운 사업으로 모두 이주하여 시장은 고객이 급감했으며, 상인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전업 대비를 하는 상태였다.
또한 아현 재래시장 지주 절반 이상이 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임대료를 받고 있지만 상당수 점포가 임대료를 못 낼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다. 위원회가 방문할 당시 시장 상인들은 당 지도부를 향해 “주변 대형마트와 재개발로 먹고살기 힘들다”며 “재래시장을 살려달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동문서답이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관계자는 “원하는 정도에 따라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가세입자들의 손실보상금은 지급했으며 보상금은 영업이익과 영업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했다”고 말했다. 재개발구역 주변 상인들의 피해에 대한 보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소통’ 재개발 과제로…
지난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를 계기로 여러 측면에서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이 지적됐고 ‘공공관리자제도’ 등 그를 해결하려는 움직임 역시 일어났다. 하지만 뉴타운 등 각종 재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해’(이익과 손해)관계를 둘러싼 충돌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여기저기 재산투쟁중
지금의 재개발 사업은 상가 세입자가 전 재산을 쏟아 부어 근근이 영업을 해오다 4개월 치 휴업보상금만 받고 무권리 상태로 쫓겨나는 게 현실이다. 공공의 지원이 불가피한 세입자 보상이나 철거는 등한시하면서 정비업체와 시공사 선정 지원 등 정비사업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항만 공공의 권한이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이 조합설립추진위와 유착할 경우 비리 대상만 바뀌는 것 아니냐는 염려의 소리도 나온다.
서울시는 용산 사태 이후 재개발 사업을 민간에서 공공 주도로 전환, 관할 구청이나 산하기관인 공사가 사업 전반을 관리ㆍ감독할 수 있도록 공공관리자제도를 도입키로 했지만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사업에 난항을 겪어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공공관리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을 오는 7월부터 본격 시행하기로 했다. 개정안에서는 공공관리제 도입을 명문화하고 ▲구청장의 추진위 구성 지원 ▲정비업체와 설계자 선정시기 조정 ▲조합임원 선출의 선관위 위탁 등을 규정했다. 특히 세입자들이 재개발 사업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주민설명회에 대한 세입자 참여를 의무화하고 사업추진 상황에 대한 정보도 공개하도록 했다.

슬럼화에 따른 도시 재생은 불가피하다. 선진국 수준의 주거 환경을 생각한다면 뉴타운 사업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개발에 앞서 주민과의 의사소통, 저소득층의 주거안정대책이 선행돼야 ‘회복’과 ‘소통’이라는 큰 틀 아래 사람 존중의 복지 도시가 탄생할 수 있다. 

 

배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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