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 편안한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두 가지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평일 낮에는 본업에 힘쓰고 근무시간 이후나 휴일에는 부업을 한다. 두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투잡족들. 그들이 투잡에 뛰어든 이유를 살펴봤다.

생활비 벌기 위해 주말알바 한다
지난달 8일 오전 12시.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한 고급 웨딩홀에서는 화려한 결혼식이 진행됐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무대 뒤편에서는 정장 차림의 남자와 여자들이 양식 요리를 차례로 날랐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와인을 따라주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아르바이트 인력들이다.
첫 식이 끝나고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박선영(29) 씨가 테이블 정리를 시작했다. 그는 평일에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박 씨는 “이 일을 한 지 6개월이 넘어 지금은 아르바이트가 아닌 투잡이 되었다”며 “몸이 고단해도 어느 정도 생활비가 마련되고 있어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씨가 웨딩홀에서 받는 일급은 5만원 정도. 평균 9~10시간 동안 하루 종일 서서 쉴 틈 없이 일하는 것에 비해 적은 액수지만 용돈벌이로는 그만이다.
웨딩홀에서 1년여 기간 동안 일한 곽성수(32) 씨도 투잡족이다. 곽 씨는 평일에는 전화 상담 일을 하고 주말에는 웨딩홀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곽 씨는 “본업이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주말에는 활동하는 업무를 하고 싶었다”며 “아르바이트가 생활비 보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곽 씨의 일당은 6만~7만원 선. 박 씨보다 경력이 있어 1만~2만원 정도 더 받고 있다. 그는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여가비 및 필요한 물품을 사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지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43.4%는 현재 직업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중 대부분은 현재 본업을 제외하고 한 가지 부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8.7%는 2~3개의 멀티잡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사람인의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86.3%가 본업 외 투잡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투잡족이 부업을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은 ‘시간대가 알맞은가’ 39.5%,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인가’ 19.5%,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어 하는 일인가’ 14.9%,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11.5% 등으로 응답했다.
투잡의 대표적인 일로는 ‘강의 또는 과외’ 20.3%, ‘식당, 커피숍 아르바이트’ 18.2%, ‘체력을 쓰는 일’ 10.8%, ‘지분 투자’ 8.7% 등 전문성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꼽았다.
투잡으로 인해 ‘수입이 증가했다’는 긍정적인 영향은 64.6%였으며, ‘개인시간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55.9%로 조사됐다.
이지서베이 우성균 담당자는 “당분간 직장인들의 아르바이트 붐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라며 “직장인들의 개개인 연령과 부업과 관련된 일을 봤을 때 투잡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올라 월급 턱없이 부족
광주 북구 신한동 디자인 프로그램 3DMAX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동진(30) 씨. 그의 본 직업은 설계 디자인이다. 그는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바로 학원으로 향한다.
김 씨는 “월급이 적어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아 학원 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월 180여 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는 그는 적금과 보험비 60%를 제외한 돈으로 생활비를 사용한다. 월세, 갖가지 생필품, 간간히 친구들을 만나 지출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김 씨는 결혼하고 나서부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앞으로 자식이 태어나면 양육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는 것.
김 씨는 “월급은 줄지 않았지만 최근 물가가 올라 실제 수입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며 “앞으로 아이가 생기면 분유 값, 기저귀 값으로 많은 돈이 들고 교육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살림의 규모는 점점 늘어나는데 수입은 고정되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투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
그는 “용돈 수준의 돈이라도 벌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진다”고 밝혔다.
한편 웨딩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수진(가명. 31) 씨도 역시 ‘월급이 적어서’ 투잡을 선택했다. 그녀가 직장에서 버는 돈은 120만원 정도. 월급의 80%를 적금으로 붓고 나머지 20만원~30만원으로 카드값, 교통비를 지출하면 남아있는 돈이 거의 없다.
최 씨는 “목돈이 필요해 월급의 대부분을 저금하고 있다”며 “이렇게 주말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잡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잡으로 버는 월 순수익은 대체로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26.9%로 가장 많았다. 투잡을 하는 이유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0.2%가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27.2%가 ‘자녀 양육비’를 꼽았다. ‘직장이 불투명해서’ 7.2%, ‘내 집 마련 또는 이사를 위해’ 5.8%, ‘창업 준비를 위해’는 2.6%로 나타났다.

외국에서도 투잡이 해결책
해외에서도 직장인들에게 투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일본에 있는 덮밥 가게에서 서빙을 하는 이정민(가명. 27) 씨. 그는 보다 조건이 좋은 나라에서 일을 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일본에 왔다.
이 씨는 “평일에는 덮밥 가게에서 15만~20만엔 정도 벌고 주말에는 맥도날드에서 5만엔 씩 벌고 있다”며 “투잡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학기 일본어 학원비로 20만엔, 방값으로 6만엔을 지출한다. 나머지는 식비와 교통비, 의류를 구입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씨는 스케줄 근무를 한다. 한 달에 두 번씩 지정한 스케줄 대로 일하겠다고 요청하면 영업주가 날짜를 조절한다.
이 씨는 “한곳에서 5일만 나오라고 할 경우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 날짜를 채운다”며 “스케줄에서 잘리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도쿄의 조그만 무역상가에 취직한 김소연(가명. 27) 씨도 주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번역과 경리 일을 하고 주말에는 긴자에 있는 양고기 전문점에서 서빙을 한다.
김 씨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외국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나라가 몇 안된다”며 “언어도 배우고 일도 하기 위해 일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에서 똑같이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급 차이가 확연하다는 김 씨. 그는 일본은 아르바이트만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대우를 해준다고 설명한다. 투잡은 대부분 비정규직인데 일본은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높은 급여를 지급해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
김 씨는 “일본에서는 알바나 한다고 무시하지 않고 다들 프로 정신을 발휘해 일을 한다”며 “알바생들의 서비스 정신이 뛰어난 것은 자기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는다고 생각해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고 손님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집값 8만엔, 식비 6만~7만엔, 옷값 5~6만엔을 지출한다. 출퇴근 시 교통비는 회사에서 지급 받으며 간단한 물품은 100엔 샵에서 구입해 생활비를 절약하고 있다.
김 씨는 “일본의 방세, 전기세, 수도세, 교통비가 비싸다고 해도 한국 보다 일본에서 일하는 게 훨씬 돈을 많이 번다”며 “업무도 체계적으로 가르쳐줘 스트레스가 덜하다”고 말했다.
한국고용노동부 임한일 담당자는 “사람들이 투잡에 뛰어드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한경쟁사회로 몰고 가는 우리 사회적 구조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 담당자에 따르면 승자 독식의 무한 경쟁사회가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떨쳐버릴 수 없는 워킹푸어와 같은 사회 위기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
그는 “비정규직 고용형태에서 오는 평생직업 창출 부족, 적은 임금으로 인한 불안정한 생활체계가 지속되다 보니 투잡을 선택하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잡족의 생존법칙
성공하는 투잡스(Two jobs)가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생계형 투잡에 맞추기보다 평생직업의 창출을 생각해 직장 불안이 없는 사업가나 특정 분야 전문가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 직장인 투잡족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주5일제의 확산과 더불어 여가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 투잡인을 양성하는 것도 방안이다.
평소 종사하고 싶었던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창업과 관련된 전문 교육을 받는 것도 투잡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문 분야, 취미 등과 관련된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크루트 윤성운 담당자는 “경기불황 여파로 생활비 마련에 부담을 느끼고 본업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투잡족이 늘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없는 직장불안이라는 현실이 투잡스 시대를 열게 했다”고 주장했다.

공동취재/문혜원 기자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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