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노숙인 특별보호대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최근 쉼터를 통해 일자리를 제공받는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자립을 꿈꾸고 스스로 사업을 운영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거리의 부랑자가 아닌,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그들의 희망찬 모습을 담았다.

참살이영농조합원, 짜로사랑, 사랑의 쌀화환은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힘쓰는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이다. 이곳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인들에게 새로운 일터를 제공해 노동을 통한 땀 값의 진정함을 일깨우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좌절의 나날, 새로운 시작
지난해 12월 8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참살이영농조합원. 이곳 풍뎅이 창고실에서는 세 명의 근로자들이 물을 긷고 톱밥질을 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손에 연신 입김을 불어대며 작업에 열중이다.
참살이영농조합원은 허병금 대표가 자활의지를 가진 노숙인들을 고용해 자조적으로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 2006년 9월 노숙인 특별자활사업의 일환으로 ‘자활영농사업’을 시작했다. 유기농 특화작물로 자황고구마, 오렌지·고구마 등을 재배하며, 장수풍뎅이 성충, 유충을 사육 납품한다. 현재 노숙인 근로자 15명과 관리직 1명이 종사하고 있다.
허 대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농사와 곤충을 키우는 일이 심리치료에 도움 된다는 것. 그는 매일 노숙인 근로자들과 함께 고구마 밭과 풍뎅이 사업장을 일궈가고 있다.
“양평군 일대 휴경지를 무상 또는 저가에 임차해 자활영농 사업을 시작했어요. 농주 소유주의 임대 거부와 농사 경험 부족으로 잦은 병충해에 시달려 힘들었지만 지난 2009년 고구마 밭작물로 1000만 원 매출을 올리면서 좋아지기 시작했죠.”
참살이영농조합원은 장수풍뎅이, 고구마, 허브, 오골계 등의 사업으로 매년 300만~4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근로자에게만 지원하는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아직 재정 상태가 어려운 상황이다.
허 대표는 앞으로 자활기업이 아닌 명실상부한 사회적 기업으로 부상하기 위해 천연자원 수확을 강조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2011년에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함께 성장을 이루어 개개인 모두가 풍족한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며 “사회적 기업에 보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풍뎅이 성충을 살피고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근로자 조영재(64) 씨는 참살이영농조합원에 1기로 입사해 5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직장이 부도가 나면서 거리로 내몰려 노숙인이 됐다. 조 씨는 거의 1년 동안 쪽방에서 전전긍긍하다 노숙인 자활쉼터 보현의 집의 소개로 이곳으로 왔다.
조 씨는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노력한 만큼 버니 기분이 좋다”며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으니 이제 마음잡고 열심히 일해 자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흙에 물을 붓는 작업을 하던 최정호(56) 씨 역시 자활쉼터 보현의 집을 통해 이곳을 소개받았다. 택시기사였던 그는 10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마음을 잡지 못해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최 씨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다 4~5년 동안 쪽방생활을 하게 됐다”며 “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인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최 씨. 현재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그는 이제 하루가 소중하다.
지난해 10월 입사한 선한 인상의 김정남(가명, 44) 씨도 세달 전까지 지하철 역 앞을 헤매던 노숙인이다. 축산 농사꾼이던 그는 사업 실패로 좌절하면서 지난 2002년 가출했다. 앞이 캄캄했다는 그는 “마침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 안정을 찾게 돼 기쁘다”며 “새해에는 헤어졌던 가족과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희망으로 만든 두부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주)짜로사랑 두부공장. 근로자들이 저온창고에서 냉장 보관한 두부를 꺼내 분주히 포장하고 있다. 두부판을 물로 세척하는 직원은 짜로사랑에서 6개월째 근무 중인 송병준(37) 씨. 그는 희망근로를 하다 시설 사장님의 알선으로 이곳에 입사했다.
짜로사랑에서 일하면서 전보다 부지런해졌다는 송 씨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으니 보람도 크고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며 “개인적 채무를 청산하고 좀 더 기술을 배워 짜로사랑을 운영하는 대표님처럼 사회적 기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7년째 두부를 만들고 있는 이상월(50) 씨는 “어려운 시절을 겪은 만큼 관리자로서 힘닿는 데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 회사가 잘 돼 2교대, 3교대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짜로사랑은 순수 100% 우리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노숙인들에게 자활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일반 시장 보다 유기농품 매장, 우리 농산물 매장, 생활 소비자 활동 조합으로 물량이 나가고 있으며 매출은 월 3500만 원 정도이다.
짜로사랑은 노숙인 쉼터 해뜨는 집에서 자활을 위해 수원희망자활후견기관 우리콩두레 두부사업단을 만들면서 설립됐다. 알콜중독으로 노숙인 생활을 하던 김동남 대표가 2002년부터 두부제조 사업을 맡아 운영했다.
노숙인 출신 직원 두 명과 아무 기술 없이 시작한 공장은 2003년 기계와 장비를 갖춘 곳으로 이전 하면서 두부의 품질을 인정받았다. 특히 서울 우리농촌살리기 운동본부와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주문이 늘었다.
2008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된 짜로사랑은 현재 지역사회 가난한 이웃들의 일자리 창출 및 자활 공동체 모델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자활센터에서 시작했지만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자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수급권 등 소외계층의 삶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중소기업 형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식당체인, 콩 농장 등 두부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우리 농산물 물류센터, 영·유아 놀이방 및 어린이집, 노숙인 쉼터, 알콜 의존 치료센터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짜로사랑 식품관련 연구소와 노후 대책을 위한 실버타운 건설도 최종 목표로 구상하고 있다.
“직원들 모두 서로 믿고 의지하며 힘든 일을 보듬어 가면 분명 더 나은 내일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픔과 절망을 느낄 때가 있죠. 또 누구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정부, 지자체, 사회복지 등 많은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으니 노숙인들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길 바랍니다.”
김 대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하면 노숙인들도 사회에 복귀해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짜로사랑이 추구하는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초석을 다져나갈 작정이다.

도움의 손길로 일어서다
(주) 사랑의 쌀화환은 나눔을 실천하는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쌀 기증을 통해 어려운 계층을 지원한다. (사)대한노인회와 함께 전국의 재정이 어려운 경로당 홀몸 노인들에게 사랑의 쌀화환 보내기 캠페인을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일산. 사랑의 쌀화환 외주업체 진영패키징에서 화환 제작 및 조립, 포장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기홍(38) 씨는 빨간밥차에서 무료급식 나눔봉사를 하던 중 사랑의 쌀 나눔 운동 본부 이선구 이사장을 통해 쌀화환 소식을 들었다. 공동체 생활을 하던 그는 목사님의 소개를 받아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김 씨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사랑의 쌀화환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 일을 함으로써 타인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도 보람된다. 특히 그는 스스로 돈을 벌면서 자신감과 의욕이 생겼다.
“저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 다른 노숙인들도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미흡하지만 제가 그분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꿈을 크게 가졌는데 잘못 행동해 노숙인이 됐어요. 앞으로 일주일, 한 달씩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려고 해요.”
김 씨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붙잡으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타인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 또한 남을 위해 사랑의 쌀화환이 계속되는 그날까지 함께 하려고 한다.
사랑의 쌀화환 정윤진 팀장은 “앞으로도 노숙인들을 동반자로 여기고 이들을 한 발자국 앞서 가이드 할 것”이라며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꽃 피는 봄을 기다리며
추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노숙인들은 자활 쉼터를 통해 일자리를 제공받고 안전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사회에서 독립할 수 있는 신분이 되기까지는 아직 갈 갈이 멀다.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야 하고, 술로 안 좋아진 건강도 되찾아야 한다.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지만 노숙인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자활에 성공한 사람들처럼 다른 노숙인들도 힘차게 일어서면 꽃피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공동취재/문혜원·박지연 기자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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