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의종합사회복지관 권혁철(39) 과장은 그림자 같은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원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 나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것보다 복지관의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싶다는 권혁철 과장. 지역주민이 복지관의 주인을 넘어 지역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뒷받침하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
권혁철 과장이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가 어렸을 때는 부모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시장 일을 하시던 그의 어머니는 떠도는 아이들을 보면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재운 다음 돌려보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권 복지사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한때 쓰레기 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줍기 시작했는데 어느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저의 모습을 봐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더군요. 그래서 좀 더 떳떳하게 봉사하기 위해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어요. 사회복지사가 된 후에는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도 남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죠.”
그는 주민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위해 사회복지사의 길을 택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편히 남을 돕고자 한 것이다. 지금은 임대단지 내에 있는 춘의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게끔 뒷받침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임대단지 주민들이 복지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지역사회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권 복지사는 주민들이 서로 모여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2002년에는 주민들에게 어떤 마을이 되었으면 좋을지 질문하고, 결과 보고를 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복지관이 지역주민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리는 한편 주민조직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작은일손 봉사단’, ‘어르신지킴이’ 등 다양한 주민조직을 시도했습니다. 어르신지킴이는 지역 어르신의 어려움을 지역주민 스스로 돕는 조직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여러 가지 연대 행사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청소의 날’을 정해 주민들과 관련단체가 청소를 하거나, 지역환경 개선을 위한 ‘벽화 그리기’, ‘놀이터 지킴이’ 같은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권 복지사는 주민조직 활동을 하면서 주민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임대단지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을학교를 만들었다.
지역주민의 권리실현을 위한 주민강좌를 열고, 마을신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부천 내에 있는 다양한 단체와 연대해 영구임대주택에 공동전기료를 지원하도록 조례를 제정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임대단지에서는 북한이탈주민, 국제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2세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흐름에 맞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관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는 전국의 모든 복지관이 주민들이 원하는 역할을 해낸다면 우리나라가 달라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종합복지관이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면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최초의 복지관 토인비 홀(Toynbee Hall)의 인보관운동을 떠올리며 복지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고 있다.
“복지관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옹호하는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죠. 지방자치제도가 생기면서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 예산 자체를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나가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는 주민들 스스로 예산을 만들어 주도적인 복지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복지란 주민이 지역사회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힘쓰기를 바라고 있다.

주민과의 지속적인 교류
권 복지사는 장애가 있거나, 학교를 안 다녔거나, 글을 모르던 사람들이 복지관의 도움으로 그 사람 스스로 가지고 있던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국가의 서비스만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행사에 초청되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변 지역사회의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임대단지 주민들을 위한 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는 주민들이 복지관의 이용자가 아닌, 사업을 실천하는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마을이 기쁨, 슬픔, 희망, 절망, 가난, 부유 등 지역주민들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주말에 혼자 근무를 하고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오셔서 점심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시더군요. 냉장고에 김밥이 있어 그것을 먹으려 한다고 말했더니 그분들이 컵라면을 사오셨어요. 후식으로 금귤도 가져오셨지요. 더욱 감사했던 것은 집에 있던 밥을 수건에 싸가지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의 따뜻한 정성은 그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직급이 올라가다 보니 행정적인 업무가 많아져 주민들을 만나는 시간이 부족해졌지만 그는 앞으로도 책임감을 갖고 주민들과 교류하려 한다.
“주민을 만나고, 그들과 주민조직을 만들고, 지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저희 기관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에 있는 실무자나 주민들도 이런 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권 복지사는 앞으로 주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주민을 떠나 일반 실무자나 시의회 의원, 저명인사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동네마다 자유롭게 열린다면 지역이 한층 더 발전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를 가꾸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권 복지사. 그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갈 마을공동체의 모습이 기대된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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