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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명품도시 서울의 그늘
배샛별 기자 | 승인 2010.05.31 14:38


서울시는 현란한 간판과 도로시설물이 뒤엉킨 거리, 성냥갑 같은 건물 등에 디자인을 입히는 도시디자인 사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사업 본질을 무색하게 만드는 ‘겉멋내기’식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디자인 서울 거리에서 그 허와 실을 짚어봤다.

서울시 “디자인은 소통, 배려, 행복”

 지난 2월 ‘세계디자인도시 서미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계디자인수도의 비전을 주제로 서울의 디자인 정책과 진행과정을 발표했다. 당시 그는 디자인은 시민과의 소통이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이며 편리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맞춰 서울시의  디자인 전략은 ▲비우는(Airy) ▲통합하는(Integrated) ▲더불어 하는(Collaborative) ▲지속가능한(Sustainable) 등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쾌적하고 여유 있는 공공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공시설물을 재배치하고 불필요한 시설은 없애 저밀도·고효율의 공공 디자인을 확립한다는 것이 서울시 ‘비우는’ 디자인의 골자이다. ‘통합하는’ 디자인 서울을 위해 가로시설물을 시스템화하고 통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서울의 색깔 및 형태를 브랜드화 한다. 시민·전문가·행정의 파트너십을 형성해 ‘더불어 하는’ 디자인 도시를 만들고 친환경 소재 활용 등을 통해 자연과 인간 친화적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울을 뉴욕과 파리 등 세계 유수의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도시로 만든다는 것이 서울시의 구상이다.
한강과 남산을 친환경적으로 재개발하는 ‘한강르네상스’와 ‘남산르네상스’, 서울 거리 곳곳을 새 단장하는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사업, 동대문 일대에 조성하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등 모든 사업에서 디자인이 우선으로 고려됐다.
서울시는 기능과 효율 중심의 도시를 인간 중심의 도시로,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보행자 도시로 바꿔가겠다고 의욕을 표했다.
하지만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 이들 정책은 거리의 가난한 시민들을 도심 중심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등 소통이 부재한, 무분별한 재개발과 흡사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갈 곳 잃은 영세상인들
“도로가 좁은 땅덩어리에서 8차선 도로를 막아가지고, 뙤약볕에 볼게 뭐가 있습니까. 세종대왕 동상 말고는 볼 게 없어요. 작년 가을에는 꽃을 심어놓는데, 몇 개월 만에 꽃값이 1~2억씩 왔다 갔다 했어요. 우리 서민들은 맞벌이해서 세금 내기 바쁜데 오 시장은 어쩜 그렇게 흥청망청 써버리는지….”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조성공사를 완공한 광화문광장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광화문 일대에서 만난 권오향(53)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토박이’다. 그는 세종로 인근에서 진행된 재개발 때문에 생존권을 잃었다고 호소한다.
“다섯 평짜리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용역직원을 보내어 하루아침에 생계를 끊어놨어요. 아니 재개발하면 건물을 지어가지고 내 가게 하나 주던가. 내가 22년 전에 권리금 집 한 채 주고 들어왔는데 보증금을 줘야 될 거 아니야. 22년 하던 가게 쫓겨나가지고 빚만 잔뜩 지니까 진짜 난 죽고 싶어요.”
재개발이 확정되고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최 씨와 같은 인근 상인들은 허물린 건물 앞에서 천막농성을 펼치고 있었다.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으로 수많은 노점상과 상인들이 생계 공간을 잃고 있다. 노점상을 인정해준다는 디자인서울거리는 대로변의 노점을 싹쓸이해 이면도로로 몰아넣었다.  ‘거리 미관’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상인들은 “‘디자인-명품 도시’ 서울에서 서민은 소외되고 있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디자인서울거리’ 사업을 벌이면서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건축물들도 훼손했다. 조선왕조 이후 600년째 이어져 온 서울 종로구 피맛골도 도심재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서울시청 청사도 마찬가지다.
한 시민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진짜 하잘 것 없는 집도 세계 관광 명소로 만드는데, 왜 서울시는 오래된 정취까지 없애 버리는 것이냐”며 분개했다.
서울 시민들과 83년을 함께한 동대문운동장도 이미 철거가 시작됐다.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경성운동장으로 지어진 이후 경평축구가 열렸던 곳이며, 100년이 넘는 한국야구역사의 성지이자 산 증인이다. 또한 해방 이후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찬탁과 반탁 집회,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의 장례식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풍물시장을 비롯해 동대문운동장 안팎으로 1000여 명이 넘는 노점 상인들이 장사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전국노점상총연합 관계자는 “서울시 전역에 50개 거리를 선정해 보도블록도 다시 바꾸고 IT 거리를 만든다고 하면서 그곳에서 장사하는 노점 상인을 쫓아내고 있다”면서 “같은 곳에서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어야 되는데, 노점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장사를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입은 동네들이 변하는 사이, 상인들의 생존은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미관만 강조 “장애인 안전 외면하나”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정책의 일환으로 서울시내 곳곳에 검은색 점자블록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계에서는 도시미관보다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며 법에 따라 노란색 점자블록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검은색 점자블록은 저시력 장애인에겐 웅덩이처럼 보여 보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을지로 롯데백화점 건너편 명동입구에서부터 중앙우체국방향까지 검은색 점자유도블록을 설치했고, 용산구청은 외국인 관광특구인 이태원의 횡단보도 및 전체거리에 검은색 점자유도블록을 설치했다.
전국저시력인연합회는 용산구와 서울시청 등에 공문을 발송하는 등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지역에는 저시력 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위협하는 검은색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다.
용산구청은 지적을 받아들여 전체적으로 검은색 점자블록을 철거하고, 노란색 점자블록을 설치했다. 하지만 용산구청 부근 몇 군데는 황색 페인트칠이 벗겨져 점차 검은색이 드러나고 있어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서울역 앞 환승센터 횡단보도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여전히 곳곳에 검은색 점자블록이 남아 있다.
미영순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은 “고쳐진 곳은 별로 없고 새로 한 곳은 못마땅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시장실에선 지침을 이리저리 내보냈다지만 시정통보만 있고, 현재 담당자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혹두기는 장애인들의 공원이용을 방해하고 있다.
한편 동대문야구장을 헐고 수천억 원을 들여 개장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점자블록 등 기초적인 장애인 시설도 갖추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동대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마련한 전시관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고 있으며, 대리석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있는 형태의 ‘혹두기’는 장애인들의 공원이용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컨셉과 맞지 않는다며 계속해서 개선을 미루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 말에 따르면 회색으로 통일된 전체 건물의 디자인 컨셉에 노란 점자 유도 블록이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장애인계 한 관계자는 “유도블록은 애초에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지, 디자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당장 아름다운 것에 눈이 멀어 디자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 개발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 퍼붓기식 정치 행사인가
서울시는 지난 2007년부터 디자인거리 사업을 벌이며 서울시내 50개 지역을 사업대상지로 선정해 지금까지 17곳의 사업을 마무리했다. 한 곳당 평균 20억 원의 예산을 들여 500~600m에 이르는 디자인거리를 조성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완공된 중구 을지로2가 장교동길 폭 15m, 길이 200m 규모로 ‘을지한빛거리’를 각종 장식물과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37억 원에 달하며 갤러리까지 포함하면 43억 원이다. 사업의 핵심목적은 관광객유치라는 설명이지만 방문객이 없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6개월간 새 청사 공사장 주변의 외장막 디자인 전시비용으로 억대 예산을 사용한 바 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가 서울시문화재단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지난 1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가 시청사 공사장 주변 외장막 디자인 설치교체에 사용한 시공비용은 모두 6억2000만원으로 파악됐다.
강언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간사는 “한강 르네상스나 남산 르네상스 사업 등 장기적인 디자인 사업을 지속할 경우 서울시 예산집행은 아마 그쪽으로 쏠릴 것”이라며 “서울시가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다른 부문보다 상당한 돈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서울시 전체 예산 21조2573억 원 중, 디자인 관련 예산은 3000억이 넘는다. 디자인·문화 마케팅 사업에 투입되는 올해 예산은 3221억 원으로 지난해 2004억 원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으며, ‘디자인 서울’과 관련한 예산 역시 지난해 925억 원에 비해 115억 원 늘어난 1041억 원이 편성됐다. 반면 저소득층, 장애인, 노인, 보육, 실업 대책, 사회적 일자리 분야의 예산은 크게 감소했다.
서울시는 억대 예산을 들여 도심 미관을 재정비하고 있지만 해외 관광객 유치 및 공공 캐릭터 산업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서울에는 ‘서울의 상징물’로 삼기 위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일명 ‘해치 택시(황토색 택시)’가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해치 택시의 보급률이 저조할뿐더러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시민들의 반응도 좋지 않다.
광화문광장을 가끔 찾는다는 한 시민은 “해치캐릭터나 택시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또다른 한 시민은 “외국인 택시인가”냐며 갸우뚱했다. 이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좋다. 다만 보편적인 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역사와 문화의 숨결 담아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인 서울의 디자인 혁신에 승부를 건 서울시의 개발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성냥갑 아파트’ 건축을 억제하고 흉물스러운 간판을 정비하면서 도시 외양이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는 것. 그러나 역사적 아이콘마저 단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갈아엎고 그 자리에 초고층 랜드마크를 세우는 식이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는 서울이 세계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서울시의 일부분인 시민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면서까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디자인 정책에 역사성과 정체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조현신 교수는 서울 디자인 거리 정책에 대해 “무차별적·수평적 개발을 추진하면서 낯설고 창의적인 것만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굿디자인이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단지 보는 즐거움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도시의 얼굴’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공동취재 / 김혜민 기자

배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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