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 뒤틀린 발에 희망을 불어넣는 구두장이가 있다. 장애인을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드는 세창정형제화연구소 남궁정부(70) 소장이 그 주인공. 40년 동안 수제화를 만들던 그는 지하철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 장애인용 구두 제작에 뛰어들었다. 걷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나머지 한 팔로 희망구두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 행복을 전하는 구두장이 남궁정부 소장을 만나 그의 구두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현섭이는 왼쪽 편 마비 아이입니다. 복지관에서 세창정형제화연구소를 소개해주어서 깔창을 맞추었습니다. 그때는 걷지도 못하고, 왼쪽 발이 바닥을 똑바로 밟지 못했는데 지금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희망은 현섭이가 정상아처럼 똑바로 걷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할아버지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섭이 엄마

세상의 빛 ‘세창’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세창정형제화연구소에는 굽이 높거나 특수 깔창이 들어있는 다양한 형태의 특수화가 진열되어 있다. 겉보기에는 여느 구두와 다르지 않지만 내부는 고객의 발에 맞춰 특별하게 제작 되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세심하게 살피며 구두를 만드는 덕에 연구소 벽면은 전국 각지에서 보낸 감사 편지로 가득하다. 화상으로 인해 엄지가 붙어버린 발, 뒤틀린 발, 말뚝 같이 생긴 발, 당뇨로 뭉개진 발, 양쪽 길이가 다른 소아마비 발 등 남궁정부 소장이 장애인을 위해 만든 구두는 5만 켤레에 이른다.
“정말 힘든 발이 오면 꿈에서도 구두를 만듭니다. 정형제화는 기본틀이 없으니까요. 일반 신발의 경우 패턴 하나만 내면 열 개 스무 개씩 만들 수 있지만 이것은 오른발, 왼발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장애인용 신발을 16년째 제작하고 있지만 단 한 켤레도 기성으로 만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전부 맞춤제작이에요.”
그러나 남궁 소장이 처음부터 장애인용 신발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 그는 일반 수제화를 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장애인용 신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하철 사고가 난 이후 부터였다.
“수제화가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성화에 밀려 사양 사업으로 전락해 회사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기분을 풀기 위해 술집으로 향했지요. 그때 신도림에서 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1995년 10월 11일, 그는 지하철에서 내리다 선로에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 40년 구두쟁이 인생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가족과 동료들은 더 이상 그를 구두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팔을 잃은 그에게 앞으로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입원한지 사흘째가 되었을 때 그는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열흘째가 되던 날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무언가를 해야 되는데 구두장이는 구두밖에 모르잖아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배운 게 구두 밖에 없으니 구두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의료보장구 가게에서 장애인용 신발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그는 의수를 맞추러 간 의료보장구 가게 주인의 권유를 듣고 장애인용 구두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가족, 친지, 친구 등 주변 사람 대부분이 반대를 해 처음에는 시작이 쉽지 않았다. 특히 가족들의 반대가 심한 편이었다. 그래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집에 앉아 있다 해서 사라진 육체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빨리 현실을 받아들여 무언가를 찾아야지 옛날 생각만 하고 앉아 있으면 몸이 망가지게 됩니다. 육체적인 장애는 장애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장애가 진짜 장애인 것이지요.”
그는 패턴 작업과 수제화의 치수 재는 일 등을 하기 위해 왼손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시작했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해 젓가락질도 새로 배웠다. 그리고 1996년 5월, 그는 전세로 살던 처남의 차고에 세창정형제화연구소를 차렸다. ‘세창’은 ‘세상을 밝게 하라’는 뜻이었다.

온몸으로 만든 구두
남궁 소장은 가게를 차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구두 만드는 것을 생각하며 보냈다. 그러나 왼팔로 구두를 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벅지에 구두를 끼고 이빨로 물어뜯으며 서툰 칼질을 할 때면 온몸이 땀에 젖기 일쑤였다. 왼팔로 칼질을 하다 손이 엇나가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본드 사용도 문제였다. 접착제를 쓸 때 오른팔로 지지를 못해 빗나가거나, 손에 묻은 본드를 닦아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신발 밑틀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해본 적도, 그런 것을 하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장애인용 수제화는 정교한 제작이 요구됩니다. 조금만 차이가 나도 발이 바깥으로 넘어가거나 안쪽으로 쏠립니다. 뒤보다 앞이 높은 구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힘이 가는 관절일 경우, 저는 이러한 구두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어느 때 부터인가 그는 잘려나간 팔이 쑤시기 시작했다. 원인은 환상통이었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넘기기에는 통증이 심했다. 그는 앞날을 걱정하는 대신 일에 몰두했다. 힘이 들 때면 이빨과 다리를 사용해 구두를 만들었다. 얼굴과 손이 본드로 엉망이 되었지만 그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정형제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 제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민원을 넣었습니다. 차고에서 가게를 차리는 게 불법이라는 것이었지요. 어렵게 돈을 구해 가게를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곧 나와야 했습니다. 집 주인의 딸이 임신 중인데 본드 냄새가 나니 비워달라고 그러더군요.”
그는 형편이 어려워질 때면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게를 옮길 때도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장애인용 구두를 시작했을 때는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해 다른 곳에서 일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로 생계를 이어갔다. 직원들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일수록 그는 신발을 신고 고마워하는 손님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제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을 해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용 구두는 1mm 정도의 오차만 있어도 불편함의 차이가 큽니다. 손님들에게 최대한 편안한 신발을 만들어주고 싶어 원서를 사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영어를 전공한 아들의 도움을 받아 재활의학 관련 자료를 훑었다. 밤늦게까지 아들과 함께 공부한 결과, 그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고도 아픈 정도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꿈꾸는 희망제작소
정형제화 제작은 사고 후 실의에 빠진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와 손님들은 구두를 사고파는 관계를 떠나 장애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구두는 사람들의 삶도 변화시켰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사람은 그의 신발을 신은 후 내려서 걸었다. 목발을 짚고 왔다가 걸어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때 신발이 계속 반품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발인지 궁금해 직접 찾아가봤지요. 그분은 다른 사람에 비해 팔이 짧았습니다. 거기다 발가락이 없고 발이 심하게 휘어 있었어요. 험한 발이었지만 신발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몇 개월 지나고 그분을 다시 만났는데 휠체어에서 내려 걷고 계셨습니다.”
10m도 못 걸었던 안성에서 온 손님은 그가 만든 신발을 신고 네 시간을 걸었다. 신림동에 사는 손님은 이런 신발이 있는지 몰랐다며 그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특히 그의 기억에 남는 손님은 화상으로 발이 뭉개진 한 여성이었다.
“이 여성분이 결혼을 앞두고 시집에 인사를 하러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발 상태가 심각해 신발을 신고 다닐 수가 없었지요. 그분에게 신발을 만들어주기 위해 40일을 연구했습니다. 겨우 날짜에 맞춰 구두를 만들어 보냈고, 그분은 결혼을 했습니다.”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 천으로 감싸고 다녔던 손님, 돈이 없어 10년 된 신발을 수선해 신는 손님 등 무수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한때 가게가 어려워졌을 때는 손님들이 그에게 3000만원이 든 통장을 내밀기도 했다. 단골손님들이 그를 위해 조금씩 모은 돈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 매장과 공장을 마련했다. 세창정형제화연구소는 남궁 소장 혼자만의 가게가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가게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세월이 지나면서 구두 제작 환경도 달라졌다. 2명이었던 직원은 17명으로 늘었고 구두를 만드는 것도 분야별로 역할을 나누어 제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막내아들과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제 신발을 필요로 하는 분을 위해 아들에게 가업을 이어가게 할 작정입니다. 저는 지금 패턴 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제 신발을 필요로 하는 분이 남아있을 때까지 계속 신발을 만들 생각입니다.”
예전에 비해 가게가 안정 됐지만 아직도 남궁 소장이 패턴을 내지 않으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패턴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 몇 십 년씩 구두 일을 한 사람도 장애인용 정형제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을 새로 배워야 한다.
요즘 남궁 소장의 걱정은 젊은 사람들이 장애인용 정형제화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지체장애인들이 기술을 배웠으면 하고 바라지만 대다수 장애인들은 기술 배우는 것을 꺼리고 있다.
“여기서 기술을 배운다면 어느 구두공장에 가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 고용창출도 되겠지요. 그런데 정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장애인이 취업하게 되면 더는 영세민이 아니기 때문에 임대 아파트에서 나와야 합니다. 기술은 기능을 배워야 월급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기술을 습득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취업을 하면 집에서 나와야 하니 누가 고생하면서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앞으로 그의 목표는 제화 기능공 양성소를 만들어 지체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구두 만드는 일은 양손만 있으면 되기에 지체장애인도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는 그런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고 싶다.
“제화 기능공 양성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살다가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기술 습득은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에 장애인 신발을 만드는 지점을 열었으면 합니다.”
그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발이 불편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 번 신발을 맞추려면 어려운 걸음을 해야 한다. 그는 지점을 열어 손님들이 편하게 A/S를 받고, 손쉽게 구두를 구입하게 하고 싶다. 자신도 몸이 불편하기에 장애인들이 서울까지 올라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손님들은 발을 잘 내놓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게로 찾아올 때 망설이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오른팔 덕을 봅니다. 한쪽 팔이 없으니 그들도 경계를 누그러뜨립니다. 저도 장애를 가졌으니 다른 장애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형제화를 만드는 일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남궁정부 소장. 그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구두를 만드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궁 소장은 구두뿐만 아니라 착한 가게와 사랑의 밥차에 정기적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 가슴 속에 사랑의 발자국을 새겨 넣는 그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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