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복지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이용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박정식 팀장은 이를 뒤집어 이용자가 서비스 제공자가 되어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복지사로서 자신의 능력이 훌륭해지는 것보다 당사자 개인의 능력이 성장하기 바란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능동적 행동은 발전의 씨앗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박정식 팀장은 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회복지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결심한 것은 군 제대 후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부터였다.
“병실에 누워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안 좋은 상황에 처하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치료를 통해 몸의 안정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면서 다른 이들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활동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사회복지로 진로를 바꾸고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 수업을 수강하면서 특히 임파워먼트 개념을 되새겼다.
“내적 치유뿐만 아니라 자기옹호와 권리주장도 함께 하는 임파워먼트가 크게 와 닿았습니다.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수료를 받고 처음 현장에서 일할 때는 서비스 이용자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을 겪으면서 이용자들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방법을 가르쳤어요.”
박 팀장은 한울센터에서 당사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사업을 전개했다.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되찾고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당사자 동료 상담가 양성과 교육도 담당했다.
“한울센터에서 근무하던 초기에는 혼자 부서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당사자들의 발전을 위해서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해 그들에게 조금씩 권한을 넘겼습니다. 전문가 중심에서 서비스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는 어휘력이 부족하고 감정표현이 안 되는 이용자들을 위해 신문 읽기와 필사를 지도했다. 사람들에게 6개월 이상 읽고, 쓰고, 요약하게 하자 표현력이 늘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 할 수 있게 됐다.
“그전에는 복지사들이 ‘이런 욕구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죠. 반면 당사자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보듬어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만의 용어로 설명해 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박 팀장은 당사자들의 역량이 강화돼야 전문가들이 다른 영역을 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도 들었지만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며 힘을 얻었다.
“어느 날 회원 한 분이 당신은 월급을 받고 우리는 회비를 내는데 왜 우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정도 발언을 할 정도면 역량이 강화된 것이기에 직원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역량 강화를 위해 함께하다
이용자들은 일방적인 서비스 수혜자에서 제공자로 전환되면서 보다 능동적으로 변했다. 박 팀장은 그들이 자신만의 용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논리정연한 말을 할 때 복지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이용자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질환이라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을 보면서 저도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회원들의 역량이 커져 일을 분담하게 되니 제가 다른 업무를 할 여유가 생겼어요. 행정업무, 강사 초빙, 자원연계 등의 일을 더 맡을 수 있어 제 업무능력도 신장됐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이용자들이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는 복지사가 되고 싶다. 대신 그들이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려 한다. 그는 복지사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면 서비스 이용자들을 종속화 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용자들이 복지사에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없어도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저와 이용자들의 능력을 함께 키워나가겠습니다. 당사자들의 역량 강화를 목표로 사회복지를 시작했던 처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복지사로 남고 싶습니다.”
박 팀장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대하려 한다. 열정을 다해 휴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히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다.

서로 성장하는 관계 형성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는 서울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정신보건 서비스에서 소외된 정신 장애인을 위한 동료 상담가 방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정신 장애인 당사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지닌 지역사회 정신 장애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방문해 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 회복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각기 나름의 회복과정을 만들어 나간다.
센터 이용자들은 유아 및 아동,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공연활동도 펼친다. 정신 장애인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표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역사회 소외계층에게 인형극 공연을 하고 있다.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할 때 힘을 많이 얻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유연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것입니다. 특히 이들에게 밑거름이 되는 복지사가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올해부터 당사자주의를 표방하고 가치와 철학에 동의하는 8개 기관과 전국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당사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복지사들이 전문가다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즐겁게 일하고 있는 박 팀장. 그의 바람대로 당사자들의 역량이 증가해 전문가와 이용자 모두 발전하는 윈윈(win-win) 모델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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