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1급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휠체어를 고치는 기적의 사나이가 있다. 장애인생활클린센터에서 장애인 보장구수리 일을 하는 김인호(35) 실장이 그 주인공. 불편한 몸으로 일하느라 고단할 법도 한데 그의 얼굴은 언제나 미소로 가득하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의 무게를 알기에 다른 사람의 상처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장애를 딛고 일어서다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성동장애인복지관 1층에는 10평 규모의 장애인생활클린센터가 들어서 있다. 지체 1급 장애인 김인호(35) 실장은 이곳에서 장애인 보장구(휠체어)를 개조 및 수리한다. 그는 농기계, 지게차, 보조공학사, 자동차 정비, 굴삭기 등의 면허를 취득한 전문가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군산 출장 갔다 오는 길에 운전 부주의로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사다리차, 크레인, 특장차 수리기사로 일하다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3년 동안 집에서 누워 지냈어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 어머니가 자세를 바꿔주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사고 후 3년간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던 그는 국립재활원에서 재활훈련을 받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보다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것. 그는 그 길로 재활원에 들어가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재활원 3개월 코스를 밟았습니다. 재활훈련을 하고 난 뒤 도로 똑같이 지내고 싶지 않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엎드려서 할 수 있는 의류수선 부업을 하면서 서울에 자리를 잡았어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장애가 있는 그에게 수급권은 꼭 필요한 제도였다. 재활원에서 만났던 지인이 보장구수리사업을 하자고 제의했을 때도 그는 수급권자 혜택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일 년 뒤 다시 사업을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도 수급자가 유지되면 일하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이동 수리를 위해 차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차를 구입하자 바로 수급자에서 탈락됐습니다.”
김 실장은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보장구수리사업을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모두 무리하지 말라며 만류했다. 특히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지원 받았던 돈과 월급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일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수급자로 살았던 3년 보다 일하면서 산 시간이 훨씬 값어치 있었습니다. 진짜 잘 했다 싶었지요.”
그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수리를 원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갈 정도로 열정을 다해 근무했다.

변화의 시작
김 실장은 교통사고 이후 몸에 욕창이 생겨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업무 수행에도 문제가 생겼다.
“욕창 때문에 한동안 집에 누워 있었어요. 그때 성산대교 위에서 펑크가 나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한 장애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택시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요. 그런데 누나가 골목에 차를 세워놔 못 빼는 겁니다. 제가 할 테니 옆에서 봐달라고 하고 베개를 몸에 받치고 운전을 했습니다. 의외로 쉽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그는 엎드려서 운전하게 됐다. 휠체어를 개조해 엎드려 작업할 수 있는 전동휠체어도 제작했다. 몸에 맞는 휠체어를 직접 만들어 일하니 앉아서 작업 할 때보다 근육이 덜 뭉치고 힘든 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욕창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성동장애인복지관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성동구는 장애인 보장구수리사업을 하고 있지 않아 성동구청에 지원을 요청했어요.”
김 실장은 복지관의 사업계획서가 성동 구청의 허가를 받으면서 수리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다른 구의 경우 기존 업체에 수리 사업을 맡겨 보장기간 내 수리건도 그 예산으로 처리했다. 장애인들에게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업체도 수입이 확실한 기관만 찾아다녀 일반 고객은 수리를 받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성동구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 논의하다 복지관에 시설을 운영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성동장애인생활클린센터 책임자로는 저를 추천했지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던 터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 실장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라고 생각해 사고 후 사회복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사회복지사가 정보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활클린센터의 장점으로도 장애와 관련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업체 상담 없이 모든 보장구를 수리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클린센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다시 찾은 기쁨
생활클린센터는 이용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부품비를 따로 받지 않아 수급비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수리뿐 아니라 복지관에서 장애와 관련된 상담도 받을 수 있어 사람들의 호응이 크다.
하지만 늘 일을 순조롭게 했던 것은 아니다.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한 번은 어떤 어머니로부터 살려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대로 끊을 수 없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휠체어가 망가져 밖에 못 나간 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는데 병원에도 못 가고 있다는 말에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제 얼굴을 본 어머니는 인상을 쓰며 저를 내쫓았습니다.”
그는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일하러 왔다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했다. 김 실장은 휠체어의 상태라도 보게 해달라고 사정한 끝에 수리를 할 수 있게 됐다. 휠체어를 고치자 어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모습이 생생해 그는 이러한 분들을 위해서라도 일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람들의 미소를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수리를 하러 가면 형편이 어려워 물 한 잔 밖에 줄 수 없어 미안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 남을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혼자 살기 바빴던 예전에 비해 생활 자체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희망의 땀방울
그는 다른 장애인들도 도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특히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이들의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가족들은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을 가장 장애인답게 만드는 것은 가족들입니다. 이들은 다만 조금 더딜 뿐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두고 격려하고 지켜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김 실장이 사고로 장애를 입고 집에 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집수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마루와 토방, 문지방이 있는 옛날 구조의 집이었던 터라 그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막내아들이 몸이 불편해 퇴원 하는데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배려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너를 위해 집수리를 해줄 수 있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아무도 시설을 고쳐주지 않는다, 고쳐진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려 네가 먼저 지치게 된다, 그러니 하루 빨리 시설에 몸을 맞추는 법을 배워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시설에 적응하는 게 빠르다는 말씀이셨지요. 그렇게 저를 붙잡아주셨기 때문에 저는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에게 언제 걸음마를 시작할 것이냐고 농담처럼 물어보곤 했다. 혼자 힘으로 밥벌이를 하고 난 뒤에는 이제야 유치원에 들어갔다며 안도했다.
그는 몸이 움직이는 한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달려가며 끝까지 일할 생각이다.
“앞으로 이곳을 성동구 주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조공학센터로 키우고 싶습니다.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김 실장은 고장 난 기계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질 줄 아는 진정한 수리공이다.
마음 따뜻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개인적 소원이라는 그가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길 기대한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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