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과 관련한 사회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학생과 시민단체는 물론 학부모와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반값 등록금을 촉구하는 거리집회가 날이 갈수록 더하여 지고 있다. 대규모 집회시위 현장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대학생들의 뜨거운 반란, 집회시위 현장
지난달 5일 오후 6시 30분. 광화문 근처 분수대 앞에서는 주말에 나들이 나온 가족 및 시민들로 북적거린다. 그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KT 사옥 앞 집회 현장은 가는 길부터 범상치 않다. 경찰 버스가 청와대 방향으로 줄을 이었고 경찰들은 미리 학생들의 시위를 막기 위한 방어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이윽고 시계가 7시를 가르키자 조금씩 대학생들이 집회장소로 모여들었다. 이날은 대학생 및 시민들에게 무료 책 나눔 특별 이벤트를 함께 펼치며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촛불 시위에 가세를 놓기 위해 열연이었다.
책을 무료로 기증받은 한 남학생은 커다란 스케치북에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쓰는 등 현재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값등록금 촛불 시위에 두 번째 참여 중이라는 대학생 김보아(22) 씨는 “현재 휴학 중인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다시 학교 다닐 엄두가 안 나고 있다”며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위에 참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학생 강영호(20) 씨는 “다음 학기에 학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정부에서 발표한 B학점 이상 적용 대상자들에게만 반값 등록금 권리를 부여하게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경쟁만 낳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금이라도 정부가 대학생들의 현실을 자각하고 이해해주고, 바른 정책을 내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위 현장을 지켜 본 한 시민은 “학생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자녀를 둔 부모로서도 공감하기 때문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집회 현장이 가까워지자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아자 아자!”라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마이크 너머로 들려왔다. 곧 이어 곳곳에 각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회의 깃발과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플래카드 중 눈에 띄는 문구는 현재 대학생들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낸 “우리 공부하고 싶어요.. 돈 걱정없이”라는 문구다.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대학생은 각자 나눠 받은 촛불에 불을 붙이며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아자 아자!”라며 구호를 함께 외쳤다.
시위집회를 결성한 한국대학생 연합회 한대련 회장은 “여러분 같이 참여해주세요! 대학생들에게 함께 힘이 되어주세요!”라며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소리치는 등 시위의 열기를 한층 북돋기 위한 노력을 강행했다. 등록금 문제의 당사자인 대학생들은 연일 ‘반값 등록금 즉각 시행’을 촉구하며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고, 권해효 김제동 김여진 등 연예인 ‘소셜테이너’들을 비롯해 30~40대를 중심으로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학생·학부모 허리 휘게 하는 미친 등록금
인천 모 자연과학대에 재학 중인 박지혜(25) 씨는 1학년 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정까지 마트에서 일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바빴다. 박 씨는 입학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렇게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고스란히 생활비에 써야 하기 때문에 등록금에 보탤 능력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부모님이 어렵게 돈을 번다는 것을 아는 박 씨는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사립학교 특성상 가정 형편을 고려해 주는 장학금도 드물어 장학혜택은 엄두도 못낸다.
김 씨는 “해마다 등록금은 상승하고,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용돈벌이 밖에 안된다”며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몸이 피로해서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도 떨어져 속상하다. 정부가 하루 빨리 이런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해주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을 줄이는 방안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지만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사립대학 기준으로 연 1000만 원에 육박하는 학비에 생활비ㆍ책값 등 부담이 너무 무거워 장학금이나 저리 학자금 대출 등의 대책이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등록금 수준은 미국 다음인 세계 2위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 대학의 연간 등록금 현황에 따르면 2만1979달러인 미국(사립대)에 이어 8519달러인 한국이 두 번째로 차지했다.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OECD국가 평균치의 절반 정도이며 등록금의 78%를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기숙사비, 하숙비, 교재비 등을 합치면 학부모는 허리가 휘는 정도가 아니라 부러질 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반값 등록금’을 실천하라는 요구가 학부모 학생 시민단체 정치권 등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학등록금은 최근 10년간 매년 큰 폭으로 뛰어올라 상대적으로 적은 인문계만 하더라도 연간 1000만원 시대를 맞았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대학등록금은 10년 전에 비해 국립대는 95%, 사립대는 68%나 올랐다.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웬만큼 벌어서는 감당하기 벅차다. 등록금에다 책값, 각종 학습비용과 용돈을 감안하면 대학생 1인당 1년에 적어도 2000만원은 들여야 한다. 2010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이 400만7671원이므로 서민가계로는 거의 40%가 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대학생 두 명을 가르친다면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한 파산하거나 빚을 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시위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대학등록금이 사회문제화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달했는데도 정부는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듯 그간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돈 많은 권력자 고위공무원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이로 인해 민심이반을 초래했을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대학생들이 한 해 평균 230명 자살한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대학(원)생 자살자 수는 2001년 195명, 2002년 237명, 2003년 268명, 2004년 172명, 2005년 198명, 2006년 191명, 2007년 232명, 2008년 332명, 2009년 24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 동안에만 해도 대학생 800여 명이 생을 버렸다. 이성교제 실패에 따른 정신적인 문제와 성적부진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포함되지만, 등록금 마련 등 경제적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학생 단체의 한 간부는 “고액의 등록금과 청년실업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같은 사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해 등록금 부담이 학생들에게 주는 정신적 압박을 지적했다.
전국등록금네트워크(등록금넷)는 “과중한 등록금과 경쟁위주 대학교육,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가 20, 30대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징벌적 차등등록금제도가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값등록금, 올바른 대책은?
민주당은 지난달 중순, 임시국회에서 반값 등록금 예산 5000억 원을 추가로 편성한 뒤 당장 올 2학기부터 실행하자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은 반값 등록금에서 더 나아가 무상 등록금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천 최고위원은 부자감세만 철회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천 의원은 “대학생을 가진 부모들은 등록금과 교육비를 합치면 1년에 2000만~3000만원이 들어간다”며 “참여연대의 표현대로 ‘살인적인 교육비의 사회’ ‘미친 등록금의 나라’이다”라고 비판했다.
반값 등록금이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부모 재학생들의 요구대로 실현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가 정치권의 실현 의지이며, 둘째가 재원확보다. 여기서 추가로 교과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부실대학 구조조정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교육부문 예산은 41조원으로 지난해보다 3조원이 증액됐고, 교육예산의 대부분은 초중고교 교육에 사용되며 대학교육에는 12%만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늘어난 3조원은 몽땅 초중등 교육에 투입한다.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실천의 기본 방안의 하나는 대학교육 부문에 쓰는 교육예산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20%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나 개인이 대학에 쉽게 기부하고 투자하도록 법령을 개정하고, 대학의 장학금을 대폭 늘리며, 등록금에 주로 의존하는 기존의 대학재정 수입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반값 등록금 실행방안의 골자이다. 한편 이주호 교육과학부 장관은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올인 하듯 추진하고 있는 등록금부담완화(반값 등록금)방향에 대해 동의하고 6월말까지 당정 협의를 마치고, 내년 1학기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 방침을 여당 신임 원내대표가 내놓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시큰둥하고 반신반의 하는 모습이다.  서울 여의도 소재 시민 한수영(29) 씨는 “그간 한나라당이나 정부 주요 관련부처에서 줄곧 반대해 왔던 것을 총선을 1년 앞두고 갑자기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 못 미덥다”며 “여당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재원마련에 대한 방책을 신속히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과부의 기본 방향도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화끈하게’ 절반으로 줄이는 게 아니라 장학금 확대와 개별 대학에 대한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줄이도록 유도한다는 미지근한 내용으로 알려진 것도 대학생들의 시위가 잦아들지 않는 것과 상관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TF팀이 어떤 결론을 도출하고 교과부와의 당정협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는지는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대학 스스로 대학운영비의 절반을 조달하든가 정부가 등록금 총액의 50%를 재정으로 대학에 지원해줘야 가능하다. 때문에 대학 측에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몫인데 예산편성에 있어서 등록금 반액 예산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보장은 없다. 반값 등록금 실행 여부는 국정 운영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지혜에 맡길 수밖에 없다.   

공동취재/문혜원·박지연 기자

문혜원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