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작은 공장에서 먼지와 졸음과 씨름하는 서울 동대문 인근의 봉제 여공들. 반면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은 물론, 기술까지 배우며 꿈과 노하우를 쌓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봉제 근로자들의 ‘신나는 일터 만들기’에 한창인 (사)참여성노동복지터(대표 전인숙)가 그 주인공이다.

수다(手多)로 말하다
장시간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건강하고 성실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영세 소규모 공장, 그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여성근로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참여성노동복지터(이하 참터)가 지난 2003년 설립됐다.
지난 1970년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자 참터 대표인 전순옥(56) 박사는 “2500여 개의 봉제업체가 몰려있는 창신동에는 여전히 하루 15~16시간을 꼬박 일하며 낮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많다”며 “시대는 변했지만, 의류 봉제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근로자들의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말했다.
참터는 오랜 연구ㆍ조사와 토론회 등을 거쳐 기술교육을 통해 기술의 고급화를 실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 노동부 노사공동 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6년 4월에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 ‘수다공방’을 열었다. 2008년 1월에는 ‘참신나는옷’을 설립, 그해 12월에 신나는 일터와 궤를 같이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한편 지난 2003년 8월에 문을 연 지역아동센터 ‘참신나는학교’는 지역학생들에게 매일 방과 후 보충수업과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등 여성근로자들로 하여금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참터가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 여성근로자들의 가장 큰 고충이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는 거였어요. 참터에선 먼저 ‘참신나는학교’를 열었습니다. 학교는 현재 초등부 35명, 중등부 15명의 학생들에게 학교수업은 물론 영어교육, 문화여가활동,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참신나는학교’와 뜻을 같이하는 ‘참신나는장학회’는 전 대표와 함께 여성근로자들의 권익증진에 매달렸던 故 이옥지 박사가 기증한 유산을 토대로 설립됐다. 장학회는 가계곤란의 여파로 고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참터는 이밖에도 봉제의류 영세사업장에 대한 세미나, 참터 소식지 발간, ‘MK(made in Korea)프로젝트’, ‘봉제지원센터’ 등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술 배우며 물건 팔고 ‘신나는 일터’
참터는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을 제1의 목표로 신나는 일터를 만들고 싶었다. 참터의 사회적 기업 ‘참신나는옷’ 직원들은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재단사, 미싱사, 시다인 직원들의 임금은 동종업계 평균을 넘는 대우를 받는다. 대부분 하루 16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 동대문 일대 여공들의 일반적인 근로 환경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직원들에게 8시간의 업무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기업에겐 절대 불리하죠. 특히 제조업에 있어선 빠듯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면 지속 가능해야 하기에 무엇보다 이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린 8시간 노동하면서도 기업과 근로자가 상생할 수 있는, 신나는 일터를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로조건 향상을 넘어 경쟁력을 갖춘 기술 개발이 필요했다. ‘참신나는옷’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참터의 기술교육부서 ‘수다공방’은 미싱사를 교육하는 곳이다. 생업으로 미싱을 돌리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술수준에 따라 과정을 나눠 주 1~2회씩 최소 4개월의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현재까지 5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봉제기술을 갖춘 이들은 ‘참신나는옷’에서 수습과정을 밟거나 아예 정규직 미싱사로 일자리를 얻는다.
“수다공방에선 영세한 봉제 여성근로자들에게 다기능ㆍ고급기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오랜 훈련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동대문 시장제품을 만드는 기존의 대량생산 방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력노동자들에게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고급 기술로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데 힘을 쏟고 있지요.”
천염 염색의 고급 의류 브랜드 ‘수다공방’의 옷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숍을 열어 고객과 만나고 있다. 특히 30~50대 여성들을 겨냥해 편하면서도 보기에 좋은 옷을 추구한다. 면과 마, 실크 등 천연소재에 천연염색을 해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옷, 단순하지만 참신한 매력이 넘치는 옷이 컨셉이다.
“친환경 소재, 천연염색 등을 고집해 품질엔 자신이 있습니다. 이제 유니폼 생산 등 단체복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스타항공사 유니폼도 저희가 직접 만들어 납품하고 있지요. 교복시장도 뚫으려고 하는데 대형업체들과의 경쟁이 쉽지만은 않네요(웃음).”

봉제기술인의 가치를 새롭게 부여할 수다공방의 패션쇼

수다공방 사람들은 ‘2번 미싱사’, ‘3번 미싱사’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린다. 이 선생님들은 그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패션쇼 무대에 서고, 인사동 갤러리에서 패션작품전시회를 여는 등 ‘신나는 일터’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봉제기술인의 가치를 새롭게 부여할 수다공방의 패션쇼는 부대행사인 전시회와 함께 봉제 산업에서 새로운 고용창출과 재취업을 이루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는 자리가 되리라 봅니다.”
올해 4회째를 맞는 수다공방 패션쇼는 ‘대한민국 명품 봉제 컬렉션’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오는 11월 30일 학여울역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세텍(SETEC)에서 그 화려한 막을 열 예정이다.

희망을 박음질하다
참터는 지난 7월 ‘봉제지원센터’ 발대식을 열었다. 그동안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만 시행했던 것에서 벗어나 일하는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영세 공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봉제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은 대부분 영세합니다. 근로환경이야 말할 것도 없고, 4대 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이 외면되고 있지요. 참터는 이들 공장이 변화해야 근로환경도 변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봉제지원센터는 근로자 유입을 위해 공장 환경을 개선하는 등 봉제공장을 활성화하고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도울 방침이다. 현재는 노동부나 한국산업안전공단과 협력한 봉제공장에 기계적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최근 창신동에 위치한 봉제공장 중 일곱 여 곳이 한데 묶어 사회적 기업으로 신청했어요. 영세공장들이 좋은 일터로 변하기 위해 현재 음성화한 것을 양성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참터는 계속해서 봉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쏟겠다는 각오다. 중국산 저가 제품과 저임금 노동력에 밀려 국내의 숙련된 봉제 근로자들이 외면당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키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면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 걱정 없이 신나게 일할 수 있고, 더 나은 근로환경에서 고품질의 옷을 생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들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으며, 꿈을 향해 걸어가는 ‘신나는 일터’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햇살도 잘 비치지 않는 작은 공장에서 졸음과 먼지와 씨름하며 미싱을 돌리던 그들이 작업장에서 나와 당당하게 런웨이를 걷는다.
미싱바늘 귀에 초점을 맞추어 아래만 내려다보며 살아온 이들이 다른 세상의 문을 활짝 열고 걸어가는 순간이다. 

배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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