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시각장애 여성 바리스타를 배출한 커피전문점이 있다. 여성시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카페모아’가 바로 그것이다. 후각과 청각, 그들만의 정성으로 만든 커피는 이웃과 소통하며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카페모아’. 30평 남짓한 공간에 십대 학생부터 연인, 주부,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입구에서 손님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은은한 커피 향이다. 한편에선 눈을 반짝이며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표정이 진지하다. 거품기 손잡이를 당길 때 나는 소리에 맞춰 우유 거품 농도를 조절하는 손놀림은 무척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는 모두 1급 시각장애인이다.

 

배성희(35)박서연(27)이선주(29) 윤혜원(20)윤미영(29)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최동익)은 지난 2008년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를 고민하던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바리스타 양성훈련을 실시했다. 복지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과 자체 예산을 모아 지난해 4월 커피전문점을 직접 열었다. 그리고 교육생 중 면접을 거쳐 우수 교육생 4명을 선정해 ‘카페모아(Cafe More)’의 직원으로 채용했다.
복지관 관계자는 “교육이 끝난 후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뒤처지지 않는 기술을 갖추었지만, 시각장애인이 일할 곳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면서 “복지관은 시각장애인이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하고자 했다”며 카페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카페모아’ 바리스타팀은 일주일마다 회의시간을 갖고서 이벤트나 행사에 대한 의견과 레시피를 공유하고 있다. 시중 커피전문점보다 저렴한 가격과 블루베리 요거트와 같은 신메뉴 개발 등을 통해 고객관리에 주력한다.
덕분에 하루 200잔의 매출을 올리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카페는 현재 월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바리스타 시각장애 여성 5명과 매장 총괄담당인 비장애인 매니저 2명이 2교대로 나눠 근무하고 있다. 주문과 계산, 테이블 정리 등은 비장애인 매니저가 담당하고 장애인 바리스타는 커피 제작에 집중한다.
복지관 관계자는 “여느 커피 전문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가격과 맛으로 단골이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카페가 잘 되다 보니 카페를 팔라는 제안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고 자랑했다.

커피를 눈으로 타나요?
바리스타란 재료를 알맞게 조절하여 커피 맛을 풍부하게 하는 전문가이다. 재료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보는 눈이 정확해야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 하지만 ‘카페모아’ 바리스타들은 희미한 시력이지만 주문과 동시에 청각, 감각, 후각을 총 동원해 능숙하게 주문된 커피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커피 종류는 20가지가 넘는다.
올해 5월에는 한국커피연합회(KCA)가 주최하는 바리스타클래식 대회에 참여해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당시 대회에 참여한 윤미영(29), 현정희(33) 씨는 최초의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란 영광스런 수식도 달았다. 윤미영 씨는 “카페모아에서 매일같이 기계를 다루며 커피를 만들다보니, 절로 실력이 늘게 된 것 같다”며 겸손히 밝혔다. 현정희 씨는 현재 실로암안과병원 내 카페에 스카우트되어 현장을 누비며 카페모아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애인 바리스타가 복지기관이 아닌 일반 카페에 취업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실력을 갖춘 바리스타팀은 평소에도 커피에 관심이 높다. 집에서도 커피를 따로 내려 마시는 것은 기본, 풍부한 커피 맛을 보기 위해서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는 팀원도 있다.
박서연(27)씨는 “해외로 나갈 일이 있을 때면 무조건 커피 맛을 본다”면서 “국내에선 지역마다 커피 맛집을 순회한다”고 말했다.
커피에 대한 입맛이 깐깐해진 것은 당연하다.
“비싼 돈을 주고 사먹는 커피라고해서 다 맛있지도 않고, 보다 저렴한 커피라고 해서 맛이 없지 않아요. 커피 맛을 보기 위해 찾은 카페에서 바리스타의 정성이나 실력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죠.”
진행성 시력장애를 가진 박 씨는 시력이 지금보다 현저히 좋았던 5년 전에는 일반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었다. 현재 한쪽 눈을 온전히 실명한 그는 “비록 시력은 나빠지고 있으나 무게감으로 재료의 양을 측정하는 등 커피를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꾸준한 연습을 통해 바리스타의 꿈을 이룰 것”이라며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선배 바리스타는 후배에게 경험담과 함께 노하우를 전수한다

한편 팀의 최고 맏언니 배성희(35) 씨는 캐디로 일하던 중 시력을 잃었다. 컴퓨터 속기 등 직업훈련을 받았지만 취업연결에 난항을 겪어온 그는 바리스타로 일하는 지금이 행복하다. 배 씨는 “하고자하는 의지만 있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우리가 만든 커피가 비장애인이 만든 커피와 비교했을 때, 결코 뒤진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팀 내부의 끈끈한 유대는 이러한 자신감을 더욱 북돋는다. 선배 바리스타는 후배에게 경험담과 함께 노하우를 전수한다. 윤미영 씨는 “눈이 불편하기 때문에 노하우를 터득할수록 일이 쉬워진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이 몰라서 어렵게 일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카페 설립 당시 멤버인 윤 씨 등은 그보다 어린 동생들에게 꿈의 실현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팀의 막내 윤혜원(20) 씨는 “선배들의 격려는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박서연  씨는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시각 장애인 바리스타)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선배들은 늘 내게 귀감이 된다”며 칭찬했다. 이들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할 그날까지, 최고를 위한 최선의 신념을 갖고 기량을 높이겠다는 각오다.

희망의 향기 전한다
‘카페모아’는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모든 메뉴를 1000원에 판매했다. 바리스타팀은 평소보다 무려 5배나 많은 커피를 만들어야했지만, 여느 때보다 행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행사를 계기로 장애가 있는 바리스타도 비장애 바리스타와 비교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우리가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인들보다 근로비율이 현저히 낮고, 생산성을 갖고 근무를 할 수 있는 직종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이 유보직종인 ‘안마사’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의 박소정 사회복지사는 “안마사 이외에 다른 직업을 구하기 힘든 시각장애인들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바리스타’와 같은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른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복지사는 “커피를 만드는 기술과 성실함만 있다면 누구나 카페모아에서 일할 수 있지만, 매장의 규모가 한정돼 있어서 더 많은 인원을 채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관은 좀 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갖고서 카페모아 2호점 개점도 바라보고 있다. 이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장애인 인식 개선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다.
카페를 개점할 당시만 해도 주변에선 ‘시각장애를 가진 바리스타가 과연 가능할까’란 의문과 염려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로 끝이 났다.
‘카페모아’ 바리스타팀은 반복적인 훈련과 연습을 통해 능숙하게 커피를 만들게 됐으며, 이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일하고 배우며 자아를 성취하게 됐다. 바리스타팀은 “시각장애인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한정적이지만, 다양한 분야에 시각장애인이 활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싶다”라며 장애인들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여성, 장애라는 이중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기 보다는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의 값진 땀방울은 계속해서 장애우들에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것이다.
시각 장애란 한계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커피를 타는 ‘카페모아’에 진한 삶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성 시각장애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카페모아’

배샛별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