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들떠 있다.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백호랑이해를 맞이해 하나둘 동물원으로 모여드는 사람이 늘고, 덕분에 모처럼 반가운 출산붐이 일기도 한다. 유난히 혹한이 계속 되던 겨울 어느 날, 서울동물원을 찾았다. 우리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호랑이를 만나니, 과연 올 한해는 용맹한 기운을 빌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대마저 드는데…. 어흥~사육사 곁으로 호랑이들이
반갑게 모여든다.

동물이 좋아서 시작된 일
과천 서울동물원에서 호랑이와 퓨마, 표범, 재규어, 수달 등 맹수류 5종 44수를 돌보는 사육사 편현수(48)씨. 그의 일상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오전 7시 반이면 동물원에 도착합니다. 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일일이 아침 인사를 건네지요. 마리수를 확인하고 변을 확인하며 밤새 애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시간입니다. 사육사들의 목소리를 인식시켜주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요.”
편 사육사가 두어 시간이나 걸리는 긴 출근 시간을 감당해내며 맹수들과 생활하는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고 나서는 소고기를 준비해 아침 식사를 주고 밤새 지저분해진 우리를 청결하게 청소하는 것도 빼먹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이다. 오후 2시 30분이면 호랑이 먹이주기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비수기인 12~2월까지는 오후 6시까지, 성수기인 3월부터 11월까지는 오후 7시까지 근무하며 수시로 우리를 도는 일도 계속된다. 마침 찾아간 금요일 오후에는 먹이주기 설명회가 생략되었다. 금요일을 무욕일로 지정, 하루 동안 일체 먹이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수요일에 특식으로 토끼를 제공하는 대신 금요일은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야생에서 생활하고 있는 호랑이들이 먹이 사냥에 실패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야생성을 잃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죠.”
맹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의 편 사육사가 또박또박 분명하고도 강한 목소리로 맹수들의 습성 하나하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털어놓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베테랑 사육사의 모습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사육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사육사가 되기 전에는 구청과 수도사업소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시가 운영하는 동물원이기에 이직할 기회가 생겼고, 마침 관심이 있던 분야라 동물원 사육사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저 단순히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는 우연하게도 동물들과의 인연을  맺었다. 그랬기에 조금 더 많이, 꾸준히 공부하는 사육사가 되도록 노력했고, 이제 경력 7년차의 노련한 사육사가 된 것이다.

부모처럼 예민한 촉수를 가지다
서울동물원의 편현수 사육사가 동물원에서 처음 담당한 곳은 인공포육장이었다. 밤 12시에서 새벽 6시까지 잠을 자는 생활이 3년 동안이나 이어졌지만 그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발견했다.
“인공포육장에서 일을 해 여러 동물들을 접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동물들도 사랑을 준만큼 인식한다는 것을 느꼈고, 또 개인적으로 맹수에게서 느끼는 친근한 느낌과 설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편 사육사는 3년 전, 맹수사 사육사가 되었다. 2006년 6월 13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우리나라가 우승을 한 날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호랑이 대한이와 승리는 이제 그가 나타나면 먼저 알아보고 으르렁 신호를 보낸다.
“동물들도 말투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부드럽게 얘기하다가도, 화가 날 때는 짧고 강한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꾸준히 목소리를 인식시키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평상시 점잖던 호랑이도 간혹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 있을 때, 편 사육사는 이들을 제지하기 위해 강한 어조로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을 동그랗게 만들어 귀를 젖히고, 빨개진 눈으로 어흥거리며 경고 신호를 보내는 맹수들도 그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싸우다가도 서로 갈라진다고.
“주로 낯선 사람에 의해 호랑이들이 화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맹수들이 화가 나면 바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험에 처하니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편 사육사는 실제로 호랑이는 1년이 지나면 80kg이상이 되어 놀아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 우리에만도 몇 마리의 호랑이가 있으니 간혹 헷갈리는 경우는 없을까.
“자세히 보면 호랑이들은 제각각 무늬가 조금씩 다릅니다. 관찰을 잘해야 함은 물론 습성이나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요. 먹이를 하나 줄 때에도 서로의 투쟁을 막고, 이들이 싸우지 않도록 수놈의 먹이는 멀리 던지는 등의 요령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세심한 관심과 관찰로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시간을 맹수들과 함께 해왔으니 그에게 맹수들은 또 다른 가족이자 자식들이 아닐까. 그는 처음에는 맨손으로 닭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호랑이가 아프자, 마치 자식이 아플 때처럼 스스로 나서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게 되었다고 긍정하는 눈치이다.
그런 그이기에 동물원 관람객들로 곤란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지사. 호랑이들이 먹지 못하는 떡과 과일, 과자 등의 음식들을 던지거나 주변 산에서 꺾은 나뭇가지들로 동물들을 괴롭히는 경우를 보며 씁쓸함을 느끼는 것이다.

호랑이 같은 아빠도 괜찮아
맹수들을 부모처럼 돌보느라 편 사육사가 누구보다 미안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내와 3남1녀의 가족들이다. 일의 특성상 주말은 물론 공휴일에 더욱 바빠지는 이들은 명절은커녕 가족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겨우 교대로 평일에 이틀, 주말에 이틀씩을 쉬다보니 휴일마저 일정하지 않다.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 같은 경우에는 비상근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남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근무하지만 정작 자식들과 어울려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하지만 다행히 편 사육사의 가족들은 그의 일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 그 역시 휴일에는 어딜 가든 늘 아내와 함께 하려고 한다. 낚시와 등산, 극장을 찾을 때도, 헬스와 운동도 아내와 함께이다. 매일 아침 그를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는 것 또한 아내인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한테는 호랑이 같은 원칙을 지키는 편이다. 평소에는 부드럽게 대하다가도, 꾸짖어야 할 때는 엄하게 꾸짖는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새끼를 키우면, 생후 2개월까지는 자신의 먹이를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리고 돌봐야할 때는 희생을 하다가도 어느 정도 컸다고 생각하면 냉정하게 선을 긋는것이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자연의 법칙처럼요.”
편 사육사가 호랑이 같은 아빠라고 해서 독단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식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이를 따라주고 싶다.
“요즘에는 낚시를 배우고 있습니다. 휴일에 아내와 함께 야외로 나가서 조용히 낚시를 즐기다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많아져 오해의 감정이 쌓일 수가 없고요.”
편 사육사의 이러한 작은 일상이 또 다시 맹수들의 든든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가능케 한 것이다. 아이들과 아내가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동물원 근처로 이사를 하지 않는 것도 야생에서 혼자 헤쳐나가려고 하는 호랑이의 모습과 꽤 닮아 있었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막내딸이 아빠처럼 사육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가족들은 그에게, 그는 가족들에게 서로 큰 힘과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백운아, 새해에는 부탁해!

경인년을 맞아 더욱 주목받고 있는 백호랑이는 서울동물원에는 백운(화이트)이가 유일하다. 백운이는 2000년도에 황호인 엄마 아빠 사이에서 출생한 흰색변종이다. 서울동물원의 호랑이들은 모두 시베리아 호랑이로서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십만 분의 일로 극히 낮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데, 아마도 가만히 있어도 풍겨져 나오는 위엄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의 용맹한 기를 받아서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호랑이해를 맞이하면서 편 사육사가 이루고자 하는 새해 소망 역시 맹수들을 성실히 돌보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백운이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작년 백운이가 두 번 합사에 실패했습니다. 어서 짝을 만나 외롭지 않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서는 편 사육사의 발걸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달려오는 백운이를 비롯한 호랑이들. 얘들아, 새해를 부탁한다!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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