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사회복지사들에게 홈쇼핑보기, TV광고 보기를 권하는 삼성소리샘복지관 정춘진 선임연구원. 언뜻 보면 엉뚱해 보이지만, 사회적 트랜드를 알 수 있어 사회복지를 이끄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또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들로 내용을 가공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사회복지에 꼭 필요한 힘이라 믿는 그를 만나봤다.

사회복지 길로 들어서다
 다방면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정춘진 선임연구원은 순수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대학교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창업도 해봤다. 대학 졸업 후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을 문학분야로 지원했으나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입학 할 수 없었다. 이후 경영분야로 발을 내딛어 보지만 비전공자로서의 조건이 까다로워 지원하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우연히 복지관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말벗서비스 봉사활동을 하게됐다. 일주일에 한 번 독거노인을 찾아가 대화 상대가 돼주는 서비스였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허리를 다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70대 할아버지셨어요. 봉사하러 갔으니 반갑게 맞이해 주실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냉담했어요. 첫날, 인사하고 TV만 보다왔죠.(웃음)"
 할아버지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상처를 받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그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과외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어느 날 과외 아르바이트를 갔는데, 그 댁 할머니께서 만두를 빚으시면서 먹고 가래요. 저는 먹는 대신 좀 싸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자원봉사를 하는데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다고 사정을 말했더니 흔쾌히 예쁘게 포장까지 해주셨어요."
 그는 만두를 가지고 다시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 만둣국을 끓여드리려 했으나 할아버지가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만두를 냉동고에 넣어 놓고 발길을 돌렸다. 다음 자원봉사 때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 냉동고를 열어보니 만두가 줄어 있었다.
 "줄어든 만두를 보고 할아버지께서 마음을 살짝 여신 것 같아 다시 만둣국을 끊여드리고 싶어서 여쭈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직접적으로 끓여달라는 말은 못하시고, 돌려서 말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허리가 아파서라고'(웃음) 그래서 맛있게 끊여드렸죠."
 그는 만둣국을 끓이는 동안 할아버지의 혈압에 대해, 당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만둣국을 완성해서 할아버지 앞에 상차림을 했는데, 당신이 드실 만둣국 한 그릇만 보이자, 정 선임연구원에게 네 몫도 가져와서 같이 먹자고 권했다.
 "복지관에서 가져다 준 음식말고 누군가가 직접 끊여주는 음식은 아주 오랜만이래요. 그동안 직접 요리해 주는 음식이 그리우셨던 거죠. 말벗서비스라고 해서 말로만 해보려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냉담하기만 했던 할아버지의 변화된 모습에 복지관조차 놀랐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복지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래서 대학원에서 복지행정을 선택해 공부하게 됐죠."
 호기심 많고 적극적이었던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드디어 사회복지라는 진로를 향해 열심히 공부했다.

창조적 열정으로 소통하다
 지난 2000년 2월 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해 7월 사회복지 관련 연구소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그는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 비어있는 시간을 활용해 3개월 정도 삼성소리샘복지관에서 일하고자 했다.
 "복지관에서 3개월 정도만 일하려고 했는데, 현재 복지관의 계시는 사무국장님의 영향을 받아 13년째 이곳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는 복지관에서 처음으로 기안문을 작성할 때, 사무국장의 체크를 빼면 자신의 글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페이퍼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사무국장님은 기안문 하나를 작성하시더라도 계절감각, 조사의 위치에 따른 느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정말 작은 차이지만, 그 작은 하나가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나중에는 이해하게 됐죠."
 정 선임연구원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때도 재미있게 구성한다.
 "복지관에서 몇 년 전까지 장애인당사자주의를 접목시킨 청각장애청소년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우리들이 장애인을 도와주는 대상이라 보는 이유는 나보다 저 친구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해요. 그래서 역할을 바꿔봤죠. "
 2박3일 동안 서울삼성학교 청각장애청소년댄스동아리 학생들이 비장애청소년들에게 춤과 수화를 가르쳤다. 프로그램을 통해 권력관계가 역전되었고, 청각장애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개선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6년 동작구에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설문지 전수조사를 실시해 또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장애아동이 일반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경우, 장애아동에 대한 정보가 없고 누구에게 문의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과 보라매공원 지적장애인복지관, 동작복지재단과 함께 지역프로젝트를 실시했습니다."
 이어 2007년에는 장애체험박람회 '또래축제'를 만들었다. 매년 10월에 진행을 하다 재작년부터 연 2회 개최를 목표로 진행했지만, 지난해 신종플루로 1회 개최됐다. 앞으로는 연 2회 봄과 가을에 개최할 예정이다.
 "'또래축제'도 진행하면서 수시로 유치원을 방문해 '방문장애인식개선 교육'도 실시했어요. 작년을 기점으로 초기 멤버들이 모두 바뀌었죠. 제 색깔이 너무 묻어있는 것 같아서요. 초창기 보조역할을 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팀장님이 돼서 사업을 이끌어 가세요."
 그에겐 잊지 못할 네이버 해피빈 사건도 있다. 장애인프로그램 후원을 위해 해피빈을 모으려 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못했다.
 "온라인에 게재한 후원사진이 어두운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과 지인 가족들이 청라 생태공원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을 찍어 올렸어요.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해피빈 '콩'을 모아주셨죠. 사진을 올릴 때, 이 아이들이 청각장애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보는 이들이 행복하게 노는 장면을 보고, 정말 이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정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가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사회복지를 넘어 관심사가 다양해서 지난해 'the 동네' 전이라는 주제로 네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앞으로의 꿈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복지순례를 다니는 것이다. 그의 꿈과 함께 사회복지 현장에서 어떤 아이디어들이 사회복지와 접목해 소통하게 될지 기대된다.

박지연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